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3년 10월 3일 (6시간)
경유지: 노동당사 - 한다리 - 도피안사 - 학저수지 - 덕고개 - 오덕리 - 칠만암 - 직탕폭포 - 태봉대교 - 송대소 - 마당바위 -
고석정 - 승일공원 - 문혜리 (약20km)
1구간 : 노동당사 - 칠만암 (8km)
기차가 서서히 프렛트 홈으로 들어오고, 경원선 마지막역인 백마고지역에서는 여성근무원이 정중하게 탑승객들을 맞는다. 2일전에 다녀간 곳이라 색다른 것은 없지만, 선명한 가을 날씨에 비추는 역사가 더욱 정감 있게 다가온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철도 중단점을 바라보며 감회가 새롭다.
경원선은 서울을 기점으로 철원과 안변을 거쳐 원산까지 가는 223km의 한반도 중심 철도로서 1914년에 개통되었다. 6.25가 일어나지 않고 통일된 조국이었다면, 경원선이 지나는 철원이 대구나 대전에 버금가는 도시로 발전했을 것이다. 민족의 비극인 전쟁의 참화로 철길이 끊기고 용산에서 신탄리까지 88.8km만 운행하던 것을, 2012년 11월 20일 연장개통으로 백마고지역 까지 94.4km로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소요산역까지는 수도권전철1호선이고, 동두천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1시간마다 운행하는 기차로 56분이 소요된다. 때맞추어 도착한 군내버스로 노동당사에 도착하니 8시 10분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철원이지만, 차 시간을 제대로 맞춘 탓에 정시에 도착하고 보니 일정이 제대로 진행된다.
노동당사 뒤편으로 이어지는 쇠둘레길은 용담삼거리에서 시작하는 “금강산 가는 길”의 연장선이고 일제강점기에 금강산으로 가던 길을 따라 이어진다. 언덕을 넘어 외딴 집이 있는 곳에서 사방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진로를 찾지 못해 애를 먹는다. 이정표의 일렬번호를 보면 분명히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무런 표시가 없다. 20여 분간 알바를 한 뒤에야 이정표를 발견하게 된다.
반원형의 마을길을 돌아 464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월하삼거리와 만난다. 동쪽으로 300여 m를 진행하면 동송저수지에서 내려오는 하천에 걸려있는 한다리를 건너 제방을 따라 다음목적지인 피안사를 찾아간다. 1km가량 진행하면 하천건너 새로 신축한 철원향교가 보이고 피안사는 향교 건너편에 있다.
피안은 번뇌에서 해탈한 열반의 세계를 이르는 말로서, 신라경문왕 5년에 도선국사가 향도 천여 명을 거느리고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을 찾다가 철원에 이르러 화개산자락에 피안사를 창건하여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국보63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과 보물223호인 삼층석탑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국보63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은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까지 유행하던 방식으로 불상을 받치고 있는 좌대까지도 철로 만든 작품이고, 삼층석탑에서 금와보살이 출현하였다는 주지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호기심이 발동하였지만, 매일 사시에 나타나던 금와보살이 대웅전개축공사를 시작하고부터는 잠적한 상태라고 하며 방송에 출현할당시의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피안사를 나와 학저수지를 찾아가는 길은 하천의 제방을 따라 이어진다.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에 있는 학저수지는 낚시꾼들의 천국이라 할 정도로 월척을 자랑하는 붕어와 외래종인 배스, 블루길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1923년도에 축조된 학 저수지는 총저수량이 1,730천 톤에 이르는 제법 큰 저수지로 동송읍을 보듬어 안고 있는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학이 많이 날아들어 부르고 있는 학저수지가 주위환경으로부터 오염된 탓인지 지금은 학이 날아들지 않는다고 한다. 안타가운 소식을 들으며 저수지를 따라 수레길을 가노라면 수생식물인 부들이 유난히도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부들은 마름과 함께 수질을 정화하는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덕고개를 넘어서며 철원의 너른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오덕리를 품에 안고 있는 철원의 곡창에서 생산되는 “철원오대쌀”은 끈기와 탄력이 있어 밥이 식어도 윤기와 끈기의 변화가 적은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내륙지방에서 철원평야보다 넓은 곳이 없고, 산간오지인 강원도에서 철원평야야말로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평야를 가로질러 한탄강가에 도착하며 “금강산 가는길”도 끝이 나고 다음구간인 “한여울길”이 시작된다.
