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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제8구간: 태화강

일   시: 2013년 3월 3일

경유지: 태화강역 -  명촌교 -  갈대밭 십리길 - 성내삼거리 - 현대자동차 - 울산KCC - 현대정공(주) - 미포조선 - SK주유소 - 방어진항 - 슬기등대 - 대왕암공원 - 일산해변 (약 18km)

 

                                           제8구간 : 울산 중심가

 

온산읍은 온화한 기후와 해안가를 중심으로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난류가 지나는 곳이라 풍부한 해산물이 생산되는 평화로운 농어촌 마을이었다. 1974년 4월 국가산업기지 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중화학공업 및 비철금속공장을 중심으로 국가산업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현대와 유공을 비롯하여 947개 제조업체가 가동 중에 있다.

 

 

용연동 해안가에 터를 잡은 현대중공업은 조용한 어촌마을에서 창조와 개척정신으로 조선 사업을 시작하여 세계1위 조선대국으로 성장한 곳이다. 박정희의 집념과 정주영의 뚝심으로 일구어낸 성공비결은, 전쟁의 폐허에서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가장 절실한 것이 수출이었다.

 

 

수출을 하자면 물건을 실어 나를 배가 필요했고,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필요했기에 박정희는 정주영에게 조선소를 지으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뚝심의 정주영이 미국의 유명한 인사들을 만나본 후, 도저히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지상과제라는 사실을 설득하며, 강력하게 명령을 내린다. 이에 감동한 정주영이 영국의 버클레이 은행장을 찾아가 허허벌판의 울산사진을 보여주며 조선소 건립자금을 빌려달라고 간청을 한다.

 

 

하지만 당시 가난한 나라의 일개 중소기업 사장이 찾아와 큰돈을 빌려달라고 하니 당연히 거절을 하고 만다. 뚝심의 정주영은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이 옛날부터 조선업의 강국이었음을 설명하고 차관 도입에 성공을 한다. 그로부터 2년 후 울산 현대조선은 26만 톤급 유조선 어클랜틱 바론1, 2호를 건조해 육영수여사가 진수식 테이프를 끊게 된다.

 

 

울산은 1960년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포구였다. 62년 시로 승격될 당시 인구 8만 5천명의 울산이 특정 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정유와 비료공장을 시작으로 1968년 자동차 제조공장, 1973년 현대조선소가 들어섰다. 1968년부터 매암동 일대에 석유화학공업단지가 조성되고,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울산은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되어, 현재 116만 명이 상주하는 거대한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삼일절 연휴를 맞이하여 많은 회원들이 참석한 해파랑길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아침해장국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동녘하늘이 밝아오는 태화강을 향해 명촌대교를 건넌다. 명촌대교에서 바라보는 울산시는 큼직큼직한 공장들이 아성을 이루고, 철새들이 비상하는 태화강 둔치에는 황금색 갈대밭이 펼쳐진다. 자전거 길로 조성된 갈대숲으로 내려선 우리는 보무도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갈대숲도 끝이 나고 제방으로 올라서면 아산로로 명명된 6차선 도로가 관통하고, 건너편으로 현대자동차 공장이 펼쳐진다. 태화강 기슭에 자리 잡은 현대자동차울산공장은 명촌동에서 염포동까지 499만㎡의 부지위에 5개의 독립된 공장 설비에서 연간 162만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2007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기아자동차 포함)이 판매량 398만 7천 여 대로 세계 5위의 자동차업체로 부상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우리기업들이 세계 유수한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은 근면 성실한 국민성과 지도자의 과감한 추진력이 성공비결이라 할 수 있다.

 

 

공장지붕위로 태양이 솟아오르고, 태화강의 맑은 물위에서 노니는 철새들이 울산의 미래를 노래하지만, 한때는 죽음의 강으로 버려진 태화강이었다. 공장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경제의 도약으로 선전하며, 마구 쏟아내는 폐수로 시궁창이 되었던 태화강.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百聞不如一見”이 실감 나는 곳. 울산이 공업도시라는 것이야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동차들이 수출을 위해 야적장에 질서 있게 도열한 모습이나, 배 한척에 5천대의 자동차를 실을 수 있다는 거대한 운반선을 바라보며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현대 미포조선은 어떠한가.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현대미포조선은 21만평의 부지에 40만t급 도크3기와 35만t급 도크 1기를 비롯해 2.6km의 안벽, 21기의 지브크레인 그리고 각종 첨단 자동화 설비를 갖춘 공장을 보유하고, 9천여 명의 임직원이 연간 80여 척의 고부가가치 선박을 생산하여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울산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배경에는 정주영 회장을 빼 놓을 수가 없다. 1915년 강원통천에서 태어난 정주영은 막노동으로 출발하여 한국최대의 재벌이 된 인물이다. 1937년 9월 경일상회라는 미곡상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1946년 현대자동차 공업사를 설립했다. 1950년 현대건설 및 현대상운사장을 거쳐, 현대가 그룹체제로 전환한 1971년부터 현대그룹 회장을 지냈다.

