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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설화가 만발하는 낙동정맥

 

낙동정맥 왕릉봉(631m)

한티재 (430m) - 검마산 휴양림 임도 (620m)

 

 


산행일시: 2008년 1월 12일 11시 30분 - 16시 30분     산행시간: 5시간     산행거리: 약 16km

소 재 지: 경북 영양군 수비면 (오기리-칠성리-가천리-송하리)   금수 산악회   참가인원: 25명  날 씨 : 흐림

 

 


낙동강이 태백의 황지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의 하구언 까지 장장 513km를 흘러오며 함께 아우르는 산맥을 낙동 정맥이라 부르며 대간의 종주를 마치고나면 다음으로 찾아가는 곳이지만 서울에서는 지리적인 여건으로 좀처럼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2-3년 전부터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일반인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매주 문자 메시지로 연락이 오는 박 효종 회장님의 정성이 고맙기는 하지만 700여산을 오르다보니 안내 산악회의 행선지는 거의 다녀온 곳이라 함께 산행을 할 기회가 없어 미안 하던 차 오지산행 낙동 정맥의 제 7구간이 모처럼 구미에 당겨 예약을 하고 보니 지도에도 표시가 없는 곳이고 대표적인 산도 없으니 막막하기 그지없어 인터넷을 뒤적인 뒤에야 검마산과 백암산의 근처라는 것을 알게 된다.

 

 


훈풍이 불어오는 겨울 날씨가 소한추위도 없이 수월하게 넘기며 올겨울도 별 추위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산행 날짜만 잡아 놓으면 영락없이 굿은 날씨로 변덕을 부리고 있으니 이 무슨 조화인지. 목요일 밤부터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 날씨는 토요일 오후에나 개이고 강추위가 몰려온다는 예보에 따라 착잡한 마음에 험준한 정맥 길에서 생고생이나 하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으로 굿은 날씨에 집을 나서기가 망설여지지만 모처럼 박 회장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어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배낭을 꾸리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아직도 먼동이 터오기에는 이른 6시30분. 군자역 5번 출구에 신동아 관광이 대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올라서니 낮선 기사가 접수를 받고 있어 의아한 생각에 물어보니 박 회장은 러시아로 출장을 갔다는 대답에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맥이 풀린다.

 

 

사실은 산보다도 오래간만에 박 회장과 회포를 풀려고 했던 것인데 이마저도 어그러지고 말았으니 어찌 하겠는가?  산 꾼이 산을 마다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강남으로 복정역으로 순례를 하며 40인승의 안락한 좌석도 다 채우지 못하고 경상도의 산간마을 한티재를 향하여 출발을 한다.

 

   

 

 

 

 

 이틀이나 내린 눈이 제법 많은 양으로 고속도로의 주위가 온통 눈으로 뒤덮이고 치악 휴계소의 전나무들이 눈의 무게에 짓눌려 가지가 축 늘어진 그림속의 동화의 나라에 온 듯 별천지를 이루고 죽령터널 지나 남쪽으로 달릴수록 눈의 양도 적어지며 구름 속에서 간간이 태양이 얼굴을 내 비친다.

 

 

영주를 지나 봉화 터널을 빠져 나오면 우리의 목적지인 영양 땅으로 들어선다.  우측으로 영양 제일의 고봉인 일월산(1,219m)이 구름 속에 잠겨있고 발길이 뜸한 경상도에서 영양군은 처음이라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설 레임으로 주위를 살펴보지만 첩첩산중의 오지마을이 三冬의 추위 속에 잠들어 있다.

 

 

 


자동차의 왕래가 뜸한 한티고개는 제설작업도 이루어 지지 않은 빙판길에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으로 산마루에 도착하니 눈은 그쳤지만 앞뒤의 연봉들이 운무 속에 자취를 감추고 바람한 점 없이 착 가라 앉은 날씨가 고단한 육신에 무거운 짐 하나를 더 얹어 놓은 듯 가슴이 답답하다.

 

 

 

 

 

토요일 아침의 텅 빈 고속도로를 질풍같이 달려와도 11시 30분에야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도 망설임 없이 눈 속으로 빠져든다. 수북이 쌓인 눈 속에 발자취를 남기며 미로 속을 찾아가는 길목에는 산객들의 소원이 담긴 표지기 들이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고 수월하게 몇 구비의 무명봉을 지나치면 낙락장송 허리춤에 시비가 걸려있으니 양주동님의 “산 길”이다.

 

 


산길을 간다 말없이/  홀로 산길을 간다/ 해는 져서 새소리/ 새소리 그치고/ 짐승의 발자취

/ 그윽히 들리는/  산길을 간다 말없이/ 밤에 홀로 산길을/  홀로 산길을 간다.


고요한 밤 어두운 수풀/ 가도 가도 험한 수풀/ 고요한 밤 어두운 수풀/ 가도 가도 험한 수풀/

별 안 보이는/ 어두운 수풀/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멀다.


바리톤 윤치호님의 음색을 되 뇌이며 한 구비 돌아서면 이번에는 박 목월 님의 (산이 날 에워싸고) 시비가 한얀 눈 속에서 우리를 반겨준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당 안팍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일월산의 정기를 받은 이곳은 충의 열사들과 문인들을 배출한 선비의 고장으로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유명한 이문열 작가의 고향이며 조광조의 후손이 살고 있는 주실 마을은 한양 조씨의 집성촌으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 호은 종택이 있고 “시원” 창단과 저항 시인 오일도의 생가와 시비가 있는 문인들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문학의 고장이라고 영양 군청에서는 소개하고 있다.

