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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정맥

한남정맥: 제5부

              

              제 9 구간 : 스므네미고개 - 것고개 / 15.5km

빗방울 흩날리는 이른 아침. 송정역에 도착하니 검단리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어 김포평야 너른 들을 굽어보며 검단리로 들어선다. 스므네미고개 까지는 택시를 이용하여 수월하게 현장으로 접근하여 보신탕 국밥집 앞의 지하차도를 통해 4차선도로(305번)를 건너고, 舊 길을 따라 고개 마루에 올라선다. 완만한 마루 금에 휘적휘적 내딛는 발걸음에 거칠 것이 없지만, 지난겨울에 난 산불로 수 십 년생 소나무들의 앙상하고 흉측한 몰골을 바라보며 아려오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잠시 후 밤나무 농장으로 통하는 길목에는 엄중한 경고문이 앞을 가로 막지만, 지금이야 제철이 아니니 갓 끈을 고쳐 맨들 오해는 받지 않으리. 밤나무가지에 돌을 끼워놓은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앙증맞은 버섯의 무리들이 고운자태로 피어나 길손을 유혹하고,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왼쪽으로 가로지른다.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동행하면, 너른 헬기장에 軍 삼각점. 참호의 굴뚝이 있는 학운산(112.4m) 정상에 올라선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면 부대정문이 나오고, 왼쪽으로 임도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서해안의 정경이 그림 같다. 부대가 있는 봉우리를 안고 도는 마루금은 갈림길에서도 오른쪽으로 돌아 왼쪽의 산 비알에 자리 잡은 조경 농장을 허리춤에 끼고돈다. 구름에 달 가듯이 한가로운 산책길에 임도를 중심으로 산마루가 갈라서고, 오른쪽이 종주길이지만 임도를 그대로 따르면 곧이어 차선 없는 포장길이 나온다.

 

도로를 가로 질러 숲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의 개 사육장에서 이방인을 향한 울부짖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전주이공 묘지 앞 임도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장벽고가 있는 곳을 지나면 학운리에서 유현리를 오가는 1차선 포장도로(5번 마을길)가 지나는 학현 차도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태흥산업이 있고, 뒤돌아보는 학운산은 누에가 잠을 자듯 유순하고 부드럽게 보인다. 참호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고압철탑을 지나고 또 다시 벙커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 마을길로 내려선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망설여지는 삼거리길. 직진하여 고개 마루 넘어서면 공장지대 밀집한 한배마을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가야만 폐차장도 나오고 포도밭 둔덕을 지나 오성 화학이 나오는데 이미 내친걸음 되돌릴 수 없어 2차선 길을 따라 G.S 주유소에 도착하면 대농리와 유현리를 연결하는 함배 차도(7번 지방도로)가 된다. 잠시 알바를 했지만 다시 만나는 반가움에 물 한 모금 마시고 건너다보이는 산기슭에 묘지를 바라보며 주유소 담을 끼고 고추밭에 들어섰지만 곧이어 펜스에 가로막혀 발길을 되돌린다.

 

가시덤불 잡초 속에 뒤엉킨 찔레덩굴. 10여m만 진행하면 집도 있고 공장도 있고 순탄한 길이 열리는데, 하늘로 솟아야하나 땅으로 기어야 하나 우왕좌왕 살길을 찾아 밭 둔 덕에서 한 바탕 씨름으로 사과나무 밭으로 내려서니, 호시탐탐 노리던 견공의 기습을 받고 걸음아 날 살려라 얼결에 마을길로 내려선다. 진땀 흘리며 통과한 이 길이 지옥문의 시작이란 걸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신축중인 공장 뒤편으로 묘지가 올려다 보이고, 마루 금이 빤히 보인다. 그 중간에 가시덤불 장애물이 각개전투장의 철조망보다도 촘촘하게 자리를 잡고 잡인들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난감하기 그지없는 가시덤불속에서 점입가경으로 산초나무에 찔레나무. 칡넝쿨 까지 새로 장만한 등산복이 만신창이가 되고, 온몸이 피멍으로 얼룩저도 아픈 줄을 모른다. 100여 m를 전진하는데 20여분이나 지체 되었으니 종주의 사명감도 실종 된지 오래고, 어서 빨리 지옥 같은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생각뿐이다.

