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1년 12월 20일
코스: 영릉(세종대왕릉) - 여주보 - 세종대교 - 영월루 - 금은모래 강변공원 - 강천보 - 대순진리회 본당 -
목아박물관 - 신륵사 - 시외버스터미널(6시간 30분)
3 . 물의 도시 여주(27km)
여주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잡채 쌀이다. 충주를 지나온 남한강이 여주이천의 넓은 들을 살찌우고 품질이 우수한 벼를 생산하여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으로 선정되었으니 그 명성이 수백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남한강 삼 백리 세 번째 코스로 여주 보에서 시작하여 강천보와 신륵사를 돌아보는 27km 답사가 시작된다.
여주터미널에서 택시로 5.000원이면 세종대왕이 잠들어계신 영릉에 도착한다. 5천년 역사 이래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임금이라 부연설명을 생략하고, 정문에 들어서면 세종 전 앞뜰에 전시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한글창제로부터 각종 발명품들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정교한 모습으로 재현되고 건너편에는 세종대왕동상이 모셔있다.
훈민문을 들어서면 550년의 역사를 말해주듯이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유물 발굴 작업이 한창인 공사장을 뒤로하고 영릉으로 접근하면 왕릉 오른편으로 계단이 설치되어 제전까지 올라갈 수가 있다. 각종 문, 무신상과 동물들의 석상들이 시립하여 엄숙한 분위기속에 머리를 조아린다.
정문을 빠져나오면 700여m 거리에 있는 녕릉(조선제17대 효종왕과 인선왕후)이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지고 황토흙길로 지반을 다져 모처럼 편안한 오솔길을 걷는다. 녕릉을 참배하고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면 여주보로 향하는 영릉로와 만난다. 선왕등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여주보가 2km지경에서 반겨주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초겨울의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다.
백리 안쪽으로는 400m를 넘는 산이 없을 정도로 고도차가 별로 없는 분지를 이루어 선사시대부터 남한강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 온 여주읍. 충주 협곡을 지나온 강물의 유속이 느려지며 쌓인 퇴적물이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품질 좋은 특산물이 생산되니 인심 또한 후덕하여 살기 좋은 고장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여주 보에서 차 오른 강물이 호수처럼 잔잔한 가운데, 양섬으로 갈라진 샛강에는 청둥오리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무리지어 노닐고, 남한강에서 가장 긴 세종대교(1875m)를 중심으로 양섬지구와 현암지구 공원사업이 한창이다. 고수부지가 완공되면 수변공원을 중심으로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어 여주가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하동삼거리에서 여주고려병원이 있는 강둑으로 자전거길이 연결되고, 여주대교까지 3km에 이르는 자전거길이 직선으로 곧게 뻗은 환상의 길이다. 하늘도 푸르고 강물도 푸른 강심을 바라보면 강 건너 아파트촌이 별장을 이루고, 강물을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군무가 장관이다.
여주대교와 나룻배. 현대와 과거를 투영하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주인 잃은 나룻배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세인들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여주대교 밑으로 돌아 영월근린공원으로 올라선다. 수 십 길 단애를 이룬 정상에 올라서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중심으로 여주시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가 펼쳐진다.
정상에 있는 영월루는 여주군청의 정문이었지만, 1925년 군청을 이전하며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김태영이 작사한 남한강 소식의 노래비를 뒤로하고 현충탑이 있는 작은 공원으로 내려서면 잠시잠간이지만 자동차도로를 따라간다. 남한강 유원지로 조성된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영월루는 한 폭의 그림처럼아름답다. 강 건너 수상스키장과 황포돛배를 띄우는 조포나루터가 지척에서 반겨준다.
황포돛배는 황포를 돛에 달고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서해바다의 수산물과 내륙지방의 농산물을 수송하던 장사꾼의 배로, 신륵사와 지평, 양동으로 통행하던 조포나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이곳 조포나루는 충주에서 서울까지 水運이 번성할 시기에는 신륵사 하류에 보제원을 설치하여 통행자의 숙박을 제공하던 조선시대 한강의 4대 나루터로 명성이 높았다.
여주 제5경으로 꼽히는 연양지구로 진입하면 은모래 금모래 강변유원지가 펼쳐진다. 강 건너 신륵사를 관객으로 묘사하여 멋진 무대가 선을 보인다. 수 백 명이 한꺼번에 올라설 수 있는 무대는 조포나루의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고고한 달빛 속에 천상의 노래가 쏟아지는 환상의 무대라 할 수 있다.
영월루에서 4km를 거슬러 오르면 이호대교를 지나 강천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남한강에 설치한 3개의 보중에서 가장 상류에 있는 강천보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라 전망대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와 고기들이 오르내릴 수 있는 어도, 상류에 담수된 호수가 장관을 이룬다.
강천보 상부에 설치된 공도교는 남한강의 상징인 황포돛배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연장 440m 규모의 강천보는 높이 3m의 회전식 수문 7기가 중심축을 따라 회전하는 방식이다. 평상시에는 수문을 세워 수위를 유지하고 홍수 시에는 바닥에 눕혀 홍수를 조절한다. 여주읍 신진리와 강천면 이호리를 연결하는 강천보에서 자전거길이 다리 위를 통과하여 강천면 가야리 쪽으로 연결된다.
