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작품세계/양천 문학

제 15호 광복70주년 특대호

2015년 10월 23일

양천 문학회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광곡마을에 도착하면, 빙월당월봉서원(氷月當月峰書院)입간판이 서있다.

고즈넉한 돌담길, 바람결에 일렁이는 죽림(竹林)을 지나면 비로소 월봉서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인 빙월당은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빙월당의 당호는 효종이 내린 제문(祭文)에 高峰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정금윤옥(精金潤玉) 수월빙호(水月氷壺)의 뜻을 가지고 있다.

 

 

기대승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당대의 석학들과 학문을 논하며, 성리학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겼다.

 

 

퇴계이황과 기대승은 13년 동안 12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한국의 성리학에 관해 논쟁을 벌였는데, 그중에서도 8년 동안 벌인 사단칠정(四端七情)은 성리학완성의 기틀을 마련할 정도로 진지한 논쟁이었다고 한다.

 

 

사단(四端)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至心),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至心), 겸손의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是非至心)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천성이 선하다고 보는 것이고, 칠정(七情)은 기쁘고, 노여워하고, 슬프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을 부리는 희노애구애오욕(憙怒哀懼愛惡慾)으로 인간의 감정을 말한다.

 

 

이황은 도덕적인 본성이 감정보다 앞선다고 주장했고, 기대승은 두 개가 서로 융합하여 나타난다고 하였다.

 

 

기대승은 1527년 광주 송현동에서 태어나 34세에 이황에게 사단칠정에 관한 편지를 보냈고, 1572년(선조5년) 그의 나이 46세에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그해 10월에 관직을 그만두고 하향 길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월봉서원은 장성의 필암서원(河西 金麟厚先生을 모신사당), 담양의 소쇄원(양산보가 세운 별장)과 함께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중심지이다.

 

 

'나의 작품세계 > 양천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8호 - 양천문단  (0) 2018.10.31
제 17호 - 양천문단  (0) 2017.11.12
제 14호 - 양천 문단  (0) 2014.09.06
제 13호 - 양천문단   (0) 2013.07.18
제 12호 - 양천문단  (0) 2012.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