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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누리길

파주 3. 4 구간

제3구간   일   시: 2013년 7월 30일

              경유지: 반구정 - 임진강역 - 마정초교 - 초평도 - 장산전망대 - 화석정 - 율곡2리 (10.8km)

 

                                    제3구간: 반구정-율곡리(10.8km)

3구간을 시작하는 반구정은 조선세종 때 유명한 황희(1363∼1452)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임진강 기슭에 세운 낙하진과 가깝게 있어 원래는 낙하정이라 불렀다. 반구정은 전국의 선비들이 유적지로 보호하여 오다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7년 다시 지었다. 이른 시간이라 경내를 둘러보지 못하고 2년 전 청우회원들과 답사한 사진으로 대신하고 임진강역으로 향한다.

 

 

자유로 옆으로 이어지는 누리 길은 사목2교 삼거리에서 오른쪽 농로를 따른다. 잠시 후 경의선이 지나는 임진강역을 바라보며 철도건널목을 지나 임진각로에서 400여m 떨어진 임진각역을 찾아간다. 임진강역은 문산역에서 표를 사서 북으로 가는 두 번째 역이다. 이곳에서 평화누리공원을 둘러볼 수가 있고, 도라산역으로 가는 열차를 탑승하기위해서는 출입신고를 해야 한다.

 

 

도라산역은 지난 2002년 미국 부시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함께 방문하여 북에 평화메시지를 보낸 곳으로 현재 남북 분단의 가장 근접된 역이다. 옛 임진강교의 잔재를 바라보며 임진강을 건너면, 남북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역사 건물이 너무도 화려하게 보인다. 도라산역은 남쪽의 마지막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철도 프로젝트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평화누리공원은 일천만 이산가족의 꿈이 서린 망배단을 중심으로 각종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6.25전쟁이후 북으로 달리던 녹슨 기차를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하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현대로 통일의 열망이 담긴 메시지가 철조망에 오색아치를 만들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평화누리공원의 전경이 아름답게 조망된다.

 

 

임진각역에서 철도건널목이 있는 지점으로 돌아와, 통일로와 연결되는 농로를 따라 마정리로 들어선다. 가장 먼저 반겨주는 구조물이 탱크 저지방호벽이다. 전방의 간선도로마다 설치된 시설물은 적의 탱크를 저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공중전에서 큰 효과를 얻기에는 미지수로 보인다.

 

 

마정초등학교를 지나 들녘으로 나오면 탐스럽게 영글어가는 참깨와 도라지꽃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무성하게 자라는 벼논에 소독하는 농부들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전방의 모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변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철조망이 걷히고 생태환경의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비무장지대를 자유롭게 걸으며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율곡리5.6km ❍ 반구정5.2km⇨ 이정표가 있는 장산리에서 “초평도” 진행표시가 있다. 임진강유역의 초평도 습지는 60여 년간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하여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 곳이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가는 길은 무성한 숲속으로 이어진다. 초평도를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을 찾아가지만, 무성하게 자란 가시덤불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나무사이로 섬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왔지만, 고라니, 두루미 등 희귀동식물 서식지로 생태적 보존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 평화생태공원 후보지로 지정했다는 소식이다.

 

 

초평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장산 전망대이다. 초평도 입구에서 충의로를 따라 1km남짓 걸어가면 전망대에 도착한다. 평화누리길이 열리면서 새로 태어난 장산전망대는 앞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그 뒤로 북녘 땅이 아스라이 바라보인다. 태극모양을 그리며 흐르는 임진강물위에 떠있는 초평도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육중한 철조망을 바라보면서, 내나라 내 강토를 마음대로 찾아갈 수 없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비포장 비알 길을 내려서면 그 옛날 임진나루가 있던 자리에 오토캠핑장이 자리 잡고 있다. 임진나루는 한양에서 평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목으로 운천리와 동파리를 오가는 나루였다. 임진나루는 운천리 사람들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 동파리 쪽 강가에 울창한 갈대밭에서 땔감을 구하기 위해 갈대를 베어 왔다. 겨울 땔감을 마련하려는 이들의 궁여지책은 감시가 소홀한 야음을 틈타 위험한 군사지대를 넘나드는 것이다.

