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3년 3월 26일
경유지: 회산 백년지 - 일로평야 - 몽탄진등표 - 소댕이 나루 - 청호리 - 주룡협곡 - 무영다리 - 영산 제1경 - 남창대교 - 황포돛대선착장 - 자전거 인증센터 - 유달산 (25km + 유달산 관광 3km = 28km)
5. 영산 하구언
오늘은 내 생애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우는 날이다. 2011년 10월17일 한강에 자전거 길이 열리던 날. 팔당역에서 새로운 희망을 안고 양평까지 걸어간 것이 4대강 답사의 시작이다. 처음부터 국토대행진의 거창한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니고, 힘이 다할 데 까지 걸어보자는 생각이 회를 거듭할수록 희망의 불씨를 당기게 된 것이다.
1년 6개월 만에 한강과 낙동강, 금강에 이어 영산강까지 일천삼백km를 걸어가는 동안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나는 곳마다 아름다운절경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우리조상들의 숨결이 배어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새로운 문화유산을 체험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 보람으로 무사히 완주하여 큰 결실을 맺게 되었다.
민박집(연방죽슈퍼)을 나온 시각이 6시다. 일로평야를 가로질러 3km를 걸어간 뒤에야 자전거 길과 만난다. 영암군 시종면과 마주보고 있는 영산강은 하구 둑에서 차오른 영산호가 수평선을 이루고, 국립공원월출산의 북쪽 자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강물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인의산(154m) 돈도리 마을 앞에 도착하면 영산하구언 19.1km 담양댐 110.4km 이정표가 반겨준다.
활등처럼 굽어진 제방을 따라가면 “몽탄진등표” 표지석과 강물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등표를 만난다. 1978년 영산강 하구에 둑을 막으며 사라진 등대표를 2009년 복원 점등하였다고 한다. 몽탄진등표는 우리나라 등대 역사상 내수면에 있는 최초의 등표로서 해양교통시설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감안, 등명기를 설치하여 등표기능을 갖추고 있다.
서 남해 일원의 홍어 잡이 등, 어선들이 만선의 꿈을 싣고 영산포로 항해할 때, 선박의 안내와 이정표 역할을 하던 곳이다. 목포항만청에서는 영산강 하구 둑 축조로 해양교통시설이 상실된 몽탄진입표에 등명기를 설치하여 야간에 6마일(11.1Km)이상의 거리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조선해안경비대 ‘등대표’ 자료에는 몽탄진의 높이가 7.6m로 간조 때 보이는 초(礁)가 1.5m”라고 기록돼 있고, 전라남도 근대문화유산조사 자료에는 1934년 건립된 등대로 지리적 광달거리(光達距離)가 13마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전에 뱃길이 열렸을 때 목포항에서 영산강 뱃길로 20여㎞를 거슬러 오르면 주룡협곡을 지나게 되고, 그 협곡을 벗어나면 드넓은 내해(內海)가 펼쳐지는 지점에 영암천이 흘러든다. 영암천은 영암군 영암읍 학송리 풀치재 북쪽에서 발원하여 학송저수지를 지난다음 금성천과 회문천을 모으고, 호동천과 학산천을 만나 서호면 금강리에서 영산강(영산호)으로 합류한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남녘땅, 제방에는 연분홍 자운영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다. “나의행복, 관대한 사랑”의 꽃말을 가진 자운영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인간에게 유익한 사랑을 베푸는 꽃이다. 자운영의 어린순은 나물로 먹을 수가 있고, 풀 전체는 약제로 쓰이며, 꽃이 지고 죽어서는 농토를 비옥하게 만드는 비료가 되는 2년생 풀이다.
연분홍 자운영이 삭막하던 내 가슴에 봄기운을 한껏 불어넣으며,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지는 소댕이 나루를 지나면, 청매화,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겨우내 움츠리던 시금치와 봄동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푸른빛을 더해가는 청호리가 반겨준다. 삼포천과 영암천에서 모인 물길이 호리병처럼 좁아진 협곡을 빠져나가며, 그 유명한 주룡협곡(朱龍峽谷)을 빗어 놓고 있다.
주룡포는 30년 전만해도 무안의 일로와 영암의 독천 우시장을 왕래하던 상인들이 많이 이용했던 나루였다. 이곳은 강폭이 좁아지면서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지역이라. 영산강 하구 둑을 막기 전에 큰 비가 내리면 상류지역에서 시뻘건 황토물이 내려와, 밀물이 되면 목포 앞 바닷물이 강물을 밀고 들어와서 푸른 바닷물과 시뻘건 황토물이 부딪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강줄기를 타고 흐르는 황톳물이 붉은 용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주룡협곡(朱龍峽谷)이라 부르던 이곳에 아름다운 무영대교가 건설되어 영암군과 무안군이 더욱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고 있다. 주룡협곡에 건설된 무영대교를 바라보며 청호리 벼랑을 돌아가면, 상사바위에 가로막혀 우회로를 따르게 된다. 청호2리에서 상사바위가 있는 작골로 향하다가 우비마을을 돌아선 곳이 영산강 제방길이다.
곧게 뻗은 제방을 따라가면 영산석조(榮山夕潮) 비석이 있는 영산강 제1경이다. 담양댐에서 119.7km 영산강 하구언10.3km 지점이다. “저녁노을에 물든 영산호에서 당신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한다.”는 문구가 아니라도, 통일신라의 해신 장보고는 영산강 뱃길을 통해 청해진과 광주를 오갔고, 왕건과 견훤이 영암 덕진포에서 목포까지 전함을 주둔시키며 최후의 일전을 벌인 곳으로 전해진다.
