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5년 11월 6일
구 간: 덕송리정류장 - 호리항 - 노루목 - 주벅전망대 - 구도항 - 솔감저수지 - 저수지제방 - 팔봉면사무소 (20 km)
8. 숨겨둔 보물 호리반도
초조하게 기다리던 11월 2일. 담당 의사를 만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입안에 침이 마른다. 수술 없이 그대로 지나가기를 바랐지만, 형을 집행하는 법관처럼 담당과장(이용찬박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역할 수 없는 불문율이 되고 말았다.
양성으로 판정된 관상선종의 직경이 1cm 로 생각보다 넓고,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니, 이번기회에 제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개복수술이 아닌 내시경으로 시술하게 되니, 그리 염려는 하지 말라고 위로를 한다.
12월 9일로 수술 날 자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마음이 착잡하다. 70평생을 건강하게 지탱해 왔으니, 그나마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마음을 추 수르기 위해 복지관도 다녀오고, 친구도 만나보지만, 남의 말처럼 어디 간단하게 넘길 일인가?
마음이 울적할 때, 먼저 생각나는 것이 도보여행이다. 나의 전유물처럼 여겨오던 분신이었는데, 이마져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서산터미널에서 700번 좌석버스를 타고 도착한곳은, 지난 번 여행을 마쳤던 팔봉면 덕송리 정류장이다. 일주일 만에 찾아온 곳이라 낮 설지가 않다. 싱그러운 해풍이 가슴속으로 밀려온다. 답답하던 가슴이 활짝 열리고, 고향집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는 안식처가 바로 이곳이다.
물 빠진 갯벌을 배경으로 키 낮은 토담집에, 새빨간 홍시가 주저리 열리고, 낙엽 태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정겨운 곳. 가로림만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곳이 호리반도다. 양길리에서 솔감저수지까지 개의 혓바닥처럼 길게 내민 호리반도는 해안선을 따라 20km에 이른다.
삼면이 바다인 호리반도에서 유난히도 많이 볼 수 있는 작물이 산등성이를 온통 뒤덮고 있는 생강과 양배추 밭이다. 추수가 한창인 생강 밭 모서리에서 ‘생강저장토굴’을 발견한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비좁은 토굴이 수직으로 10여 m이고, 수평으로 저장 토굴이 연결된다고 한다.
깊숙한 땅 속이라, 토굴속의 온도가 14~15도에 70~80%의 습도를 유지하고 있어 일 년 동안 저장해도 신선한 품질을 유지할 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강에서 발생하는 가스에 중독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생강은 몸의 냉증을 없애고 소화를 도와주며, 구토를 없앤다고 동의보감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생강이 위를 자극해 소화를 촉진시키고, 몸에서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기운이 있어 생강차로 달여 먹거나, 조청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면, 감기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산등성이를 내려서면 ‘마지골방조제로’ 이어지고, 아라메길 쉼터가 조성돼 있다.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마을길을 따라간다. 산 모랑이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비경이 펼쳐지는 갯벌. 이제부터 해안 길 답사가 시작된다. ‘썰물 때만 지나가라’는 문구가 친근감을 더하고, 호리항 앞바다에 떠있는 '쌍도'사이로 지난번에 다녀온 '안도'가 손에 잡힐 듯이 건너다보인다.
호리항을 지나 서쪽 해안가로 내려선다.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아담한 백사장이 나타난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수도권과는 다르게, 비닐조각하나, 망가진 어구하나 없이 드넓은 갯벌 속에서 발견한 청정지역의 숨겨진 보물단지다.
그만큼 외지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주민들 역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해안이다. 갯벌체험장이 있는 범머리 해안으로 올라선다. 갯벌에서는 보지 못하던 주민들이 양파심기에 분주하다. 갯벌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지역특성에 맞는 농산물을 생산하여 부농의 꿈을 실현하는 마을이다.
해안을 따라 도착한 노루목은 점점이 떠있는 무인도와 해안의 절경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물 빠진 갯벌이 모두 굴 밭이다. 바위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굴 딱지들, 붉은색 염초들이 무리지어 자라는 이곳이야말로 가로림만을 살찌우는 문전옥답이다.
축조된 제방으로 육지가 되어 버린 장구섬, 건너편이 태안군 율도와 가제산(185m)이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팔각정과 호리종점 버스시간표까지 “해 뜨는 서산 행복한 서산”의 표어만큼이나 살기 좋은 서산이다. 제방을 따라 산길로 올라서면, 공사가 한창인 전망대로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해안으로 600m를 다녀와야 한다. 울창한 숲길에서 시원한 공기로 폐활량을 늘리며 찾아간 전망대는, 땀 흘린 보상을 받고도 남을 만큼 멋진 경관이 펼쳐진다. 전망대가 완성되어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오면, 청정지역이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은 괜한 기우(杞憂)일까.
후줄근하게 땀을 흘리며 올라선 쉼터에서 바라보는 구도항이 또한 절경이다. 급하게 내려서는 해안 길. 이곳에 또 하나의 보물이 숨겨있다. 일명 “옻샘”이라 부르는 바다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다. 밀물 때는 바다 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이 되면 맑고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오는 소중한 보물이다.
생강수확이 한창인 아주머니들을 뒤로하고 산길을 내려서면, “가로림만 범머리길”도 끝이 나고 구도항으로 내려선다. 고파도 여객선 매표소를 겸하고 있는 슈퍼에서 막걸리로 요기를 하고 “방구지제방”으로 올라선다. 서산이 자랑하는 “대하양식장”과 “팔봉산”이 살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볼수록 아름다운 팔봉산. 작은 덩치에도 옹골차게 생긴 팔봉산이 있어, 서산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634번 도로가 지나는 솔감저수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634번 도로를 따라가면 태안군이다. 시간상으로는 태안군으로 이어가는 것이 순서이겠으나, 아라메길을 따라 팔봉면사무소까지 진행하고 시내로 들어가 서산의 문화재를 둘러보는 일정으로 “서산답사”의 대미를 장식하기로 한다.
저수지를 따라 가는 농로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무성한 갈대숲 에서 담방구질 하던 철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하늘위로 날아오른다. 제방을 따라 1.3km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라메길은 면사무소가 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팔봉면사무소에서 40여 분간 기다린 끝에, 버스에 오르며 4구간으로 나누어 답사한 서산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생강저장 토굴
호리항 앞바다에 쌍도
바다건너 중왕리 안도
범머리 해안
양파심는 일손
그림같은 노루목해안
장구섬 전망대
장구섬
가족묘지에서 바라본 풍경
공사중인 전망대
생강 수확이 한창
태안군(좌)과 서산군(우)이 사이좋게
구도항 전경
살그머니 얼굴내미는 팔봉산
대하 양식장
가로림만에서 가장 깊은 솔감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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