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2년 3월 21일
경유지: 문경버스터미널 - 마성 - 소야솔밭 - 진남교반 - 불정역 - 국군체육부대 - 점촌 체육공원 - 영신 숲 공원
- 문경시 환경사업관리소 - 금곡교 - 상품교(40km)
3. 진남교반(40km)
일주일 만에 찾아온 문경은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벌써 봄이 오고 있으니, 상풍대교를 지나 부산의 을숙도까지 달려가는 꿈이다. 문경읍을 보듬어 안고 있는 주흘산은 어느 곳에서 보아도 호걸선풍(豪傑仙風)으로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하는 자전거도로가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변에 월남참전 기념비를 발견한다. 추억 속에 살아 숨 쉬는 백마부대. 44년 전 젊은 혈기로 열대의 밀림 속을 누비던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은 아들 재형이가 경제의 역군으로 베트남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우리 부자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닌가 싶다. 부디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문경온천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자전거도로를 따른다. 황금물결로 출렁이는 갈대 사이로 푸른 물이 넘실거리고 아침햇살에 반사되는 모습은 황홀감의 극치라 할까.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는 산수화의 경지로 빠져든다. 호두나무라면 천안을 먼저 떠 올리게 되지만, 이곳 문경에도 호두나무가 많아 가로수로 심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집집마다 담장사이로 호두나무가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머지않아 문경호두가 명성을 날릴 것으로 기대를 해본다.
봉명교를 지나 철교 밑으로 통과한다. 1955년 점촌∼가은(加恩)간 개통한 경북선 지선으로 문경지방의 자원개발(석탄수송)을 위해 건설된 산업철도라고 한다. 그 후 1969년 진남~문경 간 연장공사로 점촌~문경구간 22.3km를 문경선이라 하고, 이미 완공된 진남∼가은을 가은선이라 부르며 전성기를 구가하다 석탄 산업이 쇠락의 길을 걸으며 2005년 4월 이후 운행이 중단되고 말았다.
가은(은성 탄광)과 마성(봉명 탄광)지방에는 질 좋은 석탄이 매장되어 강원도 장성탄광, 충남 보령탄광과 함께 전국3대 석탄생산지로 유명하여 경기가 좋은 시절에는 문경지방의 경제를 좌우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가은읍에는 은성광업소자리에 석탄박물관을 개설하여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3번국도가 만나는 마성면 소재지에 도착하면 소야솔밭을 지난다. 강둑을 중심으로 수백 년 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작은 백사장에 간이시설이 있어 캠핑장으로 적당한곳이다. 건너편으로 기암절벽의 주지봉(368m)을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니, 지루한 여정 속에 산천경개(山川景槪)를 벗 삼아 벚나무 가로수의 호위를 받으며 찾아간 곳이 봉생교다.
울창한 소나무숲속에 자리 잡은 봉생정은 조령천과 영강이 만나는 지점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로 조선 중기의 학자인 문충공(文忠公)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이 고향인 하회마을을 오갈 때 이곳에 들러 주변 경치를 즐기며 휴식을 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훼손된 것을 근래에 와서 문경시의 보조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영강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속리산)에서 발원하여 문경시를 동서로 가로질러 가은읍에서 농암천과 대야산에서 발원하는 물과 합류하여 흐르다가 진남교반 부근에서 조령천과 합류하여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길이 66.2㎞에 이르는 강이다.
영강을 따라 진남교를 지나면 고모산성을 만난다. 2세기 말 신라가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모산성은 삼국의 세력이 팽팽히 맞서던 곳이었고, 임진왜란 때 산성의 규모를 보고 놀란 왜군이 성이 텅 빈 줄도 모르고 진군을 주저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6·25전쟁의 격전지로도 알려져 있다. 총 길이 1,646m로 주변산세를 이용해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산성 아랫길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선비들이 과거보러 가던 토끼비리를 지나던 길로, 견훤이 근품성(近品城:지금의 산양)을 빼앗고 서라벌로 육박하니 신라의 경애왕이 고려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고려 태조는 정기병(精騎兵) 5천을 이끌고 고모산성에 이르렀지만 나아갈 길이 없어 고민하던 중.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토끼 한 마리가 바위 절벽 중간을 가로질러 가는 게 보이는지라. 군졸들이 토끼가 지나간 길을 따라 위험한 길을 통과 하였다고 하여 지금도 토끼비리(兎遷)라 부른다.
