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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낙동강 천리 길 . 9

일시: 2012년 10월11일 13시 - 20시 (7시간)

구간: 적교 - 감곡마을 -  여의리 - 진동고개 - 박진대교 - 대곡저수지 - 칠현 - 창아지나루 - 개비리 - 도초산 - 학계리 -

        남지읍 대신동 m 모텔 (35km)

 

                                        9. 자연의 습지 우포늪

지난번 적교를 다녀갈 때는 하지를 불과 일주일 남겨둔 때라, 극심한 가뭄과 때 이른 불볕더위로 애를 먹었는데,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가 지난 탓인지 아침저녁으로 선들바람이 불어오는 10월도 중순이 되었다. 운동하기에 가장 좋은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이하여 2박3일의 일정을 잡아 낙동강 답사를 위해 또다시 적교를 찾아왔다.

 

동서울에서 의령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가 하루에 3번이라, 9시에 출발하는 첫차로 4시간을 달려온 끝에 오후1시 적교에 도착한다. 오늘의 숙박지를 남지읍으로 정하고보니 35km 걸어야 하는 강행군인데, 출발이 너무 늦어 무사히 소화할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번 안동구간에서 겪었던 일이지만 서울근교와는 달리 읍 소재지가 아니면 숙박업소를 찾기가 어렵고, 농촌의 인심이 예전만 같지 않아 낮선 사람을 경계하는 탓에 늦은 밤에는 함부로 마을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제방위로 신설된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면 태풍이 할퀸 흔적으로 왕 버들가지에 걸린 부유물이 바람에 나풀거리지만, 한여름 뙤약볕아래서 구슬땀을 흘리며 고생한 보람으로 낙동강변의 너른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인다. 창녕함안보 44.5km이정표를 지나면, 낙동강 하구 둑 134km 안동댐 251km 이정표가 반겨준다.

 

신반천을 경계로 합천군과 작별하고 의령군 지경으로 들어선다. 강 건너 창녕군 쪽으로 보이는 토평천은 우포늪에서 흘러넘치는 물이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곳이다. 토평 천을 거슬러 오르면 대한민국 최대의 자연내륙습지인 창녕 우포늪과 만난다. 동쪽에 있는 화왕산 물줄기가 토평 천으로 흘러들어 사지포를 만들고, 우포로 넘어온 물이 목포를 거쳐 쪽지 벌로 가는 4개의 못을 합하여 우포늪이라 부르며 70여만 평의 면적을 자랑한다.

 

철새나 생태계,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우포늪은 어린이들의 자연 학습장으로 명성이 높다. 늪이 시작되는 가장자리로 왕 버들이 습지를 이루고 양서류의 좋은 서식처가 되어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남생이를 비롯하여 능구렁이, 두꺼비, 논두렁에 구멍을 내는 드렁허리, 3년 가물에도 살아남는 가물치가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연의 조건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늪의 중심부에는 직경이 1m에 이르는 가시연을 비롯하여 마름, 줄풀, 억새와 갈대들이 꽃술을 활짝 펼쳐 각종곤충들을 불러 모으고, 겨울을 나며 번식하려는 댕기물떼새, 쇠오리, 넓적부리 등의 겨울철새들이 보금자리를 찾아 모여든다. 자연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피톤치트라는 항균물질을 발산하므로 우리 몸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의령군은 의령읍을 중심으로 12개면에 3만 명이 살아가는 고장이다. “군민과 함께하는 희망찬 의령”에서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난 삼성그룹 창업자이자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다. 호암선생의 조부께서 터전을 이룬 고향에서 유년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할 때 까지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산 모랑이 돌아서면 양지바른 언덕아래 아담한 감곡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앞으로 펼쳐지는 문전옥답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마 밭이다. 마는 생으로 먹을 때 끈적거리는 것이 특징인데, 뮤신이라는 성분 때문에 뱀장어와 같은 효과가 있어 살아있는 뱀장어라고 부르는 스테미너 식품이기도 하다. 단백질과 지방, 칼슘, 인산의 함량이 높은 마는 비위에 열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아 식은땀과 설사, 구토증세가 나타나기도 하니 주의가 필요한 식품이다.

