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못한 백두대간 - 삽당령에서 닭목재까지
산행일시 : 2005년 2월 20일 11시- 15시 27분 산행시간 : 4시간 27분 35명
소 재 지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산행거리 : 약 8km 송암 산악회 날 씨 : 쾌청
2월 15일 한강기맥을 종주하고 운두령을 넘어 올 때 쏟아지던 함박눈이 폭설로 변하여 미시령을 비롯한 강원도의 주요 고개 마루가 교통이 두절되고 이번에 산행계획으로 있는 삽당령도 90cm의 적설량으로 많은 눈이 쌓이고 19일부터 또다시 전국적으로 한파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갈팡질팡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산악회와의 연락으로 여유 만만한 김 대장, 너털웃음으로 대간꾼들에게는 멋진 추억이 되지 않겠어요 ? 염려하지 마시고 나오세요.
간단한 대화 속에 용기를 얻어 마음을 정하고 20일 새벽 일기예보의 정확성에 감복하며 입춘, 우수 다 지나고 영하9도의 한파가 몰아치는 꽃샘추위를 맞으며 동대문 주차장에 도착하니 원색의 물결 속에 산 꾼들의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고 전국각지로 행선지 따라 떠나간다.
서울을 출발한 우리는 영동고속도로를 내달리며 눈을 씻고 봐도 없던 눈이 둔내 터널을 지나며 별천지를 이루고 구비 구비 오르던 대관령 고개 마루를 터널 속으로 순식간에 관통을 하고 강릉 요금소를 지나 임계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를 따라 산굽이마다 파고드는 강릉저수지를 감아 돌며 삽당령 오르는 길이 제설작업으로 소통은 되고 있지만 양옆으로 쌓인 눈이 60-70cm의 적설량을 보이고 있어 산행의 어려움을 예고하고 있다.
삽당령 정상에는 산신각의 지붕에도 다북솔의 가지에도 탐스런 눈꽃을 피워 올리며 큼지막한 표지석도 흰눈을 뒤집어쓰고 온 천지사방이 쌓인 눈으로 별천지를 이루며 매섭게 몰아치는 강풍에 주눅이 들어 송암이 자랑하는 몸 풀기도 생략 한 채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눈구덩이 속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내딛는다. (11시 정각)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눈 속을 목요산악회에서 티 워 놓은 발자취 따라 숨 가쁘게 기어오르며 안부에 올라서니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날씨는 사방을 둘러봐도 막힘이 없고 휘몰아치는 광풍(狂風)에 영하 20도가 넘는 체감온도는 온몸을 사정없이 할퀴어 대는데 털모자에 입마개로 빼 꼼이 눈만 티 우고 중무장으로 감싼 몸이 뒤뚱거리며 눈 속을 헤매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는 느린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 마음만 급해진다.
북쪽으로 향하는 대간 길은 왼쪽으로 임도와 나란히 진행을 하다가 깊은 눈 속에서 임도로 내려서서 10여분 만에 중계소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서는데 고도를 더 할수록 경사도 심하고 쌓인 눈도 깊이를 더 하며 사양 진 비알 길에서는 혹한 추위 속에서도 등줄기에 땀이 솟아오른다.
산행 45분 만에 왕산면 에서 세운 들 미골 이정표가 서있는 산마루에 올라서게 되는데 2km 남짓 되는 거리를 3시간이 넘도록 악전고투(惡戰苦鬪)를 하다가 되돌아간 지점으로 이곳까지는 목요산악회에서 다져놓은 발자취 때문에 깊은 눈 속이지만 큰 어려움 없이 진행을 했는데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全人未踏의 새로운 세계로 짐승들도 겁을 내고 숨어버린 황량한 마루 금에는 왼쪽으로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리본만이 대간 길을 알려주고 있다. ( 11시 45분)
모진 광풍 속에서도 선두대장의 사명감으로 불굴의 투혼을 발휘하며,
눈 속을 헤쳐 나아가는 오 영길 대장의 러셀은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 속을 개구리 점프하듯 온몸을 솟구쳐 몸을 내던지고 두 손으로 눈길을 헤치는 모습이 눈물겨운 감동드라마 이지만 자연 앞에 미약한 것이 인간인지라 12km가 넘는 머나먼 길을 어찌 다 넘을지 대책이 서지를 않는다.
