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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낙동강 천리 길 .10

일시: 2012년 10월 12일

경유지: 남지읍 - 하남읍 28km

 

                                               10. 남지 철교

어제의 강행군이 무리였던지 온몸이 찌뿌듯하다. 하지만 귀중한 시간을 내어 찾아온 종주 길을 그대로 포기할 수가 없어 무거운 몸을 추수리어 행군을 시작한다. 동쪽에서 떠오른 태양이 낙동강 물을 붉게 물들이고, 길가의 쑥부쟁이가 아침이슬을 흠뻑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있다.

 

길고긴 남지교(746m)를 지나며 그 옆으로 트러스형의 아름다운 다리를 바라본다. 1933년 개통하여 당시의 최신기술이 동원된 교량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다. 다리가 건설 된지 79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 번 감탄하며, 그 당시의 기술로 이렇게 아름다운다리를 건설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마산-대구를 잇는 낙동강 도하교인 이 다리의 규모는 길이 390m에 너비가 6m로 차량 두 대가 비껴갈 정도로 좁다. 다리의 구조는 당시 유행하던 첨단 방식인 게르버식 연속 트러스교로, 1867년 독일 기술자 하인리히 게르버가 교각을 적게 설치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근대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교량이다. 625전쟁 시에는 중앙부분 25m가 폭파되는 비운 속에 1953년 복구되어 사용하던 중, 1994년 안전진단으로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어 철거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오랜 세월 낙동강의 가교 역할을 해왔던 남지철교가 철거될 위기를 맞게 되자, 이 소식을 알게 된 남지 사람들이 철교 살리기 운동을 벌인 끝에 2004년 12월 31일 등록문화재 제145호로 지정하여 자전거도로와 보도로 새롭게 태어났다. 현재는 남지교가 2007년 6월 준공되어 남지철교를 대신하고, 푸른색의 남지철교와 주황색의 남지교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남지철교 옆 벼랑 끝에 자리 잡은 능가사 또한 아름다운 절경이다. 용화산의 머리에 해당하는 능가사는 합천해인사의 말사로 용이 여의주를 물고 희롱하는 형상이라는데, 조선시대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던 용당터였다고 한다. 남지사람들이 즐겨 찾는 능가사는 낙동강 변에 자리 잡은 유일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남지철교를 건너오면 함안 땅이다. 경상남도 중심부에 자리 잡은 함안군은 1읍 9면을 관할하며 인구 6만7천명이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함안군의 특산물로는 파수 곶감을 제일로 손꼽는다. 조선 중엽부터 왕실에 올린 진상품으로, 감이 씨가 없고 사람의 손으로 정성들여 만들어진 이 곶감은 완제품이 된 후에도 말랑말랑하여 더운물에 넣어 저으면 꿀처럼 풀리는 특징을 갖고 있어 명절 때 만드는 수정과에 넣으면 천하일품이라고 한다.

 

함안군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분지로 북과 서는 낙동강과 남강으로 남과 동은 6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싸여있다. 이러한 지리적인 여건으로 일찍이 삼한시대 이전부터 6가야 중 아라가야(阿羅伽倻)의 도읍지였던 가야읍 도항 · 말산리 일원에 찬란한 가야문화가 발굴되고 있다. 산 아래 북쪽 낮은 언덕에 가야의 무덤들이 있어 공자모양의 굽다리접시(工字形高杯), 불꽃모양의 창을 낸 굽다리접시(火焰型透窓高杯)는 아라가야가 여러 가야 중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정치세력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또한 함안군 대산면 악양나루터는 60년대를 풍미하며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처녀 뱃사공에 관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박기준이라는 뱃사공이 살고 있었는데 6.25 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입대를 한다. 생계가 막막해진 집안에서는 고모와 조카 사이었던 두 처녀가 오빠를 대신하여 나룻배를 저으며 군대 간 오라버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만, 전쟁터에 나갔던 오빠 박기준이 그만 전사하고 만다.

