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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삼남길

진위향교

 

                                    제9길: 진위고을길(17km)

 일시: 2014년 7월 10일

 구간: 맑음터공원 - 이막고가교 - 화영아파트 -진위면사무소 - 진위향교 -심박골(소백치) - 동막교차로  - 최유림장군묘 - 송탄역

 

맑음터공원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으로 엔돌핀이 내 몸과 마음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가벼운 발걸음에 맑아지는 머리, 상쾌한 기분으로 남부대로 고가도로 밑을 빠져나오면 평택시 진위면이다. 이제부터 농촌 들녘을 걷는다. 세월호의 시름 속에 나라전체가 우울증에 걸렸어도 무심한 세월은 제갈 길을 가는가.

 

너른 들녘에는 웃자란 벼 포기들이 녹색물결을 이루고, 배나무에 봉지 씌우는 농부의 손길이 잽싸게 돌아간다. 비닐하우스가 천국을 이루는 야막리.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차려주는 수도권 채소1번지가 바로 야막리 시설단지라고 한다. 소나무, 대나무, 철골로 지은 비닐하우스의 원조가 이곳이고, 진위오이와 진위애호박으로 명성이 높은 생산지가 바로 이곳이란다.

 

수도권전철이 지나는 야막고가도로를 건너 원미들을 걷는다. 마른장마 덕분에 일찍 찾아온 더위로 30도가 넘는 열기가 대지를 녹인다. 화영아파트와 서원아파트의 샛길을 빠져나오면, 열녀 이효순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가곡리 후곡마을이다. 19세에 시집 온지 5년 만에 집을 나간 남편을 대신하여 30여 년간 삯바느질과 날품팔이를 하면서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모시어 마을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는 미담이다.

 

또한 가곡리 신가곡마을은 경주이씨 상서공파 집성촌이다. 백사 이항복 이후 정승과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족으로, 1905년 을사조약으로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명문가의 특권을 버리고 신민회를 조직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고,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이회영, 이시영등 6형제가 재산을 정리하여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다. 6형제 중에서 단신으로 살아서 돌아온 이시영선생이 초대 부통령이다.

 

무봉산 자락을 넘어서면 진위면 소재지에 도착한다. 평택의 옛 중심지인 진위현청이 지금의 진위면주민센터 자리이고 이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불렀다고 한다. 웃다리농악을 대표하는 농악이 평택농악이고 그 근원에는 남사당이 있는데, 진위면 소재지인 봉남리는 남사당패의 우두머리인 유세기의 고향이라고 한다.

 

조선후기 전국5대 놀이패인 진위패를 육성한 가문으로서, 그의 부친이 솥전을 운영하며 농악에 소질이 있는 패거리를 모아 고종4년 경복궁건축위안공연을 하여 대원군으로부터 도대방기(都大房旗)를 하사받은 뒤로 더욱 분전하여 평택과 안성이 남사당패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진위향교를 찾아간다. 무봉산자락이 남쪽으로 내려앉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진위향교는 좌청룡우백호의 지세가 뚜렷하다. 앞으로는 진위천이 흐르고 남쪽의 퇴봉산을 안산으로 바라보며 조산으로 무봉산이 솟아있으니 명당자리가 분명하다.

 

명당중의 명당인 진위향교는 1398년에 창건되어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44년 현령인 남두극이 대성전을 중수하면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진위향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갖추고,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성현27명의 위폐를 모시고, 매년 봄가을에 석전제를 올리고 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진위천(세월교)을 건넌다. 진위면 중심부를 흐르는 진위천은 용인시 이동면 시궁산 동쪽에서 발원하여 용덕저수지와 이동저수지를 거쳐 서탄면에서 황구지천을 흡수하여 팽성읍 석봉리에서 안성천과 합류하게 된다. 진위천을 건너 마산길로 접어들면 평화로운 와곡마을을 만난다.

 

동구밖 삼거리에는 백 여 년 된 느티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정자까지 갖추었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갈증에 시장기를 느끼는 길손에게는 이보다 반가운 곳이 없다. 평상에 걸터앉아 주섬주섬 배낭을 풀어보니 장수막걸리 한 병이 고개를 내민다. 집을 나서는 길손에게는 보약이 따로 없다. 필수품으로 챙기는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고 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원기를 회복하고 나서 내딛는 발걸음에는 거칠 것이 없다. 신 만고강산을 흥얼거리며 마을 고샅길을 돌아서면 단양우씨 가족묘지와 317번 국도를 만난다. 단양우씨 가족묘지 옆으로 산책로를 따라가면 이곳이 소백치다. 국도를 신설하며 잘라낸 산자락을 동물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인간과 동물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자연보호 차원에서 꼭 필요한 시설이다.

 

동막길과 삼남로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부락산 둘레 길과 만난다. 이곳에서 삼남길은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대백치로 넘어가게 되지만, 지난 6월 지인들과 다녀간 곳이라 서쪽의 둘레길을 따라 송탄중학교를 경유하여 송탄역으로 방향을 잡는다. 잠시 후 최유림장군 가족묘지에 도착한다.

 

최유림(1426~1491)장군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에 능통하여, 그의 나이24세인 1450년(세종32)무과에 급제하여 고성현령, 의금부진부 등의 관직을 맡는다. 최유림 장군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고, 여진족 추장 이만주를 공격하여 큰 공을 세우면서 병조참판 수성군에 봉해지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면서부터이다.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최유림장군을 애석하게 여긴 왕(성종)이 자헌대부 병조판서로 벼슬을 높여주고, 이후 오좌동 일대는 최유림장군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게 된다. 평택시에서는 장군의 높은 뜻을 기려 사당과 묘지를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하고 있다.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지는 부락산 둘레길. 삼복더위의 열기도 접근하지 못하는 시원한 오솔길이 펼쳐진다. 숲속은 어머니의 품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진다. 어린아이가 자장가소리에 스르르 잠이 드는 모습처럼,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숲속이야말로 행복의 안식처가 아닌가. 풍진세상을 등지고, 풍류과객으로 살아가는 오늘하루가 덧없이 행복하다.

 

 

 

 

 

 

 

 

 

 

 

 

 

 

 

 

 

 

 

 

 

 

 

 

 

 

 

 

 

 

 

 

 

 

 

 

 

 

 

 

 

 

 

 

 

 

                                                                      지난 6월 지인들과의 하루

 

 

 

 

 

 

 

 

최유림장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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