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문화 축제 작가 - 김 완묵
예고에도 없던 문학기행의 통보를 받고 보니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마음이 설렌다.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라, 여러 곳으로부터 초청장이 쇄도하고 즐거운 비명으로 고민이 많지만 양천 문학회의 행사를 소홀히 할 수 있는가.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는 마음은 어느새 문우들과의 어울림 속으로 빠져든다.
세심한 배려로 모임의 행사마다 뒷바라지를 마다않는 아내는 이번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인지, 회원들의 먹 거리를 준비하느라 밤새도록 부산을 떤다. 아침 8시에 목동의 진명여고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늦지 않으려면 의정부에서는 새벽부터 서둘지 않으면 안 된다.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들려주는 따끈따끈한 보따리.... 손에 닿는 촉감이 너무도 좋다. 아내의 온기가 전해지는 사랑이, 도시락의 온기보다도 더욱 내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지하철의 냉기도 사랑의 용광로 속으로 녹아들고, 한강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더욱 눈부시다.
한 달 만에 만나는 문우들이지만, 야외 나들이의 설 레임 속에 모두들 홍안 소년들처럼 화색이 만발한다. 우리의 일정은 “제10회 박 인환 문화축제”에 참가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중간에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 을 들리기로 한다. 집행부의 세심한 배려에 우리 모두 박수로 화답을 하고, 이 덕주 사무국장이 들려주는 소설가 황순원의 일생을 회고하며 더욱 큰 감명을 받는다.
소설속의 무대로 등장하는 양수리는 언제 보아도 감회가 새롭고, 벗 고개를 넘어가면 청계산자락에 서정시가 흐르는 무대가 펼쳐진다. 아늑한 분지 속에 그 분의 업적을 기린 문학관이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하나하나 일깨워준다. 촉박한 일정으로 30여 분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인제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조약돌 하나를 힘껏 집어던지면 쨍하고 산산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푸른 하늘. 그 아래 낮은 산모퉁이 사이로 펼쳐지는 다랑논. 수 백 번도 넘는 농부들의 손길이 머물렀기에 그 기쁨이 배가 되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숨 막히는 빌딩의 그늘 속을 탈출하여 싱그러움이 넘치는 농촌의 들녘을 지나며, 검게 타들어가던 우리의 가슴속이 시원하게 정화된다.
우리의 목적지인 인제는 강원도 중동부 지방의 협소한 분지에 자리 잡고 있는 전국에서 가장 큰 군으로, 자연경관이 빼어난 설악산을 품고 있어 사시사철 행락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다. 해서 4차선의 시원하게 뚫린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로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60년대 도로가 제대로 뚫리기 전. 전방으로 배치되어가는 장병들이 첩첩산중 골짜기를 따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비포장 길. 군용차량의 화물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배고 품과 추위에 떨며 고향생각에 목이매여,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눈물 짖던 이 길이 이제는 웃으며 달려가는 옛말이 되지 않았는가?
신남리를 지나며 산굽이를 따라 펼쳐지는 뱃길 150리의 소양강이 우리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낸다. 참으로 장관이다. 갈수기라 물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겨울이면 빙어 축제로 여름이면 레프팅으로 자연이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인제야 말로 우리에게 귀중한 자산의 보고라 할 수 있겠다.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하늘의 애드벌룬, 거리의 현수막이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가장 먼저 반긴다. 행사장인 “인제 하늘내린 센터”로 명명된 건물은 인제군의 예술의 전당이다. 이름부터 예술적인 감각을 지닌 행사장에는 친절한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로 질서정연하고, 거리시화전과 식전공개 행사로 펼쳐지는 박인환 시인의 일생을 극화한 연극은 오늘의 행사를 한층 더 고조시킨다.
