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5년 5월 28일
구 간: 왕궁리 보석전시관 - 역기마을 - 정산마을 - 학동마을 - 삼례IC - 삼례읍 - 비비정공원(15km)
전북 제2길(삼례): 15km
삼남길도 전라도 지경으로 접어들면서 당일치기로는 무리라는 생각에, 1박2일로 스케즐을 잡는다. 평일 날 이른 시간이라 열차표구입에 신경을 쓰지 않고, 용산역에 도착하니 6시30분 무궁화표는 매진되었고, 6시37분에 출발하는 ktx도 자유석 밖에 없단다.
궁여지책이라고 해야 하나. 경노할인으로 21.300원을 주고 8호차에 오른다. 교통문화를 선도하는 ktx는 신나게 달려간다. 광명, 오송, 공주에서 1분씩 정차한 후 1시간22분만에 익산역에 도착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출발지인 왕궁저수지를 가기위해서는 직접 가는 버스가 없고, 삼례를 경유하거나. 금마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데, 운행시간도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거리상으로 17.5km에 17,300원이 나온다.
첫날부터 비비 꼬이기 시작한 스케즐 때문에 기분이 엉망이다. 하지만 “촌음을 아껴 쓰라”는 말이 있다. 경제적인 문제에 신경을 쓰다보면 앞으로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므로, 손해를 보는듯해도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덕분에 2시간이상 덕을 본 셈이다. 8시40분 SK주유소 옆 골목으로 남진을 시작한다. 잠시 후, 전봇대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삼남길 꼬리표를 발견한다. 1구간에서는 보지 못했는데, 1개월이 지나는 동안 진행요원들의 수고 덕분에 편안하게 답삿길에 오를 수가 있게 되었다.
당초계획으로는 호남고속도로를 왼쪽에 두고 진행하다가 흥암육교를 넘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송선경노당을 지나면서 곧바로 고속도로 토끼 굴을 통과하여 전강마을로 진입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익산은 백제온조왕이 마한을 병합하여 金馬渚라 했으며, 태종13년 행정구역을 8도로 정비하면서, 전라도를 1부(전주) 4목 7도호부 12군을 두었다. 이때 익산군이 차음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을 통합하여 익산시로 개칭하였다.
한국철도공사 전북본부가 있는 익산역(益山驛)은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이 연결되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교통요지이다. 1912년 3월 6일 호남선 강경∼익산(27.2㎞) 구간과 군산선(24.7㎞)이 동시에 개통하면서 문을 열게 된 익산역(이리역)은 숱한 애환을 간직하고 있지만, 가슴 아픈 이리역 폭발사고가 있었다.
1977년 11월 11일 21시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대형열차 폭발사고가 일어나 59명이 사망하고 1,15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647세대 7,8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사건당시 이리역에는 지름 30m, 깊이 10m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고, 반경 500m 이내의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수없이 말끔하게 정비되고, 호남의 관문으로 거듭 태어나 모든 열차가 익산역에서 정차하고 있다. 익산시는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를 비롯하여 국보급 유물 505점이 출토된 역사와 문화, 교통이 발달한 인구30만을 포용하고 있는 전라도 북부지역의 거점도시가 되었다.
만경강지천을 따라 전강마을, 역기마을, 통정마을을 지나며 양지바른 구릉지에는 과수원과 인삼포가 줄줄이 나타난다. 젊은이들은 외지로 나가고 노인들이 고향을 지키는 노령인구가 늘어나는 농촌에서 도둑들의 횡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차양막과 전기철선으로 무장하고도 모자라 멧돼지살상용 디딜포와 CCTV까지 설치하는 세상이니, 보기에도 살벌한 세상이다.
원구암마을을 찾아가는 그늘에 앉아 잠시 휴식을 한다. 봄 가뭄이 심한 감자밭에서는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스프링클러로 물주기 작업이 한창이다. 힘든 농사일에 비해 소득이 적은 농촌에서 대체작물로 선정한 것이 도장나무묘포와 도라지 재배인가. 주변의 산자락이 온통 푸른 밭이다.
열린문 교회가 있는 원구암마을을 지나 정산마을에 도착하면, 이름도고상한 자운영마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맛깔스런 된장 체험장을 소개하고 있다. 사랑과 정이 넘치는 정산마을을 뒤로하고 고속도로를 횡단하여 학동저수지, 왕궁산업, 신금자원폐차장을 지나 호남고속도로 삼례IC를 횡단하고, 삼례중앙초등학교 옆으로 내려선다.
삼례읍내로 접어들어 옛 골목을 지나는 동안, 외래풍조에 일조하는 간판들과는 달리 순박하고 정감이 넘치는 부부통닭, 완주전기조명등, 세월을 비껴간 간판들이 고향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삼례의 랜드 마크인 우석대학교와. 유진, 대림APT를 지나 향우식당 앞에 도착하면, 세계막사발 미술관까지 가로공원으로 조성하고, 이색적인 수레바퀴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영문도 모른 채 막사발미술관을 지나 삼례역으로 가는 도중에, 일제시대의 허름한 창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완주군에서 새롭게 조성한 “삼례문화예술 촌”이다. 호남평야의 중심에 있는 김제와 삼례를 비롯하여 전북의 여러 곳에서 양곡수탈의 아픈 상처가 남아 있다.
그중에서 삼례양곡창고는 전북지역에서 수탈한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보내기위해 보관하던 창고였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창고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고, 거리공원의 수레바퀴도 일제식민지 시절에 뼈아픈 상징물로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삼례역을 지나 비비정으로 가는 "생태문화탐방로"를 새로 조성하여 손쉽게 비비정(飛飛亭)에 도착할 수가 있다. 만경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자리 잡은 비비정(飛飛亭)은 1573년(선조6년)에 무인 최영길이 별장으로 지은 것인데, 중간에 철거된 것을 1752년(영조 28년)에 관찰사 서명구가 중건하고, 1994년 임명환군수재직시에 완주8경으로 재건축하였다.
완주군 문화관광 자료에 의하면, 소양천과 고산천이 만경강에 흡수되는 곳을 한내(한천교 아래)라 한다. 한내란 큰 내를 이르는 말로 호남으로 이어지는 요충지였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한 마지막 길목이었고, 동학농민군이 서울로 진격한 월천이라고 한다. 유유히 흐르는 만경강을 가로지르는 新, 舊 만경철교와 삼례대교를 통해 전주로 이어지는 주변의 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차창에 스치는 호남평야
시작점인 왕궁리 보석전시장
누렇게 익어가는 청 보리밭
전북삼남길에서 처음보는 꺽쇠
호남고속도로
익산포항간 고속도로
삼례중앙초등학교
막사발 미술관
삼례문화예술촌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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