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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남한강 삼백리. 5

 

일시: 2011년 12월 27일

코스: 능암온천 - 가흥나루 - 목계다리 - 조정지댐 - 원포리 - 목행다리 - 탄금대 (6시간 30분)

 

                                         5 . 탄금대(32km)

밤사이 내려간 수은주로 온천지구의 山川草木이 하얀 고깔을 머리에 쓰고 있다. 개울가의 풀잎에도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솜사탕처럼 보드라운 상고대가 아기사슴의 뿔처럼 보송보송 피어나고, 비수처럼 솟아오른 서릿발이 등산화의 발밑에서 사그라지는 정경은 겨울철 시골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비내길로 명명된 이 길은 능암 온천을 깃 점으로 할미바위가 있는 대평교까지 자전거도로와 동행하다가 조대골 마을까지 산기슭을 따라가는 오솔길이 펼쳐진다. 비내섬을 중심으로 남한강 제일의 철새도래지를 지나는 동안 청둥오리를 비롯하여 원앙새와 큰고니 떼를 관찰할 수 있는 행운도 함께 맛본다. 조대고개를 넘어가는 산길에서는 후줄근하게 땀도 흘리고, 산행 후에는 온천에서 목욕도 할 수 있으니 一石三鳥의 산책코스가 아닌가.

 

 

대평교에서 비내길과 헤어진 자전거 길은 충주방향으로 제방을 따라 활등처럼 돌아간다. 충주댐에서 29.5km를 알리는 표시를 확인하며 한포천이 합류하는 가흥리에 도착한다. 한포천은 노은면 대덕리 승대산에서 발원하는 20여 km의 하천으로 주위에 문바위와 수룡폭포, 봉황휴양림이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봉황교를 건너 중원학생야영장까지 3km에 이르는 고수부지를 활용하여 학생들의 하기 캠프장으로 조성하고 있는 이곳은 그 옛날 남한강유역의 세곡을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가흥창이 있던 곳이다.

 

 

가흥창이란 원주의 흥원창(興原倉), 춘천의 소양강창과 더불어 수참선(水站船)으로 세곡을 운반하는 참운(站運)의 좌수참(左水站)에 속하여 좌수참 창이라고도 하였으며, 1465년(세조11)에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덕흥창이라 하다가 조선건국 초 경원창(慶源倉)으로 개칭하였고, 세종때 다시 덕흥창(德興倉)이라 하다가 세조 때 조창자리를 가흥역 근처로 옮기면서 각 고을에서 수집한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를 지어 관리하였다고 한다.

 

 

강 가장자리의 얼음 위를 미끄러지던 청둥오리들이 연무가 피어오르는 강심의 물속으로 담방거리는 모습이야말로 세상의 어느 것 보다도 평화롭게 보이며, 강가의 수초들이 하얀 눈꽃을 피워 올리는 수채화야 말로 자연의 신비함을 다시 한 번 감상할 수 있는 찬스가 아닌가 싶다.

 

 

학생 야영수련원을 돌아가면 목계교가 나타난다. 목계교가 생기기전까지 성황을 이루던 목계나루는 조선시대 수운을 통해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의 물류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목계나루가 번창 했던 이유는 부근에 국가에서 운영하던 가흥창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흥창의 강기슭이 협소했던 관계로 자연히 이곳에 많은 배들이 정박하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이 형성되어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제천장과 내창장의 소들이 장호원장과 이천장을 거쳐 서울의 마장동으로 가기 위해 목계나루를 건너야 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마을의 무사안녕을 비는 목계별신제가 있어 전승 무형문화제로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마을의 수호신을 제사하는 점에서 동제(洞祭)와 유사하나, 동제는 동민 중에서 뽑은 제관이 제사를 주관하지만, 별신제는 무당이 주재하는 점이 다르기 때문에 일명별신굿이라고 부른다. 매년 10월 강기슭의 솔밭에서 열리는 별신제는 별신굿, 줄다리기, 씨름, 보부상놀이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목계나루가 있던 이곳은 지금도 사통팔달의 교통요지로 제천, 원주, 충주, 장호원, 서울로 가는 길목이라 목계대교 옆으로 평택 ⟷ 제천 간 고속도로가 2014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고, 부근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장천리 제방공사 완공으로 신나는 자전거도로가 3km에 걸쳐 펼쳐진다.

 

 

목계대교를 지나며 펼쳐지는 샛강 고수부지는 큰물이 나면 수몰되는 곳이지만, 상류에서 흘러내려오는 토사에 유기물이 풍부하여 땅콩과 고구마. 참외 수박이 풍작을 이루는 뻘밭이라 인근 주민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문전옥답이었다. 하지만 한강 살리기 중원지구사업장으로 변모하며, 활등처럼 곧은 제방과 자전거 전용도로가 신설되고, 농사를 짓던 자리에 각종 체육시설과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으니 희비가 교차하는 지역이라 할 수가 있다.

 

 

강 상류에 조정지 땜이 모습을 드러낸다. 4대강 살리기에서 강물의 흐름을 조절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수중보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팔당댐에서 상류로 충주댐까지 홍수시에 남한강수위조절능력을 수리학적으로 반영하기위하여 기준방류량 이하일 경우 일정하게 수위가 유지되도록 수문을 조절하고, 기준방류량을 초과할 경우에는 수문을 개방하도록 설계되었다. 가금면과 금가면이 경계를 이루는 조정지 댐은 호반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선보인다.

