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작품세계/시산의 행사

시화전 및 낭송회

 

 

 

 

                               

                                 시 화 전

 

 

 

 

        물           주 진하

 

이 맛도 저 맛도 없는

싱겁고 맹맹한 물 앞에서

그냥 맹물이라고 물을 얏보지 마라

이 세상 끝까지 모든 산 것들의

더위와 갈증을 면해주던 것이

물이요

귀중한 우리 농사에 일등공신도

이 물이거늘

어찌 이 물의 고마움을

그리 쉽게 저버릴 수 있다는 말이냐.

 

달콤한 맛과 화려한 색깔로 유혹하던

진열장 속의 각종 음료수가 무색하리만큼

지금 버젓이 상표를 달고 나온

이 귀한 물의 위상을 인지했다면

 

이 맛도 저 맛도 없는 이 물이야말로

정말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깨끗한 순백의 보물이 아니더냐

생각해보라

이 물이 아니면 어디서 저토록

그 구수한 숭늉 맛을 또 낼 수 있었겠는가를

 

 

 

     

     세월은 가거나 말거나         주 진하

 

이백(李白)의 술잔 위에

뚝뚝 떨어지던 붉은

낙조(落照)

먼 세월 강 건너와

오늘 내 잔 위에서

한 수의 시가 되어

황홀하게 동동 거린다

 

별을 노래하고

달을 노래하던

임들의 그 짜릿한 향 흥

달밤에 눈 지그시 감고

홀로 취흥에 잠겨 있으니

내가 그때 그 임들인 양

울렁이는 이 가슴

 

달 노래에 젖어

별 노래에 빠져

정신없이 노닥이는 내게

명색이 붙여진 시인이란

딱지(이름) 하나

 

어둠을 밀치고 밝아오는 새벽 여명처럼

내 영혼을 비쳐주는 시혼(詩魂)이

자꾸 날 붙잡고 늘어지는데

 

내게 손사래 치며 서두는

세월은 가거나 말거나

나는 한껏 부푼 가슴으로 앉아

한가로이 시상에 묻혀 있다

 

 

 

 

 

 

 

     세상의 등불      전 산우

 

1994년 2월 어느 날에

詩와 山을 사랑하자고 모인 詩山 사람들

함께 산을 오르내리며 바라본 것들을

갈고 닦아 시의 산을 쌓아 올리자는

그날의 다짐을 잊지 않는다면

부르는 노래는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청산을 세우는 거름이 되리라

눈동자는 눈망울처럼

말씨는 샘물처럼

눈빛과 말빛이 형형한 사람들

곡진한 산 생각을 앞세워

꽃 피고 낙엽 지는 산길을 걷노라면

산은 명랑한 詩題를 내고

시인은 멋지게 산을 칭송하리라

늘 그런 관계로 그리고 어울림으로

山詩를 고집하는 詩山 사람들이여,

바다를 향하는 등대처럼

영원히 세상의 등불이 되소서.

 

 

 

    서울에 잠깐 함박눈      전 산우

 

서울에 잠깐 함박눈이 내린다

느릿한 풍경이던 조금 전과는 달리

괜히 사람들 마음이 바쁘다

마음줄이 이어진 발걸음도 바쁘다

약속이나 모임이 불현듯 생각난 듯

남녀노소 모두가 바쁘다

밥 걱정 돈 걱정이 많아도

자식 걱정 나라 걱정이 많아도

간지럼 타는 아이처럼 입가에는 웃음이 헤프다

마음은 바쁜데 웃음은 헤프다

이상한 눈이다

서울에 잠깐 함박눈이 내린다

 

 

 

 

 

 

 

   첫눈을 맞으며      나 용준

 

화이트 크리스마스

얼마나 기다리던

하얀 눈인가

두 아이가

강아지처럼

신이 났다

 

그래 좋다

오늘

아빠도 기분이다

눈싸움,

영화 아바타,

체스,

공기놀이,

컴퓨터 게임,

 

큰놈

재균이 왈,

“나는 가족과 함께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

고맙다 재균아

엄마 아빠가

공부시킨다고

많이 놀아주지 못했구나

 

불현듯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도 어릴 적엔

엄마 아빠 손잡고

눈밭을 구르고 싶었지

 

어느덧

마음은

고향으로

고향으로

달려가고

그때 그시절

추억이

아스라이

눈밭에

흩날린다

 

 

 

  삿갓 쓴 시인을 만나며        나 용준

 

난고, 詩仙 중의 시선

다시 보는 당신이 그립습니다.

