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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삼남길

소사원길

 

                                                제10구간: 원균장군묘 - 안성천교(14.5km)

일시: 2014년 8월 1일

구간: 서정리역 - 원균장군묘 - 옥관자정 - 평택대학교 - 동부공원 - 대동법시행 기념비 - 소사벌 - 안성천교 - 평택역

 

 

회를 거듭할수록 거리가 멀어지는 관계로 집을 나선지 2시간 반 만에 도착한 곳이 서정리역이다. 한때는 송탄시에 속했었지만, 송탄시가 평택시로 편입됨에 따라 현재는 평택시 관할로 되어있다. 옛날 관아가 있던 양성현에서 서쪽으로 물맛이 좋은 마을이 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 서정리(西井里)라고 한다.

 

서정리는 한적한 시골마을 이었지만,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1908년 개설하여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서정리 전통시장과 1934년 신축된 성당이 어느덧 80여년이 되었으니 서정리의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삼남길 10구간이 시작되는 원균장군 묘는 불편한 대중교통 보다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우선 고갯마루에 있는 사당을 참배한다. 원릉군사우란 현판이 걸려있는 사당엔 근엄하고 늠름한 장군의 초상화가 모셔있다. 내리저수지가 있는 마을로 내려서면 장군의 묘소가 올려다 보인다. 비운의 원균장군,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순신 장군을 모함했던 비열한 졸장으로 알고 있다.

 

홍살문 옆의 안내문에는 원균(1540~1597)장군의 내력이 적혀있다. 조선 선조 때의 무신으로 자는 평중.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중에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선 30척을 격파 하고, 그 후 합포, 적진포 등 여러 차례 크고 작은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칠천량 전투에서 전사 했다고 적혀있다.

 

과연 원균장군이 이순신장군을 모함한 속 좁은 졸장이었던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 공적을 평가한 사료에 의하면 선무1등 공신에 원균 장군과 이순신 장군 그리고 권율 장군을 적고 있다.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여 삭탈관직 시키고, 삼군수군통제사가 되어 전투에 나섰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이 참패한 패전의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선무1등 공신에 올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 당시의 사료에 의하면, 연전연승하던 이순신장군도 칠천량 해전은 질수밖에 없는 전투라는 사실을 알고는 참전하지 않았고 한다. 선조의 간절한 요청에도 출정하지 않으면서 수륙병진책을 장계로 올리지만, 선조는 세자였던 훗날의 광해군을 내려 보내면서까지 전투를 재촉했다고 한다.

 

끝내 출정하지 않은 이순신은 왕명을 거역한 죄로 삭탈관직을 당한 채 한양으로 압송을 당하고 그 뒤를 이어 원균이 삼군수군통제사가 된다. 그러면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 곧바로 참전을 했는가하면 그렇지가 않다. 선조는 원균에게도 똑같은 군령을 내린다. 하지만 원균도 이순신과같이 출정을 거부한다.

 

무능한 선조의 재촉은 더욱 심해지고, 도원수였던 권율장군도 원균에게 출정할 것을 재촉하지만, 거부하자 원균을 형틀에 묶고 곤장 50대를 치는 사단이 일어난다. 궁지에 몰린 원균은 지는 전투임을 뻔히 알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순신과 원균의 예상대로 수많은 군선과 병사들의 목숨을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도 전사를 하게 된다.

 

패전의 책임은 전적으로 선조의 무리한 출정 명령임에도, 임금에게 죄를 물을 수없는 현실상황이라 모든 죄를 원균에게 뒤집어씌우게 된 것이다. 나라를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원균장군이지만, 이순신장군과 한 시대에 태어난 불운으로 역사에 오명을 남기고 말았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균은 아들과 함께 전사함으로 절손을 당하여 원주 원씨 종친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원균장군 묘에서 이어지는 소사원길은 조용한 마을과 산길을 따라간다. 채마밭에는 심한 가뭄 속에서도 알알이 영글어가는 참깨와 고추, 밤송이들이 농촌 들녘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팔용저수지를 지나 나타나는 토끼굴이 302번 국도를 통과하는 길이고, 송탄요금소와 평택 제천간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면 아디다스 물류창고 옆으로 이어진다.

