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3년 5월 12일(일요일)
제12,13구간: 감포항 - 양포항 - 구룡포항
트레킹 2일째 날이 밝았다. 간단하게 아침요기를 하고 숙소를 나오니 태양은 벌써 수평선위로 떠 오른 뒤라 일출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활어공판장이 가까워 오며 걸쭉한 입담으로 부르는 경매가 한창이다. 제철을 맞아 밤새 잡아온 가자미상자들이 질서정연하게 진열된 가운데 도매상인들의 예리한 눈초리와 손가락 춤사위가 일사분란하게 벌어진다.
시간관계상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에 일렬로 늘어선 어부들이 그물의 코를 잡고 고기를 털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선소리의 구령에 따라 똑 같은 몸동작으로 흔들어대는 모습이 너무도 진지하여 말참견할 겨를이 없다. 무슨 고기인지 알아보지도 못한 채, 송대말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름드리 해송이 숲을 이루는 송대말 공원은 감포항을 보듬어 안고 있는 날개 죽지처럼 바다 쪽으로 돌출된 부분이다. 감포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은 일출 장소로도 명성이 높은 곳이다. 우리나라 등대 12경중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송대말등대는 등대박물관이 있어 우리나라 등대의 변천사를 알아볼 수가 있다.
송대말 공원이 있는 해안가는 현무암의 암초들이 많아 감포항을 출입하는 선박들이 어려움을 겪는 곳이라, 1933년 감포 어업협동조합에서 등간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무인등대를 설치하였고, 1964년에는 기존등탑에 대형등탑을 설치하여 유인등대로 전환하였다. 2001년 12월 등대를 종합정비하면서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문무왕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감은사지3층 석탑을 모방하여 개관하였다고 한다.
송대말 등대를 뒤로하고 해안가로 내려서면 오류리 해변마을이다. 조용한 어촌마을에는 견공들의 세상이다. 보초서는 강아지의 신호에 따라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난리 법석을 떨어도 인기척하나 보이지 않는다. 척사길과 장바위길을 거슬러 오류해변에 도착하면, 낚시꾼들의 텐트가 줄지어 늘어서고, 나룻배까지 동원하여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검은 모래가 깔려있는 고아라 해변을 지나면 암초들의 전시장이 펼쳐진다. 천태만상의 바위들이 조물주의 작품인가. 억겁의 세월 속에 깎기고 부서지고, 자연의 조화로움에 넋을 잃고 만다. 연화의 전설이 서려있는 바위에 새로 지은 연화정. 백제를 정벌하고 돌아와 궁으로 함께 가자던 장군의 말을 가슴깊이 새기며, 망망대해를 바라보던 연화는 간곳이 없고, 신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나.
연동마을 삼거리에 세워진 해파랑길 표지목에는 ⇦감포4.5km ⇮ 양포항6.6km⇨로 적고 있다.
“발견이의 도보여행” 대표인 윤문기 사장의 지적대로 감포항에서 2km지점부터 거리를 표시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감포항에서 6.5km가 되는 거리이고, 현 지점에서 6.5km를 가야 감포항에 도착한다는 설명이다.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오류는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는 두원리를 지나 해안가로 내려서면, 바위섬 꼭대기에 군부대 초소가 있고, 그 주위로 현무암의 암초들이 멋지게 펼쳐진다. 바위에 부서지는 물보라와 몽돌사이를 파고드는 파도가 장관을 이루고, 북쪽으로 펼쳐지는 소봉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소봉대는 작은 봉수대가 있었던 섬으로 빼어난 경관과 경치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조선시대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선생이 동해안을 거닐던 중 해안의 빼어난 절경과 소봉대의 아름다움에 발길을 멈추고 시 한수를 지었으니,
대지 뻗어나 동해에 닿았는데/ 천지간 어디에 삼신산이 있느뇨/
비속한 티끌세상을 벗어나/ 추풍에 배띄워 선계를 찾고 싶네.
제철만난 해당화가 고운 꽃망울을 활짝 열고 길손을 유혹한다. 명년삼월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는 것이 해당화가 아닌가. 바닷가 모래톱에 뿌리를 박고 모진풍파 이겨내며 피어나니 더할 수 없이 곱디곱다. 계원1리로 들어서면 폐교된 분교를 개조하여 설립한 손재림문화유산전시관이 반겨준다. 직접관람은 못했지만, 개인의 땀으로 일구어낸 전시관이라 더욱 정감이 간다.
밭이랑을 지나 마을길로 들어서면 벼랑길에 가로막혀 해파랑 길도 마을 뒤편으로 이어진다. 낯선 마을에 들어서면 개들의 동태부터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어 주위를 살피며 돌담길을 돌아서는데, 뒤에서 느닷없이 달려드는 물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돌아보니 누렁이 한 마리가 나의 겨드랑이에 앞발을 끼고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놀랐던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한숨을 내쉬는데, 나의 절박했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리를 흔들며 저만치 앞질러 가고 있다. 나에게 저의가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누렁이의 뒤를 따르는데,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한 치의 어김도 없이 고개를 내려설 때까지 길안내를 하고는 슬금슬금 자리를 뜨고 만다. 정말로 신기하고 고마운 누렁이를 잊을 수가 없다.
양포항에 도착하며 12구간을 종료한다. 양포항은 너른 백사장이 펼쳐지는 관광지이지만 해수욕보다는 바다낚시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현재시각이 10시30분, 점심시간으로는 이른 시각이라 식사할만한 곳이 마땅치를 않다. 장군식당으로 들어서니 중국집이다. 잡채밥으로 요기를 하고 또다시 구룡포를 향하여 길을 떠난다.
