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도

35도의 열기속에 찾은 거창의 의상봉

 

거창의 의상봉을 찾아서

장군봉(956m). 지남산(1,018m). 의상봉(1,032m). 우두산(1,046m)

 

 

산행일시: 2007년 7월 28일 (토요일)  11시 35분 - 17시   산행시간: 5시간 25분

소 재 지: 경남 거창군 - 가조면   합천군  산행거리: 약 10km

 몽불랑 산악회  44명  날씨: 맑음   회 비: 28.000원

 

 


이삼일 전부터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아랫배가 살살 아프면서 설사가 나온다. 평소에 장이 좀 약한 편이라 가끔 설사를 하면서도 하루에 한 번씩 정상적인 배변으로 변비를 모르고 살아오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지만 오늘 아침에는 3번씩이나 변기를 타고 앉는 수난을 당하며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고 눈은 괭하니 십리나 들어가서야 심상치 않은 사태를 감지하게 된다.

 

 

다급한 마음에 병원을 찾았지만 - 날 음식과 찬 음식을 먹지 말고 당분간 음주도 삼가라는 금주령까지 받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하듯” 병을 키우고 말았다. 미음으로 속을 달래며 주사도 맞고 약을 먹으면서도 삼일 앞으로 예정된 산행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으로 걱정이 앞선다. 아내에게는 산에 간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도 못하고 수많은 번민 속에 갈등을 느끼면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제하지 못함은 무슨 연유인가?

 

                             죽암 휴계소의 명물 칼갈이 장수


사실 이번 산행은 600산을 오르는 기념으로 거창에 있는 의상봉과 우두산의 9개 봉우리를 넘나드는 암릉 산행으로 점지를 하고 있던 터에 배탈이 나고 말았으니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다행이 금요일부터 설사도 멈추고 기력만 회복하면 되겠는데 어찌 해야 할지 장고를 거듭한 끝에 산으로 향하는 마음을 억제 하지 못하고 예약을 하고 말았다.

 

 

 

토요일 새벽 일찌감치 일어나 배낭을 꾸리고 집결지인 동대문에 도착하니 6시10분 아직 20여분이나 여유가 있어 워밍업을 하며 몸 상태를 확인하니 산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 도착하는 버스에 승차한다. 사당역과 양재역을 순례하며 40인승 버스가 매진이 되어 임원들이 통로에 보조의자를 펼치는 대박으로 순조롭게 출발을 하고 부족한 잠을 보충함인지 고요한 적막감속에 바퀴의 마찰음만이 자장가 소리로 귓가에 아련히 들려온다.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공존을 하고


이제 장마도 끝이 나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어 평소보다 차들이 많이 몰린다.  신갈 인터체인지를 지나며 정상적인 속도를 내는 버스는 죽암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를 한 다음 대진 고속도로에 접어들며 신바람 나게 질주하고 잔뜩 흐려있던 하늘도 서서히 열리며 햇볕이 내 비추고 차창가로 스치는 농촌 들녘 의 알찬 곡식들도 풍년을 예고하듯 알알이 영글어 가고 있다.

 

 

 

 함양 휴계소를 지나며 대장의 산행안내가 시작된다. 일반 산악회에서는 고견사 주차장에서 마장재를 거쳐 우두산과 의상봉으로 산행이 이루어지지만 산행거리가 짧은 관계로 서쪽의 병산 마을에서 장군봉을 거치는 종주 산행으로 일정을 잡았다는 설명과 5시간의 산행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잠시 후 대장의 멘트는 다시 시작되고 ...... 오늘의 산행이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암릉 구간이 많아 체력 소모가 많은데다 35도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서 무리 일 것 같으니 체력에 자신이 없는 회원들은 고견사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코스로 안내를 하겠다며 인원 파악을 하고 보니 종주를 고집하는 준족들은 14명이고 모두가 짧은 코스를 택하고 말았다.

 

 


이제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 된다.