 

동광아파트가 있는 칠원동에 도착한다. 칠원동은 원래 갈원(葛院)으로 부르다가 이조말엽에 칠원으로 마을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갈원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숙식장소를 두어 공무를 수행하는 관원들의 숙소를 제공하던 곳이다. 또한 갈원에는 물맛이 좋아 인조 임금이 벼슬을 내렸다는 옥관자정이 있다.

 

칠원마을의 자랑거리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여 1976년 최우수 모범마을로 선정되어 대통령표창을 받은 곳이며, 물맛이 좋은 옥관자정을 중심으로 작은 공원을 조성하여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동광아파트 담장을 끼고 남쪽으로 내려서는 삼남길은 안토시아닌이 풍부하여 시력보호에 효능이 있다는 불루베리 농장을 지난다. 천적인 새들의 공격을 방어하기위해 촘촘한 그물로 정성스럽게 보호하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농민들의 주름살이 깊어만 가는데, 극성스런 새들의 공격까지 당하는 농민들의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모습이다. 동복천을 건넌다. 동복천은 안성시 원곡면 칠곡저수지에서 시작하여 평택중심지를 경유하여 안성천과 합류하는 비교적 작은 하천이다. 앉은뱅이 돌다리를 건너 드넓은 고리기들을 지나면 평택시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는 소사벌택지구와 만난다.

 

상전이 벽해가 된다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다. 수백만평의 너른 대지를 펜스로 막아 30여 분 간 돌아가는 구간이다. 이정표라는 것이 필요한곳에 있어야 진가를 발휘하는 것인데, 막상 필요한곳에서 이정표가 사라지고 말았으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금호건설에서 신축중인 아파트 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종적이 묘연하다.

 

용이택지개발 현장은 서부개척시대와 같이, 산을 파서 골을 메우고 황량한 벌판위에 아파트가 하늘높이 솟아오르니, 방향조차 판단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현장 인부들도 모른다는 답변뿐이다. 한우리 아파트가 있는 동부공원을 찾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평택대학교 정문에 도착 면서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게 된다.

 

평택대학교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진행하면, 굿모닝병원이 있는 사거리에서 종적이 묘연하던 삼남길 이정표를 만난다. 십년지기를 다시 만나는 기쁨 속에 주위를 살펴보니, 신명나리apt, 벽산늘푸른 apt, 동부공원이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소사2길을 따라가면, 대동법시행기념비를 만난다. 나라에 내는 세금 중에 공납제가 있었는데, 그 지방의 특산물을 선정하여 가구마다 일정하게 배당을 하다 보니 생산하지 않는 가구에도 부과하는 폐단이 있었다. 또한 탐관오리들의 전유물이 되었던 공납제를 혁신하기위해 새로 도입한 것이 대동법이다.

 

광해군이 야심차게 추진하여 대동법을 실시하게 된다. 대동법이란 공납의 폐단을 시정하기위해 토지의 결수에 따라 쌀, 베 혹은 돈으로 내는 것인데, 새로운 제도가 마련되면 기득권의 심한 반발을 사게 마련이라. 우선 경기도를 시범지역으로 시행하게 된다. 하지만 대동법도 힘 있는 권문세도가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으니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정착되는 데는 1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옛날 소사원이 있던 소사마을을 지나게 된다. 마을 앞의 소사천에는 배가 정박하고 사방 백리를 바라보는 소사들이 펼쳐지는 삼남의 관문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고, 정유왜란과 청일전쟁 당시에는 소사동에서 큰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와의 휴전논의에 실패하자 다시 침공한 일본군을 소사벌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하였고, 청일전쟁 당시에는 일본과 청나라가 아산만과 소사벌에서 전투를 벌여 이곳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침략의 야욕을 드러낸 치욕의 현장이다.

 

소사들을 가로질러 도착한 안성천은 경기도와 충청도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태령역에서 시작하여 90km를 10구간으로 나누어 진행된 삼남길 경기도편이 이곳에서 끝이 나고 안성천을 건너 충청도삼남길이 이어진다. 우리의 뇌리에서 멀어졌던 삼남길. 선조들의 숨결과 애환이 담겨있는 삼남길을 답사할 수 있도록 옛길을 조성해준 경기문화재단과 코롱스포츠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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