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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세계/시산의 행사

흑성산 시산제

 

                            

                                                       흑성산(519m) 시산제

 

 

정기산행 2009년 5월 10일

오늘은 제 16회 정기총회에서 새로이 출범한 전 호영 회장이 시산제를 올리는 첫 행사로 의미가 깊은 날이다. 하늘도 우리의 행사를 축복함인지 화창한 5월의 햇살아래 고속도로를 신나게 질주한다. 봉고차도 다 채우지 못하는 7명의 회원들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하지만 버스를 대절하여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가던 옛 영화를 들춰내면서 우리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시류의 변화에 따라 소슬한 가을바람에 낙엽 되어 떨어지듯, 하나둘 우리의 곁을 떠나고 이제 남은 인원이 20여명으로 줄어들고 말았으니 암담하기 그지없다. 산악활동에서 얻어진 고귀한 성취와 업적을 산악문학으로 형상화 해냄으로써 풍요로운 문학적 성과를 거둔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1994년 2월 26일 7명이 뜻을 같이하여 발기한 詩山. 사시사철 계간마다 회원들의 주옥같은 시편들을 발표하는 동안 전국의 동인들이 모여들어 50여명이 넘는 회원들의 활동무대로 200여 쪽이 넘는 문예지로 거듭 태어나 전국의 유일한 山 문학지로 각광을 받았었다.

 

 

 

 

 


예로부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재물과는 거리가 멀어, 독지가의 후원이 없이는 모임의 지속성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 계간마다 책을 발행한다는 것이 큰 숙원이 아닌가. 때를 맞추어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며 지역마다 거금의 활동비가 지급되는 단체로 흡수되며, 전국의 문학지라는 이유로 지원받는 손길이 없다보니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자명한 현실이 아닌가.

 

 

 

 


우리의 현주소를 뒤돌아보며 위기 뒤에는 찬스가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목 천 I. C를 빠져나오면 흑성산을 배경으로 조성된 민족의 성전인 독립기념관이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다.

하늘로 승천하는 겨레의 탑이 중앙에 자리 잡고, 너른 광장 가운데 겨레의 집 뒤로 흑성산(519m)의 정상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건을 계기로 1982년 8월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하여 5년간의 공사 끝에 1987년 8월 15일 개관되었다. 겨레의 탑에서 옷깃을 여미는 경건함속에 다리를 건너면 백련지에 이르고 태극기마당에서 더욱 숙연해진다. 중앙의 겨레의집은 국내최대의 한옥이다. 지붕을 이은 수 십 만개의 기와는 우리 모두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값진 유산으로 숱한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켜온 선조들의 얼이 담겨있는 성전이다. 우측으로 광개토대왕비를 바라보며 우리선조들이 북벌정책으로 만주벌판을 호령하고 웅지를 불태웠던 그 시절을 되새겨 보며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쇠약해진 국력으로 일제 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한 애국 열사들의 고난의 현장을 보며 심한 자책감으로 전율을 느낀다. 

 

 

 

 


일찍 찾아온 불볕더위를 피해 숲속으로 들어서면 울울창창한 삼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시원한 숲길에는 각종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고 장끼와 까투리가 춘정 속에 화들짝 놀라 하늘로 날아오른다. 인적도 없이 고요한 흑성산 가는 길엔 한낮의 열기 속에 피톤치드의 짙은 향기가 몽롱하던 머릿속을 말끔하게 씻어 내린다. 안성의 칠장산(492m)에서 시작된 금북정맥이 남쪽으로 내려오며 서운산(547m), 성거산(579m), 태조봉(422m)을 솟구치고, 솔봉(321m)을 지나 아홉사리 고개에서 동쪽으로 금계포란(金鷄包卵: 금닭이 알은 품은 형상)의 길지에 흑성산(519m)이 자리 잡고 있다.

 

 

 

 

 


산의 본래 이름은 '검은성(儉銀城)'이다. 군 시설과 방송시설, 텔레비전 중계소 등이 있는 정상은 천안의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에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수 백리 산하를 굽어 볼 수 있고, 격변기에는 나라를 수호하는 요새지로 각광을 받는 성지이다.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죽자(영조32년, 1756) 지관을 풀어 이곳 흑성산 남쪽 아래 지금의 독립기념관 자리에 묘 자리를 정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유명한 지관이 와서‘이곳은 2, 3백년 후에 나라에서 요긴하게 쓸 땅이라 그 때 이장해야 될 것이니 이곳에서 십여 리 동쪽에 묘를 쓰라’고 권하여 그 말 대로 흑성산 정동 6Km 지점의 은석산(455m) 남쪽 기슭으로 옮겨 썼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정상에서의 깊은 감회를 뒤로하고 시원한 그늘 속에 자리를 잡는다. 적은 인원에 조촐한 제단이지만, 정성스런 제단 앞에서 엄숙하고도 경건한 의식이 진행된다.

 

 

 

 

 

 


저희 시산 문학회 회원일동은 이곳 흑성산 정상에 올라, 조국의 수호를 위해 혼 을 불사른 선각자 제위와 조국의 산하를 굽어보시고 그 속의 모든 만물을 지켜주시는 흑성산 산신령님께 고합니다. 자랑스러운 조국의 산하를 두루 탐방하며, 심신을 단련하고 자연을 벗 삼아 시심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정성으로 보살피고 새 한 마리, 다람쥐 한 마리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발아래 작은 미물까지도 보듬어 안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에서 그치지 않고 산에서 배운 사물과 감동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시로 풀어내어 삭막한 우리의 가슴속에 꽃을 피우고, 의기투합하는 동지들과 어울려 자아실현의 성취감으로 계간지를 발행해 온지 어언 15년에 62호가 탄생했습니다.

 

 

 


이런 저희들의 부단 없는 노력에도 시산회는 존폐의 기로에서 전성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200여 쪽의 문예지가 축소된 인원으로 100여 쪽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저희의 숭고한 사명감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흑성산 신령님이시여!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는 진리를 몸소 실천하는 저희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시고, 경향각처에 숨어있는 인재들을 발굴하여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가호가 있기를 굽어 살펴 주스기를 앙망하나이다. 시산의 회원들이 가는 길에 시심이 용솟음 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겸손한 산 꾼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올해 새로운 임원진으로 심기일전하고 있습니다. 어려운속에서도 강한 자부심으로 출발하는 시산 문학회의 전 호영 회장님의 앞길에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주시고, 회원들 모두 무사고의 산행이 되도록 돌봐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그 어느 곳이라도 우리의 보금자리요.  쉼터가 아니던가.

우리민족의 성지인 흑성산에서 진행된 시산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울고 싶은 마음속을 후련하게 씻어 내린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려딛는 발걸음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永遠하라 시산이여!

일어나라 시산이여!

그대 시산을 사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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