 

특용작물로 농촌소득의 보탬이 되고 있는 마 밭을 지나면,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하얀 랩으로 포장된 둥근 물체가 즐비하게 보인다. 곤포 사일리지라고 하는 이 물체는 일명 볏짚 김치라고 부르는 가축먹이로 사용하기 위하여 볏짚을 압축한 것이다. 500kG정도의 크기로 젖산발효를 위해 미생물 첨가제를 주입하여 40일간 숙성 시킨 후에 사용하게 된다.

 

“여의마을” 충청도가 고향인 내가 뛰어 놀던 마을 이름과 같은 표지판을 바라보며 남다른 정감이 가는데, 200년 전통을 이어온 숭어 잡이 마을이라니 그냥 지나칠 수 있나. 4대강 공사로 징발된 선박이 손을 놓고 있는 강기슭이 숭어 잡이의 현장이다. mbc “고향은 지금” 에 방영된 안내문에 의하면 숭어는 바닷물고기라 한다. 하지만 민물에서도 살 수 있는 숭어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산란 할 장소를 찾아 얕은 곳으로 올라온다. 이때가 숭어 잡이의 적기인데 기름이 오르기 시작하여 고기의 육질이 최고의 맛을 낸다고 한다.

 

이 마을이 숭어 잡이로 유명한 것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방식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어, 살도리(소나무)와 비장대(대나무)로 기둥을 만들어 그물을 지탱할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그물들이 고기를 몰기위해 유인책으로 설치된다. 그물의 엉성함은 큰 고기들도 빠져나갈 정도이지만 물살에 흔들리는 그물의 움직임에 놀란 숭어가 얕은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게 되고 숭어 막이 통 안으로 뛰어 오르게 된다. 그물이 고기들을 유인하는 방식은 여의마을 홍정표(68세) 씨가 유일한 기술보유자로 남아있다고 한다.

 

가을정취는 강가의 억새밭에서 시작된다. 산들바람 불어오는 강 언덕에 흰머리 풀어헤친 억새들이 따사로운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고, 보랏빛 구절초의 가녀린 손짓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만다. 끈질긴 집념으로 물고기를 낚아채는 백로, 담쟁이와 칡넝쿨에 결박당한 왕 버들도 먹이사슬의 일종인가. 겨울을 준비하는 야생초들의 잎 새들도 누렇게 시들어가고 쑥대머리 잡초들이 을씨년스럽다.

 

낙서면 남쪽자락에서 진동고개를 만난다. 오르막이 2km 내리막이 4km. 자전거 동호인들의 수난이 시작되는 눈물고개다. 신나게 질주하던 메니아들도 이곳에서만큼은 내 뒤를 따라오기가 힘에 겨운지 안간힘을 쏟는다. 정상에 올라서면 그동안의 고통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낙동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자전거 우회로가 있는 곳이면 아름다운 절경이 숨어있다. 수 십 길 벼랑을 뚫지 못하고 돌아온 길에 박진교가 자리 잡고, 다리난간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한 폭의 그림처럼 절경을 이룬다.

 

의령군 부림면과 창녕군 남지읍을 왕래하던 박진나루터는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묻어나던 교통의 요지이다. 먼동이 트기 전에 사공을 부르는 낮선 과객들, 시집살이가 무서워 서럽게 울며 건너던 새색시, 보부상들의 고단한 숨결이 이곳 뱃사공의 한 서린 푸념 속에 전해오던 곳이다. 세월 따라 세상도 변하여 초현대식 다리가 건설되니 826m의 박진교라. 강 하구가 넓어지며 끝없이 길어지는 다리를 건너며 맞은편 산자락에 있는 박진지구 전 적비를 바라본다.

 

휴전 그리고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찌 우리 잊으랴 6.25의 그날을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38선을 돌파하여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을 넘어 남으로 계속 내려 왔다. 개전 40여일이 경과한 8월초에는 마침내 낙동강을 끼고 최후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 바로 창녕박진나루 전투였다.

 

한국전쟁이 일어 난지도 60년이 지났다. 당시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는 다부동 전투. 마산 정연전투. 영천지구 전투. 기계 안강 포항전투. 박진나루전투였다. 그중 박진나루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과 마지막일전을 벌였던 전투이고, 이곳이 무너지면 부산은 물론 나라전체가 순식간에 공산군에 점령당하는 최후의 순간이었다.