 

 

1962년 1월5일. 임진강에 수십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 사건으로 2명의 주민이 희생되고, 한미행정협정을 체결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동파리 강변의 갈대숲을 베어오는 일은 없어졌지만, 강 건너 뻘밭에 농경지를 개발하여 파주 장단 콩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 옛날 번창했던 임진나루를 회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먹거리촌이 형성되고, 그 유명한 화석정에 도착한다.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 남쪽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날렵하게 올라앉은 아담한 정자가 유형문화재 61호로 지정되어 있는 화석정(花石亭)이다.

 

 

1443년(세종 25) 율곡 이이(李珥)의 5대 조부인 강평공 이명신이 세운 것을 1478년(성종 9) 율곡의 증조부 이의석이 보수하고 몽암(夢庵)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이이가 다시 중수하여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낸 곳이다. 율곡 이이 선생은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나 6살까지 그곳에서 지내다가, 이 동네로 옮겨와 성장했다.

 

 

이곳 파평면 율곡리는 밤나무가 많은 동네라서 율곡리라 부르는데, 동네 이름을 따서 율곡(栗: 밤나무 율, 谷: 골곡)이라는 호를 사용였다. 화석정은 임진강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율곡은 일본의 침략이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 10만 강병을 주장했지만, 반대파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자. 花石亭(화석정)을 고치면서 관솔을 썼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름걸레로 기둥과 바닥을 닦도록 하였다고 한다.

 

 

임진년(壬辰年) 4월 그믐날, 퍼붓는 비를 맞으며 선조의 몽진(蒙塵) 행렬이 임진강에 도달한다. 비바람 때문에 등불을 밝힐 수 없게 되자, 도승지 이항복(李恒福)이 율곡의 유언을 떠올리며 화석정에 불을 놓는다. 관솔에 기름을 먹여두었기 때문에 억수 같은 비속에서도 훨훨 타올라 선조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파주시 법원읍에는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자운서원이 있다. 경기도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된 자운서원은 1713년(숙종 39) 김장생(金長生)과 박세채(朴世采)를 추가로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하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것을, 1969년 지방 유림의 기금과 국비보조로 복원하였다.

 

 

 

 

 

 

 

 

 

 

 

 

 

 

 

 

  

 

 

 

 

 

 

 

 

 

 

 

 

 

 

 

 

 

 

 

  

 

 

 

 

 

 

 

 

 

 

 

 

 

 

 

 

 

 

 

 

 

 

 

 

 

 

 

 

 

 

 

 

 

 

 

 

 

 

 

 

 

 

 

 

 

 

 

 

 

 

 

 

 

 

 

 

제4구간  일    시: 2013년 7월 30일

             경유지: 율곡2리 - 파평면 사무소 - 장파사거리 - 황포돛배(16km)

 

 

                                   제4구간: 율곡리-황포돛배선착장(15.6km)

율곡2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소공원에는 율곡의 사상이 담겨있는 서책 조형물과 인자한 율곡할아버지와 손잡고 있는 어린이 포토존이 설치돼 있다. 자유로 밑을 지나 임진강 쪽으로 나오면 매운탕 강변집 옆으로 평화누리길 3. 4구간 안내판이 있고, 파평면에서 조성한 율곡습지공원이 펼쳐진다. 봄에는 유채와 양귀비를 심어 손모내기와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여름에는 감자 캐기 체험행사를, 가을에는 코스모스 꽃밭에서 음악회를 연주하며 주민들의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소공원을 지나며 율곡로를 따라 진행된다. 소공원까지 따라오던 철조망도 슬그머니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두포리 교차로에서 전진교를 만난다. 파주시 두포리와 장단군 하포리를 연결하는 전진교는 임진강 하구에서 통일대교에 이어 두 번째 놓여있는 다리이다. 이곳은 민간인들이 건널 수 없는 민통선지역이라 지역주민들이 강 건너 장단 땅에 영농을 위해 출입을 하고 있다.

