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5년 3월30일
구 간: 은진면사무소 - 연서1리 - 동산5리 마을회관 - 1번국도횡단 - 개태골 표지석 - 연무읍 - 연무체육공원 - 견훤왕릉 -
연무대 -효죽마을 - 마전1리정류장
충남 제10길(견훤왕릉길): 14km
현재시간이 11시 30분. 서울에서 논산이 먼 거리인지라, 10구간 14km를 완주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자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양말부터 벗어 놓고, 배낭에 싸가지고 온 점심도시락을 펼쳐든다. 쑥 개떡과 계란말이 전병이다. 새벽 4시에 요기를 하고 8km를 걸어왔으니 시장이 반찬이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10여 분만에 식사를 마치고 동헌 마당을 나선다.
조선시대 여지도서에 의하면 은진현은 가야곡면을 비롯한 14개면 56개 부락을 관할하여 부여, 연산, 석성현 보다도 많은 인구를 가진 고을이었다고 한다. 1975년 은진면에 산재한 비석을 한자리에 모아 교촌리 승강장부근에 비석거리를 조성하였다가, 2005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충청도 관찰사의 불망비와 공적비를 비롯하여 18기의 비석을 이곳에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전라도가 가까워 오면서 산자락은 낮아지고 들판이 넓어진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이 가물거리고, 사통팔달로 뻗어나간 교통이 번잡하니 그 옛날 삼남길의 중심지가 은진이 아닌가 싶다. 개태골 표지석을 지나며 연무읍내가 시작되고,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며 중심상권이 형성된다.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고속버스터미널을 다시 찾아와야 하기에 버스시간표와 시내버스정류장을 눈여겨본다. 좁은 골목길을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안심리 5일장이 서는 날이다. 옛날처럼 신 바람난 장돌뱅이들의 흥정소리도 들리지 않고, 축 처진 어깨에서 삶의 고단함을 실감할 수가 있다.
연무체육공원을 지나 산등성이를 내려서는 금곡1리가 서재필 박사의 본가라고 한다. 1864년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외가에서 태어난 서재필박사는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해 3일천하로 실패한 뒤,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미국생활 중 우리나라최초의 의학박사가 된 후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하여 조국광복과 근대화를 위해 헌신하다가 1951년 미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기초훈련을 마친 장병들을 수송하기위해 신연무역까지 연장된 철도건널목을 지나면, 충청남도기념물 제26호인 “견훤왕릉” 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견훤왕릉에는 1970년 문중에서 세운 ‘後百濟王甄萱陵’ 이라는 비석이 있다. 견훤은 상주 사람으로 아자개(阿慈介)의 아들인데 900년 완산(전주)을 도읍으로 후백제를 세운 시조이다.
견훤은 후백제를 세우고 중국의 오, 월과 국교를 맺고 궁예와 왕건에 대적하면서. 927년 경주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던 경애왕을 공격하여 살해하고 경순왕을 왕으로 세우는 등 한때는 막강한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장남 신검이 반란을 일으키고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었는데, 도망친 견훤이 왕건에게 항복하고 그를 도와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개태사에서 일생을 참회하며 보내다가 죽을 때, 후백제를 일으킨 전주의 완산 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완산의 칠봉이 보이는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견훤왕릉 산자락에 금곡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병자호란 때 적군과 싸우다 순절한 김수남을 기리기 위해 1687년(숙종13)지은 금곡사가 후에 금곡서원으로 바뀌었다. 김수남(1576-1636)은 광산김씨로 인조2년(1624년)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이 되었다가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분전하던 중 순절하였다고 한다.
황화정에 올라서면, 육군훈련소가 건너다보인다. 1951년 11월 “육군 제2훈련소”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육군훈련소는, 논산훈련소라는 애칭을 갖고 있으며, 설립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연무대(鍊武臺)라는 휘호를 하사했다. 창설 당시 14,000여 명의 수용규모를 시작으로, 1953년에는 7개 교육연대를 보유하고, 현재까지 600만 명이 넘는 육군정예 병사를 양성하여 국가방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1966년 9월28일 군에 입대한 곳이 논산훈련소이고, 29연대에서 6주간 군사기초훈련을 받고 원주통신학교로 전출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밥이 얼마나 적었으면, 밥 당번 하는 날을 기다리게 되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던 훈병시절 이동주보 아주머니들의 극성스런 상술로 배 고품을 견딜 수가 있었다.
수철천 황화교를 건너 효죽 마을로 들어선다. 견훤왕릉에서 효죽 마을까지는 빤히 보이면서도 꽤나 먼 거리였다. 봉곡서원(鳳谷書院)을 찾아간다. 봉곡서원은 이계맹(李繼孟), 이순인(李純仁), 남명한(南溟瀚), 진극효(陳克孝), 남두건(南斗建)을 제향한 곳으로, 우암 송시열과 오봉 이호민(李好閔)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효죽동 유래비를 음미하며 고내3리 신평마을 버스정류장을 경유하여 마전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너 마전1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며 삼남길 충남구간 145km를 완주하게 된다. 쟁목고개를 경계로 충청도와 전라도가 경계를 이루고 삼남길의 분수령이 되는 곳이다. 운 좋게도 기동순찰차편으로 고속버스터미널로 되돌아와 서울행 고속버스(15시 50분)에 오른다.
안심리 5일장
충남지역 남쪽 마지막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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