제1경: 목포영산호 - 영산석조(榮山夕照) 제2경: 무안느러지 -몽탄노적(夢灘蘆笛)
제3경: 나주황포돛배-석관귀범(夕串歸帆) 제4경: 죽산보 - 죽산춘효(竹山春曉)
제5경: 나주평야 - 금성상운(錦城祥雲) 제6경: 승촌보 - 평사낙안(平沙落雁)
제7경: 광주풍영정- 풍영야우(風詠夜雨) 제8경; 담양대나무- 죽림연우(竹林煙雨)
영산강의 아름다운 절경을 노래한 8경을 읍 조리며 제방 길을 걸어가노라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영산호를 가로막은 삼호대교(하구둑)와 대불공단으로 연결되는 철교가 한없이 길어만 보인다. 남창천이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강어귀에서 남창대교까지 돌아 나오는 길이 철교 밑을 통과하여, 전남도청이 있는 남악신도시로 진입한다.
동양철학에서 풍수지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 전남도청을 이전하며 새로운 부지를 선정할 때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안으로 안착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안의 남악(南岳)은 서울의 북악(北岳)과 맥을 같이하는 지명이라고 한다. 북악은 북쪽의 큰 산을 뜻하는 것으로 한반도 북부지역, 더 나아가 동북대륙을 향해 뻗어나가는 기상을 대표하는 지명이고. 북악에 상응하는 지역이 이곳 남악(南岳)이라고 주장한다.
남악은 남쪽 바다, 즉 해양을 경영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며, 남악은 유(儒), 불(佛), 선(仙) 삼도(三道)가 회통(會通)하는 터라고 한다. 유학을 상징하는 목포 유달산(儒達山), 불교를 상징하는 무안 승달산(僧達山), 그리고 선(仙)을 상징하는 영암 선황산(仙皇山)의 각 정상을 꼭지점으로 하여 선을 그으면 반듯한 삼각형이 그려지는데, 그 삼각형 중심이 바로 무안 남악리이고 이곳이 바로 유불선 삼도회통의 자리라는 주장이다.
남악 신 도청이 들어선 곳에 오룡산(五龍山)이 있고, 오룡산 아래 마을 이름이 회룡리(回龍里)라고 한다. 다섯 마리의 용이 구슬을 다투다 되돌아오는 땅이라는 뜻인데, 이곳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고, 중국과 일본으로 통하는 해상항로였다고 한다.
정오가 가까워 오며 자전거 도로를 질주하는 메니아들의 행렬이 늘어나고, 배낭에 꽂은 “4대강 답사 국토대행진”의 깃발을 보고 관심이 집중된다.「오전11시 30분」영산강 하구언에 마련된 황포돛배 선착장에 도착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自畵自讚이란,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보다 더한 바보라지만, 삼천리가 넘는 길을 두 다리에 의존하여 완주했다는 자부심에 한없는 희열을 느낀다.
선착장매표소에 마련된 인증센터에서 4대강 완주를 확인하는 황금빛 스티커를 받아들고, 목포의 상징인 유달산 유람 길에 나선다. 유달산은 서울의 남산과 비슷한 228m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산정이 가파르고 기암절벽이 첩첩이 쌓여 있어 호남의 개골산(皆骨山)으로 불린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쌓아둔 것처럼 적을 속인 노적봉이 관광객들을 가장먼저 반겨준다.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목포의 눈물” 속에 층층계단을 올라서면, 목포항에 출입하는 선박과 시가지, 목포대교, 삼학도, 영산호,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유달산은 신선이 춤을 추는 모습과 흡사하여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로 옮겨 대기하고 있다가 극락세계로 가는 영혼이 3마리의 학(三鶴島)을 타고 고하도에 있는 용머리에 실려 떠나고, 용궁으로 가는 영혼은 거북(龜島)이 등에 실려 용궁으로 떠났다는 전설이 있다.
유달산에서 바라보는 다도해는 점점이 뿌려놓은 섬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섬과 섬을 잇는 연륙교가 앙증맞은 장난감처럼 보인다. 군 전체가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은, 전국에서 섬이 가장 많아 1004개나 되어 우리나라의 섬이 3170개라고 하니, 그중에 ⅓이 신안군에 속해있다고 한다.
서해에서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목포(木浦)는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영산강을 끼고 있다. 목포가 역사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대체로 조선 초기부터다. 1439년(세종 21)수군 만호진이 설치되면서 목포라는 지명으로 출발하여 1897년 목포항이 개항한 뒤로, 무안군 일부지역을 흡수하여 인구 6만 명에 전국 6대도시로 성장하여 一黑(김), 三白(면화, 쌀, 소금)의 집산지로 명성을 얻게 된다.
개항과 함께 외국의 문물과 문화가 유입되는 통로 구실을 했다. 예컨대 선교사들에 의해 전남지방의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고, 근대적인 학교와 의술도 들어왔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는 호남지방의 특산물을 수탈하는 창구로 이용하기도 했다. 1949년 8월 15일 목포부를 목포시로 고쳐 부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목포 신 항과 무안 국제공항을 건설하고, 대불공단과 삼호공단을 조성하여 서남해안 시대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한 미래의 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20여 년간 산으로, 강으로 돌아다닐 때, 묵묵히 뒷바라지 해온 아내와 축배를 들기 위해, 싱싱한 홍어 한 상자를 가슴에 안고 상경하는 호남선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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