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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베트남

자유시장 & 구치땅굴

일  시; 2015년 9월 29일

장  소: 호치민 시장과 베트콩의 지하 땅굴

 

호찌민시는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로 메콩 강 하구 삼각주에 자리하고 있다.

16세기에 베트남인에게 정복되기 전에는 프레이 노코르 란 이름의 캄보디아의 주요 항구였다.

 

 

사이공이란 이름으로 프랑스 식민지인 코친차이나와

그 후의 독립국인 남베트남(1954년 - 1976년)의 수도이기도 했다.

 

1975년에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사이공은 호찌민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시 중심부는 사이공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19세기에 프랑스의 도시계획으로 근대도시가 된 후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호치민시의 공식인구는 700만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천만 명이라고 한다.

 

거리에 넘치는 인파와 오토바이 행렬

지저분한거리, 무질서가 판치는 난장판이다.

 

서울시와 맞먹는 인구를 가진 호치민시에 지하철이 없으니,

 그나마 거리가 좁고 오토바이가 판을 치는 아비규환이다.

 

베트남의 인구가 9천만이라고 하는데

인구의 절반이 오토바이를 갖고 있다고 하니 그럴 수 밖에...

 

 

 

 

관광객의 필수코스인 벤탄시장을 찾았다.

남대문시장처럼 비좁은 골목에 수없이 많은 점포들,

호객행위로 오빠를 외친다.

 

 

 

 

 

 

그 중에서 찾은 곳이 커피전문점

다양한 커피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커피가

코끼리 똥에서 축출한 커피다.

 

코끼리 입을 통해 배설할때까지

여러날이 걸리고

그동안 갖가지 물질이 첨부되어

향이 좋고 영양가 만점의 커피라고 한다. 100g에 40만동(2만원)

 

 

 

 

 

 

고양이 똥에서 추출한 커피 1kg을

구입했다.

 

 

 

 

 

 

 

 

호치민시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구치 땅굴을 찾아간다.

호치민시에서 북서쪽으로 70여 km 떨어진 밀림지대에 있는 구치 터널은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반대하였던 베트남인들이

게릴라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처음이다.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상대적으로 모든것이 열세인 베트남군은

미군과의 효과적인 전투를 위해 구찌터널을 이용하였다.

 

구찌는 호찌민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미군을 상대로 적지에서 산발적인 게릴라 전술을 펼치기에 유리한 지역이었다.

 

 

 

 

1인당 90.000동(4.5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경내로 들어서면, 전쟁당시의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자유의 원정군이라는 미명하에

월남전에 참전하여 15개월을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같이 스쳐간다.

 

1968년 3월 8일 부산 3부두를 출발하여

69년 7월31일 부산으로 돌아오기까지

북베트남군을 상대로 피눈물 나는 전투를 벌였던 졍글지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39세의 아들 재형이도

귀동냥으로 들어온 월남전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물자가 부족한 베트콩들이

죽창이나 쇠꼬챙이를 이용하여 부비츄렙으로 대항하고,

계릴라 작전으로 치고 빠지며 미군들을 골탕 먹인다.

 

미군의 진지아래 구치터널이 있어도 눈치를 못채다가

발각된 뒤에도 소탕작전에 실패했다고 하니,

도면밀한 용병술에 미군도 두손을 들고 말았다.

 

현재 베트남의 요직에 있는 인물들이

이곳 쿠치 출신이라고 하니,

나라를 위한 영웅들의 보상으로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전시품 중에는 미군들의 탱크와 각종폭탄들이 있는데,

당시 불발탄을 개조하여 사용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쿠치터널의 하이라이트는 터널을 통과하는 체험이다.

실제보다는 크게 확장했다고 하지만,

한사람이 기어서 나갈 정도로 좁고 낮은 동굴이다.

 

출구가 여러군데 있지만,

여러차레 마바지를 한뒤에 서둘러 통로를 빠져나오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구찌터널의 총 길이가 250km에 이르고

깊이는 지하 3m~8m까지 여러층과 방들로 연결되어

4층구조로 넓게 만들어진 공간도 있다.

 

터널의 통로는 세로 약 80cm 가로 50cm로 좁고 협소하여

체구가 작은 베트남인 들에게는 견디말한 공간이었으나,

덩치가 큰 미군들은 접근이 어려웠다고 한다.

 

 

 

 

 

 

터널의 입구는 나뭇잎 등으로 정교하게 위장이 되어있어

외부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으며

터널의 규모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터널위에 미군 기지가 있었으나

미군들은 터널의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나중에 터널이 발견되어 이를 소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입구 몇곳을 찾아 파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고 한다. 

 

 

 

 

 

 

 

 

구치마을은 숲이 무성한 밀림지대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터널로 연결되고

필요에 따라 지하 3층까지 만들어

회의실, 식당, 병원까지 기본시설을 갖추었다.

 

 

 

 

 

터널입구를 나무판자로 덮고

그 위에 나뭇잎으로 위장했다.

 

공기구멍과 밥지을때 나오는 연기를 위장하기위해 

돌 틈이나 대나무숲속에 교묘히 위장하였다.

 

구치터널은 단단한 흙이 주성분이라 무너지지 않았다.

 

 

 

 

 

 

 

 

 

 

 

 

 

 

폐타이어로 만든 슬리퍼가

쟝글을 누비는 유일한 신발이었다.

 

지금은 관광자원으로

인기상품이라 한다.

 

 

 

 

 

                            땅굴 견학(길이가 270mk)에 이르는 땅속의 개미집

 

 

 

 

 

 

 

 

명분없는 전쟁이 얼마나 허구인지

그때는 몰랐다.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약소민족을 괴롭히고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는 사실.

 

이제라도 주권국가의 이념을 존중하여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민족의 영웅 호치민의 흉상앞에서

나라를 구하기위한 살신성인의 모습에

경건한 마음을 갖게된다.

 

 

 

 

 

 

                                                                        송현이의 사진 솜씨

 

 

                                                                기내에서 바라보는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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