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5년 3월 20일 -21일
구 간: 임립미술관 - 계룡관광휴게소 - 호남고속전철 - 봉명교차로 - 계룡농공단지 - 명성모텔 - 계룡면사무소(월암리) - 금대리 경천중학교
충남 제7길(춘향전 옛길): 10km
7구간을 시작하는 춘향전 옛길에 있는 임립미술관은 충남 제1호 미술관으로 관장의 작품과 소장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미술실기대회를 열고, 일반인들을 위한 문화강좌와 각종 초대전을 열고 있다. 미술관입구에서 토끼굴을 통해 23번 국도를 건너 혈흔천 제방 길을 따른다.
계룡관광휴게소를 지나며 혈흔천도 실개천으로 변하고, 호남고속철도(KTX) 교각을 지나오면 낮은 고갯마루가 나온다. 이고개로 물이 넘치면 정씨왕조가 세워진다는 정감록의 예언이 전해오는 널티고개(무넘이)다. 혈흔천과 노성천이 이 고개를 사이에 두고 공주와 강경으로 물길이 갈라지고, 정감록의 예언 대신 호남고속철도(KTX)가 고갯마루를 달려가고 있다.
무넘이 고개를 넘어서면 봉명교차로가 나타나고, 오늘의 목적지인 명성모텔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다. 28km를 걸어왔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23번국도 토끼굴을 빠져나오자 단군성전 입간판이 나타난다. 국조이신 단군성전을 참배하기위해 평재마을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단군성전은 종적이 묘연하고, 강릉류씨 세거지로 확인이 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토끼 굴을 빠져나와 게룡농공단지에 있는 CJ제일제당 공주공장(해찬들)앞을 지나 명성모텔에 여장을 푼 시각이 오후 4시, 정안휴게소에서 8시간동안 28km를 걸어온 셈이다.
모텔에서 충분한 휴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숙소를 나선시각이 아침7시다. 동녘하늘이 붉게 물들며 금방이라도 태양이 솟아오를 것처럼 보인다. 계룡면 소재지가 있는 월암리에 도착하면 면사무소 앞 공터에 영규대사정려비각을 만난다.
영규대사는 계룡면 유평리에서 태어나 계룡산 갑사에 들어가 出家 한 후, 서산대사의 문하에 서 불법을 전수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들을 모아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였으니, 임진왜란에 참여한 최초의 승병이다. 여세를 몰아 전라도 지방의 침략을 저지하기위해 금산전투에 참여하였다가 큰 부상을 입은 후 갑사로 돌아오다 이곳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계룡초등학교에서 갑사로를 따라가다 보면, 계룡양조장 간판을 만난다. 계룡면에서 3대에 걸쳐 100여 년 간 가업으로 이어오는 전통 있는 양조장이다. 이른 아침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자연석에 새긴 입간판부터 범상치가 않고, 양조장 주변의 조경이 너무도 깔끔하여 막걸리의 품위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23번국도 굴다리를 빠져나와 노성천 제방에 올라서니, 장엄한 태양이 계룡산 천황봉(845m)위로 솟아오른다. 전국을 유람하다보면 일출이야 흔하게 보는 일이지만. 영험한 계룡산정상인 천황봉정수리로 태양이 솟아오르는 장면은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다. 구름 한 점 없이 선명한 산등성이로 영롱한 불꽃이 솟구쳐 오를 때, 명치끝에서 뜨거운 열기가 용솟음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지금의 계룡시)에 도읍을 정하려고 할 때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요. 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형국이라 닭(鷄)과 용(龍)을 따서 鷄龍山(845m)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풍광이 아름답고 고유 동,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생태계를 보존하기위해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계룡산의 영험함과 정감록의 예언 때문인지, 무속인 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이 신성한곳이다. 골자기마다 암자를 틀고 십년수업의 계룡산 도사를 꿈꾸는 기도처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정화되었다. 갑사를 비롯하여 동학사, 신원사, 구룡사지를 연결하면 다이아몬드 형이 되고 그 중심에 삼불봉이 있으니 계룡산의 중심은 삼불봉이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금대2리 버스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계룡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장도를 축원하고, 경천중학교에 도착하며 춘향전옛길도 끝이 난다. 계룡면 경천은 공주에서 5일장으로 가장 번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2일과 7일장이 섰던 경천은 계룡면소재지이었으나, 1930년 월암리로 이전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중엽부터 시작한 장시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수가 증가하여 17세기 후반에 와서는 열흘간격이 닷새간격으로 바뀌어 5일장의 효시가 되었다. 5일장은 부보상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생산된 물품들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지정된장소와 날짜에 맞추어 모여들면서 시장이 형성되고 보부상들이 이동할 수 있는 군 단위를 중심으로 5일장이 형성되었다.
호남고속전철
하루숙박한 모텔
계룡산 관음봉 -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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