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3년 10월1일
경유지: 대광리역 - 신탄리역 - 경원선 고가도로 - 용담삼거리 - 철원쇠둘레길 - 율이리 - 새우젓고개 - 수도국지 - 소이산전망대 -
노동당사 - 백마고지역 ( 20.1km)
제3구간 : 대광리역-신탄리역-용담삼거리(11km)
연천마지막 구간을 답사하기위해 회룡역에서 6시14분 전철로 동두천역에도착하여 경원선으로 환승하여 40분 만에 대광리역에 도착한다. 차탄천을 따라 이어지는 누리길을 따라가다 보면 대광교를 만난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열쇠전망대 가는 길이다. 휴전선 155마일 중에서 북한의 정세나 생활상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안보관광을 위한 전망대를 설치하여 일반국민에게 홍보하는 곳이다.
참고로 파주연천지역에서는 임진각과 도라산역이 대표적이고, 군남면 옥계리가 들머리인 태풍전망대는 한국전쟁사에서도 손꼽히는 격전지였던 베티고지와 노리고지, 그리고 북한군의 오장동농장이 바로 코앞에 내려다보인다. 휴전선까지 800m, 북한 초소까지는 1,600m로 휴전선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유명하다.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의 망향비와 한국전쟁 전적비, 6.25참전 소년전차병기념비가 있으며. 전시관에는 2km 떨어진 임진강 필승교에서 수습한 북한의 생활필수품과 무장간첩들이 사용한 침투장비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대광리에서 진입하는 열쇠전망대는 통일의 열쇠가 되겠다는 상징성이 큰 5사단의 심벌마크를 활용한 전망대이다. 1998년 연천군 신서면 마전리 배바위에 세워진 열쇠전망대는 남방한계선이 발밑으로 내려다보이고 육안으로도 북한 땅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에서는 6.25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도 가까이서 볼 수가 있다.
T-Bone능선 전투 기념비는 6.25전투가 한창이던 1952년 티본능선 옆 에리고지에서 미 육군 중위 넬리소대장이 정찰업무수행 중,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한 후 전사한 8명의 부하를 애도하기위해 강원도 철원군 안목면사무소 정문기둥에 새긴 것을 1977년 한국군이 DMZ수색정찰 중에 발견하여 이곳에 전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 기념비가 있다.
휴전 후에도 북한은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위한 모략을 일삼고 휴전선에 땅굴을 파서 유사시 사용할 목적이었으나, 그중에 4개의 땅굴을 발견하였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5일 고랑포 동북방 비무장지대(연천군 장남면) 안에서 발견하였다. 휴전선 남방한계선을 800m 남겨놓은 지점으로 서울에서 불과 65km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
제2땅굴은 1973년 11월20일 새벽 4시쯤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에서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면서 시추작업을 벌인 끝에 1975년 3월 19일 지하 54m 지점에서 땅굴을 발견했다. 높이가 2m, 폭이 2.1m의 규모로서 북한이 유사시 한 시간에 야포 등 중장비를 포함한 1만 6천명의 무장 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규모가 큰 땅굴이다.
1978년 10월 17일에 발견된 제3땅굴은 판문점 남방 4km지점 비무장지대(파주시 장단면)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 땅굴은 아치형으로 1시간에 3만 여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규모로 임진각에서 서북쪽으로 4km, 통일촌 민가에서 3.5km밖에 안 되는 곳으로 서울까지는 불과 44km 거리에 있다.
1990년 3월3일 강원 양구(楊口) 북동쪽 26km지점(해안면)에서 발견된 제4땅굴은 너비 1.7m, 높이 1.7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구조물로 군사분계선에서 무려 1,502m나 남쪽에서 발견 되었다.
휴전선의 철책과 맞닿은 연천군 신서면. 일상생활이 군의 통제를 받아가며 살아가는 곳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긴장이나 근심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농촌풍경이다. 키 낮은 담장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와 참깨 터는 노부부의 손길이 분주하고, 황금들녘엔 가을걷이가 한창인 트랙터소리가 요란하다.
한시간만에 신탄리역에 도착하면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애절한 문구가 사라지고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탄리역이 최북단이었지만, 분단 60년 만에 경원선 열차가 연장되어 철원에 백마고지역이 생긴 것이다. 평화누리길에서 안내하는 “철도종단점”에는 무슨 기념비라도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현장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이 왕복선 철길이 단선으로 바뀌고 만다.
이로서 경기도 김포시 대명항에서 시작한 평화누리길 182.3㎞도 연천군 신탄리 철도종착점에서 끝이 나고 강원도 철원으로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은 강원도와의 협조가 미흡해서인지 주변에 아무런 표시도 없어 경원선 철도 옆으로 이어지는 수례길이 미덥지 않아 확실한 3번 국도를 따르게 된다.
국도의 대동맥인 3번국도이지만, 어쩌다 지나는 민간차량보다는 전방으로 향하는 군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있어 최전방지역임을 실감하며 긴장감이 감돈다. 신탄리에서 4km를 진행하면 새로 건설한 경원선 철도와 교차하는 고가도로 밑을 지난다. 이곳이 경기도와 강원도가 경계를 이루고 잠시 후 용담삼거리에 도착하며 철원에서 조성한 쇠둘레길을 만난다.