 

뒤 돌아보기도 싫은 덤불속에서도 한 가지 소득이 있다면 아카시아 나무에 피어난 영지버섯.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이다 보니 수년 동안 고이 자란 보물이 아니던가? 약효야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지만 희귀한 영물에 손길을 거두고 사진 속에 고이 간직한다. 희미하게 이어지는 마루 금에는 표지기도 보이고, 나뭇잎을 스쳐가는 바람결에 생기를 되찾아 지체된 시간을 보충하기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정성들여 조성한 가족묘지. 안동김씨 김재순의 묘와 납골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중시조 익원공의 후손으로 조카항렬 문중의 묘를 만나는 반가움에 머리 숙여 예를 올리고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물봉선화와 씀바귀 꽃이 가을의 전령사가 되어 다소곳이 반겨준다. 가시덤불 사이로 오솔길이 열리고 정상에는 너른 헬기장(100-1-6)에 시원한 조망 터. 지근거리에는 수안산 신령지단이 자리 잡고 잠시 후 오른쪽으로 종주길이 열리지만, 직진을 하면 수안산(146.8m) 제일의 전망대가 반겨준다.

 

고생 끝에 낙이라 했던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마루금은 선들 바람에 열리고, 뒤돌아보면 지나온 가현산과 학운산이 파노라마를 이루는데, 하늘 금에는 어렴풋이 계양산까지, 바다건너 강화도가 지척이요. 정맥의 시작인 문수봉이 아련하다. 정상에는 삼각점(김포434 1988재설)과 지적삼각점표지석이 있고, 대형헬기장(100-1-5)이 있다. 헬기장을 지나고 묘지를 가로질러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까지 다녀온다

 

수안산성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수안산에 남아 있는 삼국시대의 성벽으로, 1996년 경기도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산꼭대기를 돌아가면 돌로 쌓은 성벽이 약 685m 정도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토기 조각이 많이 발견된다. 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김포시 안에 5개 봉수대 중 하나였던 수안산 봉수대는 남쪽으로 김포시 백석산 봉수에 응하고, 서남쪽으로 바다 건너 강화 대모산 봉수에 응하였다는 옛 기록이 남아 있다. 성 바로 아래에 강화도와 배로 왕복할 수 있는 포구가 있는 등 강화도와 육지를 연결시켜 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또한, 산성 안에는 도마(陶馬)뫼라고 불리는 무덤이 있는데, 여기에는 옛날 도장군(陶將軍)이 타고 다니던 애마(愛馬)가 묻혀 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

되돌아서서 임도로 내려선다. “守安山神靈之壇”의 제단 앞에서 왼쪽으로 90˚ 방향을 틀어 돌계단이 있는 능선을 내려선 다음, 15번 송전철탑을 지나 운동시설이 있는 곳을 지나면, 교통호와 진지가 있는 정상에 올라선다. 마을이 가까워오면서 주민들이 산책길에 이용하는 운동기구들이 자주 나타나고, 가족묘지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포장된 수레길이 나온다.

 

대곶면 소재지도 지척으로 바라보이고, 포장도로를 건너 대형 비닐하우스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컨테이너박스가 있는 곳을 지나 농로를 따라가면 제2강화교로 연결되는 356번 도로가 지나는 대곶 신사거리에 도착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면소재지를 골고루 순례하는 제식훈련이 시작된다.

 

대곶면사무소 방향으로 진행하여 대곶우체국과 대곶중학교 정문 앞을 지나고, 新김포농협 대곶지점, 패션 똥 장군 앞을 지나 대곶사거리에 도착한다. 에덴다방 앞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대곶파출소와 대곶초등학교 정문을 지나고, 곧바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학교 담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솔로몬학원과 학교 담장 사이 골목으로 진행한 다음, 대곶어린이집 직전에 도로를 건너 들머리를 확인한다.