 

1950년 8월 6일부터 10월 4일까지 박진나루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미군 제2사단과 제24사단이 북한군 제4사단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함으로써 아군이 낙동강을 건너 반격하게 되었으며 결국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박진나루전투는 낙동강만 건너면 부산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낙동강에 집결한 공산군을 향해 전투기들이 벌 때 같이 날아와 포탄을 퍼부었으니, 적군의 사단병력이 이곳에서 괴멸되어 북한군의 시체가 낙동강을 피로 물들인 곳이다.

 

그 시절 절체절명의 순간들도 역사박물관을 통하여 실감할 수 있게 되고, 평화로운 박진 나루를 건너 코스모스 꽃이 피어있는 자전거 길을 따르면 집집마다 빨갛게 물든 고추들이 마당가에 널려있고, 가을걷이에 한창인 트랙터가 너른 들판을 누비는 정경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적포교를 건너며 작별한 창녕군으로 다시 돌아왔다. 화왕산과 부곡하와이, 우포늪으로 더욱 알려진 창녕군은 낙동강을 끼고 있어 농경문화가 발전한 지역이다. 창녕읍과 남지읍을 비롯하여 12개면에 6만3천여 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남지읍은 계성천과 고곡천 등의 작은 하천들이 읍의 서부와 남부를 흐르는 낙동강으로 흘러들며 하천 주변에 충적평야가 넓게 발달하고, 구마고속도로와 마산방면의 국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에 인구 1만 여명이 살고 있다.

 

남지읍에 도착했어도 오늘의 숙박지가 있는 곳까지는 10여 km를 더 가야한다. 해는 서산에 기우는데 갈 길은 멀고, 객지를 떠돌며 가장 서러운 것이 고단한 육신을 누일 잠자리하나 구하지 못하는 일인데 이일을 어찌할꼬. 칠현마을에서 1008번 지방도로는 구평마을 쪽으로 돌아서고 자전거 길은 창아지 나루로 향한다.

 

백두대간을 오르며 야간산행에 이골이 난 터라, 미리 준비한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어둠속을 더듬는다. 창아지 나루에서 강을 버리고 영아지 마을로 향한다. 가로등불빛이 밝혀주는 마을회관에서 산기슭을 돌아가는 고개 길이 시작된다. 사람이 두려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이 어둠속이라고 한다. 주위를 살펴볼 수 없는 검은 장막 속에서, 고립무원의 외로운 신세가 되고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온몸이 땀투성이다. 정상에 설치한 간이휴게소 전망데크에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어둠뿐이다. 낮에 이곳에 올랐다면 남강이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기강나루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남강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西上面) 남덕유산 서쪽계곡의 “참샘”과 지리산 천왕봉 아래 “천왕샘” 에서 발원한다.

 

산청(山淸), 진주(晋州), 함안(咸安), 의령(宜寧)을 지나 의령군과 함안군이 경계를 이루는 기강나루터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길이 189킬로미터로 낙동강 유역에서 가장 긴 강이다. 강의 상류지역은 내륙 분지로 형성되고, 하류 지역은 진주 평야를 비롯한 충적 평야가 펼쳐진다.

 

남강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진주의 촉석루다. 역사 속에서는 처절한 전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축제의 마당이 된 남강의 유등놀이는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기원하고 있다. 진주성싸움 때,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성 밖의 지원군과 연락하기 위해 군사신호로 풍등을 올리고,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워 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전술로 쓰였던 것이다.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유등놀이축제는 “물․ 불․ 빛” 을 주제로 우리의 소망"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세계평화와 인류 복락(福樂)을 소망하는 등불을 역사의 강, 진주남강에다 밝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포마을에서 학계리로 내려서며 남지읍 내가 불야성을 이룬다. 어둠속을 헤치는 2시간이야말로 4대강 답사에서 길이 남을 야간산행이다. 무사히 완주했다는 자신감으로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은 천리라도 달려갈 기세다. 7시간의 강행군으로 35km를 완주하고 M모텔에서 첫날밤의 단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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