세상일 훌훌 털고 엽전 몇 푼으로도

항상 행복했던 당신

막걸리 몇 잔으로 세상을 포용하며

두려움 없이 살았던

당신의 천진한 여유

당신이 우리 앞에 다시 태어납니다

 

“허언 머리 김진사 아니더냐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샘물을 떠 마시면서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시를 읊었지요

그래도 당신은

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청빈 속에 유유자적 했지요

 

“천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

남은 돈 엽전 일곱 푼이 아직도 많은 것이여

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 간직하려 했건만

황혼에 술집 앞을 이르니 이 어이 할거나.”

 

당신이 바라보는 자연은 늘 신선 그 자체였고

나이 듦은 슬픔이 아닌 아름다움임을

역설적으로 보여 줍니다

 

“소슬 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니

산골짜기에도 쌓이고 시냇물 위에도 떨어지누나

새처럼 아래 위로 훨훨 날아가는

바람결 따라 저마다 동과 서로 흩어지네

본디 잎새야 푸르르건만 누렇게 병들어

푸른빛 시샘하는 서리를 맞고

가을비에 더욱 애처롭구나

 

두견새야 너는 어찌 그다지도 정이 박약하여

지는 꽃만 슬퍼하고 낙엽에는 안 우느냐

슬픔은 여유 속에 웃음 짓고

애처로움은 가을비 속에 흩어지니

지는 낙엽이

꽃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해바라기 연가     문 영호

 

그대의 모습은 또 하나의 나의 분신

나의 숨결은 이미 그대의 것이 되었고

아름다운 하루의 삶을 찬미하며

그대의 환한 얼굴이 내 곁을 지나갈 때

내 가슴은 그리운 말들로 가득해 집니다.

 

비가 오면 나에게는 너무 슬픈 날

고개 숙인 내 얼굴에는 눈물 자국만 남고

그대를 찾다가 잠이 들지만

바람 부는 날은 나에게는 기쁜 날

그대의 목소리가 내 귀에 가득히 놀러 와

행복한 가슴은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바라만 보는 해바라기 사랑

그대가 하늘을 닫고 잠자리에 들어서면

나는 외로움에 고개 숙이고

새벽을 알리는 화사한 그대의 모습

초롱한 그 눈빛이 내 머리를 만질 때

내 가슴은 기쁨에 마냥 떱니다.

 

내 이름은 사랑의 꽃 해바라기

눈빛만 보내보고 쓸쓸히 내가 죽는 날

내 가슴엔 수많은 그리운 말들이

사랑의 단어로 가득해서

이 땅에 뿌리를 또다시 내릴 수 있겠고

그대를 향한 열정은 더 뜨거워지겠죠.

 

영원한 사랑 해바라기 사랑

비록 이룰 수는 없겠지만 후회없이

내 불타는 눈빛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그대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갑니다.

 

 

 

    도봉산 연가     문 영호

 

가지에 산새들은 날 오라 울지만

내가 쉴 곳은 저 높은 자운봉 마당바위

연분홍 진달래

산꽃이 가득한 우이암 능선 길

숲속에 옹달샘은 날 오라 솟지만

내가 쉴 곳은 저 멀리 망월사 대웅전

가랑잎 춤추고

웃음꽃 피어나는 도봉산 포대능선

 

 

 

 

 

 

    새벽풍경 . 1     전 호영

 

새벽

거리를 가노라면

겨울 밤 짙은 코발트색만큼이나 무거운

어깨를 끌며

대지를 훑는 사람이 있다

리어카 손잡이에 꺾여진 허리가

영영 펴질 리 없는

 

그리곤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

집 잃은 개

미처 집으로 가지 못한 음울한 그림자

 

