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1년 9월25일
장소: 도선사 입구- 도봉공원 입구(약 8km)
참석인원: 김 완묵, 김 선화, 나 용준, 김 은남, 전 산우, 전 호영, 김 천수, 문 영호, 양 재우, 전 재옥,
주진하 외1인, 김영희, 전 애자, 박 영문, 선우필용, 오 희창, 신 종록, 한 경옥 19명
도봉산 둘레길
2010년 북한산 둘레길 44km가 조성된 후로 1년 만에 도봉산 둘레길 26km마저 완공되어 북한산국립공원 둘레길 70km가 완공되었으니 너무도 반가운 소식이다. 새로 조성된 그 길이 보고파 안달이 나지만 애꿎은 장맛비에 속을 끓이다 우이동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도선사 입구는 평일임에도 국립공원을 찾는 인파로 만원을 이룬다. 왕실묘역 길로 命名된 이 길은 강북구와 도봉구가 경계를 이루는 고개 마루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오름길이 시작된다. 우이암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내려선 곳이 원당마을이다. 이곳에는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어 수령이 자그마치 1,000년이나 되는 거목으로 서울시에서 지정보호수 제1호로 선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 잡은 연산군 묘는 이조의 波瀾萬丈(파란만장)한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현장이다. 성종의 큰 아들로 태어나 19세에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서예와 시문학에 능통한 어진 임금으로 사치풍조를 근절하기위해 금제절목을 만들고 변방의 여진족을 회유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으며 국조보감을 편찬하는 등 정사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생모 윤씨의 폐출경위를 알게 된 후로 패륜적인 정치로 국정을 문란케 하여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키고, 사치와 향락으로 국가재정을 탕진하는 등 폭정을 일삼다가 중종반정으로 폐출되어 강화도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31세의 나이로 病死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유배지인 교동도에 안장되었다가 7년 후인 1513년 연산군 부인 폐비신씨가 중종에게 간언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성장기의 불운했던 가정환경이 성군의 기질을 타고난 연산군의 행로에 엄청난 역사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파국을 맞게 되었으니 조선의 역사에도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우이동 길(2차선 포장도로)을 건너면 곧바로 정의공주 묘가 나온다. 세종대왕의 둘째딸이며 문종의 여동생이자 세조의 누이이다. 왕세자인 문종과 함께 훈민정음창제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은 정의공주 묘를 뒤로하고 시작되는 방학동 길은 울창한 수림 속으로 오솔길이 열린다. 신갈나무, 굴참나무, 산벚나무, 상수리나무 등 키가 큰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어 한여름 시원한 그늘 속에서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구간이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도봉서원의 터를 정하기 위해 도봉산 중턱에 앉았다가 鶴(학)이 평화롭게 노는 것을 보고 放鶴(방학)이라 불렀다고 하며 방학동의 지형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 金鷄抱卵(금계포란)형이라는 설도 있다.
당 단풍나무와 팥배나무 그늘 속을 지나노라면 알알이 영근 포도송이가 하얀 봉지 속에서 탐스럽게 익어가고 청미래 덩굴과 다래넝쿨이 엉 크러진 계곡을 건너 진달래와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동산에 오르면 쌍둥이 전망대가 반겨준다. 나선형계단을 따라 올라선 전망대는 울창한 숲속에서 땅만 보고 걷는 답답함을 한꺼번에 씻어주는 청량감으로 선인봉, 자운봉, 만장봉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도봉동과 방학동의 아파트 숲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도봉동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코스를 내려서면 도봉옛길이 시작되는 십자로 안부가 나온다. 이곳에서 무수 골 가는 길은 좌측방향이다. 수백 년 간 무수한 사람들이 왕래하며 다져놓은 이 길은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 골짜기를 이루어 호젓한 오솔길이 열린다. 성신여대 생활관 담장을 따라 내려서는 무수 골은 도시민들이 잠시 짬을 내어 자연과 어우러지는 주말농장이 펼쳐진다.
세상사 근심걱정을 버리고 편안히 쉬어갈수 있어 무수골이라 불렀다는 전설대로 완만한 오솔길에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풀 한포기 없는 무덤을 지나면 영의정을 지낸 晉州柳氏 무덤이 반겨준다. 班常의 차이는 死後에도 이어진다는 교훈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너무도 대조적이다.
竹杖芒鞋單瓢子(죽장망혜단표자)로 千里江山을 돌아보는 流浪人들의 발자취가 묻어나는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도봉산의 진수가 펼쳐진다. 신선들이 도를 닦았다는 신선봉, 수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만장봉, 상서로운 구름이 머문다는 자운봉, 백옥같은 암봉들을 바라보며 유서 깊은 도봉사를 내려서면 황금기와로 치장한 능원사와 조선시대 후기 조대비 신정왕후의 별장터였던 광륜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암자들이 도봉산의 계곡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북한산 둘레길 70km도 왕실묘역길 에서 시작
와! 이 얼마만이야. 시산의 행사에 20여명이 모이다니. 신난다. 화이팅 !
파란 만장한 비운의 왕. 연산군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870년을 자랑하는 은행나무처럼 우리 시산도 천년만년 살고지고
세종대왕의 둘째딸 정의공주. 한글창제에도 큰 기여를 했다는군요.
왜들 눈이 휘둥그러지시나. 산상의 빈대떡은 입가심이라구요
쌍둥이 전망대 . 울창한 숲속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 오르는 기분이라구요
산상의 비빔밥. 오방색의 조화속에 군침이 넘어간다.
김선화표 비빔밥. 정말로 인기 짱! 청포묵도 대령이요
자! 한 잔 받으소. 아리수님.
시산의 가는길에 윳놀이도 한목하네 . 윳이야!!!! 얼씨구 좋다. 아이구 빠꾸도야?
산상의 기념사진. 시산이여 영원하라 . 우리의 추억이 새록새록 날거야.
뒤풀이에 시한수. 얼쑤 좋다 놀아보자. 흥겨운 한마당
특별히 참석해 주신 양천문학회 오희창 회장님과 신종록 이사님 정말로 감사 합니다.
정선의 재옥 아우님. 새벽잠 설치며 달려온 그 정성에 감복합니다.
시산여러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시. 고. 감.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