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 길
제1구간 : 오륙도 - 미포항 (17.7km)
부산을 다녀 간지 보름 만에 다시 찾았다. 지난번엔 4대강 답사 국토대행진의 대미를 장식하기위해 낙동강 하구언을 찾은 것이고, 이번에는 해파랑길로 명명된 동해안 일주를 위해 시발점인 오륙도를 찾기 위함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유일한 취미활동으로 산을 찾은 지 25년이 됐다. 처음에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규칙적인 활동으로 건강을 챙기기 위함이었지만, 산의 매력에 푹 빠져 전국의 유명한 산을 찾아가면서 어느새 삼 백산, 오 백산 경력을 쌓고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정맥과 지맥을 답사하며 일천 산을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됐다.
그러던 차, 4대강을 치수하며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고, 꿈의 국토대행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야심찬 계획으로 인천의 관문인 아라 뱃길에서 시작한 답사는 한강의 르네상스를 지나 남한강, 문경새재, 낙동강으로 발자취를 남기며 2년 만에 부산하구언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4대강 답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금강과 북한강을 완주하고 영산강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사람이 꿈을 키우는 데는 끝이 없다고 했던가. 새로운 꿈으로 동해안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 해안가를 답사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단계에 있던 차, “함께하는 등산클럽”에서 동해안을 답사하는 “해파랑길” 종주 팀을 모집한다는 낭보를 전해 듣는다.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를 외면할 수 있으리요. 장밋빛 희망이 현실로 찾아오며 어린아이 소풍날처럼 기다려진다.
부산과는 인연이 깊다. 처음 부산을 찾은 것은 월남 파병을 위한 출국장의 태극물결 속에 눈물의 전송 장이었고, 2년 전에는 낙동정맥을 졸업하는 1박2일 일정으로 금정산에서 대대포 몰운대까지 부산 시내를 조망하는 감격도 맛보았다. 이렇듯, 산과 강의 대미를 장식하고 바다의 시작을 부산으로 정한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1월 5일(토요일) 저녁 11시, 동대문 문화역사역 앞. 밀리오레는 밤을 잊은 사람들이 우리의 장도를 환영하는 축제의 장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버스는 새벽4시 부산의 명물 자갈치시장에 도착한다. 생각 같아서는 어둠속 행군이라도 하고 싶지만, 2년간 찾아갈 꿈의 길을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다.
무료하게 3시간을 가다린 끌에 오륙도가 어둠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노산선생은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 흐리면 한 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 흐리락 마르락하매 몇 섬인 줄 몰라라” 노래하였지만, 아무리 발돋움해도 두 섬밖에 보이지 않으니, 욕심이 앞을 가려 섬들이 숨어버린 것이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오륙도를 바라보는 언덕에는 사각형 표지판이 있다. 오른쪽은 남해로, 왼쪽은 동해로 표기되어 이곳이 동해와 남해의 분기점이 되는 곳이다. 상징적인 이곳을 출발점으로 정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다. 2년간 同苦同樂하게 될 30명의 대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기념사진 한 컷을 찍고 장도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을 부산시에서는 “갈맷 길”이라 부른다. 부산의 명소를 순례하는 갈맷 길은 부산의 갈매기를 상징하여 21구간에 300km가 넘는 산책길을 완주하면 부산의 속살까지 체험할 수 있다는 자랑이다. 또한 우리의 희망이 담겨있는 “해파랑길”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이름으로,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깔인 파랑, 그리고 함께 라는 조사의 랑”이 합쳐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걷는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한 “해파랑길”을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동해의 아침, 화랑순례, 관동팔경, 통일기원의 4개 테마로 나누고, 50구간으로 세분하여 매월2회씩 2년에 걸쳐 답사하게 되며 그 길이는 688km에 이르는 국내최장탐방로라는 이 익수 대장의 설명이다.
장산봉(428m)기슭의 벼랑을 돌아가는 산책로는 동해의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걷는 환상의 길이다. 이기대공원 탐방로인 이 길은 군부대에서 간첩침투 예방을 위해 설치한 해안 경계용 철책이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었으나, 1997년 군사보호지역해제조치로 철책이 있던 자리에 목책으로 계단을 만들어 시민누구나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도록 공원을 조성하여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부산의 명소가 되었다.
해안 절벽에 외롭게 서있는 한 그루 소나무 사이로 농 바위가 보인다. 농 바위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양이 다르고, 크고 작은 돌덩어리가 층암절벽을 기단으로 아슬아슬하게 쌓여 세찬 폭풍우에서도 중심을 잡고 있는 게 신기하기만하다. 자연이 만든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로 이름이 난 이기대는 해안선을 따라 2㎞가량 바다와 이어진다.