관광버스가 도착할 때 마다 전국의 문인들이 모여들고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문병란 시인의 사인회”가 진행된다. 오후3시부터 시상식 행사가 시작되는 식장에는 500여석이 넘는 좌석이 입추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많은 문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박인환 시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마음이 한곳으로 모였으니 고무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식순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는 행사는 박인환 시 문학상 시상식과 시낭송을 겸한 퍼포먼스로 절정을 이루며, 장내에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는 박인환 시인의 고귀한 뜻을 계승하려는 후배 문인들의 힘찬 외침이라 할 수 있다. 1926년 인제에서 태어나 30세의 짧은 생을 살아온 시인의 일생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의 암흑기에 현대 문학사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활동을 하다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고 말았으니 너무도 애석한 일이다.
천재시인을 배출한 인제의 문인들이 그분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기리고 계승 발전하기 위해 “내린 문학 동아리”를 발족한지 10여 년 만에 전국의 축제로 승화 발전하였으니, 우리 모두 부러워할 일이고 본받아야 할 일이다. 오늘의 행사를 지켜보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은, 인제 문인들의 피나는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박삼례 인제 군수님의 문학 사랑의 열정이라 할 수 있다.
인제군은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3만여 명에 불과하고, 휴전선과 접한 산간 오지라는 불리한 여건으로, 생산 공장 하나 없이 자립도가 전국에서 가장 빈약한 고장이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문학 제를 위해 군민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전국의 어느 대회보다도 알차고 성숙한 대회로 승화시킨 군수님의 열정이 우리문인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우리 문인들의 활동무대가 협소해지는 이때, 인제군의 문화사랑은 우리 문인들의 절실한 바램이다. 귀경하는 시간관계로 모든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박인환 시인님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되뇌어 본다.
서봉지맥을 찾아서
남녘에서 들려오는 꽃 소식을 시샘하는 봄비가 하염없이 내리더니, 밤사이 영하로 곤두박질치며 4월 하순의 날씨로는 백 년 만에 깜짝 추위가 찾아온다. 지구온난화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수리산역에 도착하니 8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서봉지맥 들머리는 산본5단지 가야아파트 방향으로 길이 열린다.
칠장산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한 한남정맥이 감투봉(185m)에서 수리산(474m)으로 이어지고, 감투봉에서 또 하나의 산줄기가 남쪽으로 분기하여 구봉산(145m), 칠보산(239m), 고금산(87m), 서봉산(250m), 덕지산(138), 옥녀봉(82m), 계두봉을 거쳐 아산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61km의 산줄기를 한남서봉지맥이라 부르고 있다.
가야아파트 526동에서 산으로 진입하는 이정표를 들머리로 하여 한남정맥의 마루금인 도장터널 위로 올라서면 오른쪽은 한남정맥의 수리산 방향이고, 왼쪽으로 연결된 마루금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산불감시탑이 있는 감투봉(185m)이다.
감투봉에서 왼쪽(동쪽)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을 버리고, 산불감시초소 뒤쪽(우측)으로 내려서면 산줄기는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지며 남쪽으로 전망이 터지는 가족묘지가 있는 공터를 만난다. 의왕시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왕송 저수지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안양골프장과 42번 국도를 내려다보면서 작은 안부를 지나 경주이씨 쌍묘에 도착하고 오른쪽으로 도장터널을 빠져 나온 차량들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질주한다.
김 안나묘를 지나면 도장터널을 빠져나온 도로가 마루금을 단절시키고, 깊고 깊은 절 개지를 피해 남쪽의 GS 주유소 앞마당으로 내려선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보건소 사거리로 가는 연도에는 건너편으로“대성농장 생오리”식당이 보이고 사거리를 대각으로 건너면 왼쪽으로 버스공용주차장이 있고, 건너편에는 군포보건소가 자리 잡고 있다.
지맥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미미한 6차선 도로의 인도를 따라 100여 미터 진행하면 공용주차장 출구가 나오고 산 정상에 있는 배수지 쪽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마루 금 이지만 육중한 철문이 잠겨있어 두 번째 시멘트 도로를 따른다. 도심지의 개발과 새로 건설되는 도로공사로 마루 금이 두 동강이로 잘려나가고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도, 지맥을 이어간다는 자부심과 의지력이 있기에 온갖 고초도 힘 드는 줄 모른다.