 

땡볕아래 제식훈련으로 지친 몸이, 시원한 숲속으로 들어서며 살판이 난다. 그늘 속에서 숨을 돌리고 능선을 오르면 곧바로 헬기장이 나타나고 정맥은 2시 방향으로 완만하게 이어진다. 밭고랑을 지나 철조망을 따라가면 “단성 이공” 묘역이 나타난다. 공장의 펜스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서고 86봉을 내려서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김포433 1987재설된 삼각점을 지나며 완만한 능선을 지나면 2차선 아스팔트포장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는 사거리에 도착한다.

 

석정리와 대곶면 소재지인 율성리를 연결하는 도로의 날머리에는“쓰레기 상습 투기지역 단속”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하지만 비웃기라도 하듯,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으니 양심을 버리는 행위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우리가 가장 먼저 고쳐야할 못된 습관이다. 왼쪽으로 8시 방향에는 만덕사 표지석이 있고, 도로 왼쪽에는 ‟축복의 땅 김포”라는 구호아래 ㈜청우, 진성전자 등 농공단지의 안내판이 있다.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진행한다. 주식회사 대기 이앤씨→ 팔거리 뷔페식당. 현대오일뱅크 광진 주유소→ 세명 공인중개사→ ㈜서일 김포공장→ 송가네 가든→ 갓굴길 삼거리→ 장승첨단산업단지 입구 삼거리→ ㈜국도기계→ SK경향주유소를 지나며 30여 분간 도로를 따라 동인기연 입구에 도착한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있고, 펜스에는 표지기들이 걸려있다.

 

장승 뒤로 들어서서 펜스 왼쪽으로 잡목을 헤치며 진행하면 컨테이너박스 왼쪽의 밤나무 숲으로 들어서서 뚜렷한 길과 만난다. 여기 재미있는 문구가 있으니 「밤나무 밧 드러가지 마세요 주인 잇씀이다 주인 백 」임도와 합류하여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삼거리에서 왼쪽의 뚜렷한 임도를 따라간다. 개사육장만 만나면 주눅이 드는 것은, 삼년 전 한북정맥을 종주하며 축석고개 못 미친 지점의 군부대 삽살개에게 혼이 난 뒤부터이다. 조막만한 삽살개를 섣불리 보고, 어설프게 걷어차인 삽살개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난투극으로 망신을 톡톡히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마을 뒤의 야산에는 수레길로 연결되고, 철조망과 묘지들이 산재한 숲속을 지나 철조망이 열린 곳에서 왼쪽으로 90˚ 방향을 틀어 능선을 내려서서 펜스에 뚫려 있는 개구멍을 빠져나오면 주위가 모두 공장지대인 콘크리트포장도로와 만난다. 정맥은 공장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복잡한 미로에서 돌파구를 찾아 헤맨다. 도로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선 뒤, 정면으로 공장이 보이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아주 낮은 해란산(60m)에 올라선다.

 

정맥은 왼쪽의 공장 절개지 방향이다. 뚜렷한 오른쪽 길을 버리고 절개지를 따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돌아서자, 왼쪽 건너편으로 한성신약과 공동묘지가 보인다. 한성신약을 바라보며 왼쪽(10시)으로 절 개지를 내려선 다음, 공장 담장을 따라가면 2차선 아스팔트포장도로가 나오고 도로 건너편으로 ㈜금성 공압이 있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 삼거리에서 90˚ 좌회전하여 ㈜KP테크 앞으로 간다. 오른쪽 숲속으로 들어서면 한성신약이 자리 잡고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마루금도 제자리를 찾아 능선으로 올라선다.

 

공동묘지에서 뒤돌아보면 지나온 능선과 공장지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서서, 정상에 초소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능선을 내려서고 개사육장이 있는 안부를 지난 다음, 철조망을 따라 능선을 올라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벤치가 있는 능선을 따라가면 삼각점(김포409 1987재설)이 있는 72.8봉이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철조망을 따라 안부삼거리에 도착한다. 철조망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왼쪽의 능선에 올라서면, 벙커 굴뚝이 있는 정상이다.

