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식 (寒食)
일 시 : 2005년 4월 5일 12시 장 소 ; 의정부시 호원동 우성아파트 완묵의 집
참석인원: 용묵 , 완묵 , 재선, 보석, 재옥, 재규, 재오, 재명, 재형, 재오엄마, 재오 처, 신애,
불참자: 신묵 , 연묵, 순묵, 강묵, 재범
겨우내 움추렸던 몸 활짝 펴는 따스한 봄날 설, 추석, 단오와 함께 4대명절로 손꼽히는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정하여 조상의 묘소를 돌보며 허물어진 곳에 잔디를 입히는 개사초를 하고 논둑을 손질하며 모자리 판을 고르고 일년 농사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시기로.......
금년에는 식목일과 청명이 겹치는 길일로 5대조부터 증조부까지 삼대의 기제사를 없애고 한식날을 기하여 자손들이 한데모여 차례를 지내오는 것도 금년으로 2번째 유사를 맡고 보니 십여 년이 넘는 연례행사로 벌초와 함께 모처럼 형제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의미가 깊은 날이다.
옛날에야 농사짓는 시절이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씨족사회로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맞대며 애경사에 모두모여 서로 도와주는 아름다운 풍속이 이어져 왔으나 산업이 발달하며 고향을 등지고 도회지로 떠나간 뒤로는 일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어려운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중 집안의 구심점인 형님의 제안으로 이날만큼은 모든 일 접어두고 한자리에 모여 조상님께 차례도 올리고 형제지간에 정을 나누며 줄 거운 하루를 보내자는 취지로 시작이 된 것이다.
증조와 할아버지께서 독자이신 관계로 사촌까지 묵자항렬을 기준으로 7형제가 연장자 순으로 유사를 정하여 기제사는 할아버지까지만 올리고 증조, 고조, 오대조까지 삼대를 한식 차레로 모시게 되니 체계도 갖추어지고 자손들의 책임의식도 부여하게 되어 우리집안의 가풍으로 정기적인 행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선산이 있는 고향에서 한식차례를 하였지만 사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 율이 저하되고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어 의논 끝에 형제들이 순번을 정하여 유사를 하고 객지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돌아 볼 겸 한식은 집에서 하고 벌초 때만 선산에서 모이기로 하고보니 새벽같이 일어나 고향으로 달려가는 번거로움도 피하고 유사하는 집에서도 일손을 덜 수 있어 좋긴 하지만 형제들이 모두모이기는 어려운게 현실이다.
유난히도 춥고 지루하던 겨울도 지나고 개울가의 버드나무에도 물이 통통하게 오르고 개나리 진달래의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는 한식날, 정오가 가까워오며 시골에서 서울에서 모여드는 형제들로 조용하던 집안에 활기가 넘치며 떠들썩한 분위기속에 차남으로 태어난 덕분에 이런 날이 아니고는 상상도 할 수 도 없는 제상이 마련되고 진설된 제수 음식이 어설프긴 하지만 자손의 도리로 정성을 다한 것이기에 조상님도 감읍 하실 것으로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초헌관의 강신으로 조상님을 모시고 축문낭독으로 조상님께 예를 올리며 절차에 따라 무사히 제사도 끝이 나고,
음복으로 시작하는 식사는 모처럼 만나는 형제들의 안부와 격려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물보다 진한 혈육의 정을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난해 회갑을 맞으며 책을 출간하는 변신 속에 독자이신 증조와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조상님의 돌보심에 각자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일가를 이루며 사촌형님이 의사로서 집안의 구심점이 된 이래 당질인 재명이가 전문의로 그 뒤를 잇게 되었으니 가문의 영광으로 자손들이 걸어가는 앞길에 등불이 되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녁에는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이춘길 씨와 고갑성 씨를 모시고 술자리를 나누며 한식날의 유래와 풍습을 반추해보며 줄 거운 시간을 보낸 것도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한식날에 찬 음식을 먹는다는 일화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에 개자추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문공이 왕이 되기 전에 공자의 신분으로 망명생활을 하며 외지를 떠돌고 있을 때 19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나 왕이 된 문공이 개자추 에게 벼슬을 주기는커녕 홀대를 하니 어머니와 함께 산중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게 되는데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자추 를 찾았으나 나오지 않자 한 가지 꾀를 내어 산에 불을 지르게 되었다.
산에 나무가 모두 타서 재가 되도록 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아래서 타죽고 말았으니 안타깝게 여긴 왕이 개자추의 넋을 기리는 뜻에서 이날만은 불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찬밥을 먹게 되니 이날이 바로 한식날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설화는 그 옛날 우리조상들은 불을 신성시하고 소중하게 간직하여 오는 습관이 있었는데 임금은 청명일을 맞이하여 새 불씨를 일으켜 신하들에게 나누어주고 수령들은 백성들에게 새 불씨를 나누어 주는데 묵은 불씨를 끄고 하루는 불 없는 날로 찬 음식을 먹게 되니 이날을 한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날을 기리는 뜻에서 과일, 떡, 과자 등의 음식과 국수를 올려 차례를 지내고 관리들에게는 조상의 묘를 돌아보도록 휴가를 주고 죄수들에게는 형 집행을 정지하는 특전을 주게 되니 나라에 경사스러운 날로 군, 신, 백성들 간에 일체감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찬밥신세가 되었다는 속담에서 불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정성이 있으면 단오에도 세배를 간 다는 말은 어른을 공경하는 예절을 일깨워주게 되는데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거꾸로 꽂아놔도 산 다는 속담대로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찬 계절로 금년한해 우리 형제들에게도 좋은 일만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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