동래영지에 기록된 이기대는 좌수사로 있던 이영하(1850년)가 종전의 기록을 토대로 보충한 기록물이다. 좌수영 남쪽 십 오리에 있는 이기대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승전축하연을 열었는데, 수영의 기녀 두 사람이 잔치에 참석하여 왜장에게 술을 잔뜩 먹이고 왜장과 함께 물에 빠져죽은 곳을 이기대(二妓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솔숲을 지나 어울 마당으로 내려서면, 부산의 명물인 광안대교와 해운대해수욕장 뒤로 고층빌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닷길로는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지만, 우리가 가야할 미포까지는 15km에 3시간이 족히 걸리는 먼 거리다. 해안절벽의 기암괴석과 광안대교가 한 폭의 그림처럼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고도 남음이 있다.
광안대교는 부산 수영구 남천동 49호 광장에서 해운대구 센텀시티 부근을 잇는 총연장 7.42㎞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국내최대해상 복층교량으로, 1층은 상행선이고 2층은 하행선이다. 광안대로는 교량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상층부에서 바라보는 주변경관이 일품이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오륙도, 광안리 해수욕장과 해운대 동백섬과 달맞이 언덕 등이 한눈에 들어오고, 첨단 조명 시스템으로 비추는 야간조명은 광안대교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용호부두에서 바라보는 광안대교는 더욱 웅장하고 장엄하지만, 차량전용교량이기에 직접 올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광안대교 밑 교차로를 통과하여 남천동 수영구청 방파제를 돌아가면 광안리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쌍벽을 이루는 광안리 해수욕장은 중심부에서 가까운 지리적인 이점이 있어 사시사철 낭만이 넘치고, 야간 밤바다를 비추는 광안대교의 현란한 조명으로 젊음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광안리 횟집 특화지역 조형물을 깃 점으로 은빛모래 해수욕장도 끝이 나고, 해파랑길은 광안해수월드 쪽 방파제로 돌아간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광안대교와 고층빌딩들이 숲을 이루는 수영 만에 도착한다. 롯데케슬, 대우드림이 현기증 나도록 높아 보이고, 강 건너 샌텀 시티와 세계최대라고 자랑하는 신세계백화점과 부산국제영화제 상영관이 말끔하게 정비된 수영강의 품위를 더한층 고조시키고, 부산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아름다운도시 살고 싶은 수영” 표지석이 있는 수영2교로 올라선다. 주위에 펼쳐지는 경관에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서울의 한강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수영 만에 솟아오른 마천루에 비할 수 가없다. 우리가 아름다운 절경이라면, 산과 강이 어우러지는 자연경관을 연상하게 되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그 아름다움이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오른쪽으로 끼고 방파제를 돌아가면, 뉴욕 맨허튼에 버금가는 빌딩숲을 만난다. 우리나라에서 완공된 건물로는 가장 높은 마천루의 거리를 지나며, 대양을 향하는 우리의 열정만큼이나 국력이 신장된 자부심이 부산의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기대 벼랑 끝에서 시작하여 광안리 해수욕장을 지나며 바라보던 그 중심부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피로가 찾아올 즈음, 동백교를 건너 조용필의 히트작으로 유명한 동백섬에 도착한다. 한 겨울임에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동백꽃에 취해 발걸음을 재촉하면, 누리마루 APEC하우스가 반겨준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는 2005년 11월 19일 APEC 2차 정상회의가 열린 장소이다. 3층 회의장 내부 천정은 석굴암 돔을 모티브로 하고, 벽면 한식격자문살과 천연 실크로 마감하여 절제와 안정감을 추구하였으며, 로비 벽면에는 창덕궁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십이장생도를 나전칠기로 장식하였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명소가 되고 있지만, 주변경관이 너무도 아름답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광안대교와 빌딩숲이 멋진 하모니를 이루어,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세계20개국정상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위상이 높아짐을 실감할 수가 있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솔 내음이 진동하는 동백섬산책로를 빠져나가면 해운대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한 여름이면 백만 인파가 몰리는 국내제일의 해수욕장이다. 언제부터인가 해변의 모래가 바다 속으로 쓸려 내려가 매년 많은 양의 모래를 복토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주변에 들어서는 고층빌딩의 영향이라는 일부의 견해가 있으니, 세심한 검토와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드디어 우리가 타고 온 예원관광이 기다리고 있는 미포항에 도착한다. 부산의 명소를 일목요연하게 감상하는 첫 번째 구간이야말로 다음구간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하고, 고성까지 달려간다는 각오를 다짐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일행 30여명이 모두들 만족의 표시로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도는 것을 보았을 때,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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