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와 산
발 행 일: 2005년 12월 23일
바라산(428m)-백운산(567m)-모락산(385m) 종주기
산행일시: 2005년 11월 11일 소 재 지 : 경기도 - 성남시 , 의왕시
오죽하면 그 좋아하는 산을 마다하고 2개월씩이나 산 그림자를 밟지 못하고 지났겠는가?
9월말부터 시작된 집안의 대소사로 큰딸 명숙이의 결혼과 그 뒷마무리, 재형이의 상견례, 친척들의 결혼식, 청우회의 야유회에다 필리핀 여행까지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돌아가는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고 오랫만에 나서는 산행도 저녁에는 거봉회의 모임이 있어 명숙이의 결혼식에 참석한 회원들에게 인사를 해야겠기에 장거리 산행을 하지 못하고 평소 눈여겨 두었던 청계산 과 연결되는 바라산과 백운산, 모락산 까지 종주길에 나섰다.
필리핀 여행의 뒷마무리로 사전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집을 나서고 보니 인덕원은 2년 전과는 다르게 빌딩과 고층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있다.
산행 깃 점을 학현 고개로 잡고 보니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아 택시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막상 고개 마루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와 342번 도로가 가로막아 정신문화원까지 내려갔다 윈터 마을까지 되돌아 왔지만 진입로를 찾지 못하고, 난감해진 택시기사는 삼기 주유소 앞에서 뺑소니치듯 가버리고 아까운 택시비 9천원만 날리고 망연자실하여 건너편을 바라보며 주유소에 물어보니 윈터 마을 쪽으로 100여m를 가면 우측으로 차도 굴다리가 있으니 그곳을 통과하면 쉽게 산에 오를 수가 있다고 한다.
알고 보면 쉬운 것을 굴다리를 지나 언덕을 올라서니 고속도로 청계 요금소 옆이 아닌가? 친절하게도 요금소 옆에는 바라산으로 오르는 이정표가 있고 천주교 용산교회 공원묘지에 올라서니 엷은 아침안개 사이로 백운호수가 그림같이 펼쳐지고 22-2번 이정표에는 윈터마을 800m , 바라산 4,000m 표시가 반갑게 맞아준다.
휴!!
긴 안도의 한숨과 경솔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묘지를 지나 철조망을 따라가다 청계산에서 연결되는 지맥을 만나 철조망을 타고 넘어 우측으로 지능선을 따르게 되는데 다급해지는 마음을 다스리며 만산홍엽으로 온 산을 붉게 물들이던 나뭇잎도 낙엽 되어 발걸음에 채이고 바삭거리는 소리는 고요한 적막강산에 외로움을 달래주는 말동무가 되어준다.
지성터에서 성남의 석운동을 넘나드는 안부를 지나며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연결되는데 로프를 잡고 올라선 정상(425m)에는 멋들어진 이정표(23번)가 서있고 바라산 정상까지는 1,600m에 20분이 소요된다는 친절한 안내까지 하고 있다.
정상에서 우측으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가면 지근거리에 400봉이 있고 좌측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급사면을 내려서면 345KV 신 시흥T/L NO-15번 고압전선철탑을 만나 곧바로 바라산재가 된다. 하오고개 4,000m 바라산 700m ,백운산 3,100m 백운호수 북골2,000m 고기리 삼거리 2,000m
로프가 걸려있는 절개지를 어렵지 않게 올라서면 시원하게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이마에 맺힌 땀방울도 잦아들고 가쁜 숨 몰아쉬며 올라선 곳이 바라산 정수리가 분명하건만 표지석은 고사하고 길목마다 친절하게 세워놓은 이정표도 볼 수 없으니 우 째 이런 일이!
소나무 숲이 무성한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백운 저수지 품에 안은 학의리가 그림 같고 서북쪽으로 관악산이 육봉, 팔봉, 연주봉까지 불꽃을 피워 올리고 북쪽의 청계산도 남한산성 검단산도 시계방향 돌아가며 첩첩산중 이루는데 남으로 백운산의 통신탑이 선명하고 광교산 너머로 칠장산은 어디쯤일까?
백운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모락산의 진입로를 찾아가는 것이 첩경인데 가지가지 뻗어 내린 능선마다 산행지도와 나침판으로 보살피고 전망대 바위마다 올라서서 사주경계 분주한데 낙엽 진 가을 산이 바른길 찾아가기에는 안성맞춤이라 이아니 좋을 씨고.