머리 위에는

별도 빛나고 달도 환하건만

대지를 훑는 가녀린 눈빛 아래

짙은 어둠만 출렁인다

 

 

 

      그저 산에만 가면     전 호영

 

큰산 작은 산 이름없는 산

그저 산에만 가면

내 먼 고향 아스라한 기억처럼

절로 웃음이 나고 가슴이 콩닥거린다

 

쉬어 갈 수 없는 산

쉬어 갈 수 없는 고향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인데

고향도 그 자리에 그대로인데

두 손 두 다리 멀쩡한 내가 눈물로 보낸다

산이 그리워

고향이 그리워

 

아 도시에 갇힌 나약한 이름이여

문명에 길든 내 불쌍한 영혼이여

등산화 끈 질끈 조이고 배낭 하나 메면은

한없이 자유롭던 내 젊은 날의 연가

 

 

 

 

 

중랑천의 찬가      김 완묵

 

여울져 흐르는 중랑천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흰두루미 재두루미 날개짓하고

잉어 떼들 힘차게 솟구쳐 오르며

 

가지런한 푸른 잔디 그 사이로

붉은 색 아스콘에 자전거 달리고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모습은 달라도

무병장수의 염원을 안고

먹장가래 토해내며 감내하는 즐거움에

삶의 활력이 넘쳐 난다

 

공장에서 쏟아지는 오폐수로

노강서원 흘러내린 벽파수가

오물 속에 녹아들고

물장구치던 아이들도

송사리 떼도 자취를 감추고

천형으로 버림받은 시궁창이 되었지

 

제자리로 돌아오기는

역부족이지만

수십 년의 노력으로

이제는 숨 쉬고 살만하게 되었네

 

하늬바람 불어오는 강 언덕에

싱그러운 코스모스 고추잠자리

모두가 내 친구 지상의 낙원

밝은 인사 환한 웃음 속에

우리의 희망이 열린다.

 

 

 

   건 망 증        김 완묵

 

건망증도 심하면 중증(重症)이라

동지섣달 설한풍에 三冬이 얼어붙고

첫눈 내린지가 언제인데

겁도 없는 개나리

노란 꽃대를 세우고

꽃망울을 터트린다.

 

북해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열대의 쓰나미

아이티의 지진으로

지구촌이 쑥밭인데

햇볕이 좋아

꽃대를 세우는 것이 무슨 변이더냐

 

아서라

시절을 잊은 것이

어디 개나리만의 일이더냐

세상이 하 뒤숭숭하니

우리 모두

건망증에 치매 환자인 것을.

 

 

 

 

 

     무위사에서....     정 혜임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막을 치는 것

나를 보이기 위해 테두리를 만드는 것

나에게 색깔을 입히는 것

나를 생각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없는 것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사나

나는 왜 살아야 하나

나 자신은 어떤 존재일까

나! 나......

수없이 찾기를 반복한 뿌리찾기

 

문턱도 없고

담벼락도 없으며

경계심도 없는 사방천지

내 것의 이기심을 무너뜨린

무위사 입구에서

보여지는 건 잔잔한 부처님의 미소이다

바람소리도 듣고 싶을 때 듣고

울고 싶을 때도 그런 날만 울었던

나에게 맞추어 경계를 지으며 색깔을 가진

스스로 보호하며 살아온 나날들이

허물어진다

한순간 허물어진다

 

나보다 우리이며

내 것이 아니라 나눔이며

바람과 물소리처럼 어우러짐인걸

자연스레 두 면 삶이

내 옆에서 울다, 웃다 그러면서 지나쳐가는 것을

왜 아프다 울었을까

그리 힘겨워 했던가

 

경계를 가지며 살아온

이 순간까지의 나날들이

아! 무위였구나

 

 

 

   벼 랑 꽃        정 혜임

 

비탈진

아스라한 절벽에서도

희망처럼 노란빛으로

꽃을 피운다

슬픈 미소를 머금으며

꽃을 피운다

 

꽃은 꽃의 입으로 말한다

벙어리 같은 입

소리로 말할 수 없기에

향기로

몸짓으로 말한다

눈을 맞추지 않으면

꽃의 말을 듣지 못하고

가까이 있어야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을

 

피어도

피어 내어 향기로워도

내려다 보면 위태로워 보이는 곳

그곳의 여린 꽃, 벼랑꽃

꽃으로의 생을 다 하는가

 

눈물겨웁게 몸짓하며

향기롭게 피어 낸다

너른 들판

꽃들의 마당 한가운데로

훌쩍 날아오를 날 꿈꾸며....

