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추풍령고개
금 산 (370m), 용문산 (710m), 국수봉 (790m)
산행일시 : 2005년 3월 20일 10시 15분 - 16시 25분 산행시간 : 6시간 10분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어모면 - 상주시 공성면
산정산악회 회비 : 25,000원 날 씨 : 화 창 산행거리 : 약 18km
춥고 지루하던 겨울도 지나고 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날아침 감기의 뒤끝이라 아직도 미열과 잔기침이 나지만 보름 만에 휴일을 맞아 집에서 쉬기는 좀이 쑤시고 이번구간이 당일 산행으로는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높낮이가 별로 없는 무난한 코스이기에 무리인줄 알면서도 집을 나섰다.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추풍령고개 200여m의 낮은 언덕에 불과한 이곳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지나는 길목으로 그 옛날에는 문경새재의 명성에 가려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한적한 고개 마루였지만 경부선이 개통되고 자동차가 넘나드는 대로가 뚤 리며 모든 도로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오순도순 살아가는 시골마을이 둘로 갈리어 경상도의 김천시와 충청도의 영동으로 나뉘고 고개 마루 작은 배나무 밭이 끝나는 자리에 도 경계석이 있었다지만 도로 공사로 없어지고 충청도에서 청풍명월의 고장이라는 표지 석을 다시 세워놓았다. (10시 15분 산행출발)
산행 들머리는 동쪽으로 뚤 린 농로를 따라 2-3분 가다보면 포도밭이 나타나며 곧바로 4차선 도로공사로 허리가 동강난 절개지 옆으로 오르게 되는데 15분 만에 금산의 정상에 올라서면 백두대간이 훼손되는 현장을 목격하며 머지않아 금산이라는 지명자체도 없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고속철도 공사에서 골재를 채취하는 현장으로 비운을 맞고 있는 금산은 정상까지 100여m가 넘는 수직벼랑으로 절개지가 되어 모골이 송연하며 아슬아슬하게 마루 금을 따라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잡목이 무성한 대간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고 화창한 봄 날씨에 훈풍까지 불어오니 산행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날씨로 사진 찍고 메모하다보니 신바람 나게 달려가는 선두그룹과는 거리가 벌어지고 급한 마음에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502봉 오르막길에서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며 뱃속에서 구라파전쟁을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감기의 여파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일까지 겹치고 말았으니 안절부절 못하며 정상에 올라 뒤 처리를 하는 동안 일행들은 멀찌감치 사라지고 구만리 같은 앞길이 막막하기만 한데 낙오자가 되어 맨 뒤에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이런 상태라면 완주는 고사하고 작점고개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까지나 잘 가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설사로 한바탕 홍역을 치루고 오르는 산길은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어오르고 허기진 배를 웅 켜 잡고 걸어갈 때 계속되는 여진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성치 않은 몸으로 산행에 나선 것이 후회막급이라 435봉을 올라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양지바른 구릉지대를 지나며 컨디션도 점차 회복이 되며 사기점 고개에 도착하니 어려운 컨디션 속에서도 예상시간보다 빠른 1시간 35분 만에 통과하는 안도감에 후미그룹과 합류하여 묘함산의 중계 탑을 바라보며 진행을 하는데 임도 따라 10여분을 오르면 솔 푸더기 무성한 길로 접어들어 묘함산 오르는 시멘트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12시 10분)
이곳에서 거짓말처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버스 안에서 침이 마르도록 알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표지판이 왼쪽이 아닌 묘함산 쪽으로 방향표시가 되어있고 뒤따르는 모든 이들이 무턱대고 산길로 오르고 후미로 처진 내가 선두가 되어 내려딛는 발걸음이 왜 이리도 가벼운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시멘트 길의 양옆으로 백두대간의 리본들이 나를 반기며 제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컨디션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오른쪽으로 신애원 농장을 바라보며 개념 도를 살펴가며 농장아래 길옆에 주차되어있는 버스를 확인하며 반가움에 활기찬 발걸음으로 작점고개에 도착하니 제대로 길 찾아온 몇몇이 휴식을 하고 있다 .(12시 35분 - 식사 15분간)
2차선으로 포장된 작점고개에는 아담한 정자와 함께 쉼터가 마련되어 있는데 영동의 추풍령 면에서 김천시의 어모면 으로 넘나드는 고개 길로 충청도 사람들이 고개 너머 경상도 땅에 여덟 마지기 농사를 지었기에 여덟 마지기 고개라 불려오고 있다는데 백두대간 종주 팀들에 의해 작점고개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한바탕 설사로 허기진 민생고를 해결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 보온밥통에 냉이 국으로 포식을 하고 알바 하던 친구들이 풀이 죽어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직도 절반이 넘는 길을 완주하려면 쉬엄쉬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길을 나서며 컨디션 조절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12시50분)
표고 340m의 고개 마루에서 북쪽 사면 길로 올라서면 완만한 능선길이 펼쳐지고 식사 후의 산행길이라 천천히 내딛는 발걸음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훈풍을 맞으며 473봉에 올라서니 등 뒤로 묘함산의 중계 탑이 선명하고 한달음에 달려간 갈 현 고개는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곳으로 큰 재에서 출발한 대간 팀들을 만나는 반가움에 인사를 나눈다. (13시 25분)
갈현 고개에서 바라보는 687봉은 높기만 한데 산림욕장의 오솔길에서 피톤치드로 운기를 하며 기도터 바위를 지나 전망 좋은 헬기장에 도착하니 용문산의 자태가 선명하고 억새풀이 무성한 농로를 가로질러 서서히 고도를 높 혀 가는 대간 길은 한낮의 태양열로 온몸이 녹아내리고 무거워진 발걸음에 느림보 행진을 하고 있다.