고분재 내림길은 급경사로 갈참나무, 산 벗나무, 개 동백이 하늘을 가리고 27번 이정표의 고분재는 학의리와 고기동을 넘는 곳인데 바라산 730m 백운산 1,700m 백운호수 2,300m 고기동으로 표기하고 급사면 치고 오르면 464봉이 지척이다.
464봉을 지나며 모락산의 분기점이 가까워 오는데 급경사 오름길에 수북히 쌓인 낙엽이 발목을 부여잡고, 두 달 동안 휴식으로 다리에 근육이 다 풀리고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에 경련이 일어나니 삼복더위 지리종주 14시간의 산행에도 건재하였건만 잠시잠간 방심으로 의정부의 산 꾼 풍운아의 체면이 말씀이 아니다.
폐 헬기장에 무성한 억새가 탐이 나서 가던 길 멈추고 삼각대 펼치는데 오늘의 산 꾼을 처음으로 만나 수원에서 청계산까지 종주를 하는 중이라는 반가운 인사와 바쁜 길이지만 사진 한 장 부탁을 하고 모락산을 물어보니 산 이름이 생소한지 고개만 갸웃갸웃 환한 웃음으로 작별을 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560봉에서 서쪽으로 모락산 가는길을 확인하고 지척에 있는 백운산 정상에 올라서니 잘생긴 표지석에 벤치와 너른 공터에 시원한 조망까지 구색을 갖추었지만 진짜 정상은 군부대 시설물이 있는 곳으로 민간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에 설치를 한 것이다.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보는 서남쪽의 능선길은 북수원의 지지대 고개로 가는 곳으로 5년전 수원의 광교저수지에서 시작된 종주길은 형제봉으로 광교산으로 백운산 까지는 제대로 진행을 했지만 바라산으로 가는길을 안개속에 뭍어 버리고 엉뚱한 지지대 능선을 타고 수원으로 되돌아간 쓰라린 경험이 있던 터라 지금도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고분재 1,700m 바라산 2,400m 오메기 마을 2,200m 백운사 1,200m 광교산 지지대고개 5,200m의 이정표를 바라보며 서쪽으로 시원하게 달려가는 과천 의왕간 고속도로가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으로 간간이 올라오는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한결같이 오메기 마을로 내려갔다 굴다리로 도로를 통과 한 뒤 다시 산으로 올라야 한다는 가르침에 초행길의 낮선 곳에서 아침의 윈터 마을의 진입로 생각을 하며 돌다리도 두둘기는 심정으로 거듭거듭 확인을 한다.
서쪽으로 트인 하산길은 6-70도의 가파른 벼랑으로 길옆의 나무등걸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며 겨울의 빙판길이 되면 통행이 어렵겠다는 생각으로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숨이 턱에 차도록 올라오는 등산객이 반가워 체면불구하고 모락산 가는 길을 물어보니 마을로 가지 말고 곧장 등산로를 따라가면 된다는 시원시원한 대답에 용기를 얻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315봉을 지나며 급경사도 끝이 나고 완만한 능선 길에는 좌측으로 오메기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곧바로 직진을 하면 교회 공원묘지가 나타나고 345,000볼트의 고압송전탑을 지나 곧바로 억새밭이 무성한 폐 헬기장 아래로 고속도로가 관통을 하고 있으니 백운산 정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모락산과 백운산종주를 하지 않고 지례짐작으로 거짓정보를 알려준 꼴이 되었으니 자칫하다가는 십여리가 넘는 길을 돌아가며 곤역을 치를 것을 생각하면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격이 아닌가?
긴 한숨과 함께 어려운 고빗길을 용케 지나왔다는 안도감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발걸음에 거침이 없고 11시10분 백운저수지에서 오전동을 오가는 백운로를 가로질러 오분만에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며 모락산도 점점 가까워온다.
능안마을과 오메기 마을을 넘나드는 고개 마루에서 산책 나온 학의리 주민들에게 고개 이름을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으로 사진 한 장을 부탁하고 서둘러 길을 재촉하는데 점점 가파라지는 능선길의 좌측으로 철조망 따라 관리가 잘된 잣나무단지가 눈길을 끌고 우측으로는 갈참나무를 비롯하여 활엽수림이 자연스런 모습으로 대조를 이루며 정상으로 이어진다.