문경팔경 중 으뜸인 진남교반은 자연과 인공구조물이 어우러지는 관광명소다.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사이로 노송이 어우러지고, 산줄기와 물이 태극 문양을 그리며, 강 위로 철교, 3번국도, 중부내륙고속도로 등 3개의 교량이 지난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은 것은 진남 휴계소에서 바라보는 고모산성과 U자 형태로 흐르는 강변에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문경선 철길이 지나던 자리에 마련된 레일바이크를 타고 주변경치를 바라보는 것이야 말로 진남교반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진남교반은 수안보의 수주팔봉, 경북예천의 회룡포,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물길이 자연경관을 아름답게 빗어 놓은 절경이다.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원에서 국토의 높이를 측량하기위해 인천만 해수면을 표준점으로 정하여 국토의 중요한 지점에 수준점을 표시하였으니, 진남교반의 현 위치가 경도 128도 08분 05초. 위도 36도 39분 15초. 높이(해발고도) 104m로 표시되어 있다.
녹슨 철길위에 펜션열차를 운행하는 불정역을 지나 문경관광사격장 입구에서 불정교를 건너 34번 국도를 따른다. 산기슭에 거창한 건물들이 터를 잡고 있는 국군체육부대 시설물을 지나면, 바둑판 모양의 창동들을 감싸는 십리제방길이 멀어만 보인다. 영강대교를 지나 문경시청이 있는 점촌 고수부지에 영강 체육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문경시민들이 즐겨 찾는 영신 숲은 이조 선조 때 횡성현감과 고성군수를 역임한 溪亭 高興雲 선생이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전원생활을 하면서, 영신들에서 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의 휴식공간을 마련하기위해 영강 변에 소나무를 심은 것이 효시라고 전해오고 있다. 근년 들어 소나무 등 울창한 숲에 병해충과 관리소홀로 정취를 잃어가고 있어 다시 옛 모습으로 가꾸기 위해 향토수종으로 바꾸어 심고, 10만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기리 보존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점촌을 살찌우는 영신 들. 이 십리 제방 길은 五體鬪志로 온몸을 불사르는 수도승의 잔혹행위라 할까. 30여km를 지나오는 동안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며 참기 어려운 통증으로 신음소리가 절로난다. 문경시 환경사업소를 지나 상주시로 들어서면, 새재길 100km의 여정도 멀지않은 듯, 사로면 퇴강나루에 도착한다.
안동댐에서 시작된 낙동강본류와 영강이 만나는 퇴강나루는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와 예천군 풍양면 와룡리를 잇는 나루터로 낙동강 7백리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남해바다에서 올라온 소금배가 퇴강나루에서 내려 문경새재를 넘고, 물물교환으로 쌀과 목재를 실은 배가 남해로 내려가는 길목이라, 그 증표로 물미마을에는 낙동강 7백리 표지석이 있고, 상주시 최초의 천주교회가 있어 퇴강나루가 번창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상풍대교는 새재길 100km의 종착점이다. 충주 탄금대에서 시작하여 영남과 충청도를 가르는 문경새재를 넘어오며 조상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문화유적을 살펴볼 수가 있어 더욱 값진 답사 길이라 생각된다.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거대한 장벽이 있어 문경새재가 존재하게 되고 한양과 영남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지만, 이번 국토대행진으로 한강과 낙동강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했으니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서울 가는 버스를 함창읍에서 타면서 근처에 있는 고령가야 왕릉을 답사했다. 경상북도 기념물 26호로 지정된 능은 서기 42년경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6가야 중. 함창, 문경, 가은지방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운 고령가야의 태조 왕릉이라 전해진다.
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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