 

슬픈 미소로 피어나는 꽃이여

절벽에 핀 꽃이여....

 

 

 

 

 

   눈 꽃     고 양규

오늘도 눈이 내린다

시처럼 눈이 내린다

오직 한 가지 색깔

순백의 그리움으로

펄펄 눈이 내린다

이름 모르는 나무

낮선 가지에도

앉으면 잠시 잠깐

금새 꽃이 피는

눈이 내린다

시가 내린다

하얀 꽃이 핀다

 

 

 

 

  추월산. 1     김 복동

 

비내리는 날

온 몸을 적셔도

느낌은 짜릿하다.

안개가 넘나드는

산들이 해일처럼 몰려오고

환희를 맛본 탓에

발걸음이 저절로 내디뎌지고

떡갈나무 갈무리 분주해도

아직은 눈부신 계절

허공에 휘도는 바람

숨이 차 헐떡이고

길손들의 웃음소리 추월산이

덩달아 방글거린다.

 

 

   지리산.2     김 복동

 

햇살 등진 숲은

제 키를 훌쩍넘는

그림자로 눕고, 햇살을 안은

숲은 먼 여행이라도

떠날 듯 간밤의 꿈을 여울에 씻고

저마다의 꼴로 아침햇살을 조각한다.

 

계곡 안을 흐르는 바람에

먼 하늘빛 어릴 때쯤

산뽕나무에 흘려 자잘한 오디 몇 알을 입안에 넣고

녹는 알뜰한 단맛은 한순간에 어린 시절로 데려다 놓는다.

손가락에 묻은 진한 자줏빛 오디즙을

한 시절 얼마만인가....

 

산 능선 위로 늙은 나무의 실루엣이

구름 위에 새겨지고 아름다운

노고단, 삼도봉, 제석봉 하모니의 파노라마 속에

숱한 계곡이 들어앉아 지리산 자락에 부채살 주름을

접어가며 발걸음 가볍게 천왕봉을 향한다.

 

 

 

 

   밀 익는 그림    김 천수

 

봄이면 비탈밭

밭고랑마다 파란 새순은

간신히 하늘을 인다

종달새 높은 노랫소리에

넓은 들녘 새알을 뒤지다

힘겨워 벌렁 하늘을 본다

달빛이 눈짓하는 밤

말을 눕히는 어설픈 청춘들

나란히 하늘을 안는다

저 끝없이 넓은 들판

이방인의 눈에 넘치는 밀밭은 하늘을 만난다

뽕나무 그늘 아래 콧수염

어설픈 추억이 있으신가

하늘 아래 밀 익는 그림을 건다

 

 

  그림은 좋았지만     김 천수

 

허기가 밀리는 오후

간절하게 생각나는

시원한 막걸리

눈을 지그시 감고서

생각나는 대로

매콤한 생선찌개

잘 삭은 홍어회

두툼한 파전

찰랑찰랑 도토리묵

얼큰한 제육복음

고추장에 풋고추

내 맘대로 올려놓고

사람을 부른다

김가 이가 박가

한 최 정 주 윤씨

친구 여사 아우 형님

누구의 얼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의 얼굴도 없는

술잔에 채워진 상상

오늘은 아무래도

술맛이 없을 것 같다

술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같이 하는 사람

좋은 술친구가

제일의 안주인 것을

생각만 좋았을 뿐

쓸쓸한 저녁을 걷는다

 

 

'나의 작품세계 > 시산의 행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추계곡  (0) 2010.08.15
소래산의 봄은 아직도 멀었는가?  (0) 2010.03.30
제 17회 정기총회  (0) 2010.03.04
천년의 세월 속으로  (0) 2009.11.10
운길산을 찾아서  (0) 2009.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