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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제33구간: 묵호항

 

일 시: 2014년 5월 29일

구 간: 할미바위 - 만경대 - 북평사거리 - 용정삼거리 - 동해체력단련장 - 감추사 - 한섬해변 - 묵호항역 - 발한동 -

         묵호제일시장 - 논곡담길 - 묵호등대 -  까막바위 - 어달항 - 대진활어회 센터 - 대진해수욕장 - 노봉해수욕장 -

         망상해수욕장( 17km)

 

                                    

                                            만경대-망상해수욕장(17km)

 

만경대를 찾아가는 길은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다. 만경대는 지도에 나와 있지만, 호해정과 할미바위는 지도에도 현지인들에게도 머리카락하나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어있으니 말이다. 다행이도 기사아저씨의 눈썰미로 동해화력발전소까지 가서야 전천과 동해가 만나는 강 하류에서 호해정을 발견한다.

 

 

한달음에 올라선 호해정(湖海亭)은 울창한 숲속에 몸을 숨겨두고 있어도 동해를 바라보는 풍광이 너무도 아름답다. 하지만 1979년 동해항이 개발되면서 거대한 괴물 쌍용레미콘이 정자 앞으로 흐르는 전천과 동해바다가 어우러지는 옛 정취를 상상 속으로 묻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기쁨과 조국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1946년 3월 최덕규선생 외 39인이 가춘계를 조직하고, 구미산 3번지 갯목 할미바위 옆에 호해정(湖海亭)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모진풍파에도 꼿꼿한 기상을 간지하고 있는 할미바위(老婆岩)는 수십 길 벼랑위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데, 심술궂은 마귀할미가 바다 속으로 밀어버린 것을 용왕님이 마귀할멈을 벌하고 제자리에 올려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호해정(湖海亭)에서 지척에 있는 만경대(萬景臺)를 찾아간다. 구미산 53번지 성산봉에 우뚝 선 만경대는 조선조 광해군5년(1613년) 첨정(僉正)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한 김훈이 건립한 정자이다. 동해시의 젖줄인 전천(川)이 굽이쳐 흘러 삼척의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는 경관을 자랑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660년(현종원년) 문신이자 학자인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주변 경관에 감탄하여 ‘만경(萬景)’이라 하였는데, 그 후부터 만경대라 부른다. 1786년(정조 20) 부사 유한전이 시를 읊어 현판으로 남겼고, 1872년(고종9) 중수하였을 때 공조판서 김원식이 상량문을 짓고, 한성부윤 이남식이 ‘해상명구(海上名區)’라는 현판을 남겼다.

 

 

동해시 북평지역은 원래 삼척시 관할이었다. 1980년 행정개편에 의해 강릉의 묵호읍과 삼척의 북평읍을 합하여 동해시가 탄생한 것이다. 전천위에 걸려있는 북평교를 건넌다. 전천은 상류에서 군사훈련 때 쏜 화살이 무수히 떠 내려와서 붙여진 이름인데, 북서쪽의 백봉령에서 발원한 신흥천과 남서쪽의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흐르는 무릉천이 합하여 동해로 흐르는 하천이다.

 

 

전천을 거슬러 오르다 삼화동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무릉천을 따라가면 동해안제일의 무릉계곡(武陵溪谷)을 만난다. 가장먼저 반겨주는 무릉반석은 계류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암반(1,500여 평)으로 깔려있어, 반석위로 흐르는 청정옥수가 비단결 같고, 주위에 펼쳐지는 기암괴석은 가히 선경을 찾아온 무릉도원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의 4대 명필이요, 시선의 일인자인 봉래 양사언이 반석위에 새긴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台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이란 초대형 석각 12자를 비롯하여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엿볼 수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향교가 폐강된 것에 분개한 유생들이 모여 건립한 금란정(金蘭亭), 신라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삼화사(三化寺), 청류절벽에서 학이 놀았다는 학소대(鶴所臺), 쌍폭포와 선녀탕을 지나 용추폭포(龍湫瀑布)에서 절정을 이룬다.

 

 

동해항사거리에서 용정삼거리까지 해안을 끼고 진행하면, 동해체력단련장과 감추해수욕장을 만난다. 해안선의 길이가 300여 m 에 불과한 아담하고 조용한 해수욕장이다. 선화공주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감추사는 바람이 거센 날에는 파도가 부디 칠 정도로 바다와 가까운 곳이다.

 

 

한섬해변으로 가는 중에 왼쪽으로 천곡동굴 안내판이 보인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천곡동굴은 길이가 1,400여 m에 이르고, 4-5억 년 전에 형성된 수평동굴로 1991년 도시기반 공사 중에 발견하여 700m를 개방하고 있다. 동굴내부에는 국내에서 가장 긴 천정용식구, 커튼형 종유석, 종유폭포 등 희귀석들이 발견되었다는데, 참관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조그마한 야산과 이어지는 한섬해변은 울창한 송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지고, 아담한 백사장까지 갖추고 있어 가족단위 피서지로는 최적의 장소이다. 현재는 간이해변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천혜의 삼림과 도심 속에 인접한 해상관광자원을 활용하여 미래지향적인 유원지로 구상 중에 있다고 한다.

 

 

천곡항으로 가는 중에 왼쪽으로 동해시청사가 보인다. 동해시는 신라 파사왕때 실직국으로 시작하여 여러 지명으로 변경되어 오다가 1980년 동해시로 승격되어 10개동에 9만여 명이 살아가는 동해안의 거점도시이다.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표현하여 “해오름의 고장”임을 강조하고, 일출의 장엄한 모습이 21세기 환 동해권시대를 주도하는 국제도시로서의 비전을 암시하고 있는 고장이다.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간 곳에 바다가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웃어라 동해야” 촬영지이다. 정말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말이 필요 없고, 만단시름이 사라지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고불가해변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간다. 솔바람이 불어오는 오솔길에는 향기 짙은 금계국이 말없이 반겨준다.

