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대교- 팔당대교(20km)
일시: 2012년 3월 7일
경유지; 광진교 - 워커힐 앞 - 토막나루 - 구리시민공원 - 왕숙천 - 미음나루 - 삼패동 - 와부 - 팔당대교 - 팔당역
3. 하남 위레성
광나루역을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광진 청소년수련관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건물 뒤편으로 자전거 전용도로가 연결되어 접근성이 아주 편리하다. 한강에서 2번째로 건설된 광진교. 천호대교에게 무거운 짐을 물려주고, 작은 차량과 사람들만 건너는 전용도로로 천수를 누리고 있다. 우수 경칩이 지났건만,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찾아와 강가의 수초사이로 스멀스멀 새벽안개가 피어오르며 앙상한 갈대 잎에 서리꽃을 피워 올린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강을 중심으로 생활의 근거지를 마련하였는데, 암사동의 선사유적지는 전곡 선사유적지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곳이다. 신석기시대(약 6,000년 전)의 주거지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 267호로 지정되었으며 중서부 지역의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바위절(백중사)이 지금의 암사동으로 부르고 있다.
인구 천호가 살만한 곳이라 하여 천호동으로 부르던 이곳은 수도 서울의 동쪽에 수십만이 생활하는 거점도시가 되었으며, 천호대교 옆으로 사적 제11호인 풍납토성이 새로 복원되어 옛 조상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적지이다. 백제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풍납토성은 한강 연변의 평지에 축조된 순수한 토성으로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이룬다. 성벽의 둘레가 3.740m이르지만 1925년 대홍수로 서쪽성벽이 유실되고 현재는 2,679m 정도만 남아 있다.
암사유적지에서 6km 하류에 있는 몽촌토성은 움막의 형태를 버리고 지상에 건물을 지어 그 당시로는 첨단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백제초기의 건축물로 목책과 진흙으로 토성을 쌓고 해자를 파서 방어용 성을 구축하였는데, 백제의 都城인 위례성이라는 견해와 방어용 성이라는 견해가 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백제 초기의 군사적. 문화적 성격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유적지로 사료된다.
이성산성은 춘궁동 왕궁지를 보호하는 형태의 산성으로 해석되며, 춘궁동 왕궁지는 남쪽에 천왕사지와 동사지가 주요유적으로 남아있다. 춘궁동 왕궁지의 규모가 고구려, 신라의 왕궁지에 버금가는 규모라는 분석에 따라 이곳이 백제의 하남위레성이라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기전 18년 백제시조 온조왕이 도읍지로 정한 하남위례성이 강동구와 하남시 일대로 추정되는 만큼, 하루빨리 발굴 작업이 완료되어 백제 건국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건으로는 물이 있어야 하고 외부의 침입에 대비할 수 있는 산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너른 벌판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한강이야말로 3가지를 모두 갖춘 천혜의 요지라 할 수 있다. 백제시조인 온조가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오며 근거지를 찾던 중 한강에 터전을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강을 굽어보는 아차산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곳이기에, 삼국이 첨예한 대립을 하며 항시 전투가 끊이질 않는 접전지역이었다. 삼국 중 가장 먼저 한강유역을 차지한 것은 백제였다. 그러나 고구려(475년 장수왕)가 남진하여 백제의 개로왕을 살해하고 한강유역을 자신의 지역으로 복속시킨다. 551년 백제가 한강 유역을 되찾았지만 2년 뒤 곧바로 신라에게 넘겨주고 만다. 이렇듯 한강 유역은 삼국시대최대의 격전지였다.
구의동 보루는 고구려가 백제의 영토를 점령한 뒤로 한강 이남의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을 조망할 수 있는 고구려 최전방 초소 역할을 했던 전초기지였다. 해발 285m의 아차산 제4보루는 남북으로 뻗은 아차산능선 가장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급경사를 이루는 지형을 이용하여 석축을 쌓고, 길이가 남북 77m, 동서 25m, 둘레는 210m에 이르러 구의동 보루 10배에 이르는 대규모 군사시설이다.
신라의 진흥왕과 백제의 성왕이 연합하여 한강 상류를 되찾았으나, 2년 후에는 신라가 한강유역의 모든 영토를 차지하고, 북한산에 진흥왕 순수비를 세워 군사적인 요지로 삼았다. 이상과 같이 한강변에는 선사시대부터 삶의 터전을 일구어온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명소가 많다. 따라서 한강은 우리민족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요람이라 할 수 있다.
아차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워커힐은 강 건너 천호동에서 바라보면 그림속의 무릉도원처럼 선경이 따로 없다. 경사심한 벼랑아래 강심을 따라 아차산 대교가 길게 뻗어있고 교각 아래로 자전거 전용도로가 이어진다. 난지기점 27km 표지석을 지나면 곧바로 서울시와 구리시의 경계지점이다.
