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5년 3월 21일
구 간: 경천중학교 - 수복정 - 무동정 - 학당리 - 고목나무 갈림길 - 이삼장군 고택 - 주곡교 - 교촌리 - 궐리사 - 노성향교 - 하도2리
충남 제8길(노성 고을길): 14.4km
경천중학교를 빠져나오는 동구 밖에는 3백여 년 된 버드나무가 경천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지나가는 길손을 묵묵히 바라보고, 계룡산의 정기를 받은 산자락이 빈재미들을 풀어놓아 공주역(호남고속 KTX)이 들어서는 월곡리와 수암리까지 드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진다.
길가 전신주에 이색적인 리본하나가 눈길을 끈다.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다.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던 이순신장군이 사대부들의 사색당파에 내몰리며 갖은 고초를 겪고, 삭탈관직을 당한 채, 다시 임지로 떠나가던 이 길에서 그분의 심정을 만분의 일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나라 영화사상 천오백만 명이라는 관중이 다녀 간 “명량”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4백여 년 전의 일이지만, 우리국민들에게는 한줄기 소나기와도 같이 가슴이 후련한 장면이다.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충성심이 우리 후손들에게는 영원불멸의 영웅이요. 반만년 역사 이래 세종대왕과 함께 추앙받는 성군이시다.
용두교를 건너 수복정을 지나면 공주시도 끝이 나고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로 들어선다. 공주와 논산의 접경지역에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뉘어 농번기에는 두렛일도 함께하고, 미풍양속도 함께 즐기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시골마을이다.
학당리에 도착하면, 마을입구에 3백여 년 된 느티나무 한그루가 반겨준다.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학당리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마을길을 돌아서면, 길옆으로 수 백 개의 장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메주건조대에서는 겨울 내내 찬바람을 맞아가며 익어가는 메주들이 신기 하기만하다.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나와 같은 생각을 몸소 실천하여 이런 행복을 누리고 있으니, 요즘 들불처럼 번지는 귀농귀촌 현상도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찾아가는 마음의 안식처가 아닌가 싶다. 메주건조대 뒤편으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차령고개를 넘어온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산길이다.
참나무들이 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푹신푹신하게 밟히는 낙엽이 정겹게 들려온다. 인삼밭을 지나 산기슭을 내려서면, 시골마을로는 제법 큰 주곡리가 반겨주고, 이삼장군 고택을 만나게 된다. 충남민속자료7호로 지정된 백일헌 이삼장군 고택은 영조3(1727년)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하사받은 가옥이다.
이삼장군은 함평사람으로 윤중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정주목사를 시작으로 병마절도사, 포도대장, 어영대장, 훈련대장, 한성판윤, 공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함은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장승들을 새끼줄로 묶어놓은 이색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주곡리 향토유적보존회의 설명에 의하면, 이 마을의 장승은 연산군4년(1498년)에 첨정공 양춘건선생이 낙향하여 신앙을 통해 주민들의 단합을 도모하기위해 장승을 세우고 수호신으로 숭배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마을이 유린당할 때 장승의 도움으로 마을주민들이 화를 면하게 되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선조가 전국의 마을마다 장승을 세우라는 어명으로 마을 어귀마다 장승을 세우고 수호신으로 받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주곡리” 표지석과 마을의 유래를 소개하는 삼거리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노성산성을 찾아가는 길은 노성천이 흐르는 주곡교를 건너서 23번국도 지하통로를 통해 교촌리로 진입한다. 가장먼저 반겨주는 곳이 궐리사다.
궐리사란 공자님이 태어난 궐리촌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공자님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사당을 말한다. 논산시 기념물20호로 지정된 궐리사는 강릉, 제천, 오산 등 4곳에 있었으나 강릉과 제천의 궐리사는 없어지고 현재는 2곳만 남아있다.
건물의 배치는 하마비와 홍살문을 시작으로 외삼문, 강당인 현송당을 지나 내삼문을 지나면 영정을 모신 궐리사가 있고, 궐리탑 뒤편으로 孔子의 석상을 중심으로 顔子, 曾子, 子思, 孟子가 공자를 향해 예를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삼남길을 답사하는 중에 전국에 2곳밖에 없다는 궐리사를 모두 참배할 수 있었으니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명재고택이다. 종갓집의 명성에 걸 맞는 장독대가 시선을 압도한다. 전국의 사대부집을 다녀 봐도 이처럼 많은 장독들은 처음이다. 노성산의 정기를 받은 명재고택은 풍수지리상으로도 안정된 지세를 갖추고 있다. 완만하고 양지바른 구릉지에 터를 잡은 고택은 조선중기 호서지방을 대표하는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명재 윤중은 팔송(八松) 윤황의 손자이고, 노서(魯西) 윤선거의 아들이다. 김집과 송시열 등 고명한 학자들로부터 수학하였으나, 아버지와 같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에 심취하여 예학에 밝았다. 산촌에서 학문과 덕을 쌓기에만 열중하니, 덕망이 당대제일이고, 선비들의 표상이 되어「백의정승」이란 대우를 받았다.
명재고택 옆으로 노성향교가 있다. 충남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된 노성향교는 은진향교와 함께 논산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맹자, 증자, 자사, 안자 등 5성과 송나라 2현 (정이, 주희) 우리나라 18현등 5성 20현을 모시고 있다.
열녀 공주이씨 정려를 간과할 수는 없다. 공주이씨는 윤선거의 아내이자, 명재고택의 주인공인 윤중의 어머니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편과 함께 강화도로 피신한 공주이씨는 성이 함락되자, 오랑캐의 손에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났다며 순절하고 만다. 어머니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며 벼슬길을 사양한다. 이에 숙종은 윤중을 우의정에 제수하면서, 공주이씨를 정경부인으로 예우하고 정려를 세웠다고 한다.
논산을 대표하는 문화와 역사의 현장을 벗어나 노성중학교 정문에서 논둑길을 따라간다. 압술막교를 건너 23번국도 지하통로를 빠져나와 노성천 비포장도로를 따라 10여 분간 진행하면 하도2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며 8구간 노성고을길도 끝이 난다.
3백년된 버드나무
3백년된 느티나무
전통메주만드는 집
차령고개 이후 만나는 산길
23번국도 토끼굴
노성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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