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박인환 문학제 탐방기
주관 : 양천 문학회
일시 : 2009년 10월10일
장소 : 강원도 인제군, 예술의 전당
예고에도 없던 문학기행의 통보를 받고 보니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마음이 설렌다.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라, 여러 곳으로부터 초청장이 쇄도하고 즐거운 비명으로 고민이 많지만 양천 문학회의 행사를 소홀히 할 수 있는가.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는 마음은 어느새 문우들과의 어울림 속으로 빠져든다.
세심한 배려로 모임의 행사마다 뒷바라지를 마다않는 아내는 이번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배려함인지, 회원들의 먹 거리를 준비하느라 밤새도록 부산을 떤다. 아침 8시에 목동의 진명여고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늦지 않으려면 의정부에서는 새벽부터 서둘지 않으면 안 된다.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들려주는 따끈따끈한 보따리.... 손에 닿는 촉감이 너무도 좋다. 아내의 온기가 전해지는 사랑이, 도시락의 온기보다도 더욱 내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지하철의 냉기도 사랑의 용광로 속으로 녹아들고, 한강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더욱 눈부시다.
한 달 만에 만나는 문우들이지만, 야외 나들이의 설 레임 속에 모두들 홍안 소년들처럼 화색이 만발한다. 우리의 일정은 “제10회 박 인환 문화축제”에 참가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중간에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 을 들리기로 한다. 집행부의 세심한 배려에 우리 모두 박수로 화답을 하고, 이 덕주 사무국장이 들려주는 소설가 황순원의 일생을 회고하며 더욱 큰 감명을 받는다.
소설속의 무대로 등장하는 양수리는 언제 보아도 감회가 새롭고, 벗 고개를 넘어가면 청계산자락에 서정시가 흐르는 무대가 펼쳐진다. 아늑한 분지 속에 그 분의 업적을 기린 문학관이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하나하나 일깨워준다. 촉박한 일정으로 30여 분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인제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조약돌 하나를 힘껏 집어던지면 경쾌한 파열음으로 산산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푸른 하늘. 그 아래 낮은 산모퉁이 사이로 펼쳐지는 다랑논은, 수 백 번도 넘는 농부들의 손길이 머물렀기에 그 기쁨이 배가 되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숨 막히는 빌딩의 그늘 속을 탈출하여 싱그러움이 넘치는 농촌의 들녘을 지나며, 검게 타들어가던 우리의 가슴속이 시원하게 정화된다.
우리의 목적지인 인제는 강원도 중동부 지방의 협소한 분지에 자리 잡고 있는 전국에서 가장 큰 군으로, 자연경관이 빼어난 설악산을 품고 있어 사시사철 행락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문이다. 해서 4차선의 시원하게 뚫린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로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60년대 도로가 제대로 뚫리기 전. 전방으로 배치되어가는 장병들이 첩첩산중 골짜기를 따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비포장 길. 군용차량의 화물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배고 품과 추위에 떨며 고향생각에 목이매여,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눈물 짖던 이 길이 이제는 웃으며 달려가는 옛말이 되지 않았는가?
신남리를 지나며 산굽이를 따라 펼쳐지는 뱃길 150리의 소양강이 우리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낸다. 참으로 장관이다. 갈수기라 물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겨울이면 빙어 축제로 여름이면 레프팅으로 자연이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인제야 말로 우리에게 귀중한 자산의 보고라 할 수 있겠다.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하늘의 애드벌룬, 거리의 현수막이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가장 먼저 반긴다. 행사장인 “인제 하늘내린 센터”로 명명된 건물은 인제군의 예술의 전당이다. 이름부터 예술적인 감각을 지닌 행사장에는 친절한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로 질서정연하고, 거리시화전과 식전공개 행사로 펼쳐지는 박인환 시인의 일생을 극화한 연극은 오늘의 행사를 한층 더 고조시킨다.
관광버스가 도착할 때 마다 전국의 문인들이 모여들고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문병란 시인의 사인회”가 진행된다. 오후3시부터 시상식 행사가 시작되는 식장에는 500여석이 넘는 좌석이 입추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많은 문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박인환 시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마음이 한곳으로 모였으니 고무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식순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는 행사는 박인환 시문학상 시상식과 시낭송을 겸한 퍼포먼스에서 절정을 이루며, 장내에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는 박인환 시인의 고귀한 뜻을 계승하려는 후배 문인들의 힘찬 외침이라 할 수 있다. 1926년 인제에서 태어나 30세의 짧은 생을 살아온 시인의 일생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의 암흑기에 현대 문학사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활동을 하다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고 말았으니 너무도 애석한 일이다.
천재시인을 배출한 인제의 문인들이 그분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기리고 계승 발전하기 위해 “내린 문학 동아리”를 발족한지 10여 년 만에 전국의 축제로 승화 발전하였으니, 우리 모두 부러워할 일이고 본받아야 할 일이다. 오늘의 행사를 지켜보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은, 인제 문인들의 피나는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박삼례 인제 군수님의 문학 사랑의 열정이라 할 수 있다.
인제군은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3만여 명에 불과하고, 휴전선과 접한 산간 오지라는 불리한 여건으로, 생산 공장 하나 없이 자립도가 전국에서 가장 빈약한 고장이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문학제를, 군민이 일심동체가 되어 전국의 어느 대회보다도 알차고 성숙한 대회로 승화시킨 군수님의 문예 진흥과 창작활동의 뒷받침의 결실로 타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우리 문인들의 활동무대가 협소해지는 이때, 인제군의 문화사랑은 우리 문인들의 절실한 바램이다. 귀경하는 시간관계로 모든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박인환 시인님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되뇌어 본다.
세월이 가면 / 박인환 1956년 지음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 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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