힘겨운 깔딱고개 정수리에는 삼삼오오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아기자기한 암봉의 바람막이 쉼터에서 행동식으로 식사를 하고 절골 약수터에 올라서니 2-30m의 기암절벽아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석간수를 받는 사람들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는데 너른 분지에는 이곳이 전주이씨 임영대군파 능안 종친회 사유림으로 자연을 보호하자는 안내문과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도 정비가 잘되어 마음이 흐뭇하다.
정수리 부근 안부에는 산듯하게 지은 정자도 있고 평일인데도 막걸리 파는 노점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산꾼들의 무용담으로 시끌벅적하고 태극기 휘날리는 정상은 비록 높이는 385m에 불과하지만 날카로운 암봉으로 휘늘어진 노송의 그늘아래 사방팔방 둘러봐도 막힘이 없고 의왕시가지와 과천의 아파트 숲이 현기증이 나도록 눈이 부시다.
마지막 남은 필림에 정상을 담고 막걸리 생각에 군침이 돌아 서둘러 내려오다 정자 옆의 안내문을 바라보니 이곳이 수도 서울과 수원 평택으로 이어지는 지리적으로 아주 중요한 길목으로 모락 산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한강유역은 백제가 터를 잡고 나라를 세운 곳이지만 삼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한성 백제의 전성기인 근초고왕을 전후하여 축조된 산성은 둘레가 820m로 정상부와 남쪽의 374봉을 연결하였는데 장축은 동서로 258m, 단축은 남북으로 175m이고 고구려의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개로왕이 전사하며 백제는 공주로 천도를 하게 된다.
모락산 전투는 6.25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으로 수원의 지지대 고개를 넘어서면 좌 전방에 수리산이 우 전방에 백운산과 모락산이 서울을 사수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중공군이 거센 저항을 하고 있는 난공불락으로 4일 동안 아군의 1사단과 미 25사단, 터키군이 합동작전으로 중공군 663명을 사살하고 90명을 생포하였으며 아군도 70명이 전사하고 200명이 부상하는 치열한 격전 속에 점령을 하므로 1번과 47번 국도를 장악하고 얀양, 영등포로 진격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한다.
발로 다지고 눈으로 확인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모락산이 백운호수를 품에 안고 화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암봉으로 의왕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니 새로운 보물을 주은 듯 흐뭇한 마음으로 컬컬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돌아서는 발길에 사인암의 전망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손1동의 아파트 숲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가파른 사면길로 수백 수천의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데 반도 아파트 뒤편에서 바라산, 백운산, 모락산의 종주도 마감을 하고 나의 산에 대한 열정이 다시 타오른다.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은 살아있다.
여행일시 : 2005년 11월 2일 - 6일 (3박 5일의 일정) 동참인원 : 60명
주 체 : 바슈롬 코리아 ( 이 상민 과장) 대행 여행사 : PRM 코리아 (이 승환 ) 현지가이드 : 조 영호
여행일정 : 인천공항 - 필리핀 클라크 비행장 - 클라크 (1박) - 피나투보 - 수빅 (2박) - 인천공항
여행이란 상상만으로도 줄거운 것
요즈음은 삶의 질이 향상되어 주 5일 근무로 취미활동이나 여가 선용으로 일상의 무료함과 긴장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산으로 바다로 심지어 외국여행으로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의 삶이 어디 남들과 같이 한가롭고 여유로울 수가 있는 가?
열악한 환경과 치열해지는 생존경쟁으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속에서 항상 꿈으로만 상상하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금상첨화로 3박5일의 해외여행의 티켓이 손에 쥐어 �으니 이런 횡제가 어디에 있는가?
출국일자가 다가오며 긴장과 흥분 속에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며.......
교통체증으로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으로 안절부절 못하다가 8시 45분 비행시간을 6시간이나 앞세워 집을 나서고야 말았다.
평일의 오후 시간이라 우려와는 달리 공항으로 달려가는 리무진버스는 막힘이 없고 2시간 만인 5시에 공항청사에 도착하니 불경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이른 시간이라 우리의 일행들은 보이지 않지만 미리 나와 있는 여행사 직원들의 친절한 안내로 출국수속을 마치고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모처럼의 나들이 길에 출국장의 뭍 시선들이 모두 행복에 넘친 모습들 때문이다.
야심한 시각 활주로를 박차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아시아나 항공 7075기는 남쪽으로 기수를 돌리고 3시간 30분만에 무사히 필리핀 클라크 국제공항에 안착을 하였다.