내 노라 하는 건각들 속에서 과연 산행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낙오나 되 않을지? 정상적인 컨디션도 아닌 처지에 무모한 짓이 아닌지 불안한 마음속에 갈등을 느끼며 가는데 까지 가보다 안 되면 중간 탈출로를 이용하기로 작심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11시 30분 산행의 깃 점인 사병리 병산마을에 도착을 한다. 삼복더위의 후끈 달아오른 열기는 대지를 녹일 듯 이글거리고 대장을 포함한 16명의 전사들은 곧 바로 산행 길에 오른다.  충효의 마을 입구에는 병산마을의 돌비석과 함께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듯 천수를 다하고 밑둥치만 덩 그러니 남아있는 고사목이 인상적이며 고샅길을 빠져 나가면 고추밭 사이로 소림사 가는 이정표가 우리를 반겨준다.

 

 

 

완만한 임도에서 피치를 올리는 선두 그룹은 저만치 달아나고 예상대로 처음부터 후미로 밀리지만 삼복더위의 열기 속에서 체력안배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뒤를 따른다. 십 여분 만에 소림사의 갈림길에 도착하며 임도도 끝이 나고 빽빽이 숲을 이루고 있는 송림사이로 등산로가 열리고 곧이어 가파른 비알길이 시작된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무성한 숲속에 포로가 되어 구슬 같은 땀방울을 연신 훔치며 비알 길을 기어오를 때 앞서 가던 일행들이 더위 속에 갈증이 나는지 하나둘 풀밭에 주저앉는다. 그들을 추월하며 갈지자로 산허리를 감아 도는 비알 길은 멀기만 하고 턱에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1시간 만에 주능선의 안부에 올라서니 선두 그룹이 반가이 맞아준다. (12시 35분)

 

 

내 뒤로 10여명이 있다는 확인으로 자신감이 생기고 초반의 고 빗길을 무사히 오라왔다는 안도감으로 여유를 가지며 서서히 나타나는 암 봉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장군봉을 향하지만 머리위에서 내려 쪼이는 태양의 강렬한 열기 속에 발걸음이 마냥 느려진다.

 

 

암 봉을 넘나들며 전위 봉에 올라서니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 사진에서만 보던 의상봉의 빼어난 자태.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연봉들이 선경의 아름다움으로 펼쳐지고 수 십 길 단애를 이룬 벼랑길에 신이 빗어 놓은 조각품들이 전시장을 이루고 있다. 이곳부터 마장재 까지 이어지는 암릉길이 5km에 걸쳐 펼쳐지고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연출되는 능선 길에서는 잠시도 방심 할 수 없으므로 스틱을 접어 배낭에 찌르고 반 피 수갑으로 무장을 하고 신발 끈을 조여 맨다.

 

 

 

첫 번째 벼랑길을 통과하면 돌무더기 봉우리에 당도하고 곧이어 또 한 번 곡예를 한 다음 장군봉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스텐으로 만든 정상표지판이 반가이 맞아주는 정수리는 너른 암반으로 낙락장송 그늘아래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가슴속이 후련하게 씻겨 내린다. (13시 10분)

 

 

 

 

잠시 조가면의 너른 들판을 조망하며 땀을 들인 후 그늘 속으로 들어가 점심상을 차린다. 새벽 5시에 밥 한술을 뜨고 버스 안에서 김밥 한 줄을 먹었지만 설사 뒤 에 시원치 않은 컨디션으로 폭염 속에 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미역국에 말아먹는 밥알이 입안에서 맴돌고 있으니 이런 난감할 때가 있는가?  하지만 저 험준한 고산준령을 넘자면 허기를 면해야 하기에 억지로 밀어 넣으며 누워 떡 먹기보다도 어려운 밥 먹는 고행의 시간이 이어진다. (식사 시간 15분 )

 

 

 