  

 

 

 


눈 속을 지나치는 봉우리마다 우리의 삭막하던 가슴에 불을 지피고 구중궁궐의 들보 감으로 천수를 누리고 있는 금강송의 향기에 취해 발걸음이 빨라지는데 예리한 칼날아래 난도질당한 밑둥치는 우리 인간들의 잔인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가슴 아픈 현장이 아닌가? (송진 채취를 위한 모습)  투덜투덜 푸념을 하며 눈길을 내려서면 우천 마을이 보이고 밭둑길을 지나 송림 속으로 정맥 길이 이어진다.

 

  

  

   

 

  

사방을 둘러봐도 논이라고는 단 한 평도 없이 완만한 산자락을 타고 비알 밭이 펼쳐지는데 공기 좋고 산수 좋은 이곳에서 재배되는 고추가 전국 제일의 명성을 얻고 있는 영양고추가 아니던가? 

 

 

 

 

더하여 시원하게 뚤 린 정맥의 길목마다 이정표를 세우고 쉬어갈수 있는 나무의자를 만들어 그 어느 대간길보다도 정비가 잘 되어 있으니 바람결에 스쳐가는 정맥 길이지만 양반고을의 후덕한 인심에 감사드리며 완만한 능선을 넘나들며 “처사 단양 장공 한벽 지묘”를 내려서면 곧 바로 추령에 도착한다.(13시 20분)

 

 

 

  

한티재와 덕재의 중간거리인 6.6km 지점에 있는 추령은 포장길인지 비포장 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많은 눈이 쌓여있고, 일명 가랫재 라고도 부르는 곳으로 일월면 가천리에서 수비면 오기리로 넘나드는 고개 마루인데 골짜기를 따라 거슬러 오른다는 *갈림*의 뜻과 가래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의 이정표에는 1.1km 지점에 오기저수지가 있다고 하지만 연무로 시야가 가려 볼 수가 없고 오늘의 산행 중에 가장 난코스라 할 수 있는  635봉 오름길은 설화가 절정을 이루는 구간으로 시베리아의 설원 속에서 썰매를 끌던 순록들이 거추장스러운 뿔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듯 빽빽한 나뭇가지들이 갖가지 형상의 녹용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으니 세상의 어느 조각가가 이를 흉내 낼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오묘한 이치에 감복하며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도 녹용 열 첩보다도 값진 보약을 마시고 보듬어 보는 손길에 한 겨울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명약이 지천으로 널려있지 않은가?

 

 

 

 


635봉에 올라서면 완만한 능선 길에 설화가 만발하고 소나무와 철쭉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평평한 안부에 밑 빠진 가마솥이 휜 눈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발길로 눈을 쓸어보며 주막거리인지 화전민 터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심심산골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50,000/1 지도에는 오기리에서 죽피 마을로 이어지는 산길이 표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것으로 추정을 해 볼 수가 있다.

 

 

 

 

별 특징이 없는 구간에서 집터의 가구들을 발견하는 쾌감으로 콧노래 흥얼거리며 무명봉 하나를 넘어서면 남쪽으로 전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는 공터에 이르고 다래 넝쿨과 가시덤불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설화를 피워내는데 우리의 눈이 사물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일억 화소라는데 500만 화소의 카메라로 얼마나 정교하게 담아낼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하루 종일 눈 속을 헤치며 시달려온 다리는 천근만근 눈 속으로 빠져들고 등산화 속으로 습기가 차오르는 고통 속에 631봉이 왜 이다지도 높아만 보이는지 갈지자로 어기적거리며 올라선 정수리에는 찬바람만 불어오고 지척에 왕릉 봉으로 명명된 635봉이 있다고 하지만 지친 몸에 찾아보기도 귀찮고 덕 고개를 향해 발걸음을 이어갈 뿐이다.

 

 

 

 

재미있는 일화로 한티 재에서 검마산 임도까지 장장 15km가 넘는 구간에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운 봉우리들이 올망졸망 솟아 있지만 이름표하나 달고 있는 산이 없기로 어느 사진작가가 왕의 능처럼 생긴 봉우리를 바라보며 읍 조린 것이 시작이 되어 정맥의 개념도에도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지섣달의 짧은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고 깊고 깊은 계곡으로 산 그림자가 드리우는 16시. 드디어 덕재에 도착했지만 우리의 앞길에는 3km의 여정이 더 남아 있다.

 

 

 

 

 

전망 좋은 절개지 위로 올라서면 하루 종일 운해 속에 몸을 숨기던 오기리 들녘이 활짝 열리며 한티재가 빤히 바라보인다.  직선거리로는 4km에 불과한 거리를 V 형태로 돌고 돌아 물길을 피해 달려온 거리가 12km에 이르니 대간의 종주길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즐거움이 아닌가?

  

 

 

 

 

고도를 높이며 지그재그로 다람쥐 체 바퀴 돌리는 주능선은 열두 폭 치마의 주름을 잡아 놓은 듯 가도 가도 제자리를 맴돌고 남쪽의 오십봉(826m)과 전면의 검마산 그 너머로 백암산(1,003m)이 구름사이로 간간이 얼굴을 내 비추며 어슴푸레 짙어가는 노을 속에 어둠이 드리우고 급해지는 마음을 다스리며 630봉을 올라서니 드디어 발치 아래로 임도가 모습을 들어 낸다.

 

 

사실 대간 길로는 멀지않은 구간이지만 하루 종일 눈 속을 헤치는 강행군에 녹초가 되어 그 어느 구간보다도 힘이 들었지만 1.5km의 임도만 내려서면 된다는 자신감에 새로운 용기가 나고 16시 20분 사곡 마을에 있는 검마산 휴양림에 도착하며 무자년을 시작하는 서설산행도 무사히 마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