 

정맥은 왼쪽(10시 방향)의 내리막 능선으로 이어진다. “창원 김공”묘가 있는 곳을 지나 왼쪽으로 개사육장이 있는 포장도로를 건너고, “달성 서공” 묘지를 지나면 철조망을 끼고 능선을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현대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민가 1채가 있는 안부사거리에서 밭 가장자리로 올라 숲 속으로 들어선다. 80봉 정상에는 진지가 있고, 능선을 내려서서 안부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청룡사가 보인다. 쓰레기봉투가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솔밭을 지나, 절개지 오른쪽으로 내려서자 무의도 한방병원이 보이는 것고개에 도착한다. 것고개는 경기도 김포시와 강화군을 잇는 48번 국도가 한남정맥의 주능선을 가로지르는 왕복4차선 도로이다. 도로 건너편에 해병부대 정문이 있다.

 

                                     제 10 구간 : 것고개 - 보구곶리 / 14.5km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또 한해 겨울을 보내고 정맥을 시작한지 3년 만에 마지막 구간을 시작하는 출발선상에서 감회가 새롭다. 시샘하던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목덜미로 찬바람이 파고들어도 앙상한 나뭇가지에 통통히 물이 오르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화사한 꽃들이 피어난다는 기대감으로 새벽부터 배낭꾸리기에 여념이 없다.

 

한남정맥의 마지막 구간인 문수산을 찾아가는 길이 이다지도 번거로운지. 지하철을 이용하면 종로3가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여 송정역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싫어서 공항을 오가는 리무진을 이용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의정부 우체국 앞에서 20여분을 기다린 뒤에야 버스에 오른다. 설레임속에 부족한 잠을 청해보지만 원당을 지나며 일산으로 들어서더니 시내를 골고루 순례하며 1시간 만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또다시 지하철로 송정역까지 환승을 하는 통에,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고 6천원을 지불한 버스비가 아깝다는 생각에 기분이 영 말씀이 아니다.

 

송정역에서 강화 가는 버스로 통진읍을 지난다음, 청룡사 입구에서 내린다. 강화 쪽으로 48번 국도를 따라 덧고개 쪽으로 따라가면, “젊은이여 해병대로”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 너무도 우리에게 친숙한 구호가 아닌가? 월남 전선에서 무적해병의 용맹을 떨치던“귀신 잡는 해병”우리 국방의 보루로 든든하기 그지없다. 문수산을 향하는 들머리는 해병대 정문직전의 순대국집 골목으로 들어선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정맥은 푸른 미르1차아파트(황룡아파트)와 해병대 통진 교회를 차례로 지나고, 푸른 미르2차아파트(승용아파트) 계단으로 들어선다. 1동, 3동, 7동을 차례로 지나 잠겨있는 후문의 펜스에 뚫려 있는 개구멍으로 통과한다. 부대의 펜스를 따라가는 길이 갈수록 희미해지더니, 시궁창을 지나며 길도 없어지고 가시덤불속에서 안간힘을 쏟는다. 휴전선이 가까워 오는 최전방의 정맥을 더듬어가는 발길이 순탄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가?

 

자칫, 오해받기 쉬운 행동으로 이목이 집중될까, 걱정을 하며 끊어진 길을 찾아 숲속을 헤치며 사명감 하나로 굳은 의지를 다져본다. 부대 철조망을 따르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면천박씨 가족납골묘”가 있는 안부까지 승용아파트에서 40여 분이 걸린다. 통진읍과 월곶면의 경계선을 따라온 마루금이 월곶면으로 들어서는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90˚ 방향을 틀어 부대출입문을 지나고 철조망을 따라가면 “풍양 조공” 묘역을 지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고정리와 갈산리의 너른 들녁은 분단의 아픔도 잊은 듯, 평화롭기 그지없다. 계속해서 철조망을 따라가면, 경기도 기념물 제91호 고정리 지석묘가 나온다. 이곳 구릉지대에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고인돌이 모두 3기가 있다. 1기는 탁자식인데 덮개로 사용된 돌은 석영으로 길이가 약 2.3m, 두께는 0.83m이다. 나머지 2기는 받침돌 부분이 땅 속에 묻혀 있어서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다. 탁자식 고인돌은 한강 건너편의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校河面) 다율리(多栗里), 당하리(堂下里), 교하리(校河里) 등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들 고인돌을 통해서 일찍부터 한강 유역에 취락생활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 백과사전 -