알바하고 돌아온 선두 팀들이 잰 걸음으로 하나둘 내 앞을 추월해가도 그들을 따르기에는 역부족인데다 오늘의 컨디션으로는 지금의 주행 속도 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며 내 뒤에는 40여명의 일행들이 뒤따르고 있다는 안도감으로 컨디션 조절에만 신경을 쓰며 687봉에 올라서니 잡목이 무성한 정상은 별 특징이 없고 우측으로 선회하여 안부로 살짝 내려섰다가 고도차가 별로 없는 용문산 오름길은 큰 어려움이 없고 수월하게 정상에 올라선다. (14시 30분)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정상은 오늘의 구간 중에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서북쪽으로 백화산(933M)이 하늘 금을 그으며 그 앞으로 지장산(772m)이 우뚝한데 서남쪽으로 추풍령 고개 너머로 눌의산(743m)의 자태가 아련하고 오늘 걸어온 마루금 따라 묘함산(733m)이 정수리에 철 모자 눌러쓰고 동쪽으로 백운산(618m), 북으로 달려가는 국수봉(683m)과 상봉산(572m)이 사방팔방 막힘없이 펼쳐지는데 정상에는 표지석하나 없이 억새풀만 무성한데 발아래로 후미진 산골마을에 여느 면소재지보다도 화려한 도시가 형성되어 있으니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용문산 기도원이다.
1950년 나운몽 목사가 건립한 한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50여 만 평의 너른 분지 안에는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밀집되어있고 실버타운을 조성하고 있다고 하니 마음도 몸도 병든 자들의 안식처라고 할 수 있겠다.
악조건 속에서도 13km가 넘는 길을 용케도 버텨왔으니 이제 국수봉만 넘으면 목적지에 완주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서둘러 대간 길을 따라 나서는데 북사면의 비알 길에는 날씨가 풀린 탓에 진흙 탕 으로 곤죽이 되고 그 밑으로 깔린 얼음짱이 엉덩방아 찧기에 십상이라 나무등걸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다보니 국수봉의 전위 봉을 오르는 돌계단에서 왼쪽 허벅지에 경련이 일며 뻣뻣하게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으니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근육을 풀기위해 안간힘을 쓰며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하기 만하다.
가시밭길 헤치는 고통으로 내딛는 돌계단이 가파르고 악전고투 끝에 전위 봉에 올라 지척에 있는 국수봉을 바라보며 무사히 저 산을 넘게 해달라는 기도를 수 없이 하며 절룩이는 발걸음에 묻어나는 무모한 행동을 자책하며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겁 없이 덤벼들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고 말았으니 자업자득이 아닌가?
가까스로 국수봉에 올라서니 다리에 경직도 풀리고 지친 몸이지만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큰 재를 바라보며 몸을 추 수리고 10여 분간 휴식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상주시청 산악회에서 세운 돌비석이 대간꾼들의 사랑을 받으며 상주의 너른 분지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지금까지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선 따라 달려온 대간 길은 상주 땅으로 접어들며 북으로 이어지는 마루 금 따라 다음 산행지인 백학산이 아련한데 왼쪽의 급사면으로 곤두박질치며 내딛는 발걸음에 곤죽이 된 진흙탕길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15시 30분)
583봉을 내려서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평지와 하산 길에 자신이 있는 나는 빠른 회복으로 체력을 보강하며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우여곡절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오늘의 목적지인 큰 재에 도착하니 시산제 준비로 분주한 정대장의 환영을 받으며 지금은 폐교 가되어 잡초만 무성하고 을씨년스럽지만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옥산 초등학교 인성분교의 교정에서 대간 길을 향하는 산정산악회의 산 꾼들에게 금년한해도 무사 무탈하게 하여달라는 축문 낭독으로 신령님께 예를 올리고 이어지는 뒤풀이에 오늘의 고초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더욱 겸손하게 산을 오르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16시 25분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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