필리핀의 관광이라면 마닐라-보라카이-세부-팍상한 폭포로 연상하게 마련이지만 우리의 이번일정은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생소한 클라크와 피나투보 수빅만으로 짜여있어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이곳은 미 공군과 해군이 태평양 넘어 동북아시아의 제공권을 장악하는 전초기지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멀리는 스페인 식민시대로부터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월남전 때는 미국 본토에서 수송돤 병력이 이곳에서 현지 적응 훈련을 하고 부상병을 치료하고 보급물자를 전달하는 보급창으로 활용하며 명성을 떨치다가 1992년 필리핀 정부에 이양하면서 그 동안 미군들이 꾸며놓은 아름다운 조경과 깨끗하고 잘 정돈된 주변 환경을 기반으로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이 되어있지만 아직도 이곳은 철저한 검문을 받아야하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치안이 불안한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으로 필리핀의 부유층들이 휴양지로 선호하고 있는 곳이다.
공항에서의 입국수속과 호텔 도착으로 자정을 훌쩍 넘기고 홀리데이인 호텔 202호에 여장을 풀고 서둘러 잠자리에 든다.
필리핀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고 서둘러 밖으로 나서니 울창한 열대림으로 정돈된 공원의 산책길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싱그러운 공기가 온몸을 포근히 감싸며 동녘하늘이 붉게 물들어 온다.
호텔에서 하는 식사는 뷔페식으로 종류도 다양하고 정갈하여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버스에 싣고 이번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피나투보 화산지역으로 이동을 한다.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버스는 28인승 리무진으로 안락한 의자와 널찍한 공간으로 귀족들의 휴양지에 걸 맞는 환대를 받고 보니 마음도 흐뭇하고 현지 여행사 조 영호 과장의 설명으로 필리핀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며 비좁은 도로에 소달구지, 지푸니, 오토바이, 자전거,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의 행렬로 차량의 속도는 한없이 느려지고 우리네 7-80년대 농촌의 모습을 연상하며1시간 30분 만에 피나투보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안내간판이 한글로 되어있어 신기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데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피나투보 관광과 식당, 맛 사지까지 패키지로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이 우리교포로 현지의 실력자들도 군침을 흘리며 눈독을 들이는 황금 알을 낳는 독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니 우리의 국력이 지구촌 구석까지 파고든다는 자부심으로 긍지를 느끼며 필리핀 속에 우리의 왕국이 건설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1991년 6월 12일 폭발한 피나투보 화산은 지상 20km까지 치솟으며, 분출된 화산재만 50억톤에 달하는 엄청난 재앙으로 2주동안 수십차례의 강진과 용암이 분출하여 인근의 산림이 모두 훼손 되었으며 30여만명의 이재민과 86,000헥타르의 농경지가 황폐화되어 클락과 수빅만의 미군기지 들이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피나투보 천지까지는 30여km가 되는데 길도 없는 화산강을 거슬러 올라야 하기 때문에 일반차량은 접근을 할 수 가없고 4륜구동의 중무장한 찝차에 4사람씩 수 십대가 흙먼지 회오리 속에 꼬리를 물며 달리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검문소를 통과하면 곧바로 화산강이 펼쳐진다.
한강의 넓이와 비슷한 계곡이 끝없이 펼쳐지고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강 연안으로 수십 미터의 절벽은 용암이 흘러간 흔적으로 풀 한포기 자라지 않고 강바닥이 용암으로 굳어있다지만 그동안 우기철마다 화산재들이 빗물에 흘러내려 백사장을 이루고 갈대를 비롯하여 열대식물들이 듬성듬성 뿌리를 내리고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실낱같은 물줄기가 강바닥을 적시며 그 위로 질주하는 �차들의 행렬은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자동차 경주하듯 강바닥이고 모래톱이고 마구잡이로 달리며 스릴 넘치는 오지탐험으로 저마다 탄성을 지른다.