 

그 해 함안 땅에 피난 왔던 유랑극단 단장이었던 윤부길씨가 피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면서 대산장터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나루를 건너 악양에 머무르면서 애절한 처녀뱃사공의 사연을 듣고, 가사를 지어 서울로 돌아와 작곡가 한복남씨에게 부탁하여 곡을 만들고, 당시의 민요가수 황정자를 통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 속에 흰머리 풀어 강바람에 분단장하는 억새꽃사이로 연보라에 노란꽃술이 앙증맞은 들국화가 짙은 향기로 벌 나비를 불러보지만, 메아리도 없는 산들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고수부지 일구어 함안 강나루 숲을 만들고, 코스모스 꽃 길 따라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면, 요강나루 지나 지척이 낙동대교라. 한강대교의 두 배는 되려나, 끝없이 무한정 길기만 하다.

 

함안창녕보를 5km 남겨두고 안동댐 288km에 부산하구 97km라 당당한 발걸음에 꽃가꾸기로 바쁜 중에도 반겨주는 아주머니들에게 반가운미소를 보낸다. 웅장한 덕남배수장을 돌아가면 드디어 창녕함안보가 모습을 드러낸다. 유유히 흐르던 강물도 수중보에서 걸음을 멈추고 너른 담수호를 빗어내니, 혈관처럼 뻗어나간 충적평야에 보혈주사를 놓아 十年大旱 왕 가뭄에도 격양가가 절로 나고, 4대강 살리기의 진수도 이곳에서 꽃이 핀다.

 

창녕보를 지나 온지 55km만에 함안보 인증센터에 안착한다. 낙동강 8개 보중에서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함안보는 함안군 칠북면 어시미산(324m)과 창녕군 길곡면 신성봉(328m)사이를 오가던 멸포나루를 막아 낙동강을 품은 고니의 날개를 형상화하여 녹색성장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총길이549m(가동보 144m, 고정보 405m)에 이르는 거대한 교량이 탄생하여 두 지방이 소통의 길로 연결된다.

 

배낭에 꽂은 국토대행진의 깃발을 보고 한강과 낙동강을 따라 600여 km를 걸어온 집념에 환호와 격려를 보내는 수자원공사 함안보 직원들과 자전거 종주 팀들의 환대에 화답을 한다. 필자의 저서인 “백두대간에 부는 바람”(백두대간 종주 수필집)을 건네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의기투합하는 것도 4대강 답사의 진정한 의미와 보람이 아닌가 싶다.

 

함안보를 건너면 또다시 창녕군이다. 이방면에서 시작된 낙동강이 부곡면까지 70여 km를 이어오고 있으니, 낙동강을 중심으로 생활터전을 일구어 온 창녕군은 우리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부곡하와이로 명성을 날린 온천이 대표적이다. 덕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부곡온천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영산온정(靈山溫井)이라 부르고, 여기서 나온 샘물이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 하여 문둥이 샘, 옴샘이라 불렀다. 한국최고의 유황온천으로 수온이 50~75℃나 된다. 1973년 70℃에 이르는 온천수가 처음 발견된 후 1977년 구마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종합관광단지로 조성하여 매년 36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창녕군은 낙동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인 여건으로 서쪽과 남쪽은 지세가 낮은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동쪽은 산세가 험하여 고산준령이 지나고 있으니 그 중심에 화왕산이 자리 잡고 있다. 창녕군의 대명사라 할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화왕산(757m)은 완만한 동쪽 사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급경사를 이루어, 지세를 이용하여 쌓은 화왕산성(사적 제64호)이 있어 임진왜란 때는 곽재우 장군과 의병 990명이 분전한 곳이다.

