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3년 3월 25일
경유지: 복암리 고분 - 죽산보 - 나주영상테마파크 - 석관정 - 동강대교 - 느러지 - 몽탄대교 - 화산백련지 (약 32km) + 진입로 3km = 35km
4. 죽산보
교통의 사각지대인 나주역에서 죽산 보까지는 10여 km가 넘는다. 택시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기에 부득이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 덕분에 복암리 고분을 참관하는 행운을 얻는다. 고분이란 삼국시대 이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높았던 지배계층의 무덤을 말한다. 이곳은 영산강이 흐르는 길목으로 원래는 7기의 고분이 있었으나, 30여 년 전 경지정리를 하면서 3기가 없어지고 현재 4기가 남아 있다.
복암리 고분은 도굴의 흔적이 전혀 없어 8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나주역로비에 진열된 금관(국보295호)이 반남 고분군 중에서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 지방에 고도로 발달된 부족국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3세기에 해당하는 옹관묘를 비롯하여 횡혈식석실분(굴식 도방무덤)중에는 7세기 전반까지 내려오는 묘제가 한 분구 안에서 발견되어 400여 년 간 동일 문화를 가진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는 사례라고 한다.
20여 일만에 찾아온 죽산보는 꽃샘추위로 영하의 날씨에 강한바람까지 불어 겨울이 다시 찾아온 느낌이다. 영산강제4경인 죽산춘효(竹山春曉)란 영산강변에 봄이 찾아오면 꽃향기가 널리 퍼지고, 죽산보가 나주평야를 살찌우는 생명의 화원이라 노래하고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수변공원에 조성된 야외공연장을 중심으로 삼남제일의 곡창지대인 다시평야와 석희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우각호란 사행(蛇行)하는 하천의 만곡부가 떨어져나가 생긴 호수를 말한다. 그 면적이 하도 커서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홍보관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면 조등마을에서 월천리까지 영산강 직선화 사업으로 수 십 만평의 농경지가 생겨나며 물이 흐르지 않는 담수호로 변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죽산보는 184m의 가동보를 설치하고, 4.5km의 옛 강을 복원하여 4대강사업을 통해 탄생하는 전국16개보 중에서 유일하게 유람선이 통과할 수 있는 수문을 만들었다. 이번 공사로 인해 34년 만에 영산강에 뱃길이 복원되어 목포에서 죽산보를 거쳐 영산포, 승촌보까지 70km 구간을 유람선으로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죽산보 관리직원과 인천에서 온 자전거 팀들의 환영을 받으며 영산강 하구언을 향한 1박2일의 여정이 시작된다.
영산강하구 둑 54km, 몽탄대교 21.9km 이정표를 바라보며 제방을 따라가면, 강물이 굽이치는 절벽위로 나주영상테마파크가 펼쳐진다. 인기드라마 주몽과 바람의 나라 촬영장으로 알려진 야외 스튜디오는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른 듯, 고풍스런 집들과 웅장한 대궐을 중심으로 14만㎡의 면적에 조성된 국내최대 규모의 영상전문 테마공원이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드라마와 영화촬영을 위한 민속촌으로 기획되어,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장소로 제공되고 있다. MBC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드라마 주몽, 태왕사신기의 촬영 장소로, 동부여성과 졸본부여성, 철기방, 신단, 해자성문, 목책성루, 태자궁, 영상체험관, 탁본체험관 등이 있다.
정문을 나서면 신곡리 들을 살찌우는 사암제가 있고, 지방도로를 따라 봉곡마을을 지나 영산강 본류와 만나는 강어귀에서 강 건너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석관정을 바라본다. 함평이씨 석관(石串) 진충공(盡忠公)이 신녕현감을 역임한 후 귀향하여 영산강과 고막강이 합류하는 석관정 나루터에 1530년(중종 25년) 정자를 창건하여 후학을 기르며 말년을 지낸 곳이다.
석관정, 금강정, 이별바위, 나주영상테마파크 등 주변의 아름다운 절경을 모아 석관귀범(石串歸帆)이라 하여 영산강 3경으로 꼽으니, 나루터 복원과 함께 하구언에서 죽산보에 이르는 황포돛배 길이 다시 열렸다.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황포돛배에 오르던 낭군의 무사귀환을 빌던 아낙의 바람처럼 강이 쪽빛으로 물들면, 님이 돌아온다는 희망의 전설이 강물 따라 전해진다.
지루하도록 이어지는 신곡리 제방이 활등처럼 휘어지고, 둔치에 웃자란 청보리가 봄의 화신처럼 녹색물결을 이룬다. 동강대교가 있는 사포나루터는 조선시대 부근의 대곡마을에 전라도 수군 지휘본부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곳 이였으나, 영산강 하구 둑이 축조되면서 메기, 붕어, 잉어 등 담수어가 크게 늘어나는 육지속의 호수로 변하고, 1992년에는 학교면과 나주시 동강면사이에 동강대교가 건설되었다.
영산강 중류지역인 나주지방에서 생산되는 팔진미(八珍味)를 영산강 주변의 지방수령과 방백들이 임금께 진상했다는 유래가 전해오고 있는데, 소팔진(蔬八珍)은 동문안의 미나리와 신월의 마늘, 흥룡동의 두부(豆腐), 사매기의 녹두묵(黃圃菜), 왕곡의 생강(生薑), 송월동의 참기름(眞油), 복암골의 열무, 금계동의 봄동(겨우살이)이고, 어팔진(漁八珍)은 조금물의 도랑참게, 몽탄강의 숭어, 영산강의 뱅어(빙어), 구진포의 웅어, 황룡강의 잉어와 자라, 수문포의 장어, 복바위의 복어 등이다.
