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2년 6월13일
경유지: 왜관읍 - 왜관철교 - 서주대교 - 가죽정나루 - 동곡교 - 문양역 - 다사읍 - 강정보 - 곽촌나루 - 사문진교 -
화원읍 - 화원시장(宿) (약32km)
6. 호국경
아카시아가 만발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원호의 달 6월을 맞는다. 아내와 함께 여수 엑스포 관광을 다녀오느라 국토대행진의 발걸음을 잠시 늦추었더니, 푸른 숲에 둘러싸인 산과 강이 한층 더 활기가 넘친다. 어린 시절 겪었던 6.25는 아직도 생생한 기억 속에 남아있다. 6.25전사에 기리 남을 낙동강전투가 벌어진 왜관읍을 원호의 달에 찾아 온 것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意味深長하다.
구미와 대구의 중간지점에 있는 왜관은 읍 소재지이면서도 서울에서 직접 오는 버스가 없어 구미에서 시내버스를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다. 동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왜관에 도착하니 10시가 훌쩍 넘는다. 이제부터 당일 행사로는 시간과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 2박3일의 일정으로 계획을 세우고, 왜관 터미널을 빠져나오면 가장먼저 반겨주는 곳이 자고산 자락에 조성된 호국동산이다.
애국동산에는 6.25전쟁 희생자와 항일 애국지사 추모비가 모셔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장진홍 의사를 비롯하여 이창기, 도병철, 정행국, 이수일 의사 등 독립유공자기념비와 경찰위령비가 건립돼 있다. 애국지사 이수일 선생은 영남 유림단을 결성하여 삼일운동을 지원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7년 유림단 사건에 관련돼 1년 3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자전거길이 조성된 강가로 나오면 가장먼저 반겨주는 곳이 호국의 다리(왜관철교)다. 낙동강 700리를 피로 물들이던 55일간의 혈전은 6.25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로 기록된다.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의 진격을 차단하기 위해 8월 3일 왜관 주민들에게 소개령이 내려졌고, 8월 4일 새벽까지 왜관 인도교를 포함하여 구(舊)철교를 폭파함으로써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혈전이 벌어지는 동안, 8월 16일 4만 여명의 인민군이 왜관지역 낙동강 서북방 일대에 집결중이라는 첩보에 따라 B29폭격기 98대를 출격시켜 융단 폭격을 가하므로, 인민군 3만 여명을 섬멸하는 전과를 올려 전세가 역전되었다고 한다.
1950년 10월 유엔군의 총 반격이 있을 때, 인도교 폭파 구간을 침목 등으로 긴급복구한 후 사용하다가 다리가 노후하여 1979년 11월부터 통행을 전면 중단하고 철거하게 되었다. 호국의 상징인 이 다리를 보존하자는 군민들의 의사를 수렴하여 1993년 2월 새로 복구하여 호국의 다리로 명명함으로써 호국정신을 되새기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피로 물들었던 낙동강은 오늘도 말없이 흘러가고, 당시의 격전지였던 낙동강 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만발하고, 조국번영의 상징으로 조성된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서울로, 부산으로 자전거 길이 연결되니 이 또한 隔世之感이라 할 수 있다.
왜관읍에서 대구광역시와 경계를 이루는 하빈 고개까지 강변 따라 수변식물인 갈대와 왕 버들이 무성한 습지를 이루어 해평 습지와 함께 철새들이 찾아오는 낙동강 철새도래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여독도 풀 겸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휴식을 화고 있는 동안 전화벨소리가 들려온다. 대구에 사는 처제가 저녁식사를 하자는 전갈이다. 반가운 소식에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참외로 명성이 높은 성주군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다보인다. 성주하면 참외, 참외하면 성주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명사가 되어버린 성주참외는 공해 없는 가야산의 깨끗한 물과 충분한 일조량에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노하우가 있어, 전국하우스재배의 절반을 차지하며, 비타민 C와 칼슘이 함유되어 피부미용에 좋고, 사근사근한 육질이 혀끝을 녹이는 감칠맛과 신선한 향기가 천하일품이라고 한다.
성주대교를 바라보는 산자락에 품위 있는 고택 한 채가 시야에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니 이곳이 바로 전의이씨가 터를 잡은 하목정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 1566∼1638) 선생이 1604년(선조 37)에 세운 것이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머무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자인 이지영에게 하목정이라는 정호를 써 주었으며, 또한 일반 가옥에서는 볼 수 없는 부연을 인조의 명으로 서까래 위에 달았다고 한다.