대장들이 교대로 눈길을 열고 있는 러셀의 현장. 내리막길에서는 어려움이 덜하지만 바람이 몰아치는 날 등 에서는 잠시라도 방향을 잘못 잡으면 몇 길이 될지도 모르는 눈 속으로 빠지는 사고를 수반하게 되는 위험한 구간도 있고 978.7봉을 오르는 사면 길에서는 경사도가 심한 비알 길로 체력의 한계를 실감할 수 있는 난코스로 1km도 채 안되는 거리를 1시간30분이나 소비하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으로 선두에서 길을 헤쳐 나가고 싶은 욕망이야 앞서지만 남이 다져놓은 눈길을 기어오르기도 어려운 체력으로 언감생심 될 법이나 한 생각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행보도 느려지고 눈구덩이 속에서 제 자리 걸음을 하다보니 100% 방수라는 등산화도 냉기가 스며들며 발가락이 시려오고 손가락도 빠질 듯이 감각이 무뎌지는데 혹한 속에서 피어나는 상고대는 태양의 빛 속으로 녹아들고 휘늘어진 낙락장송의 가지위에 얹힌 눈꽃이 몰아치는 광풍에 휘날리며 오로라의 반사광으로 계곡을 뒤덮고 영롱한 빛깔을 뿜어내는 이름다움을 연출하는 환상 속에서 선두대장들의 피눈물 나는 사투를 바라보며 어찌 마음 편하게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까?
태풍을 동반한 폭우는 할퀴고 간 상처는 크지만 곧바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솜털보다도 가볍고 부드러운 눈송이가 모이고 모여 태산을 이루면 세상의 모든 만물을 한곳에 가두고 속수무책으로 따스한 햇살아래 스스로 족쇄를 풀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무서움이 外柔內剛으로 내공을 지닌 눈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체력은 한계를 드러내는 오후 1시 30분 978.7봉을 돌파한 선두대장들의 지시에 따라 바람막이 사면 길의 눈구덩이 속에서 점심식사가 시작된다.
가파른 비알 길의 나무 등걸에 몸을 의지하고 행동 식으로 준비한 김치 국에 밥 말아먹는 초라한 식단이지만 털모자에 털장갑 끼고 먹는 어설픈 행동은 혹한 속에서 몸을 보호하는 보신책으로 민생고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13시 30분에서 15분간 식사)
간단한 점심식사로 원기를 회복하고 정상을 향하는 길옆에는 눈구덩이 속에서도 라면 끓는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진동하고 시원하게 시야시가 된 소주한잔을 얻어 마시고 용기백배하여 정상에 올라서니 세차게 몰아치는 광풍에 온몸이 날려갈 듯 중심잡기에도 힘겨운데 대장들의 러셀은 계속되고 대용수동 갈림 이정표가 눈 속으로 머리 숙이고 전면에 바라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석두 봉으로 굼벵이 걸음으로는 그곳까지 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만 대장들의 집념을 꺽 을 수 없어 누구하나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을 지킨다.
잘 생긴 낙락장송들이 듬성듬성 그늘을 만들어 한여름 산 꾼들의 다리쉼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지만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구덩이 속에서 천지 사방을 둘러봐도 눈, 눈, 눈, 눈에 덮인 산들이 주름잡으며 끝없이 펼쳐지고 북녘으로 마루 금에는 황 병산의 군부대 시설물이 가물거리고 대관령목장의 초원지대를 지나 그 앞으로 선자령, 고루포기 산이 선명한데 우리의 목적지인 닭 목재와 화란봉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멀어만 보이고 두릅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안부에서 선두의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으니 가슴까지 차오르는 눈 속에서 우리의 몸동작은 서서히 무뎌지고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되돌아서고 말았다.(14시 15분)
이심전심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이런 극한상황에서 완주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석두봉 까지만 이라도 오르고 싶은 것이 김 대장의 생각이겠지만 500여 미터 앞에 있는 그곳까지 체력을 소모하며 오른다고 해서 우리에게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우리의 진행속도라면 석두봉까지 40여분, 닭 목재까지 8km의 거리를 15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계산으로 한겨울의 짧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고 급격하게 떨어지는 체감온도는 우리의 지친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대간 길을 완주한다는 숭고한 신념이야 가슴속에 불타오르지만 그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니고 만용에 불과한 객기로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모한 행동은 진정한 산 꾼의 자세가 아닌 것이다.
이구동성으로 철수하자는 외침 속에 눈물겨운 사투도 종지부를 찍고 지척의 석두봉을 뒤로 한 채 되돌아오는 눈구덩이 속에서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은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과 15년의 산행 중에 이런 경험도 처음이지만 화악산 밑의 촛대봉 산행이후 완주하지 못한 2번째의 회군으로
오늘의 산행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멋진 추억으로 오늘 소백산의 비로봉 근처에서 악천후로 조난을 당한 4명중 1명이 사망했다는 비보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해빙기의 악천후가 산 꾼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로 건강을 위해 오르는 산길에 생명을 담보로 할 수 는 없는 일이니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산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15시 27분 삽당령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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