동강대교를 지나며 펼쳐지는 곡강평야가 월송리에서 대지리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영산강도 몽탄면 장구부를 향해 유유히 흘러간다. 유순하게 흘러가던 강물이 옥룡산벼랑에 가로막혀 U턴하면서 이산리와 옥정리를 빗어놓으니, 영산강의 물결도 느러지에 반하여 느려졌다는, 한반도의 지형을 꼭 빼닮은 숨겨진 비경이 펼쳐진다.
강물도 산줄기를 피해 돌아간 곳에서 자전거도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데, 육탄공격이 가장 빛을 보는 구간이다. 수십 길 벼랑사이로 오솔길이 열리고, 솔밭사이로 기어오르면, 그림 같은 4층 전망대가 반겨주고 한반도의 지형이 그대로 재현된다. 장구부와 어오지는 남한의 평탄한 지형을, 뒤구지와 당치마을은 이북의 험준한 산세를 그려내고 있다.
무안 느러지를 몽탄노적(夢灘蘆笛)이라 하여 영산강제2경으로 선정하였으니, 이곳에 자리 잡은 식영정은 한호(閑好) 임연(林煉, 1589~1648) 선생이 무안에 入鄕하여 후학들을 가르치며, 그의 호인 '閑好'처럼 여유자적하며 말년을 보낸 곳이다. 전남문화재자료 제237호인 식영정은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교우를 즐긴 곳이다. 선생은 "1610년(광해군 2)에 성균관 진사가 되고 1613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여 영암군수, 진주목사, 남원부사 등을 지낸 인물이다.
자전거길이 옥정리 봉추마을을 찾아가지 못하는 것도 자연을 거스르지 못하고 순리에 따르기 때문이다. 용새마을과 몽탄마을을 지나 모처럼 영산강을 건너는 몽탄대교 위로 올라선다. 정부의 간척사업으로 영산만(榮山灣)과 남해만(영암구간의 영암만)으로 불렸던 영산지중해(榮山地中海)도 옛말이 되었다. 지난 1981년 길이 4,351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하구 둑이 준공되면서, 2억5,000만t의 물을 담수하는 영산호(榮山湖)가 생겨나고, 무안군 몽탄면과 나주시 동강면 사이에 길이 668m의 몽탄대교가 건설되었다.
영산강 하구둑은 무안군 몽탄면 복룡리 양도(염소섬) 동쪽 영암과 나주 땅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서 19㎞연장된 목포시 삼향동과 영암군 삼호(나불도)를 잇는 초대형 구조물이다. 목포에서부터 6㎞지점에 들어선 하구둑으로 영산포까지 올라갔던 조수가 막혔고 대신 5,500정보의 농경지가 생겨났다.
춘분을 지나며 낮의 길이가 길어진 탓인가. 오후 6시가 지나서야 태양도 서산너머로 걸터앉으며 제방위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김제평야 다음으로 방대한 무안과 영암평야가 지평선을 이루는 들녘의 한가운데 낮은 구릉을 양도라 부르고 있다. 간척사업 이전에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복룡4리로 부르는 양도는 염소가 호수위에 앉아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강 건너 한 없이 넓어진 강폭사이로 삼포강이 흘러든다. 삼포강(三浦江)은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백룡산(481m)에서 발원하여 영암군 신북면과 시종면, 나주시 반남면, 공산면, 동강면으로 이어지는 29.4㎞의 물길이다. 자미산을 중심으로 마한시대의 고분과 옹관묘가 밀집한 곳이기도 하다. 조수가 밀고 올라오던 시절, 목포로 쌀을 실어 내고 잡화를 들여오는 길목인 남해포, 수문포, 석해포 등 세포구를 아우르는 강을 삼포천이라 한다.
영산강 본류와 삼포천이 갈라지는 곳에 남해신당이 있었다.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남해신당의 상부는 강이요, 하부는 남해바다가 시작되는 곳으로, 영산강 수로를 빠져나와 남해만으로 들어선 배들이 안전항해와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드리던 신당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해(東海)의 양양(襄陽), 서해(西海)의 풍천(豊川), 남해(南海)의 나주(羅州) 등 세 곳에 해신당(海神堂)을 두고 국가에서 거행하였다.
죽산보에서 양도까지 33km에 이르니 많이도 걸어온 셈이다. 오늘의 숙박지로 점찍어둔 회산리 백련저수지까지 2km를 더 걸어간 뒤에야 허름한 민박집을 만날 수가 있다. 회산저수지는 세계최대의 연꽃 산지로, 10만평에 이르는 연못에 백련이 가득 채워진 모습을 상상만 해도 황홀하지 않은가. 연꽃이 절정에 이르는 8월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인파로 즐거운 비명을 올린다지만, 철지난 회산저수지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회산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방안에 들어서니, 냉천한골이 따로 없다. 벽에 걸린 달력이 작년 9월로 표시되어 있으니, 한겨울이 지나도록 민박손님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연꽃축제를 제외하고는 외지인들이 찾아올 이벤트가 없다는 농촌마을. 초면이지만 일로읍을 순례하며 숙박 지를 찾아 나선 고영남 선생님 갑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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