 

 

하평해변을 지나면 곧바로 묵호항역이다. 삼척과 태백의 풍부한 탄전지대를 개발하여 일본으로 수탈하기위해 1940년 철암에서 묵호에 이르는 철도를 개설하였다. 해방 후 삼척철도를 철암선으로 개칭하여 묵호역을 신설하면서, 묵호항역에는 여객열차가 들어오지 않는 화물 전용역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대합실도 없는 건물 앞에는 제주도가 고향인 돌하르방이 지나는 길손을 맞이하고 있다.

 

 

묵호역 가는 길엔 색시골목이 펼쳐진다. 선창가뒷골목에 형성된 선술집은 우리 서민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곳이다. 6~70년대 골목이 떠들썩하도록 젓가락장단에 고성방가가 이어지던 곳, 선창과 오동추야가 들려오던 호박, 춘향이, 수궁, 마당, 미향 등, 정겨운 이름들이다.

 

 

묵호라는 지명은 조선 후기 순조 때 큰 해일이 일어나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라에서 파견되어 온 이유옹 부사가 마을 이름이 속지명과 한자지명이 두 가지인 것을 알고, 이곳은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으니, 먹 묵(墨)자를 써서 묵호(墨湖)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잠시 후 묵호항에 도착한다. 울릉도를 왕래하는 여객선이 이곳 묵호항에서 출항한다. 울릉도 가는 길은 포항, 후포항, 강릉항 등 4곳인데, 이곳에서 출항하는 선풀라워2호는 4600톤 급의 국내최대 쌍둥이 카페리호로 승객985명과 차량150대를 싣고 35노트의 속도로 3시간 30분 만에 울릉도에 도착한다고 한다.

 

 

묵호항에서 빼 놓을 수없는 곳이 활어판매센터다. 동해안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들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끈다. 생선구경, 사람구경 활기가 넘쳐흐르고,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흥정이 한창이다. 회를 떠서 옆에 있는 목로주점에서 상차림 비용만 내고 먹어도 된다.

 

 

든든한 배를 쓸어내리며 등대오름길로 들어선다. “다시 빛날 묵호를 그리며 논골담길, 묵호를 밝히다”라는 구절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키 낮은 토담집 낡은 담벼락이 지나간 옛 추억을 떠올리는 화폭으로 변신하여 묵호항을 배경으로 살아온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은 벽화들. 바다와 물고기에 자판기 그림까지. 힘겨운 리어커도 담벼락에서 살아 움직인다.

 

 

묵호등대 해양문화공원이다. 바다 조망이 시원한 묵호등대는 묵호항이 전성기를 이루던 1963년 해발고도 67m의 야산에 터를 잡아 백원형 철근콘크리트로 높이 22m의 7층 형 구조로 기능을 강화하여 동해는 물론 백두대간의 두타산과 청옥산, 동해시를 조망할 수 있고, 등대전망대, 해양문화전시물, 파고라 등을 갖추어 해양문화공간으로 조성하였다.

 

 

동해의 일출을 상징하는 불꽃 조형물을 중심으로 해파랑길 34코스가 시작되는 표지물이 있고, 등대카페를 지나면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촬영한 출렁다리를 만난다. 주인공 이승기와 한효주의 키스 장면이 인상 깊었던 곳, 그래서인지 짓궂은 남자들은 출렁다리를 흔들어 놓고, 비명을 지르며 남자 품으로 파고드는 연인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계단을 내려서면 해안길이다. 남대문에서 정 동쪽이 까막바위라고 한다. 도로 옆에 높이 10m가 넘는 검은 빛의 바위하나가 시선을 끈다. 까마귀가 이 바위에 살면서 새끼를 쳤다는 유래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문어 청동상은 조선시대 의로운 호장이 문어로 환생해 왜구를 물리쳤다는 전설에 의해 조성해 놓은 것이란다.

 

 

낚시명소 어달항, 바다 가운데 빨간 등대가 포인트라도 되듯이 잔잔한 바닷물에 낚시를 드리우는 강태공들. 미동도 않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세월을 낚는 것도 강태공들이 추구하는 취미란 말인가. 인적 없는 갯바위에는 갈매기들의 배설물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방파제 안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낚싯배들이 한가롭기만 하다.

 

 

대진항이 시야에 들어온다. 망망대해(茫茫大海)의 푸른 물결위로 쌓아 올린 테트라포트가 이색적이다. 거친 해일이 몰려올 때, 배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구조물이 방파제다. 방파제는 고대지중해에서 가장 먼저 이용했다고 하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큰 배가 만들어지고, 항구를 보호할 수 있는 방파제의 규모가 커지다보니, 석재를 이용한 서석방파제에서 콘크리트 방파제를 거쳐 테트라포트 방파제로 발전하였다.

 

 

테트라포트는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는 정사면체로, 거친 파도와 수압을 이겨내는 데는 가장 안정적이다. 삼바리 모양의 원형구조물에 거친 파도가 부딪치는 순간 파장이 소멸되는 원리를 이용하여 한 개의 무게가 자그마치 70톤이나 나가는 테트라포트를 포개어 놓으면 해일의 피해를 막아낼 수가 있다고 한다.

 

 

대진항활어회 센터를 지나 천년 묵은 구렁이와 살았다는 노인의 전설이 있는 노고암을 지나면, 동해제일의 망상해수욕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관동팔경을 따라 걷는 녹색 경관길”이 시작되는 해물금교를 건너며 오늘의 일정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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