강바닥을 거슬러 오를수록 계곡이 좁아져 협곡을 이루고 분지를 이루던 초원이 흘러내리는 용암으로 약한 지반이 패여 나가며 만들어진 형상은 그랜드 캐년의 축소판으로 조물주가 내려주신 재앙 속에 신기한 보물을 안겨주었으니 자연의 신비 속에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유황냄새가 진동하는 협곡 속으로 파고든다,
화산하면 우리나라에도 백두산과 한라산이 있고 십여년전 하와이의 여행길에 칼라우에아 화산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와 유황냄새로 활화산의 신비함을 경험한 터라 피나투보 화산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선을 보일지 큰 기대를 하며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협곡을 돌아서며 분지가 나타나고 오두막 몇채가 자리를 잡고 있어 중간 휴식처로 생각을 했지만 이곳이 마지막 도착지라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화산은 보이지 않고 이제부터는 걸어서 저 높은 산을 넘으면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빨리 출발하자는 나의 채근에 가이드의 짜증섞인 목소리로 천지까지는 걸어서 5시간이 걸리는 곳이라 갈수가 없다는 말 한마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라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는 내 모습이 안타까운 듯 전에는 헬기로 극소수의 인원만이 화산 관광이 이루어 �지만 지난해부터 개발을 시작하여 이곳 유황온천에서 족욕과 화산재 머드팩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금년 초부터 개장을 하였다는 설명에 따끈한 유황천에 발을 담그고 가슴속에 타오르는 울화를 씻어 내린다.
뒷산에서 몰려오는 먹구름이 비를 뿌리고 서둘러 하산길에 나서는데 10여분을 달려오다 오른쪽 언덕위로 올라서니 용케도 화산의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타족의 마을을 만나게 된다.
살아생전 마닐라 한번 구경 못하고 자기나라 대통령이 누군지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오지속의 원주민들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연화지옥 불구덩이 세레를 받아 수많은 부족들이 희생이 되고 재빨리 피신을 한 몇몇 주민들이 옛집을 찾아 양지바른 언덕위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이어가고 있으니 그들의 생활상이 문명의 이기와는 담을 쌓은 원초적인 모습이다.
대나무 벽채에 억새지붕, 흙먼지 풀풀 나는 방바닥, 염소와 강아지가 한방에 딩굴며 씻는 것이 귀찮아서인지 곱슬머리에 깡마른 체구 맨발로 활보하는 그들이지만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환한 웃음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이고 문명의 햇볕이 스며드는 학교가 아이들의 장래를 밝혀주고 외부에서 찾아오는 이방인들이 신기해서인지 마을 사람들 모두 나와 졸졸 따라다닌다.
피나투보 정상의 천지를 보지못한 아쉬움을 아이타족 마을에서 훌훌 털어버리고 흙먼지 풀풀 나는 강바닥을 되돌아 내려와 입에 맞지 않는 현지식 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여행길에 피곤한 몸을 풀어 줄 수 있는 유황화산재 탕 일명 모래찜질로 열기가 솟아나는 모래구덩이에 몸을 뭍고 누워있으면 온몸에서 땀이 솟아나오며 피로가 풀리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한 다음 온천 탕을 지나 수십명의 아가씨들이 우리의 전통 태껸복을 개조해 만든 유니폼을 입은 맛사지 실 에서 백만장자 부럽지 않은 환대를 받으며 오후의 일정을 보낸다.
피나투보의 일정도 끝이 나고 수빅 까지는 70여km에 불과하지만 열악한 교통사정으로 3시간이나 걸려 도착을 했지만 안락한 리무진 버스 덕분에 피곤한줄 모르고. 리젠다 호텔 8118호에 여장을 풀고 하루해를 보낸다.
클락 에서와 같이 수빅시의 유일한 이 호텔은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을때 본국에서 오는 귀빈들이 묵던 영빈관을 인도네시아계 중국 교포가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바닷가를 바라보는 해안가에 아름다운 조경과 그림같은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지하에는 카지노까지 있어 초특급 호텔로 손색이 없지만 시설물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불편함이 많다.
여명이 밝아오며 시원한 바다 바람이 불어오는 산책로에는 남국의 정취가 묻어나는 야자수가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3일째 일정으로 요트투어를 위해 부둣가에 도착하니 부를 상징할 수 있는 최고급 요트들이 푸른 바다위에 질서정연하게 정박되어 있고 10억이 넘는다는 요트에 올라 푸른 바다를 가르며 날렵하게 달려간다.
뱃전에서 바라보는 수빅 만은 동양의 3대 미항으로 열강들이 군침을 흘리는 곳으로 수 천 만평의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천연 방파재가 되어 험한 태풍도 막아낼 수 있고 좁은 입구에 수심이 깊어 접안시설이 특별히 필요 없는 천연요새로 지정학적으로 동북아를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가 아닌가?