세계 속의 경기도 전광판아래 “토막나루”안내판이 서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나무토막을 엮어 만든 배가 드나드는 곳이었다고 한다. 강 건너 암사동과 천호동을 이어주는 작은 나루터는 교통사정이 열악한 아천동주민들이 외지로 나갈 때, 나룻배를 이용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고 한다.
구리암사대교 공사장에 도착한다. 1900년 한강철교가 건설되기 시작한 이래 한강 상류 팔당대교부터 하류에 있는 일산대교까지 교량이 모두 29개이고, 2013년 암사대교가 완공되면 30개로 늘어난다. 중앙의 트러스 아치로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랑하는 암사대교는 서울 강동구와 경기도 구리시를 연결하는 연장 2.74㎞(교량 1.13㎞, 연결도로 1.61㎞)가 된다.
곧 이어 구리시 한강 시민공원에 도착한다. 한강둔치를 조성하여 14만평의 너른 부지에 꽃 단지와 각종 위락시설을 꾸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이 대형태극기가 휘날리는 태극기 공원이다. 구리시에서 태극기 사랑 캠페인을 벌이며 집집마다 거리마다 태극기를 계양하고 나라사랑의 상징인 태극기 보존 운동을 몸소 실천하는 상징성 있는 공원이다.
1882년 고종황제의 칙명으로 특명 전권대사 겸 수신사인 박영효 일행이 우리나라를 상징할 표시를 고안한 것이 국기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태극문양과 乾,坤,坎,離의4괘로 이루어졌다. 흰색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냈고,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우주만물이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 발전하는 진리를 형상화 했다. 4괘는 음과 양이 서로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과 조합을 통해 구체화한 것이다. 4괘중에 乾은 하늘을, 坤은 땅을, 坎은 물을, 離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
태극기에 대한 존엄성을 되새기며 여울 천과 들꽃 동산을 지나노라면, 회색빛 들녘의 스산함에 아직도 봄소식이 멀게만 느껴진다. 경비행장을 뒤로하고 강동대교 밑을 돌아서면 왕숙천이 반겨준다. 포천시 내촌면(內村面) 신팔리(薪八里) 수원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남양주시를 지나 구리시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길이가 37km에 이른다.
부근에는 세조를 모신 광릉(光陵)과 광릉수목원, 자연사박물관, 밤섬유원지, 동구릉(東九陵) 등 사적 및 관광지가 있고, 태조 이성계가 상왕(上王)으로 있을 때 팔야리(八夜里)에서 8일을 머물렀다고 해서 ‘왕숙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수석교를 건너면 남양주 한강시민공원이 펼쳐진다. 거창한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 미음나루는 남양주시 수석동과 하남시 미사리를 건너던 나루터로, 조선시대 이전부터 한강을 오가던 배들이 중간쉼터로 이용하고, 부근에 있는 석실서원에 필요한 물건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뱃사공을 위해 밥을 짓던 소박한 주막거리를 기념하여 남양주에서 대표적인 음식명소로 조성하여 30여 곳의 음식점들이 촌락을 이루고 있다.
미음나루는 강이 “ᄂ” 로 꺾여있어 물위로 떠오르는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서, 겸재 정선이 “삼주삼신각”이나 “석실서원”을 그린 것처럼 주위에 풍광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특히 석실서원 앞에 있는 한강을 미호(渼湖)라 하여 잔잔히 흐르는 한강이 마치 너른 호수와 같다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일명 풍속마을로 불리는 이곳을 자전거로 넘자면, 여간한 메니아도 진땀을 흘리는 고갯마루가 있어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것이 속편한 구간이다.
삼패동이 바라보이는 한강 시민공원에 도착하면 아파트 숲이 장관을 이룬다. 예봉산과 갑산의 줄기가 내려앉은 너른 분지에 터를 잡은 와부읍은 20여년전만해도 논밭이 즐비한 농촌 들녘이었다. 서울과 20여km의 근거리에 한강을 바라보는 경관이 빼어난 곳이라 분양 때부터 인기가 있었고, 전철이 개통된 뒤로는 출퇴근 시간이 수월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강 건너 미사리는 라이브 카페의 메카로 명성을 얻고 있다. 88올림픽 조정경기가 열린 이후로 세인의 관심을 받으며 90년대 후반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카페 촌이 명동과 무교동의 음악 감상실을 옮겨와 노년층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추억의 거리가 되었다. 모처럼 도심을 벗어나 식사도하고 진한커피에 음악 감상까지도 할 수 있으니, 피로를 풀어주는 데이트 장소로 안성맞춤 이다.
풍속마을 9km표지판을 지나면 곧바로 팔당대교에 도착한다. 예봉산과 검단산이 어우러지는 협곡에 수도 서울의 식수를 공급하는 팔당댐까지 있으니,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가히 천하절경이다. 4대강 살리기 한강 자전거 전용도로가 시작되는 이곳이 팔당대교기점이고, 양평과 여주를 지나 충주댐까지 136km를 이어갈 수가 있다. 남양주 역사박물관까지 둘러보며 한강 르네상스 75km 답사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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