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2년 12월 5일
경유지: 대성리역 - 청평대교 - 청평댐 - 호명리 - 고성리(양지마을) - 고성고개 - 복장리 - 유동마을 - 유동고개 - 갈치고개 - 이화리 -
장승고개 - 남이섬 - 가평역 (32km)
청평 호반
국토대행진 낙동강 답사를 앞두고, 준비운동삼아 북한강 두 번째 답사 길에 나선다. 상봉역에서 출발하는 경춘선 전철은 언제나 만원이다. 춘천에서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하여 1시간 30분이면 서울의 상봉역에 도착하여 학생과 직장인들의 출퇴근시간이 용이하고, 경로 우대권으로 공짜 여행하는 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노선이기 때문이다.
경춘선은 1939년 성동역(제기역 2번 출구부근)-춘천 간이 개통되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4대문 안으로 국한되던 서울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면서 교통 혼잡을 피하기 위해 성동역-성북역 간 철로를 철거하고, 수도권 전철이 이어지는 성북역을 기점으로 춘천까지 87.3km의 단선철도로 운행되었다.
2010년 12월 21일 복선전철 사업이 완료되어 상봉역을 기점으로 하는 경춘선이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또한 itx 청춘열차가 경부선과 연결되는 용산역에서 상봉역을 경유하여 춘천까지 1시간 20분 만에 주파하는 준급행열차로 운행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2층 좌석이 있는 낭만열차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나의 산행신조(山行信條)가 “일찍 출발하여 일찍 하산 한다”는 습관대로, 회룡역에서 출발하여 1시간 반 만에 대성리역에 도착하니 7시다. 동지섣달의 긴긴밤이 먼 동 트기에는 이른 시각이다. 역무원에게 진입로를 물어 경춘선 굴다리를 빠져나가면서 곧바로 자전거도로와 만난다. 지난 가을에는 없던 자전거 도로가 3개월 만에 깔끔하게 조성되어 북한강 강변길로 命名된 산책로와 함께 진행된다.
대성리역은 대학생들이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어내는 소중한 곳이다. 덜컹거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북한강변을 달려가면, 대성리역을 중심으로 강변마을에 국민관광유원지가 펼쳐진다. 수십만 그루의 나무들이 푸른 숲을 이루고, 유원지 내에는 민박 촌, 텐트촌, 그늘 막, 나루터, 보트장에 번지 점프장까지 각종 숙박시설이 있어 젊음을 불사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밤에 내린 눈이 자전거도로를 하얗게 덮고 있다. 먼동이 터오며 온 누리가 하얀 세상으로 변하고, 검은빛 강물 속에서 겨울철새들이 담방거리는 모습은 동화속의 마을처럼 평화롭게 보인다. 북한강을 거슬러 오르면 원대성 나루터가 반겨준다. 윈드서핑 장으로 변신하여 강심을 가르는 젊음의 향연장이 되고 있다. 마주보는 마을끼리 왕래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던 나루터에는 숱한 애환이 서려 쪽배에 몸을 싣고 건너던 그 길이, 지금도 양수교에서 청평대교를 건널 때 까지 백리 길을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남아있다.
북한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맥을 축령지맥 이라한다. 주금산 남쪽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서리산과 축령산을 솟구치고 청평까지 이어지는 길이 20여 km의 산맥이다. 그 중심부에 있는 축령산은 산악인들이 매년 시산제(始山祭)를 지내는 장소로 유명하다. 이성계가 이곳에 사냥을 왔다가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탈해 있는데, 몰이꾼의 말이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 고 하여 산 정상에 올라 제(祭)를 지낸 후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남쪽으로 솟아있는 화야산은 그 높이가 754m에 이르는 험준한 산으로 청평호를 빗어놓은 뾰루봉에서 시작하여 고동산까지 하루해가 다가도록 북한강을 바라보며 다리품을 팔아야하는 멋진 등산코스가 펼쳐진다. 또한 이곳은 벼 한포기 심을 땅이 없을 정도로 가파른 협곡을 끼고 있어 경춘가도의 절경을 더욱 아름답게 그려낸다.
新 淸平大橋밑을 지나면 청평댐이 모습을 드러내고,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조종천과 만난다. 조종천은 귀목봉에서 발원하여 운악산 유원지와 녹수계곡, 돌섬유원지를 비롯한 여름철 피서지로 이름난 명소를 빗어놓고, 청평면 소재지를 지나는 길이 39km에 달하는 하천이다. 특히 조종 천 상류인 귀목고개 일대는 생태보존지역으로 반딧불이 서식하는 깨끗한 환경을 자랑하며, 축령산 기슭의 아침고요수목원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야생화 단지로 유명한 곳이다.
청평대교와 청평철교, 신청평일교까지 청평입구에 걸려있는 인공구조물로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조종천 입구에서 북한강 강변길이 청평역 방향으로 돌아선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인 청평 호반을 버리고 우회로를 택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가능하면 강을 따라가는 것이 정석이라는 나의 생각대로 청평댐방향으로 진행한다.
육지속의 바다 청평호가 펼쳐진다. 호명산과 화야산줄기인 뾰루봉의 협곡을 가로막아 생긴 청평댐은 가슴속이 꽉 막힌 도시민들이 일상에서 탈출하여 생활의 리듬을 찾을 수 있는 청정지역이다. 때마침 물안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호수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겨울 산들이 신비감을 더한다.