 

지석묘를 지나서 나타나는 삼거리에서 90˚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넓은 수레 길을 따라가면 남정골고개에 도착한다. 김포시 월곶면과 통진읍을 연결하는 12번 군도는 왕복2차선 포장도로다. ‟숲속의 정원조용한 분위기”의 문구가 있는 고을가든 간판이 있는 곳에서 도로를 건너 절개지로 올라선다.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왼쪽으로 진행하여 내용을 알 수없는 삼각점이 있는 95봉을 지난다.

 

95봉에서 왼쪽(10시 방향) 능선으로 내려선다. 걷고 또 걸으며 몸으로 세상을 열어가노라면, 나약하던 몸에도 생기가 살아나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숲을 헤치며 행복의 순간을 만끽한다.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는 말을 몸소 실천하므로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게 된다. 좌·우로 공장지대가 보이는 비포장도로를 건넌다. 펜스로 둘러친 기독교인 묘역에는 “죄송합니다. 돌아가세요.” 이 얼마나 부드러운 문구인가.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속언대로, 예의바른 충고에 흠이 가지 않을까. 조심스런 몸가짐으로 현장을 빠져 나간다.

 

왼쪽으로 능선을 올라 105봉을 지나고, 왼쪽으로 휘어지며 능선을 내려서면, 돼지축사와 개사육장, 골프 연습장, 에덴농축의 건물을 차례로 순례하며, 포장된 마을길을 따라 도로를 지나 1차선 도로가 지나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에덴농축, ㈜금강이엔지, 로뎀고개사거리, 부대 정문 앞, 경포농장, 연경농장을 차례로 따라가면, 왕복2차선 도로가 지나는 56번 군도 삼거리에 도착한다.

 

왼쪽은 월곶면 소재지이고, 오른쪽은 개곡리와 다도박물관, 애기봉 방향이다. 애기봉 쪽으로 조금 진행하여, 아이젠 정문 앞에서 도로를 건넌 다음, 부대 담장 왼쪽으로 능선을 올라 “김해 김공” 묘를 지나 삼각점(H-8754 335FOB)이 있는 80봉정상을 통과한다. 가는 길이야 갈지자를 그리고 있지만, 점점 가까이 보이는 문수산을 조망하며 진행한다. 부대 펜스를 따라가는 길엔 잘 생긴 소나무가 반겨준다.

 

나른한 봄날오후. 양지쪽엔 샛노란 생강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완만한 능선의 솔푸더기 사이로 진달래의 화려한 꽃 잔치가 펼쳐진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국토를 종주 하노라면, 계절마다 새로운 환경에 흠뻑 빠져, 육신의 고달 품도 잊은 채, 자연의 품속에서 나만의 행복에 취하고 만다. 소나무숲속에는 각개전투 훈련장이 펼쳐지고, 정상에 올라서면, 삼각점(H-9227 331FOB)과 벙커가 있고 “총검술” 과 “백병전” 표지판이 있다.

 

정맥은 왼쪽(11시 방향)으로 내려선다. 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고 언덕이라 하기에는 높은 구릉지대의 숲속을 지나는 정맥은 문수산을 목전에 두고, 한껏 몸을 낮추어 바닥으로 긴다. 우리국토의 70%가 산악지대 이면서도 정작 2.000m 가 넘는 산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축복받은 땅인가? 우리보다 면적이 작은 대만의 옥산이 3.952m 이고, 세계의 지붕으로 부르는 희말라야에서는 5.000m의 산도 언덕으로 부르고 있다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

 

비포장 임도를 건너 능선을 올라 88봉을 지난다. 91봉에는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다. 문수산의 전면이 점점 가까워지고, 울안니 마을과 조강저수지 너머로 한강하구와 애기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마을로 내려서는 임도가 자주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마을이 가깝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22번 군도를 따라 남쪽으로 고읍동과 텃골이 내려다보이고 월곶면의 분지위에 면소재지까지 시원하게 펼쳐진다.