앞쪽의 낮은 둔덕에 올라 비포장도로를 따르면 영동고속도로 앞에서 왼쪽으로 휘어진다. 고속도로의 갓길을 따라 100여 미터를 진행하여 토끼 굴을 빠져나오며 고속도로를 통과한다. 국토의 동맥을 따라 전 국토의 구석구석까지 단숨에 달려가는 차량들의 질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이 후련하게 뚫린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불편함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물길을 가르며 전국토를 이어가는 정맥과 지맥의 마루 금이 잘리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방황하다 횡사하는 모습은 비단 짐승들의 비극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계단을 따라 묘지 올라가는 길이 나오며, 영동고속도로를 오른쪽에 끼고 절 개지를 따라가는 길은 청미래 덩굴과 산초가시, 칡넝쿨이 가로막아 여름 한철에는 접근이 불가능해 보인다. 군포 I.C 못 미친 지점에서 고속도로건너편에서 오는 마루금과 합류하여 산으로 올라 122봉을 지나고 산장낚시터의 임도를 건너 올라선 능선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50번 철탑을 만나 안부로 내려선다.
울창하던 소나무 숲이 벌거숭이가 된 안부는 동쪽의 부곡 택지지구와 군포I.C를 연결하는 접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다음 달이면 아들 재형이가 입주할 아파트가 푸른 숲속에 자리를 잡고, 전원주택을 꿈꾸는 손주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꿈의 동산을 바라보며 마냥 즐겁기만 하다. 113봉을 지나 구봉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완만한 오름길에 울창한 송림 사이로 등산로가 열리고, 시원한 피톤 치트가 흐르는 거대한 산소 공장이다. 답답하던 가슴속을 말끔히 씻어 내리는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올라서면 운동기구와 고산마루님의 구봉산(145m)정상표시기가 반겨준다.
정상을 내려서면 전면에 과수원이 나타나고, 덩치 큰 견공들이 기선제압이라도 하려는 듯이 요란스럽게 짖어대며 으름장을 놓는다. 하기야 외진 곳에 맹견들마저 없다면 호시탐탐 노리는 도둑들의 횡포로 남아날 것이 있겠는가? 각박한 인심 속에 보신책으로 키우는 맹견들을 피해 과수원 옆으로 내려선다. 도마교동에서 올라오는 비포장도로를 만나고 왼쪽으로 고개 마루에 이르러 남쪽의 능선으로 올라서면“진주정씨”가족 묘지에는 烈女碑와 휴식공간으로 정자까지 조성하여 가풍 있는 집안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묘지가 있는 무명봉에서 왼쪽의 컨테이너박스 앞으로 내려와 임도를 가로질러 잡목을 헤치며 진행한다. 칡넝쿨이 무성한 7번 철탑을 지나 삼각점이 있는 103.9봉에 올라선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마루 금이 이어지고 고압전신주를 목표로 진행하면 8번 철탑을 지나 청주한씨 가족 묘지를 만난다. 묘지 앞쪽으로 빠져나오면 왼쪽으로 버려진 낚시터와 그 아래로 폐건물이 있다. 나뭇가지에 先踏者들의 표지기가 나부끼고, 건물 오른쪽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신천지 조경입구의 상록수 사이로 봄의 화신인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다.
42번 국도에서 왼쪽으로 육교를 바라보며 진행하면 경기 대명고교(노란건물)가 보이고, 육교를 건너 42번국도의 비늘치를 통과한다. 육교에서 서쪽은 안산시 사사동이요. 동쪽은 수원시 당수동이다. 전면으로 시경계선을 따라 농수산물유통교육원과 아파트가 있고, 오른쪽으로 은광교회 입간판이 있는 시멘트 길이 보인다.
곡말3길, 칠보사길 이정표가 있는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왼쪽에 한라아파트가 있고, 오른쪽에 보원갈비를 지나면 왼쪽으로 쌍용아파트가 나오고 어린이놀이터와 칠보산 등산안내판이 서있다.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왼쪽으로 천주교공원묘지가 펼쳐지고, 관리초소와 약수터가 있는 곳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등산로로 진입하여 칠보산 4.2km의 마루 금이 시작된다.