철원군 쇠둘레길
1구간: 용담삼거리-노동당사-백마고지역(8.5km)
처음계획은 백마고지역까지 진행한 뒤 쇠둘레길을 사전탐색하려고 했지만, 운 좋게도 쇠둘레길 진입로를 발견하면서 진로를 수정하게 되었다. 그동안 국토대행진을 하면서 주위를 살피는 습관이 큰 결실을 보게 되었으니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철원에서 쇠둘레길로 명명한데는 철원의 뜻을 풀어서 붙인 이름이다. 쇠둘레길은 한여울길(8.3km)과 금강산 가는길(10.8km)로 구분하여 2010년 문화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탐방로” 10선에 선정된 의미가 깊은 코스이다.
이곳 용담삼거리는 지리적인 여건이 불편하여 외지에서 온 탐방객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운 곳이라 승일공원에서 노동당사까지 답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곳이다.
용담삼거리에서 동쪽의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고석정 가는 지방도로를 따르다 율리밸리에서 오른쪽으로 오솔길을 찾아들면 수례길로 이어지고, 대전차 방벽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10여m에이르는 장벽에는 철사다리까지 걸쳐있어 어렵게 올라선 것이 화를 자초하고 만다. 키를 넘는 잡초가 갈수록 앞길을 가로막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지경에 빠지고 만다.
10여 분 간의 악전고투 끝에 조금 전의 지방도로와 다시 만난다. 쇠둘레길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루고 나니 매사 조심스럽기만 하다. 율리마을 갈림길에서 왼쪽의 산길로 접어들면 숱한 애환을 담고 있는 새우젓고개다.
그 옛날 새우젓 장수들이 임진강유역을 따라 배로 운반된 새우젓을 용담에서 철원 장에 팔기위해 새우젓을 지고가다 이 고개에서 쉬어가면서 불러온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철원의 주민들이 남쪽으로 통행하던 생활의 통로였고, 6.25사변 때는 이 골짜기를 지나던 피난민들이 협공을 당하여 많은 희생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이다.
고개 마루에 있는 수도국지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160호로 지정된 역사 유물로 1936년 철원읍주민들의 식수를 공급하기위하여 설치한 저수조다. 1937년도에 발행된 읍지에 의하면 당시 급수세대는 500여 호에 급수인구 2,500명이고 1일 급수량은 1,500㎥에 달하였으며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상수도 시설을 설치한 도시라고 한다.
해방과 더불어 반공치하와 6.25동란을 겪으면서 노동당사와 내무서 등에 감금돼 있던 반공 인사들을 감금하고 있던 중 1950년 10월 국군이 북진하자, 약 300여명의 인사를 총살 또는 물탱크에 생매장하고 도주한 만행의 현장이기도 하다.
고개마루에서 200여 m를 내려서면 왼쪽으로 소이산 이정표가 반겨준다. 건너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전망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예사로운 곳이 아니므로 서둘러 방향을 잡는다. 작은 산세에도 불구하고 진입로가 뚜렷하여 안내문을 살펴보니, 소이산 생태 숲 녹색길이 “2012년 우리 마을 녹색길”에 선정돼 도보여행의 메카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소이산은 2000년 민간인 통제구역이 북상한 후에도 10여 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2012년 둘레길이 조성되면서 일반에 개방됐지만 철조망 너머로는 지뢰밭이라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는 군사지역이다. 고려시대에는 정상에서 봉화를 올리던 봉화터였고, 지금은 헬기장으로 사용하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 이북의 산하가 일목요연하게 펼쳐지는 명소다.
철원평야 논바닥에 떠있는 작은 섬 같은 소이산(362m). 전망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보이는 목표물을 쉽게 판단 할 수 있도록 투명 프라스틱에 일일이 지명을 적어놓았고, 평화마루공원에는 녹슨 철모와 낡은 군화를 전시하여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노동당사에 도착한다. 전에도 다녀간 곳이라 눈에 익은 곳이지만, 붕괴위험 때문에 보호철책을 두르고 철주로 지탱한 벽채들이 아슬아슬하다. 1946년 북한이 대남적화전초기지로 삼으려고 지은 노동당사는 6.25전쟁이후에는 분단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다.
대마리로 향하는 도로변에는 지뢰표시가 선명한 늪지대가 펼쳐진다. 인간이 설치한 덫에 걸려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수렁에는 수생식물인 버드나무가 무성하고 각종 조류들이 날아드는 천국이다. 슬픈 현실 앞에서 긴장의 전율을 느끼며 백마고지역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진다.
대마리백마고지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연천, 동두천 방향으로 500여 m를 진행하면 주변의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조형물의 백마고지역을 만난다. 하지만 멋진 외형과는 달리 초미니 역이다. 이곳역시 차표는 경원선 열차 안에서 매표를 한다.
역 이름에서 보듯이 이곳은 6.25 최고의 격전지이다. 1952년 10월 6일 저녁부터 15일 오전까지 열흘 동안, 중공군38군단 4만4천명의 병력과 국군9사단 2만 명의 병력이 9일간 12차례의 공방전이 벌어져 중공군 1만 명, 국군 3500명의 사상자를 내며 국군이 방어에 성공함으로서 철원일대 상당지역을 지켜낸 승전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