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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유명산 시산제를 다녀오다

 

                                

                                       유명산 시산제를 다녀오다

 

고요한 적막을 깨고 전화벨이 울린다.

3월 18일 유명산 시산제에 참석해달라는 의야 산악회 유 양순 총무의 전갈이다. 언제 들어도 정겨운 그 목소리. 지난해 백두산에서 실족하며 당한 부상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매달 산행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전화 벨소리.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잊지 않고 챙겨주는 고마움에 그저 감사하며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전날 그렇게도 가슴을 졸이던 변덕스러운 날씨가 밤사이 말끔하게 씻겨 내리고, 동녘 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너무도 반갑다. 일 년 만에 만나는 얼굴들. 즐거운 일들이 그리도 많은지 모두들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신나게 질주하는 경춘가도. 더러운 것, 지저분한 것, 혐오스러운 것까지 밤새 내린 눈 속으로 보듬어 안고 밝은 태양아래 순백색으로 별천지를 빚어내니, 의야 산악회가 가는 길에 어찌 영광이 없으리요. 회원들의 품에 안겨주는 선물보따리, 임원진들의 정성이 담겨있기에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행복이 가득하다.

 

 

유명산 휴양림. 주위의 경관이 빼어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휴양림으로 조성된 잣나무 숲. 가평의 상징이기도 한 잣나무의 울창한 숲속으로 등산로가 열리고. 밤새내린 눈 속에 발 도장을 찍으며 피톤치드의 진한 향기 속에 구슬땀을 흘린다.

 

 

고도가 높아지며 경사도 급해지고, 얼었다 녹았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반복되며 유리알처럼 반들거리는 비알 길에 눈까지 살짝 덮여 있으니,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다가 코방아와 엉덩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그렇다고 물러설 우리가 아니다. 山戰水戰으로 전국의 산하를 누벼 온지 13년. 험한 바위를 타고 넘으며 정상으로 향하는 열정이 넘쳐난다.

 

 

주능선에 올라서며 남쪽으로 용문산(1.157m)이 고개를 살짝 내민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한강기맥의 주봉으로 주위에 거느린 산들이 일당백의 용맹을 자랑하는 중원산(799m)과 도일봉(863m), 봉미산(855m), 문례봉(992m), 용문봉(947m), 용조봉(635m), 윤필봉(947m), 함왕봉(887m)을 지나 백운봉(940m)에서 양평읍 내를 굽어보고, 주봉을 향하여 머리 조아리는 칠읍산(583m)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리요.

 

 

옛날 이 지방에서 날개 달린 동자가 태어 난지 하루 만에 다락에 올라가는 괴변이 생겨 부부가 인두로 죽였더니 산에서 백마가 울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유명산(864m). 동국여지승람에는 말이 노니는 산이라 하여 마유 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산세가 부드럽고 토질이 기름져서 수 만평의 고랭지 채소밭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행그라이더의 활공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청천하늘에 티끌하나 없이 수 백리 산과계곡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여주의 넓은 뜰을 휘돌아 내려온 남한강이 천 리길 머나먼 여정 속에서도 두 물 머리를 향하여 널찍한 가슴을 활짝 열어 제친다. 우리 몸의 실핏줄처럼 뻗어나가는 도로와 물길이 산기슭을 파고들며 정다운 이웃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자연의 품에 안겨 천만년을 지켜온 터전이 아니던가.

 

 

몸 안의 노폐물도, 머릿속의 잡념도 머나먼 창공으로 날려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려선 휴양림 안마당. 양지바른 둔덕에 자리를 잡고 제상을 마련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사냥을 나갈 때나 집을 다스릴 때, 신령님께 예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을 하며 심지어 약초 캐는 심메마니들에게도 소박한 꿈을 바라는 정성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산기슭에 터를잡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주인인 산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허락을 얻어야 짐승을 잡으며, 그가 보호해 주어야 아무 탈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른 새벽에 닭, 새, 개 따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손이 없는 방향에 제물을 차리고 정성스런 고사를 지낸 후에야 사냥도하고 약초도 캐는 것이다.

 

 

또 한 장거리 여행을 하는 날이면 집안의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 도리이고, 동구 밖의 서낭당에 이르러 원행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정성으로 돌 맹이 하나를 올려놓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에 이르러 우주선이 달나라를 오가는 대명천지라도 옛 법을 무시할 수 없는것이 우리 인간들의 습성이 아닌가.

 

 

산을 인연으로 모인 산악회의 가장 큰 행사는 한 해를 여는 시산제가 으뜸이다. 이날만은 바쁜 일과도 접어두고 모두 모여 신성한 장소에 제단을 마련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산신령님께 제사를 올리며 無事無頉한 산행을 기원하는 것이다. 회장의 강신으로 시작된 제사는 하늘에 고하는 고갑성 감사의 축문 낭독으로 이어진다.

 

 

維 歲次 2010 庚寅年 3월 18 丁卯日 午時에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소재한 이름도 아름다운 “유명산”자락에서 의야 산악회장 신용복이 산신령님께 엎드려 엄숙히 고합니다. 우리 의야산악회는 전국의 유명한 산을 찾아 즐거운 산행을 시작 한지도 어언 13년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간 산신령님께서 보살펴주신 덕분에 큰 탈 없이 산행을 잘한 그 은혜에 보답 하고자 주과포 등 제물을 정성껏 마련하여 진설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산신령님께 제례를 올리오니 강림하셔서 즐겁게 흠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회원들은 산신령님께서 품고계신 대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자연보호를 겸한 산행을 약속드리겠사오니 금년도 산행 시 조그마한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주심과 아울러 회원 모든 가정에도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도록 굽어 살펴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옵니다.

 

 

                                       서기 2010년 3월 18일 의야 산악회원 일동 드림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산신제를 올리며 든든한 부적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금년에도 대자연의 품에 안겨 건강한 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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