잠시 벼랑길을 타고 내려서면 안부에 이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쉼터에는 친절하게도 의상봉 2.7km, 장군재 0.3km, 장군봉 0.2km의 이정표가 자리를 잡고 있다. 무성한 송림사이로 펼쳐지는 완만한 등산로는 식사 후의 나른한 식곤증을 덜어주는 편안한 비단길로 십여 분간 달콤한 산책로를 지나가면 산사태 지역을 만나게 된다. (13시 30분)

 

 

 

산에서 남긴 것은 당신의 마음과 발자국뿐

가져온 쓰레기는 모두 가져가 주세요.   -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

평범한 진리 속에서도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밀림의 숲을 뚫고 나온 터라  펼쳐지는 조망이 시원하고 뒤돌아보면 지나온 장군봉이 마루 금을 이루고, 전망대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모진세월 이겨내는 소나무 한그루. 연약한 야생화가 벼랑 끝에서 꽃을 피우는 모습은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값진 교훈이다.

 

 

 

 

 

이제부터 지암산의 암릉 구간으로 접어들며 천태만상의 조각전시장으로 아름다운 황홀경속으로 빠져드는데 나 홀로 산행 길에 도란도란 인기척 소리가 들려오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보니 대장을 비롯한 선두 일행이 환자의 다리에 응급처치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30여년의 산행경력에 바위 오르는 재미로 산에 온다고 자신 만만하더니 바위에서 미끄러지며 부상을 당했으니 순간적인 방심으로 본인은 물론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말았다.  큰 부상이 아니기를 빌며 먼저 자리를 뜨는데 암릉길로 오르지 말고 우회로를 따라가라고 신신당부하는 대장의 말이 아니라도 현장을 목격한터라 어찌 무모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나온 장군봉 능선

 

 

아름다운 조망을 머리위에 두고 바위틈을 비집으며 오르고 내리는 길은 암릉을 타는 것보다 더욱 힘이 들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주체 못하며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발걸음에 허벅지가 뻣뻣하게 저려온다. 갈 길이 구만리 같은 암릉 길에서 자 욱 자 욱 마다 심해지는 통증을 달래기 위해 전망 좋은 바위 위로 올라서니 시원한 조망 속에 지옥 같은 산행 길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의상봉의 아름다운 자태에 흠뻑 빠져든다.

 

 

 

널찍한 암반위에 자리를 잡아 물 한 모금 마시고 배낭을 베개 삼아 네 활개 활짝 펴고 누었으니 선경의 그늘 속에 신선이 따로 없다. 달콤한 10분간의 휴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내딛는 발걸음에 아름다운 정경들이 가슴속으로 파고드는데 어찌 그 지옥 같은 우회로를 또 다시 따르겠는가? 조심조심 옮기는 발자국에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벼랑 끝을 타고 올라선 지 암산 정상. 송곳 같은 암 봉 위에 거칠 것이 없고 힘들여 올라온 보람으로 즐거움을 만끽한다. ((14시 20분)

 

 

 

 

가마솥 같은 삼복더위의 열기는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지대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고 머리위에 쏟아지는 직사광선을 피해 그늘 속으로 들어가 벼랑을 내려서니 안부의 그늘 속에 우두산의 표지석이 자리 잡고 의상봉 0.4km 장군봉 2.7km 고견사 0.7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14시 50분)

 

 

이곳이 고견사에서 의상봉으로 오르는 길목으로 좌측의 사면 길을 따르면 잠시 후 장군봉에서 오는 우회로와 만나게 되고 100여개가 넘는 나무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의상봉아래 안부에 도착한다.

