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年의 歲月속으로
일 시: 2009년 11월 7-8일
장 소: 경주 보문단지에서 남산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경주에서의 만남을 위해 모여드는 산우들. 전호영 회장 부자와 양재오 관장이 봉고차를 대동하고, 미리 도착한 나용준 부회장 가족들이 반겨준다. 응석받이 헤림이와 재균이는 2년 사이 몰라보게 훌쩍 자라 숙녀 티가 제법난다. 시산의 코리안 타임도 옛말이 되어 정시에 출발한 우리는 15인승의 옹색하고 비좁은 자리지만, 농익은 감처럼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아차! 잠간실수. 문영호 시인을 버려두고 온 우리는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며 땡감 씹은 얼굴들이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소리로 부산을 떤 뒤에야, 택시로 뒤 쫒아온 문영호 시인과 해후를 하며 해프닝도 끝이 난다.
스산한 바람결에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낙엽 되어 흩날리고,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와도 우리의 부픈 마음을 잠재울 수 있나? 옥산 휴게소 “고향집 뜨락에서” 나누어 마시는 반주는 우리의 여정에 윤활유가 되고, 경기명창의 대가이신 최 여사의 낭랑한 음색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구름도 자고, 바람도 쉬어 넘는 추풍령고개를 넘으며, 미리 도착한 신익현 시인의 빨리 오라는 독촉전화에 마음은 저만치 앞서 달려간다.
보문호수에 비춘 야경은 천리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우리에게 안겨주는 선물이고, 이번행사를 주관하는 이용숙부회장과 박은정 시인의 영접을 받으며 일성콘도에 여장을 푼다. 외국유학으로 근 10여 년 만에 참석하는 장태환 시인과의 만남은 이번행사에 절정을 이루고, 부산의 정혜임 시인까지 합세하며 축제의 밤이 무르익는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시루떡은 시장끼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고, 감칠맛 나는 전어 회와 곁들이는 소주는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한껏 고조시킨다. 밤을 밝히는 시낭송과 만감이 서리는 술자리는 끝날 줄을 모르고, 몽롱한 술기운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이른 새벽 호반으로 나선다. 지난 7월 백두산 등반 사고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고난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새벽 산책길에 모두 털어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발걸음이 경쾌하기만 하다.
전국에 걸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빗나가며, 오늘아침 호숫가로 떠오르는 태양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시내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주는 대여섯 차례 다녀간 적이 있기 때문에 관광지에 대한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해서 이번에는 천년 혼이 살아 숨 쉬는 남산에 올라 등산도하고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산행의 들머리인 삼릉으로 가는 길에는 나정과 포석정이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미련이 남는 이곳 “나정”은 신라 탄생의 설화가 있는 곳으로, 박혁거세의 유허비를 비롯하여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 건물지와 우물터가 남아있다. 또한 “포석정”은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연회를 행하던 곳이다.
산신령과 헌강왕이 함께 춤을 춘 것이‘어무 산신무’의 기원으로 전해지는 곳으로, 928년(경애왕5년)나라의 위기를 당해 제사의식을 행하다가 쳐들어온 후백제의 견훤에게 살해당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 사건으로 신라의 번영을 상징하던 포석정이 신라의 종말을 상징하는 곳으로 전해지고 말았다.
산행들머리인 삼릉주차장에는 길 안내를 도와줄 포항 산악회의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이용숙 부회장으로부터 산행시 주의 사항과 등산안내 부리핑을 받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등산로 입구에는 忍苦의 歲月속에 萬古風霜을 지켜온 아름드리 노송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인기절정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선덕여왕의 촬영지 표지판을 바라보며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잠시 후, 노송의 그늘아래 무덤3기가 우리를 반겨준다. 아직까지 누구의 무덤인지 확인된 바는 없지만, 무수한 비밀을 간직 한 채, 천년 세월을 자리보존하고 있으니 우리의 궁금증만 더한다. 한 걸음, 두 걸음, 올려 딛는 계단이 끝없이 계속되고, 불편한 다리로 용전분투하는 전상렬 전회장과 주진하 시인의 발걸음이 점점 뒤로 처진다.