391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는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는 청평댐이 자랑하는 명소로서 남이섬까지 26km에 걸쳐 물길을 따라 계곡의 속살을 파고든다. 전망 좋은 산자락에는 그림 같은 팬션 들이 자리를 잡고, 수상스키를 중심으로 위락시설과 음식점에 호텔까지 호반의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그려낸다.
청평호를 빗어놓은 발전소는 북한강 수계에서 가장먼저 건설된 댐이다. 일제시대인 1939년 착공하여 1943년 7월 발전을 시작한 청평댐은 6.25 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된 것을 1952년 복구하여, 수차례 증설공사로 설비용량 7만 9,600kW를 생산하고 있다.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축조된 청평댐은 높이 31m에 제방길이 470m로, 24개의 수문을 설치하여 상류 저수지와 함께 홍수량을 조절하고, 호명호수에서 양수발전 하는 공급원이 되고 있다.
산굽이를 돌때마다 숨겨진 비경이 나타나고, 호반의 경치에 반한 승용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호수 건너편 리버랜드 번지점프 장 쪽 가래골을 왕래하는 호명나루터를 지나면 속살깊이 파고든 산자락에 호명리 마을이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마을입구에서 호명산과 호명호수를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되고, 등산로를 따라 팬션과 식당들이 즐비한 것을 보면 호명리를 들머리로 하는 등산객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평2경으로 선정된 호명호수는 호명산(632m)정상을 중심으로 33만평에 달하는 산정의 분지에 총사업비 176억 원을 들여 지은 양수발전을 위한 인공호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축조된 양수발전소는 전력의 소비가 가장 적은 심야에 잉여전기를 이용해 하부저수지의 물을 높은 곳에 있는 상부저수지에 양수시켜 저장했다가, 전력수요가 가장 많은 시간이나 전력계통사고시 에 발전한다.
부대시설로 조성된 관광 전망대, 하늘공원, 사계절 꽃밭단지, 자연 체험시설, 호수 순환도로는 호명호수와 어우러지는 관광코스로 호명정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으뜸이다. 호명산의 수려한 산세와 더불어 넓은 저수지는 백두산 천지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절경이다. 가평읍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산유리에서 하차, 또는 청평면 상천역에서 하차하여 호명호수까지 등산을 하며 주변경관을 즐길 수 있다.
아름다운 노래도 세 번이면 싫증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아름다운비경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루한 느낌마저 든다. 때 마침, 고성리 양진마을을 지나며 391번 도로가 산속으로 파고든다. 완만한 산자락에 운치 있는 프랑스마을 “뿌띠 프랑스”가 반겨준다. “꽃보다 남자,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지로 알프스 전원마을을 옮겨놓은 듯, 이국적인 풍경이 인상적이다. 겨울 산의 스산함 때문인가? 오가는 차량도 별로 없는 적막강산에 눈발까지 날린다. 처음에는 운치 있는 날씨라고 반색을 해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조함마저 든다.
우리의 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면서 기상예측도 족집게처럼 잘도 맞는다. 금년 겨울은 눈이 많이 오고 추운겨울이 되겠다는 예보에 따라,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한파에 11월 중순부터 시작된 눈이 벌써 여러 차례 내렸다. 오늘도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 종주 길을 망설이다 집을 나섰는데, 영 낙 없이 눈 세례를 받고 말았다.
고성리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좁은 협곡 속에서도 너른 분지를 이루는 곳이 홍천강 합류지점이다.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산에서 발원하여 두촌면 남쪽에서 장남천(長南川)과 합류하여 홍천읍을 지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강원도 춘천시 남면 관천리 경계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길이 143km의 하천이다.
홍천 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팔봉산은 327m의 낮은 높이에도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산이다. 여덟 폭 병풍을 둘러친 듯 산수화를 그려내는 팔봉산은 여덟 개의 봉우리마다 특색 있는 비경을 간직하고, 맑고 깨끗한 홍천 강물이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을 간직한 곳이다.
점점 굵어지는 눈발을 맞으며 유동마을에 도착하면서 갈등이 생기고 만다. 북한강을 따라 금대리로 가야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2km나 되는 먼 길을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야할지 판단이 서지를 않는다. 현재시각이 12시 반. 시간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아직도 가평까지는 10km가 남아있다.
만약의 경우 큰 길을 따라가는 것이 구원을 요청하기 좋겠다는 생각으로, 갈치고개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만다. 물기를 많이 먹은 함박눈이 순식간에 천지를 하얀색으로 도배질하고, 어쩌다 지나는 차량들마저 오금이 저려오는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다. 산유리 경로당에 들러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오후 4시에 온다는 대답에 맥이 풀리고 만다.
지난번에 내린 눈이 빙판으로 변하고, 그 위에 내린 눈이 차곡차곡 쌓여가며 눈썰매장을 방불케 한다. 눈길에서는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욱 어렵다. 신경을 곤두세워보지만, 끝내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고된 신고식을 하고난 터라 신경이 곤두서고, 허기마저 몰려오니 雪上加霜이 따로 없다.
2시간동안 惡戰苦鬪끝에 가평역에 도착하니 마을은 온통 눈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청평에서 자전거 길을 답사 하는 것보다 10여 km를 돌아왔지만, 악천후 속에서도 호반을 걸어온 32km가 더욱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