사랑채로 이용하는 이 정자는 평면이 丁자형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다. 처마 곡선도 부채 모양의 팔작지붕이고, 내부에는 김명석, 남용익 등 명인들의 시액이 걸려 있다. 아름다운 노을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에 노니는 따오기를 형상화 했다는 하목정.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성주대교를 지나 남쪽으로 흐르던 낙동강이 죽정나루를 바라보며 동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강물 따라 직선으로 5km만 내려가면 강정보에 도착하지만, 자전거 길이 문산리 벼랑에 가로막혀 하빈 천을 따라 동곡교로 올라온 다음 30번 국도를 따라 문양역까지 진행하고, 다사읍을 통과하여 금호강을 끼고 강정보로 돌아오는 13km에서 모두들 지치고 만다.
강창교를 지나 강정마을에 이르면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두 물머리가 나타난다. 금호강은 포항시 북구 죽장면 가사리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영천시와 경산시 일대를 지나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과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경계에서 낙동강 본류에 유입되는 길이 118km에 이르는 강이다.
금호라는 명칭은 금호읍 강변 구릉지의 갈대 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마치 비파소리와 같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강 유역에는 넓은 금호평야가 발달하여 대구·영천·경산을 중심으로 사과산지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또한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의 청못[菁堤]은 삼한시대에 축조되어 현재까지 관개에 이용되고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저수지라 한다.
드디어 강정보가 모습을 드러낸다. 강정보를 제대로 감상하자면 강정마을 뒷산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야한다. “강정보 녹색길”로 명명된 오솔길을 따라가면 2층 누각 팔각정이 반겨준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육지속의 바다처럼 잔잔하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고령 땅의 너른 평야와 산과 강이 어우러진 강정나루에 거대한 인공구조물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장관을 이룬다. 강정마을은 신라시대 정자인 浮江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신라왕이 이곳에서 유람을 하고, 이조시대에는 많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강론을 펼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후기가야시대의 중심이라는 지역특성과 대구의 첨단과학과 패션을 형상화하여 건설한 강정보는 원반부를 회전시켜 수문을 개폐하는 회전식 수문으로, 최적의 유량 조절이 가능하며 하층의 퇴적물을 배출하는 기능을 겸비하고 있다. 중간지점에는 가야토기를 형상화한 탄주대가 설치돼 있고, 톱니바퀴 형상을 한 낙락섬과 12계단, 12색 조명으로 구성된 물 풍금 등이 설치돼 있다.
안동댐으로부터 166㎞, 낙동강 하구 둑으로부터 168㎞ 지점에 있는 강정보는 4대강 16보중에서 길이가 가장 길어 953m(가동보120m, 고정보833.5m)에 이르고, 저류용량이 1억800만 톤으로 영천댐보다도 많다고 한다. 또한 3,000kw의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어 300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큰 규모와 색다른 시설로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도 인상 깊은 것은 해질 무렵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탄생한 것이다. 강정보 중간지점에 설치한 탄주대에서 상류 쪽이 정서방향이라 죽정나루까지 5km에 이르는 물길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지고,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면 수면위로 붉은 노을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공도교를 건너면 고령 땅이다. “희망찬 고령 행복한 군민”을 목표로 살아가는 고령군은 1읍 7개면에 3만5천 여 명이 살고 있는 경상북도 남쪽에 있어 경상남도와 도계를 이루고, 동쪽으로 낙동강이 관내 4개 면을 우회하면서 달성군과 경계하여 흐르고, 북은 의봉산과 가야산 줄기가 연결되어 성주군과 접하고 있다.
고령군 홍보관에 의하면 서기 42년부터 520년간 옛 대가야국의 도읍지로 철의 왕국을 건설하고, 가야금을 창제하여 신령스러운 역사유적을 간직한 문화의 보고라고 한다. 대가야 왕릉 전시관에는 국보 제138호인 가야 금관을 비롯해서 금동관 금은동의 장신구류와 갑옷, 대도 같은 무기류, 발걸이, 마구리 등 철의 왕국이었던 대가야의 진수를 볼 수 있고, 가실왕의 명을 받아 만든 열 두 줄의 가야금은 박연, 왕산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인 우륵에 의해 창제되었다고 한다.
선사시대 유적에서부터 통일신라, 고려시대를 관통하는 불교문화, 그리고 조선시대의 유교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고령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가야산의 정기와 영남의 젖줄로 유유히 흘러오는 낙동강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산 문화공원을 지나 사문진교에서 고령 땅과 작별하고 대교를 건너면,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이다. 낙동강 종주 6구간도 7시간 만에 32km를 주파하고 화원읍에서 마감을 한다. 화원읍에서 숙박을 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지만, 처제와의 만남이 더욱 기다려진다. 시원한 저녁공기를 마시며 만찬을 즐기고 앞산공원에서 데이트까지 즐겼으니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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