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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세계/시산의 행사

융건릉과 용주사

일시: 2011년 8월28일

장소: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시산 편집회의

참석인원: 전호영 편집국장 부부와 아들.  주진하, 김복동 편집위원.

              김완묵 회장 

 

 

 

 

 

 

                             

                               건릉(健陵) - 제 22대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

 

 

정조는 추존 장조의 둘째 아들로

1776년 영조가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즉위 직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천명하고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하기위해 노력하였다.

 

문무를 겸비하였던 정조는 규장각을 두어 학문에 힘썼으며 장용영을 설치하고 수원화성을 쌓는 등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 또한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붕당정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 힘썼다.

 

 

효의왕후는 좌참찬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년 세손빈에 책봉되었고,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지성으로 모셔서 영조의 총애를 받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1800년(정조24년) 정조를 안장. 현륭원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조성(초장)하고 1821년 (순조21년) 현륭원 서쪽 산줄기(지금의 위치)로 천장하여 효의왕후와 합장하였다.

 

 

 

 

 

 

 

 

 

 

 

 

 

 

 

 

 

                            

                               융릉(隆陵) - 추존 장조와 헌경왕후의 능

 

 

장조는 제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제22대 정조의 생부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서예와 무예에 뛰어났으나 영조를 대신하여 정치업무를 보게 되면서 노론과 마찰을 빚게 되고, 나경언의 고변으로 뒤주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1762년 영조는 28세 나이에 죽은 세자를 슬퍼하면서 사도라는 시호를 내리고 동대문구 휘경동인 양주 배봉산 아래 언덕에 안장하였다. 1776년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여, 아버지에게 ‘장헌’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수은묘를 원으로 격상시켜, 영우원으로 부르게 된다.

 

 

1789년(정조 13년) 영우원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헌릉원으로 고쳐 부르며 1816년(순조16년)헌경왕후가 별세하자 합장으로 모시고,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왕후로 추존되어 융릉으로 부르게 된다.

 

 

헌경왕후는 영의정 영풍부원군 홍봉한의 딸로 1744년 세자빈에 책봉되고, 사도세자가 비운을 맞은 후 혜빈

으로 부르다 정조가 즉위한 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린다. 혜경궁 홍씨는 자전적 회고록이자 궁중문학의 백미로 평가받는 한중록을 남겼다.

 

 

 

 

 

 

 

 

 

 

 

 

                                                                   용주사

 

본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 만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설법을 듣고 감동하여 부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면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라 하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보경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아 이곳에 절을 지어 현릉원의 능사(陵寺)로서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그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불교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던 당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큰 의미를 가진다. 낙성식 날 저녁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라 부르고,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진 전국 5규정소(糾正所:승려의 생활을 감독하는 곳) 중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했으며, 팔로도승원(八路都僧院)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한다.

 

 

또한 일찍이 31본산의 하나였으며 현재는 수원, 용인, 안양 등 경기도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80여개의 말사,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절의 신도는 약 7천여 세대에 달하며 정기, 비정기적으로 많은 법회가 이루어지고 또 법회를 통해 교화활동을 행하고 있다.

 

 

용주사는 이와 같은 수행자들이 모여 면벽참선하면서 진리를 찾고 한편으로는 다양한 대중포교 활동을 통해 부처님의 지혜를 전하며, 또한 정조의 뜻을 받들어 효행교육원을 설립, 운영을 통해 불자교육을 서원으로 일반인도 누구든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효행교육으로 불교 신행관과 인성교육을 사회로 회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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