 

 

조정지 댐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장미산 기슭에 있는 장미산성은 1992년 지표조사 결과 고구려산성으로 확인되었으며, 사적 제400호로 지정되었다. 또 한 장미산의 줄기는 속리산천왕봉에서 시작되는 한남금북정맥이 보현산(483m)에서 분기해서 사정고개 - 부용산(644.3m) - 수레의산(678.8m)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가다 승대산(567m) - 국망산(769.5m) - 보련산(764.4m) -국사봉(480m)-무쇠봉(370.8m)을 일으킨 후 장미산에서 맥을 다하는 비교적 큰 산으로 이루어진 국망지맥이다.

 

 

또한 인근에 있는「중원고구려비」는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기념으로 세웠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된 중원고구려비는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을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조정지 댐에서 자전거도로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지만 4대강을 이어가는 도로가 조정지 댐을 건너 금가면 월상리로 향하고 있으니, 중원고구려비와 중원 탑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월상리 유원지 쪽으로 펼쳐지는 호반은 남한강제일의 명소로 손색이 없다. 明鏡止水와 같이 잔잔한 호숫가로 능수버들이 숲을 이루고, 철새들이 노니는 수초사이로 그림 같은 펜션이 자리를 잡고 있다.

 

 

월상리 유원지를 지나며 남한강이 자취를 감추고, 2차선 도로를 따라 자전거 우회로가 이어진다. 중간 중간에 충주댐자전거도로 표지판이 없다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으로 착각하기 딱 맞은 곳이다. 임페리얼 골프장을 지나 원포리로 들어서면 울창한 숲속에서 고막을 찧을 듯이 요란한 굉음소리가 들려온다. 공군전투 비행단에서 이착륙 훈련을 하는 중이다.

 

 

10여분마다 들려오는 소음으로 인근주민들이 입을 피해를 생각하면 예사 일이 아니다. 나라의 파수꾼이요. 영공을 지키는 불침번이라 백번을 양보한다 해도, 혐오시설이나 주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시설물을 결사반대하는 이유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포리 종포 마을로 내려서면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자취를 감추었던 남한강이 모습을 드러내고 강 건너 조정경기장과 중앙탑 공원의 7층 석탑이 반겨준다.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에 있는 중원 탑평리칠층석탑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호로 지정된 높이 14.5m의 화강석으로 만든 탑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큰 탑으로 한국의 중앙에 위치한다 하여 중앙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 자전거 전용도로도 강변을 따라 이어지고 강 건너 풍광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팔당대교를 기점으로 남한강 120km 이정표를 바라보며 많이도 걸어왔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는다. 강변의 고수부지에는 각종레저시설과 주변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까지 마련되어 가족나들이에 알맞은 곳이다.

 

 

드디어 탄금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충주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충주의 상징으로 여길 만큼 사랑을 받아온 명소다. 신라 진흥왕시절 가야국의 악성우륵이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寓居地(우거지)를 찾아온 것이 충주지방이다. 대문산의 아름다운경치에 반하여 제자 법지, 계고, 만덕에게 가무음곡을 가르치며 가야금을 탄주한 뒤로 이곳의 지명을 탄금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장졸 8,000여기를 이끌고 배수진을 치지만 장렬하게 전사한 곳이다.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위로 멋진 다리공사가 한창이다. 중원대로를 이어주는 교량이 주위 풍광과 어우러진 새로운 명물로 탄생할 것으로 기대를 해본다.

 

 

탄금대는 자전거도로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조성하는 4대강 살리기의 주목적이 물을 관리하는 사업이라 한다면 4대강을 이어가는 자전거 도로 또한 역점사업이라 할 수 있다. 팔당대교에서 탄금대까지를 남한강 오 백리라 한다면, 낙동강과 한강을 이어주는 새재길 100km의 시발점이 탄금대가 된다. 그러기에 국토순례의 원대한 꿈을 품고 달려온 발걸음이 탄금대에서 문경새재를 넘어 부산의 하구언까지 이어주는 중간지점이라 할 수 있다.

 

 

명주꾸러미가 다 풀려도 모자랄 만큼 강심이 깊다는 탄금대. 수백 미터에 불과한 탄금대를 바라보며 10여km를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의 피로가 몰려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전거도로의 진행방향을 답습하자면 다른 방법이 없으니 무거운 발걸음을 이어가는 수밖에...

 

 

화동마을로 올라서면 목행대교 5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남한강과 어우러지는 자연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려내지만 지친 몸에는 畵意之餠(화의지병)이라. 목적지가 나타나기만 鶴首苦待한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야 목행대교를 건너면 다리 밑으로 충주댐과 탄금대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팔당대교에서 128km를 걸어온 지점이기도하다.

 

 

이곳에서 충주댐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강원도 대덕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골지천에서 임계천으로 조양강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오대천과 합류하고 동남천과 만나 동강으로 이름을 달고 영월에서 평창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태어난다. 충북지경으로 들어오며 단양을 지나 충주호에 몸을 담아 육지속의 바다를 이루니 남한강 유일의 다목적댐이다.

 

 

이후 탄금대에서 달천과 합류하는 남한강의 상류지역은 고산준령의 협곡을 지나오며 급류천을 이루고 있어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뗏목을 이용하여 한양나들이를 하면서 겪은 고난과 애환이 정선아리랑의 가락 속에 구전되고 있다. 충주호를 지나면서 강폭도 넓어지고 경사도 완만하여 유역 면적이 1만 2,577㎢에 이르고 북한강과 만나는 양수리까지 375km를 흐른다.

 

 

또다시 탄금대를 바라보며 진행한다. 이 길은 4대강 살리기 이전부터 충주시에서 고수부지를 이용하여 시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수변공원으로 조성하고, 철새들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만들어 탄금대와 어우러지는 휴식공간이다. 드디어 새재길 깃 점인 탄금대에 도착한다. 어제와 오늘 2일간 65km를 걸어온 여독이 온몸을 파김치로 만들지만, 마음만은 더할 나위 없이 가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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