 

헬기장에 올라서면 문수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고, 임도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면 차선 없는 포장도로가 지나는 22번 군도에 도착한다. 한쪽에는 “쌍용대로”의 표지판이 있다. 도로를 건너면 소나무 숲이 너무 좋다. 시원한 그늘 속으로 문수산을 오름길이 시작된다. 군 시설물이 있는 70봉을 지나며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안부로 내려서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직진하여 수레 길을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시야가 터지는 곳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조강저수지와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 월곶면 일대의 넓은 들판과 마을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바위지대를 지나며 경사도 가팔라지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조망이 좋아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능선을 따라 문수산(376m) 정상에 올라선다. 너른 헬기장이 펼쳐지는 정상에는 정상석과 삼각점(문수산21 1981복구(재설))이 있다. 바닷가에서 솟아오른 376m의 정수리는 평지돌출형의 거대한 산으로, 700~800m의 천마산보다도 전망이 좋아 사방 100리 밖에서도 굽어볼 수 있는 조망 터라 할 수 있다.

 

문수산은 높이가 376m로 경기 김포시에 소재한 산이다. 김포가도를 달려 월곶면에 이르면 김포평야의 정상에서의 조망은 인천광역시 앞바다에 떠있는 영종도와 서울의 도봉산과 북한산이 마루금을 이루고, 서쪽의 강화도와 북쪽의 송악산까지 보이는 서부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이 한가롭게 조망을 하고 평일이라 인적이 별로 없는데도 여전히 막걸리 통은 제 자리를 지키고, 컬컬하게 넘어가는 막걸리 잔에 지난 3년간 군부대와 골프장, 마을과 공장의 골목길을 누비며, 지나온 한남정맥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180여km의 긴 여정을 마무리 하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동쪽으로 조강저수지 너머로 우뚝 솟은 애기봉은 지난해 이곳에서 연계종주한 곳으로, 간단하게 정리를 해본다. 조강 저수지를 바라보며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서면, 곧바로 울 안니 마을로 들어선다. 휴전선이 지척에 있는 오지마을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 그림 같은 팬선 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동구 밖의 포장길을 따라 저수지를 향하는 중에 한 무리 철새들이 천국을 이루고, 조강저수지 뚝 방 길을 돌아가면 해병대의 초소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문수봉을 거쳐 애기봉으로 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이곳은 민통선 지역이니 조강리 마을로 들어가 남쪽의 마원동(2km)으로 가면 애기봉가는 길이 나타난다는 설명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산등성이 하나만 넘으면 되는 곳을 5km나 되는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맥이 풀린다. 사실 이곳은 최전방의 민통선이므로 겹겹이 외워 싼 철조망에다 경비 또한 삼엄한 곳이라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는 곳이다. 조강리 마을에서 원주민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석원동 마을입구에서 동쪽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른다.

 

제법 널찍한 비상도로를 따라 10여분을 올라서면 고개 마루에 이르고 십자로 안부에서, 동쪽으로 5분간 내려서면 애기봉 가는 포장도로를 만난다. 북쪽으로 길을 따라가면 애기봉 전망대출입 신고 소에 도착한다. 너무도 수월하게 목적지에 도착한 기쁨으로 한달음에 초소 안으로 들어갔지만, 걸어서는 갈수가 없고 차량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는 설명에 난감해 하던 차, 옆에서 신고서를 작성하던 분의 호의로 동석을 하여 애기봉의 전망대에 도착을 한다.

 