 

정상에는 수 천 명의 장졸들이 주둔할 수 있는 너른 평지가 있고, 억새들의 천국이 펼쳐진다. 창녕군에서는 1995년부터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억새 태우기 축제를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했지만, 2009년 발생한 화재로 관광객을 비롯하여 현장 공무원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후로 폐지되고 말았다. 또한 정상에 삼지(三池)라는 연못이 있는데, 이곳에서 용자(龍子)의 정기를 받아 창녕 조 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청한정을 지나며 가파른 벼랑사이로 자동차가 겨우 비껴갈 정도로 위험하고 협소한 이 길을 청학로라 命名하고 개설기념비를 세워 놓았다. 부곡면 청암리와 학포리 사이의 2km로는 천애의 절벽으로 가로막혀 사람들의 왕래가 불가능한 곳이었으나 두 마을의 견공들이 오랜 세월 짝을 찾아 오고가면서 자연스레 오솔길이 열리고, 사람들도 이 길을 따라 겨우 지나게 되었다.

 

수 백 년 간 교통이 불편하던 두 마을에 1986년 육군 공병대가 비상시 작전훈련용으로 도로를 시공하게 되었고, 이에 주민들이 경상남도와 창녕군에 진정하여 군, 관, 민이 새마을 운동의 정신으로 이 도로를 개설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차량2대가 겨울 비껴갈 정도로 협소한 이 길에는 자전거 도로도 개설하지 못하고 위험한 구간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야한다.

 

생태공원을 가득 메운 억새가 눈부시게 반짝이고, 사이 길을 질주하는 자전거 종주 팀들의 경쾌한 리듬 속에 본포교(1,080m)를 건너 창원 땅으로 들어선다. 마산ㆍ진해ㆍ창원의 3개 도시가 전국 최초로 자율통합을 이루어낸 고장이다. 내 고향 남쪽바다로 시작되는 마산에 수출의 역군인 자유무역지대로 경제의 기반을 다지고, 해군의 요람으로 벚꽃놀이로 상춘객을 불러 모으는 진해, 새롭게 태어난 기초행정도시 창원이 거대한 복합도시로 탈바꿈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찬 도시다.

 

낙동강 변 고수부지에 “어울林”을 조성하는 창원 땅을 거슬러 가면, 제방을 쌓아 황무지를 개척한 충적평야가 동읍과 대산면의 광활한 대지위에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펼쳐지고,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주남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창원시 동읍에 위치한 주남저수지는 602ha의 광활한 면적에 가창오리와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 205-2호인 노랑부리저어새를 비롯한 천연기념물 20여종과 환경부 멸종위기 50여종을 비롯하여 150여종의 다양한 철새가 감동을 주는 자연사 박물관이며, 수많은 조류 전문가와 탐조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숙박지로 점찍어둔 하남읍이 시야에 들어온다. 러브호텔로 인기가 있는 모텔은 잠시 쉬었다가는 사랑 놀음을 더욱 반기는 탓에, 하룻밤 신세를 져야하는 긴 밤손님이 벌건 대낮에 찾아드는 것을 꺼리고, 부득이 통사정을 해보면 웃돈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해서 현재 시각이 오후 1시 반이니, 모텔에 들어서기가 미안한 탓에 정자에 올라 배낭을 베고 누워보니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에 슬며시 잠이 들고 만다.

 

한 식경의 꿈나라 여행으로 몸은 더욱 거뜬해지고, 수산교를 건너가니 밀양시 하남읍이다. 고려초에 이미 수산현으로 불러온 탓에 수산리로 알려진 하남읍은 국도 25호선이 통과하고, 창원시와 김해시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룬다. 경상남도 지정문화재인 수산제는 전북 김제의 벽골제, 충북 제천의 의림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농경문화유적으로 삼한시대에 축조된 관개수리 시설이다.

 

면단위 보다 조금 큰 하남읍은 버스정류장 부근에 여인숙2개와 모텔이 하나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식당에서 점심요기를 하고 곧바로 수산대교를 건너 창원시 대산면 송등 마을에 있는 퀸 모텔에 여장을 풀며 하루에 낙동강을 5번 건너(남지교, 함안보, 본포교, 수산교, 수산대교)는 진기록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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