 

 

두포천을 건너 마을길로 접어들면 두포3리 노인정이 나오고, 마을을 벗어나 청송로를 따라가면 단양우씨 망향제단이 있는 산길로 이어진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뙤약볕에서 그늘 속으로 들어서니 이제 숨을 쉴만하다. 나무그늘에 앉아 미지근하게 식은 물로 목을 축이고 산그늘 속으로 1km 남짓 진행하니 파평면 보건소와 면사무소 앞으로 연결된다.

 

 

삼복더위에 길을 나서는 것이 몸에 부치는가. 황포돗배까지는 10여km 가 남아있으니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청송로를 달리는 92번 버스를 바라보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동요가 심해진다. 저 버스만 타면 곧바로 적성에 도착할 것이고, 의정부 가는 25번 버스에 편안히 앉아 집으로 향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것도 극기 훈련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평화누리길이 92번 버스노선을 따라가니 힘이 다하는데 까지 가보자는 심사로 용기를 북돋운다.

 

 

면사무소를 나와 금파배수펌프장을 바라보며 장파리 방향으로 진행하면 놀노천을 만난다. 놀노천은 비학산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직천저수지에서 모은 물길이 파산서원을 휘돌아 금파리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놀노천 다리를 건너 장마루추진위원회에서 만든 놀노천 산책길을 따라가는 습지에는 갈대와 쑥부쟁이, 멀쑥하게 키가 큰 개망초가 숲을 이룬다.

 

 

자유로 굴다리를 빠져나오면 그린 색으로 포장한 자전거길이 펼쳐진다. 전망이 트이는 강 언덕에서는 지루한 장마로 인해 흙탕물로 변해버린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버드나무와 미루나무가 폭염 속에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사람도 접근하지 못하는 강물 속으로 담방거리는 청둥오리가족이 한가롭게 보인다.

 

 

자전거도로 쉼터 옆으로 임진강 적벽 안내문이 반겨준다. 예로부터 신라, 백제, 고구려가 접경을 이루며 분쟁이 심했던 곳으로, 삼국시대에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는데 경기도 연천군에는 고구려 칠중현의 파주칠중성(七重城)이 있었다고 전하며, 임진강에서 서식하는 어종으로는 참게와 뱀장어 황복이 유명하다고 한다.

 

 

282km를 흘러오는 임진강은 북한의 아호비령산맥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고미탄천(古味呑川:114km), 경기도 평안천(平安川:81km) 한탄강(漢灘江:130km)을 유입하여 오두산전망대 앞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강화만으로 빠져나가는 한강의 제1지류이다. 지금이야 육중한 철책이 가로막아 사람의 왕래가 불가능하지만, 625이전만 해도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작은 배는 안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중부지역의 수상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화산의 용암이 흘러 형성된 임진강 적벽은 해지는 저녁, 노을이 강물에 반사돼 용암지대층이 붉은빛을 보이기 때문에 赤壁부르게 되었는데, 산책로에서는 적벽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2년 전 가족나들이 중에 황포돛배를 타고 유람을 한 적이 있다. 뱃사공의 구수한 해설로 이어지는 40여 분간 적벽유람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추억이었다.