장기면 마현리에는 작은 백사장에 앙증스러운 섬2개가 있어 어린이 놀이터로 안성맞춤이고, 이곳으로 흘러드는 장기천을 거슬러 오르면, 이 고장의 진산인 동악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등성이에 장기읍성이 자리 잡고 있다. 1011년(고려 현종 2년)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석성으로 다시 정비하여 군사기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괴청 끝의 벼랑을 피해 산 고개를 넘어가면, 송림사이로 펼쳐지는 영암리 선착장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에메랄드쪽빛바다를 바라보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포구는 든든한 방파제로 감싸고, 감바우에서 수룡포까지 펼쳐지는 백사장은 수심이 얕고, 고운 입자들이 가득하여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의 휴식처로 좋은 곳이다.
대진리와 모포리를 지나는 해안가로는 양식장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남해안의 가두리양식장은 마을 앞의 청정해역에 부표를 띄워놓고 양식장을 설치하지만, 동해안은 방파제로 둑을 쌓아 반영구적인 시설물속에서 전복을 비롯한 해산물을 기르게 된다. 서로간의 장단점은 있겠으나 동해안의 양식장은 태풍에도 손실이 별로 없고, 녹조현상과 같은 자연재해도 막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지 않을까 생각된다.
장길리에 도착하면 “복합낚시공원”이라는 이색적인 간판을 만난다. 조용하던 어촌마을에 주차장까지 완비하고 성화봉을 형상화한 붉은색 등대와 북극지방의 얼음집을 연상하는 하얀색 반원형의 구조물 사이를 반 잠수교로 연결하여 좌대를 설치하고, 나무테크로 산책로를 개설하여 보고 즐기는 낚시터로 조성했지만, 풍랑이 심해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장길리가 자랑하는 명소로는 낚시터를 감싸주는 솔밭공원이다. 해안가로 돌출된 언덕에는 아름드리 노송이 거센 풍랑을 막아주고, 나무테크로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가면 군 경비초소를 겸하고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게 된다. 몰려오는 파도가 암초에 부딪치며 일으키는 물보라는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함과 짜릿한 스릴을 맛본다. 또한 이곳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최적의 명소라 할 수 있다.
남해안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청보리밭.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언덕에 펼쳐지는 청보리의 녹색물결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하지만 보릿고개를 생각해보라. 눈물고개로 일컬어지던 그 시절, 가난과 굼주림으로 표현하던 대명사가 아니던가. 떠 올리기조차 싫은 고개였다.
31번 국도를 따라가는 해파랑길은 연도를 질주하는 차량들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장길리와 하정리 경계지점에 이르러서야 오른쪽 솔밭 길로 접어든다. 모진풍랑에 휘어지고 꺾인 소나무들이 거꾸로 매달려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것은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워주는 것이고, 쉽게 포기하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산 교육장이다.
드디어 구룡포가 시야에 들어온다. 영일만을 형성하고 있는 범 꼬리의 동쪽 해안선이 남쪽으로 내려오다 응암산의 한줄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활처럼 휘어진 곳이 구룡포 만이다. 대게의 53%가 이곳을 거쳐 가며, 과메기의 주산지인 구룡포는 일제시대부터 동해안의 전진기지로서 명성을 날리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때는 3만 명을 넘던 전성기가 있었다.
해안가 솔밭에서 내려다보는 구룡포는 울산 방어진항을 지난 이후로 가장 큰 어항이다. 수백 톤 씩 하는 대형선박들이 포구에 닺을 내리고 활어 공판장이 있는 포구에는 고깃배가 들어 올 때마다 수시로 경매가 이루어지며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수찜질방을 겸하고 있는 모텔에 여장을 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해수탕에 몸을 담그니 감포항에서 31.3km를 걸어온 여독이 말끔히 가신다.
제12구간 : 감포항 - 양포항 (13km)
↓평화로운 감포항
↓밤새워 잡아온 가지미 경매가 한창이다.
↓조형미가 아름다운 쌍둥이 건물들이 감포항 회 전문센터
↓송대말 공원
↓우리나라 12대 등대로 선정된 외관이 아름다운 송대말 등대
↓ 일본의 어느성처럼 보이는 송대말 등대
↓ 망중한
↓연동 마을
↓용왕님의 노여우심인가. 잔잔하던 바다가 춤을 춘다.
↓ 최고의 경승지. 바위정상에 군초소
↓황폐화된 어촌
↓해당화의 아름다운 자태
↓덥석 안기며 인사를 하고 길 안내를 하는 견공
↓양포에 도착하며 12구간을 마감하고 이른 점심으로 잡채밥(6.000원)
연간 백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호미곶 등대와 숲속 임도길이 장장 20km 이상 이어지며 포항 해파랑길의 색다른 묘미를 준다. 포항시내를 지나는 구간은 포항제철로 인식되는 이 지역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으며 여타 구간과 차별성을 갖는다. 시내구간만 지나면 길은 다시 조용한 동해의 작은 포구를 이어가며 다음 구간으로 향한다. - 106.3km -
제13구간: 양포항 - 구룡포항(18.3km)
↓장길리 해안공원 끝 자락 - 군초소
↓하늘과 바다, 청보리 프름름도 제각기 조화를 이룬다.
↓구룡포항 입성 2일째 임무를 완수하다. 31.3km
선생님,
구룡포길을 걸으셨군요.
먼저 선생님의 활력과 도전정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더불어 구룡포길은
제가 22살때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던 곳입니다.
많이도 걸었던 길이었지요.
그 조금 밑에 "모포"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 모포초등학교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그때의 추억이 떠 올라서 아련했습니다.
물론 석병에도 제 친구가 있어서 잘 아는곳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걸으시는 길을 따라서 저의 마음도 함께 걸었습니다.
모쪼록 좋은 추억과 건강을 남기고 오십시오.
안녕히...
(서울에서 김의한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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