마루금은 당수동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을 찾는다. 약수터에서 조금 오르면 등산로 왼쪽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울창한 松林속으로 거의 평지수준으로 팔각정이 있는“가진바위봉”까지 사색을 즐기며 진행한다. 소나무의 갈피들이 양탄자같이 깔려있는 구간에서 맨발로 걸어가는 삼림욕장 또한 새로운 체험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으면 인체의 모든 기관과 연계되어 있는 신경에 지압의 효과를 주므로 몸 안의 피로를 풀어주고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육산에 특이한 바위 두 개가 눈길을 끄는 “가진바위봉”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사면 길로 내려서면 “LG빌리지와 잠종장 정상”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시선을 끈다. 잠종장이라면 한때 누에고치 생산으로 농촌의 주 수입원이었던 명주실을 만드는 누에고치를 연구하는 곳으로, 가난하던 시절 영양만점의 번데기의 고소한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칠보산 1.2Km의 이정표를 지나면 소중한 입간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리기다소나무 초기 조림지. 황폐지 사방복구를 위해 1930년경에 조성된 이곳은 리기다소나무의 생장조사와 주변식생 조사를 하는 서울대학교 농업대학 학습장이다. 40-50년 전만해도 나무뿌리까지 캐다가 아궁이 불쏘시개를 하던 시절이니 벌거숭이 민둥산에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황폐한 산에 녹화사업을 전개하여 병충해에 강하고 어느 곳이나 잘 자라는 리기다와 아카시아, 오리나무를 주종으로 심게 된 것이고, 그 효시가 이곳이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119표지석이 정상 석을 대신하는 칠보산은 표시 없는 삼각점과 서쪽으로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이 일품이다. 노송의 그늘아래 어천저수지가 수정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농촌마을이 평화롭게 전개된다. 이름부터가 아름다운 칠보산은 화성군 매송면에 속해 있었으나 198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원시로 편입되었다. 해발 238.8m의 낮은 산으로 산세가 완만하여 노약자나 여성들의 산책코스로 적당하며 자연생태 학습장으로 개방하고 있다. 옛날부터 8개의 보물(산삼, 맷돌, 잣나무, 황계 수 닭, 범절, 장사, 금, 금 닭)이 숨겨져 있었는데, 누군가 금 닭을 훔쳐간 뒤로 칠보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잠시 후 헬기장을 지나 팔각정에 오르면 지나온 하늘 금에 수리산이 아련하고, 그 먼 곳을 걸어왔다는 자부심에 긍지를 느끼며 아직도 녹슬지 않은 체력이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정면으로 군부대가 웅지를 틀고 동쪽의 용화사를 바라보는 들녘으로 호매실 I.C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전망대를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칠보산 기도원, 왼쪽으로 용화사 이정표가 반겨주고, 마루금은 왼쪽으로 30여 미터를 내려서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오른쪽 제3전망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부대를 뒤로돌아 제3전망대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질펀하게 펼쳐지는 화성평야가 그림 같고, 오늘의 목적지인 오목천 삼거리가 손에 잡힐 듯 송림사이로 내려다보인다. 왼쪽의 능선을 따라가다 남쪽으로 과천 봉당 고속도로 옆으로 비닐하우스 3동을 겨냥하여 중간 능선을 내려서면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토끼굴을 지나 비포장도로를 따라간다.
화성시 승마협회 입간판이 있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마을길을 따라가면, 왼쪽으로 수목원의 고급 수종인 상록수들이 심어져있고, 까치길이라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굴참나무시험포를 지나면 오른쪽에 민가가 보이고 그 앞쪽에 가림가든(보신탕 집)이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으로 올라야 하지만 도로를 따라 민가가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올라 무명봉을 넘으면 묘지가 나오고 오늘의 산행 종착지인 오목천 삼거리 절개지로 내려서며 15km의 서봉지맥 제1구간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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