 

 

 

 

하늘에 닿은 첨봉을 오르기 위해 철사다리를 걸치지만 한 번에 다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연결시킨 다섯 개의 사다리에 계단은 수도 없으니 수직으로 곧추세운 생명줄에 온몸을 맡기고 모골이 송연한 어지러움 속에 가까스로 올라선 정상은 여남은 명이 쉬어 갈수 있는 너른 전망대로 시원스런 조망이 펼쳐진다. (15시)

 

 

                             비 계 산         주능선

 

우두산 아홉 봉우리 크고 작은 능선과 계곡이 의상봉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의상대사와의 깊은 인연으로 불리고 있다는데 좌측으로는 별유산이 우측으로는 지남산과 장군봉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능선마다 계곡마다 펼쳐지는 조물주의 걸작 품들이 천태만상으로 머리를 조아리니 늠름한 기상과 빼어난 자태는 차라리 제왕봉이라 하는 것이 어떠할지?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수백 척 단애위에서 사방을 굽어보면,

남쪽으로 닭이 날아오르는 형상의 비계산(1.125m)과 가조면의 너른 뜰을 품에 안은 두무산(1.038m), 미녀봉(930m), 오도산(1.134m), 그리고 숙성산(895m), 서남쪽으로는 금원산(1.353m), 기백산(1.331m), 거망산(1.184m), 황석산(1.190m)이 서쪽으로는 보해산(911m), 금귀산(710m)너머로 덕유종주의 대간길이 마루금을 이루고 북쪽으로 수도산(1.316m), 단지봉(1.327m), 두리봉(1.133m), 가야산(1.430m), 매화산(954m). 숨이 차도록 수많은 거창의 고봉들이 옹골차고 힘찬 기백으로 산세를 이루고 그 중앙에 의상봉이 자리 잡고 있으니 아름다운 정경을 어디에 비하리.

 

 

 

 

 

 

다시 안부로 내려와 별유산으로 향하는 무딘 발걸음에 혼신의 힘을 다 하여 암릉길을 오르면 무성한 숲속에 삼거리 갈림길이 자리 잡고 의상봉 0.6km 우두산 정상 1046m의 이정표와 뿌리가 드러난 삼각점이 별유산의 정상임을 알려준다. (15시 35분)

 

 

 


苦盡甘來(고진감래) 이제 지옥의 문은 끝이 나고 천국의 문이 활짝 열린다.

주차장 까지 모이는 시간이 4시 30분. 한 시간이 남아 있지만 암릉 구간을 지나자면 시간이 촉박하므로 서둘러 자리를 털고 하산 길로 들어선다. 10여분 후 샘물이 있는 공터를 지나면 본격적인 세미클라이밍 지대가 펼쳐진다. 오늘의 암릉길에 절정을 이루는 10여 m의 로프를 타고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을 둘러보는 중에 머리위에서 헬기소리가 요란하다.

 

 

 

 

 

 

                                     구조 헬기가 보이나요?

 

 

 

 

헬기의 행선지는 지남산 정수리.

우리 일행의 부상자가 제 발로 하산을 못하고 헬기의 신세를 지고 말았으니 마음이 어둡기만 하다. 수석의 전시장도 고개 삼거리에 도착하며 끝이 나고 앞에 보이는 무명봉을 넘으면 마장재가 나오겠지만 그곳까지 가자면 시간도 촉박하고 계곡물에 지친 몸을 씻어내는 것이 더욱 절실하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계곡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 16시 05분 -

 

                                            하루해도 못참는 망태버섯

 

무성한 나무숲으로 들어선 계곡은 원시림을 방불케 하지만 마른장마로 갈수기보다도 더한 건천이 흉물스럽고 하류로 내려가다 겨우 만난 웅덩이. 발 담그고 머리감고 찌든 때 털어내니 온몸이 날아갈듯 시원하다. 주차장에 내려서니 약속 시간보다 30분이 늦었지만 부상자를 후송하는 대장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모두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 17시 -

 

 

 

다행이 헬기로 수송이 되었던 환자도 응급치료를 끝낸 뒤 다시 버스에 합류를 하여 가조면 식당의 보양식으로 몸보신을 하고 서둘러 귀경하는 버스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설사의 뒤끝이지만 무사히 완주를 하게 된 것을 내 자신에게 감사하며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