춘삼월의 따사로운 햇살아래 강건 너 북녘 땅의 개풍군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155마일 휴전선에서 이북 땅이 가장 가까운 전망대(700야드)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가히 장관이다. 동쪽으로 오두산성 앞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하나 되어 얼싸안고 드넓은 강 하구에 모래톱을 만들었으니, 북쪽의 황소가 이강을 건너 남으로 왔다고 하지 않는가? 또 한 크리스마스가 되면 오색찬란한 트리에 점등을 하여 북녘동포들에게 밝은 복음을 전하는 곳으로 수직 절벽위에 조성된 2층 전망대에 오르면 망원경이 아니라도 북쪽의 마을과 산천초목 까지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애기봉의 전설 - 1636년 조선 인조14년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범한 丙子胡亂 時 평양감사는 가장 사랑하는 애첩 “애기”를 데리고 수도 한양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감사는 강 건너 개풍군에서 청나라 오랑캐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한강을 건너 이곳 김포반도 조강리 마을에 머물며 매일같이 이 봉우리에 올라 일편단심으로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병이 들어 죽어 가면서 이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이 전해 오는데 1966년 10월 7일 이곳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 사실을 전해 들으시고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들의 슬픔과 같다는 뜻에서 이 봉우리를 애기 봉으로 명명하시고 친필휘호로 비석까지 세우면서 애기봉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상의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오르지 못하고, 부대 철조망 오른쪽으로 로프가 있는 능선을 한차례 내려서고, 왼쪽으로 타이어로 만든 방공호를 따라 전위 봉에 올라선다. 이곳에서의 전망도 너무 좋아 강화대교와 강화도 일대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오늘의 종주 길에서 가장 위험한 비알 길을 내려선 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왼쪽과 직진길을 택해 암문에 이른다.

 

고도를 낮추며 내려서는 전망대마다 한강하구의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바다와 맞닿은 조강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강 건너 북녘 땅이 벌거숭이로 을씨년스러운데,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경계삼아 철책선이 가로 놓이고 지구상에 하나뿐인 분단의 현장에서 우리의 가슴 아픈 현실을 되돌아본다.

 

철조망이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능선을 내려서고, 전망 좋은 벙커위에 올라서면 포근하게 누워있는 머머리 섬(유섬)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오두산성 앞) 지점에서 이곳까지를 조강(祖江)이라 부른다. 할애비강으로 아들강인 임진강과 한강을 아우르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孫子江으로 수많은 자손들을 거느리며, 품안으로 받아들인 다음 강으로서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표지기가 걸려 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정맥은 직진을 해야 하지만 전방으로 철책선이 있어 부득이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10여 분간 숲길을 내려서면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간판 옆으로 내려서며 한남정맥도 그 여정을 마감한다. 육중한 바리케이트와 철조망이 있는 군 초소를 뒤로하고 보구곶리 마을을 지나는 바다 쪽으로 육중한 철조망이 계속 따라온다.

 

뜸 뜸이 지나는 마을버스를 기다리기가 지루하여 천천히 걷는다. 새로 복원된 북문을 지나면, 문수골 삼림욕장이 나오고, 육지인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강물처럼 흐른다하여 염하라 부르는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1시간동안 부지런히 걸어 강화대교가 있는 성동리 정류장에 도착한다. 성동리 정류장에서 문수산 쪽으로 새로 복원한 문수 산성이 있다.

 

사적 제139호인 문수산성(文殊山城)은 포내리에 있는 문수산의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곽 길이 2.4km의 성채로서 강화도를 건너는 길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기록에 의하면 문수산성은 조선조 숙종 20년(1694년)에 축성되었고 순조 때 대대적으로 중수되었으며 고종 때 일어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르면서 해안 쪽의 성벽이 파괴되고 문루가 불탔다. 지금은 산성 북문과 일부 성곽을 1995년 사적 지정 이후 복원된 것이다.

 

병인양요(丙寅洋擾)라 함은 프랑스가 조선조 말인 1866년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프랑스 신부 9명을 학살한 것을 빌미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을 가리킨다. 1866년 프랑스 함대의 로즈 제독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문수산성과 마주하고 있는 강화도 갑곶진(甲串鎭)을 공격하여 강화성을 점령한 후 그 여세를 몰아 문수산성을 공격하게 된다. 이에 대원군의 명을 받은 한성근(韓聖根)이 별파군 50명을 이끌고 산성에서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으나 성을 점령한 프랑스군은 성 안에 있는 민가를 모두 불태우고 마구 유린하였다.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의 외규장각에는 전란에 대비하여 6,400여 도서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사료적 가치가 높은 340여 책을 본국으로 보내고 나머지 도서는 외규장각과 함께 불 태워 없앴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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