 

 

멀리 임진강을 건너는 다리가 보인다. 장파리와 강 건너 진동리 간을 잇는 교량으로 리비사거리를 통해 연결된다. 이 다리도 민간인통제구역이라 큰 관심이 없지만, 장마루 먹거리 촌 입간판이 시선을 가득 메우고 리비중사 추모비 안내판이 서있다. 이곳에서 율곡로(37번국도) 지하통로를 빠져나와 장마루 촌으로 접어들어 마을길을 지나면 장파사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자장로를 따르는 것은, 황포돛배가 운행하는 적벽을 거슬러 오르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마을길에서는 임진강도 보이지 않고 또한 적성으로 향하는 율곡로도 점점 멀어지고 있으니 좋든 싫든 황포돛배선착장이 있는 장남교까지 7.5km를 돌파해야하는 결단이 필요한 곳이다. 인적도 없는 마을길은 웃자란 벼들이 초록물결을 이루고, 인기척에도 놀라는 기색이 없는 백로와 뜸부기들이 먹이 찾기에 여념이 없다.

 

 

농로를 따라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리본이 걸려있다. 긴장마속에서도 결실을 앞둔 밤송이들이 탐스럽게 영글어가고, 공동묘지를 지나며 산길로 접어들면, 완만한 산등성이에 인삼밭이 펼쳐진다. 지금이야 영농기술이 발달하여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개성, 금산, 풍기지방에서 나는 인삼이 가장 유명했다.

 

 

4구간도 3.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산골마을에 날아갈듯이 아름다운 기와집에 풀장 까지 갖춘 전통문화 체험관이 나타난다. 반가운 마음에 물을 얻어 마시려고 달려가니 문이 굳게 닫힌 채 인기척이 없다. 우물물을 옆에 보고도 그냥 지나치고 보니 한층 더 갈증이 심해진다. 터덜터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뎌지는데, 숲속을 흔드는 빗줄기소리가 요란해진다.

 

 

용광로와 같이 후덥지근한 열기 속에서 시원한 물세례를 받고 보니 생동감이 넘쳐난다. 동물의 세계에서 물길을 찾아가는 동물들의 눈물겨운 사투 속에서도 우기를 맞아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는 대자연의 신비함을 감동적으로 보아왔는데, 지금이야 말로 갈증을 풀어주는 순간이 아닌가싶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길섶의 풀잎마다 고여 있는 빗물이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등산화 속으로 물이 들어오며 물에 빠진 생쥐가 되고 말았다. 땀에 젓은 옷이 빗물과 범벅이 되어 온몸을 휘어 감고, 계곡물이 불어나며 수중 전을 방불케 한다. 산길은 무성한 풀잎에 가려 흔적조차 희미해지고,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리본이 아니라면 길마저 잃어버릴 위험한 순간이다.

 

 

찻소리가 들려오고 4차선 율곡로 옆으로 포장된 농로를 따라가면 드디어 28km의 고된 행군도 끝이 난다. 긴 장마 탓인지 찾아오는 손님도 없고, 황포돛배마저 임진강물이 무서워 산기슭으로 대피중이다. 일명 두지나루로 부르는 이곳은 임진강을 따라 70km를 이어온 파주시의 가장 상류지역이다. 6·25이전까지는 각종 지역 농산물을 실은 배들이 왕래하던 대형나루였다. 연천의 고랑포구로 가던 배들이 승객과 생필품을 실어 나르고, 황포돛배는 파주와 마포나루까지 소금, 새우젓, 인삼, 콩을 가득 싣고 한양을 오갔다고 한다.

 

 

적성면사무소가 있는 마지리까지는 2km가 남았다. 오가는 차량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싶어도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차를 세울 염치가 없어 가늘어진 빗줄기속을 하염없이 걸어간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질주하는 차량들이 물세례를 퍼붓고 있으니, 이래저래 오늘의 평화누리길은 수난의 연속이다. 30km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다.

 

 

 

 

 

 

 

 

 

 

 

 

 

 

 

 

 

 

 

 

 

 

 

 

 

 

 

 

 

 

 

 

                                                    배 타자고 조르는 현준이 덕분에 - 황포돗대에 몸을 싣고

 

                            

 

 

 

 

 

                                           

                                      임진강의 절경은 적벽에서 - 45분의 승선시간이 지루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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