내려 쪼이는 태양아래 검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구명조끼에 의지하여 물속으로 뛰어드니 손에 잡힐 듯 투명한 바닷속이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이고, 뱃전에서 드리우는 �시질은 어설푼 솜씨로 고기들의 희롱속에 세월만 �아 올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백사장의 정자아래 생선구이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이번에는 요트대신 조그만 방카로 갈아타고 �시질에 나섰지만 대명천지 밝은 날에 조난을 당할 줄이야.
시동이 걸리지 않는 배는 바닷물결에 밀려 육지에서 멀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망망대해의 일엽편주가 되어 물결따라 흘러가는데 통신시설은 커녕 핸드폰도 없는 선장은 발동기를 부여잡고 비지땀을 흘리고 30여분동안 6km가 넘는 거리를 떠내려 오며 구조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지만 우리의 사정을 모르는 제트스키는 �시에 방해가 될까봐 접근을 하지 않고 있으니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기해 안간힘을 쓰다가 가까스로 시동이 걸려 일행들이 있는 부둣가로 돌아오니 천국이 따로 없다.
�시에 혼을 뺏겨 하루해를 다 보내고 저녁노을 물드는 백사장에서 중국 호텔식으로 펼쳐지는 만찬은 불꽃축제 환호속에 추억을 만들고 머리위로 쏟아지는 별들의 속삭임으로 어둠속에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남국의 밤이 깊어만 가는데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노천 까페에서 필리핀의 마지막 밤이 아쉬운 듯 자리를 뜰 줄 모른다.
빡빡한 일정 따라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짐 보따리 챙겨들고 버스에 올라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제스 캠프 투어
수빅만 해군사령부내에 정원으로 꾸며진 쟝글 지대는 미 해병들이 월남전에 상륙하기 전에 현지적응 훈련을 하던 곳으로 피나투보 화산을 다녀오며 만났던 아이타족이 펼치는 원초적인 생활모습을 재현하는 현장이다.
대나무로 만드는 숟가락과 젓가락은 신기한 것이 못되고 대나무를 비벼서 불을 피우는 모습도 우리 조상들이 부싯돌로 불을 피우는 것이나 비숫한 것이고 특이한 대나무에서 �아지는 수액이 신기하지만 이른 봄 고로쇠나무에서 채취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런지?
평범하면서도 유사시에는 필요한 처방으로 월남의 쟝글에서 사선을 넘나들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웃에 있는 나비박물관에는 손바닥만한 나비들이 박제로 선을 보이고 수천마리의 나비들이 자생하는 온실 속을 지나면 앵무새와 정다운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수빅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를 지나 새 공원에 들어서면 2천만원이 넘는 앵무새 한쌍이 시선을 끌며 생태공원 휘돌아 물개들이 재롱부리는 쇼장을 순례 한다.
버스로 이동하여 도착한 동물원 - 만원씩이나 하는 입장료는 부유층이 아니면 엄두도 못낼 일이고 악어를 삼키려다 배가 터진 크기가 비슷한 뱀의 소굴을 지나 철조망으로 중무장한 �차로 돌아보는 쥬빅 사파리 관광을 마지막으로 오전일정을 마감하며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의 초현대식 공원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지나가며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 할 수밖에,
35도가 넘는 한낮의 폭염아래 90년대 아펙 정상회담이 열렸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울창한 열대림 속에 화이트칼라 돔으로 지어진 건물은 천하절경으로 깨끗하게 정돈된 식당과 휴게실에는 그 당시 참석했던 김 영삼 대통령을 비롯하여 18개국 정상들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창 너머로 야자수 그늘아래 야외수영장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오후의 일정으로 수빅시의 백화점과 재래시장을 순례하며 미군들의 P. X를 개조해 만든 면세점에서 필리핀의 토속주를 사는 것으로 일정을 마감하고 클락 비행장을 향해 버스로 이동하여 한국식당에서 오랜만에 얼큰한 김치찌개에 소주까지 곁들이니 누가 뭐래도 우리 것이 최고야 .
새벽1시에 출발하는 비행시간까지 사우나에 전신 맛사지로 피로를 풀고 되돌아보는 필리핀은 이멜다의 허영심이 명문귀족 마르코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아시아의 용이 볼썽사나운 이무기로 변하고 말았으니 불쌍한 민초들만이 고초를 겪고 있지만 수빅만에 휘날리던 성조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필리핀기가 계양되었으니 자주국권 회복하여 옛 영화를 다시 누리기를 축원하며 3박5일간 우리에게 좋은 여행길을 마련해주신 바슈롬 코리아 임직원들에게 감사드리며 일익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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