팔당대교 72km 충주댐64km 표지판을 확인하고, 여주가 자랑하는 신륵사 일대를 답사하기위해 충주로 향하는 자전거 길과 작별하고 가야리 마을회관에서 대순진리회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소나무가 숲 을 이루는 양지바른 언덕사이로 도로가 관통하고 양옆으로 거대한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대순진리회 본부도장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고 18세기에서나 볼 수 있는 색다른 행동거지를 바라보며 신성한 종교라기보다는 이색적인 집단의 소굴로 보인다. 황금색으로 지은 건물들이 아름다워 카메라를 꺼내다 이를 제지하는 관리인들과 실랑이를 벌인 뒤, 서둘러 자리를 피해 고갯마루를 넘어서니 이호대교 고가도로가 보이고 삼거리 갈림길에서 여주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옛 영화를 뒤로하고 쓸쓸히 자리를 보존하고 있는 목아 박물관. 굳게 잠긴 빗장 너머로 겨울 찬바람에 맥없이 고개 숙인 잡초들이 을씨년스럽다. 필생의 역작으로 심혈을 기울인 박물관이 겨울동안 휴관한다는 약속이 꽃피는 춘삼월에 꼭 지켜지기를 바라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이호삼거리를 지나 산모롱이 돌아서면 남한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전에 지나온 이호대교와 강천보가 새로운 모습으로 반겨준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강천보. 4대강 살리기로 治山治水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현장에서 충주로 거슬러 오르는 남한강 줄기를 바라보며 그 길 따라 이화령을 넘겠다는 신념이 굳어진다.
강변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신륵사로 향하지만 곡수천이 앞길을 가로 막는다. 빤히 건너다 보이면서도 돌아가야 하는 괴로움이 이번뿐이랴.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늘 상 있는 일이 아닌가? 해서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활등처럼 굽어진 제방을 따라 42번국도가 지나는 금당교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이어간다. 수리산(401m)에서 발원하는 곡수천은 지제면과 북내면을 지나 금당교 아래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천송삼거리에서 10여 분간 국도를 따라가면 토속 조개 칼국수 집이 나오고 왼편으로 소나무 숲 사이로 나타나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손바닥 만 한 이정표가 신륵사 입구를 알려주고 있다. 신륵사가 가깝다는 설렘으로 발걸음을 빨리하면, 곧이어 신륵사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여주 제1명소로 손꼽히는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승려 나옹이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후 고려 우왕 2년(1376)에 크게 중창한 유서 깊은 절이다.
여주읍에서 동북쪽으로 약 2.5km 떨어진 남한강 상류 봉미산 기슭에 자리 잡은 신륵사는 강가 쪽으로 암반 위에 벽돌로 쌓은 전탑과 팔각정이 있는 곳이 가장 뛰어난 전망대라 할 수 있다. 금모래 은모래 유원지에서 바라보던 신륵사의 절경도 바로 이곳이고, 강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백사장 또한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역사가 깊고 규모가 웅장하여 주위의 경관이 뛰어난 경내에는 화려한 극락전을 비롯하여 조사당, 명부전, 다층석탑, 다층전탑, 석종, 대장각기비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8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령이 600년이나 되는 은행나무와 향나무가 천년사찰임을 짐작케 한다. 이곳은 영릉과 함께 여주가 자랑하는 명승지로 지정되었다.
신륵사 산문을 벗어나면 커다란 돌비석하나가 시선을 끈다. 원호 장군의 전승비다. 원호 장군은 여주에서 태어난 조선중기의 무신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머물고 있던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연히 일어나 민, 관민 300여 명을 규합하여 신륵사 팔대 숲 일대에서 도강을 시도하는 왜병을 섬멸하고 구미포 일대에 집결한 왜군을 몰살하는 등 육전에서 승리한 최초의 전승지라고 한다.
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달려있을 때, 지방의 토호들이 주민들을 규합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살신성인으로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외침의 역사가 많은 우리나라는 격전지마다 전 적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나라사랑의 징표로 삼고 있다.
곧이어 명품광장 도자기 전시장이 반겨준다. 임금님께 진상하던 잡채 쌀과 함께 이고장이 자랑하는 특산물로 명성이 높은 도자기는 깨끗한 물과 울창한 소나무에 질 좋은 고령토를 원료로 도자기를 생산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600여 개의 도요에서 국내 전통 및 생활도자기의 60%를 생산하고 있는 도자기의 고장이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을 살려 1992년부터 여주, 이천, 광주에서 합동으로 개최하는 도자기축제는 전통도자기의 예술적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고, 도자기문화의 대중화와 우리 도자기의 세계화를 선도하고자 매년 4-5월에 신륵사국민관광지와 도예촌 일원에서 약 2주 동안 열린다. 엄동설한의 짧은 해가 서산마루로 기울고 영월루의 처마 끝에 낙조가 드리우는 오후 4시, 여주의 명소를 돌아보는 순례 길을 무사히 완주하고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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