 

 

한국전쟁 중에는 미군이 발주하는 긴급공사를 대거 수주했고, 전쟁 이후에는 도로, 교량, 항만 등 국내 사회간접시설 복구사업을 떠맡아 비약적으로 회사를 키운다. 1961년 군사정부 수립 이후 경제개발계획이 본격 추진되면서 해외시장으로 진출하여, “중동 붐”을 일으키며 오일 달러를 벌어들였다.

 

 

1966년 자동차산업에 진출한다. 미국 포드자동차회사와 합작했던 현대는, 포드의 하청공장에서 벗어나 1976년 최초로 국산 모델인 포니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1986년에는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 차를 수출하는 기적을 일구어낸다. 1977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맡기도 한 그는 서산간척지를 조성하며 세계의 수리학자들도 손을 드는 물막이 공사를 유조선으로 성공한 뚝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해파랑길이 성내삼거리에서 화정동 숲길을 따라 방어진 체육공원을 지나게 되어 있으나, 염포산 터널공사로 통행이 불가하여 울산공단을 바라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고 만다. 방어진 체육공원에 있는 화정천내봉수대는 가리산 봉수대에서 연락을 받아 남목천(지금의 주전)봉수대에 전달하던 곳으로, 울산만의 관문을 지키는 봉수대 가운데 핵심이 되는 곳이다.

 

 

sk주유소가 있는 방어동에서 해안을 따라 화암추 등대가 있는 울산만을 돌아오는 코스를 생략하고 방어진항으로 단축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구간이다.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 탑골 샘에서 발원하여 47.5km를 흘러온 태화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울산이 공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태화강이 있어 가능했고, 강과 합류하는 울산만이 중앙 깊숙이 들어와 강어귀의 너비가 약 7.5㎞에 이르러 입지적인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방어가 많이 잡히던 곳이라, 방어진항으로 부르는 이곳은, 삼면이 육지로 둘러싸여 천혜의 조건을 갖춘 대양으로 진출하는 관문이다. 1967년 수산업개발정책에 따라 울산의 대표적인 어항으로 개발하였다. 방어진항 입구에 있는 슬도는 파도가 칠 때마다 거문고소리가 난다고 하여 瑟島라 부르며, 육지와 방파제로 연결하여 울산시민들의 산책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 방어진항과 슬도 등대는 mbc주말 연속극 “ 욕망의 불꽃과 메이퀸”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더 하고 있다. 거센 파도와 등대, 해파랑길 구간 중에서 가장 높은 파도를 맞는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치며 일으키는 물보라는 가슴속이 후련하도록 짜릿한 희열을 맛본다.

 

 

예정된 코스보다 단축된 종주 길에서 남는 것이 시간이다. 방어진 수산시장에서 사온 멍개와 해삼, 문어를 시식하는 즐거움이야말로 해파랑 길의 별미다. 상어바위, 소바위, 고동섬으로 이어지는 동해안의 절경을 지나 만나는 곳이 대왕암공원이다.

 

 

울산시 동구 일산동에 있는 대왕암공원은 옛 선비들이 해금강으로 불렀을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조시대에는 목장으로 사용하기도 한 공원에는 대왕암, 남근바위, 용굴, 탕건암, 자살바위 등 기암괴석과 100년이 넘는 아름드리 해송 15.000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1906년 건립한 율기등대가 있어 율기공원으로 불렀는데,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비판에 따라 2004년 대왕암공원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이 통일 후에도 불안정한 국가를 걱정하여,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남산에서 화장하여 양북리 앞바다 큰 바위에서 장례를 치르고 대왕암이라 불렀다.

 

 

이후 문무왕비도 문무왕의 유지를 받들어 이곳에 수장하니, 경주에 있는 대왕암은 문무대왕의 수중릉이고, 울산에 있는 대왕암은 문무대왕비가 묻힌 곳으로 전해진다. 대왕암 가는 길은 현대중공업에서 협찬한 철교로 육지와 연결된다. 동해의 푸른 물결이 댕바위 수중릉으로 몰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은 문무왕비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듯, 장관을 이룬다.

 

 

새천년을 맞이하여 전국의 일출명소를 선정하면서, 이곳 대왕암과 간절곶이 최종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평소에는 대왕암이 먼저 뜨는 날이 많았는데, 12월말에서 1월초에는 간절 곶이 1초 먼저 뜬다는 결론에 따라 간절 곶을 일출의 명소로 정했다고 한다. 율기등대를 중심으로 해안가의 기암괴석이 갖가지 전설을 간직하며, 우리를 일산해변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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