우리가 오르는 계곡을 삼릉계라 부르고, 맨 먼저 모습을 드러낸 불상은 머리와 손발이 잘려나가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석존여래 좌상이다. 호기심으로 찾아온 발걸음이 무색하게 훼손된 불상 앞에서 분통이 치밀어 오른다. 세밀한 조각과 섬세한 옷매무시가 국보이상의 가치가 충분하기에 아쉬움이 더욱 남는다. 이 계곡에만 11개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고 있다는 설명에 따라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음으로 유형문화재 21호인 선각육존불을 만난다. 커다란 2개의 바위절벽에 음각된 마애불상은 여섯 분의 부처님이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좁은 식견 탓인지, 큰 감명을 받지 못하고 200여 m를 올라가면 왼쪽으로 형체가 완연한 좌상 앞에서 마음이 편안하게 진정된다. 골골마다 산등성이의 명당자리에는 부처님의 좌대가 안치되고, 수직단애 절벽마다 부처님의 미소가 가득하니, 경주 남산이 바로 불국정토가 아닌가?
불국사로 대변되는 불심이 황룡사에서 꽃을 피우고, 삼국통일의 기폭제가 되어 천년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선덕여왕 12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의 제청으로 세운 9층 목탑의 높이가 80여 m로 그 당시 세계적으로 이런 건축물이 없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불심이 구심점이 되어 천년의 영화를 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400여 m 남짓한 아담한 능선이 기암괴석과 절정을 이룬 단풍으로 아름다운 절경을 이룬다. 정상까지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야 하는 고뇌의 순간들, 그 어려운 고비 길에서 백팔번뇌의 고통을 몸소 실행하는 전상렬 전회장과 주진하시인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도 금오산 정상에서 苦盡甘來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가슴속의 모든 오물이 정화되고도 남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목부상의 후유증으로 피로가 몰려온다. 평소 같으면 이정도의 산행은 아침산책코스로 적당하겠지만, 이제 나이 탓인가? 회복 속도도 느려지고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육신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불로의 장생 앞에서 속절없이 사라지는데, 初露와 같은 인생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분수가 제일인 것을.
삼화령을 지나 이영재에서 봉화대능선을 오르기에는 힘에 겨운지, 모두들 산사면을 돌아가는 우회로를 따른다. 이곳은 남산에서 가장 호젓하고 편안한 산책길이 전개된다. 무성한 수림 속에 빠져들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소슬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의 세례를 받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피로도 잡념도 봄눈 녹듯 사라진다.
강원도의 깊은 계곡으로 들어선 듯, 주위의 경관이 보이지 않는 깊은 숲속에는 골짜기마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과 키를 넘는 산죽이 해맑은 연못 속으로 물구나무를 선다. “산죽과 연못”상상만으로도 신비감이 가득한 황홀감속에 윤선도의 걸작 품인 보길도의 세연정을 연상하며 남산의 또 다른 모습에 푹 빠져든다.
지친 몸에도 서광이 비추어 백운재에 올라서며, 고행도 끝이 나고 천국의 문으로 들어선다. 오늘의 산행에서 가장 높은 고위산(494m)을 옆으로 끼고 도는 탄탄대로를 따라 백운암을 지나면 용이 승천하는 용두암이 반겨주고 허기진 배를 채워줄 식당 산촌으로 내려선다. 시장이 반찬이라. 푸성귀에 토장국, 산채나물에 비빔밥, 동동주에 권주가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씻어 내리는 청량제가 되고도 남는다.
십여 일전 철원과 연천의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안보 관광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비무장 지대 안에 있는 경순왕릉을 참배하며 큰 감명을 받았다. 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이요. 고려의 왕건에 의해 신라가 멸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경애왕이 견훤에게 살해되고 그 뒤를 이은 경순왕이 국력배양과 호국안민을 위하여 노심초사 하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천하대세를 만회할 수 없이,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에 큰 아들인 마의태자를 중심으로 대소신료들이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하지만, 군왕의 권위를 생각하기에 앞서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여 肝腦塗地(간뇌도지)하는 참상을 볼 수 없다하여, 무모한 항전을 포기하고 濟世救民(제세구민)을 위하여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신다.
경순왕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왕건은 특별 조치를 내린다. 경순왕으로 하여금 경주지방을 다스릴 수 있는 특권을 주어 신라의 백성들은 단한명도 피해를 입은 자가 없이 평화로운 이양으로, 82세의 천수를 누리고 천년사직을 고스란히 보존 할 수 있었으니, 국가 지도자의 신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이용숙 부회장에게 또 한 번 큰 신세를 지고, 경주에서의 정기 산행을 정리하며 일박이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회원들의 단합된 모습을 보며 우리시산의 미래가 보이고, 알토란같은 회원들의 집념이 있기에 새로운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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