제2구간 : 칠만암-고석정-문혜리(약11km)
귀청을 울리는 물소리에 밑을 내려다보니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강물이 갑자기 땅속으로 꺼져 들어간 것처럼 수 십 길 벼랑 아래서 흐르는 강물과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한탄강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추가령지구대에서 분출한 현무암이 펼쳐내는 용암대지가 평강·철원을 지나는 동안 아름다운 협곡을 만들며 임진강과의 합류점까지 뻗어 있다.
수직절벽을 따라 안전펜스를 설치하고 깔끔하게 자전거도로까지 개설하여 칠만암에서 승일공원까지 9.4km를 “한 여울길”로 명명하고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칠만암이다. 칠만 개나 되는 기암괴석이 한탄강에 내려와 장관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천태만상이라, 계절마다 그 모습도 변화무쌍하여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칠만암이라 부른다.
조선 광해군 때 명장김응하, 김응해 두 형제가 무예를 닦던 유서가 깊은 곳이라는 칠만암을 뒤로하고 고석정을 향하여 진행하면, 곳곳에 수직절벽과 협곡이 발달하여 잠시도 한 눈을 팔수가 없다. 4km를 진행하면 그 유명한 직탕폭포를 만난다.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로 부르는 직탕폭포는 철원의 8경에 꼽히며, 한국에서는 보기드믄 -자형폭포로 높이가 3.5m에 길이가 70여 m에 이르는 강전체가 하나의 폭포를 이룬다.
한탄강은 길이가 134.5㎞이다. 강원도 평강군 장암산(長巖山:1,052m) 남쪽계곡에서 발원하여 김화군을 지나 휴전선을 넘어온 다음, 남대천(南大川)과 합류하고 영평천(永平川), 차탄천(車灘川)을 차례로 합치며 연천군 미산면과 전곡읍 도감포 사이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든다. '크다·넓다·높다'는 뜻의 '한'과 '여울·강·개'의 뜻인 '탄'이 어울린 순수한 우리말이며, 이를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다.
한탄강의 새로운 명물이 태봉대교다. 검고 푸른 한탄강의 협곡을 가로지른 태봉대교는 주황색으로 단장한 색상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와 동송읍 장흥리를 연결하는 태봉대교는 길이240m에 폭이 17.8m의의 주황색 철재구조물이다. 궁예왕을 상징하는 태봉대교는 다리상판에 번지 쩜프대를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교량이다. 수십 미터의 절벽으로 떨어지는 스릴은 상상을 초월한다.
개성송도에 살던 삼형제가 이곳을 찾아와 둘은 이무기에 물려죽고 한사람이 이무기를 죽였다는 전설속의 송대소는 깊이가 30여 m에 이르는 한탄강에서 가장 깊은 곳이고, 강물이 돌아가는 정면으로 아름다운 주상절리가 펼쳐지는 한탄강제일의 명소다. 1박2일 팀이 한탄강을 찾아온 기념으로 엄태웅 광장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의 볼거리를 조성하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마당바위를 지나 한탄강 제일의 명소인 고석정에 안착한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고석정은 안보관광을 겸하여 광장에는 6.25때 사용하던 각종무기를 전시하고, 철원의 명소를 돌아볼 수 있는 철원시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고석정은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신라진평왕 때 세워진 정자이다.
고석정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인물은 조선명종 때 이곳의 험한 지형을 이용하여 정자 맞은편에 성을 쌓고 은거하며 의적활동을 한 임꺽정이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20여 m의 암석과 독야청청 천수를 누리는 소나무와 계곡의 아름다운 절경은 한탄강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주위에 펼쳐지는 신비한 절경을 배경으로 영화촬영의 무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승일교다. 동송읍장흥4리와 갈말읍문혜리를 잇는 승일교는 6.25를 전후해 남북이 합작으로 만든 다리라고 한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승일교는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합하여 지은 이름이라는 설과, 6.25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박승일 대령을 추모하기위해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다리 아치부분의 이음새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이하여 안보관광의 고장 철원의 명소를 두루 답사하는 쇠둘레길 20여 km를 완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문혜리에서 수유리까지 가는 직행버스가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터라 2km거리에 있는 문혜리를 찾아 운 좋게도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오르는 행운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