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한설 몰아치는 소백의 대간 길
국망봉 (1,420m), 상월봉 (1,394m)
산 행 일: 2007년 1월 6일 11시 - 18시 산행시간 : 7시간
소 재 지: 충북 - 단양군, 경북 - 영주시 날 씨 : 북풍한설 몰아치는 악천후 동행인원: 37명
산행거리 : 약 19km ( 마루금 -11km , 접속로 8km) 뫼솔 산악회 , 회비 ; 25,000원
소한 추위 앞세우고 폭설이 쏟아지니 고속도로 달려가는 버스도 질 겁을 하고 구름사이로 태양이 숨바꼭질을 하는 가운데 죽령터널을 지나면 경상도 영주지경으로 풍기읍내 나들목을 빠져 나와 915번 도로를 따라 순흥면과 단산면을 두루 거치며 북쪽으로 솟아 오른 소백산이 유순하고 부드러워 만만하게 보인다.
겨울산행의 진수라면 소백산이 으뜸이라 백두대간 종주 길에 건너뛴 곳이 국망봉 - 고치령 구간으로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정해년의 산길을 여는 길라잡이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고치령을 들머리로 하는 팀들이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용달차(1회 사용료 30,000원)는 좌석리에서 5km가 넘는 산 구비 길에 시간을 벌기위한 방편으로, 지난밤에 내린 눈으로 대못으로 징까지 박은 후에야 화물칸에 짐짝 실리듯 엉덩이를 비벼대며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10시 30분)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으로 고개 마루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400여 m 못 미친 지점에서 하차하여 올라가는 것도 감지덕지로 눈발이 휘날리는 고치령에는 대간 길을 지키는 장승들과 산신각이 외롭게 졸고 있다. (11시)
남쪽으로 열리는 대간 길이 국망봉까지 11km의 짧은 편이지만 접속로가 8km에 이르고 동지섣달의 긴긴밤에 불순한 일기로 상황의 변화를 예측 할 수가 없어 곧 바로 815봉을 향해 급사면을 치고 오르며 안간힘을 쏟는다.
간간이 햇볕도 비추며 우리의 마음도 흐렸다 개였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30여분 만에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1,032봉에 올라 거세지는 눈보라를 피해 마스크와 털벙거지에 장갑도 한 켤레씩 더 끼고 덧 경으로 중무장을 하고 보니 우주인처럼 우수꽝 스러운 모습들 이지만 악천후를 이겨내는데 모양이 대수란 말인가?
잠시 후 형제봉 갈림길을 지나치는데 이곳부터 충북의 단양군과 경북의 영주시가 경계를 이루며 죽령을 지나 대간 길을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무명봉을 넘어서면 잘루목이 안부에 마당치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영춘면의 남천리와 단산면의 좌석리는 두 마을의 거리가 멀어 왕래는 별로 없는 듯 보이고 대간길을 오르내리는 산 꾼들이 쉼터로 이용하는 곳으로 추측을 해본다. (12시 05분)
다시 치솟는 무명봉. 사면 길에 쌓인 눈으로 넘기 힘든 고비길.
힘주어 내려찍는 스틱도 얼음 깔린 산길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지기 일수 이고 나무등결 부여잡고 씨름을 하다보니 발걸음이 무뎌지고 가까스로 올라선 1,031봉.
자신만만하던 기백은 어디로 가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조금도 허구가 아닌 듯 마음만 청춘이면 무얼 하나 속절없이 늙어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인 것을. (12시 35분)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앞산의 모습도 신기루처럼 가물거리지만 신이 빗어 놓은 설화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순백의 산호초로 피어나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환상적인 조형물 앞에 가던 길을 멈추고 셔터 누루기에 여념이 없다.
무릅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북풍한설에 몸부림치며 고목의 꼭대기에서 자생하는 겨우살이가 길가에 널 부러져 (약용으로 특효가 있음) 탐이 나지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처지에 어찌 손길이 미치겠는가?
아쉬움을 남 긴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눈발 속에 서있는 이정표가 반가워 달려가 보니 고치령 5.8km 국망봉 5.3km의 안내문으로 2시간 반이나 사력을 다해 걸어온 길이 절반밖에 안된다니 허탈감속에 앞으로 헤 처 가야할 길이 멀어만 보인다.
표시도 없는 헬기장.
바람도 잔잔한 공터에 자리를 잡고 민생고를 해결하기위한 잔치가 벌어지는데 홍어회에 겨울철의 별미인 과메기, 곁들이는 소주로 지친 몸을 달래주고 행동식으로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13시 30분. 식사시간 15분)
일행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자리를 뜨지만 스틱을 잡은 손마디에 감각이 없어지고 발가락 까지 시려오니 불안한 마음에 탈출로도 없는 오지에서 불상사라도 생기면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어 속도를 늦추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오늘의 구간이 700여m의 고치령에서 1,420m의 국망봉까지 큰 기복도 없이 11km 에 걸쳐 완만한 오름길로, 봄, 가을이라면 수월하게 달려갈 구간이지만 많은 눈이 쌓인 탓에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물먹은 솜뭉치처럼 촌보도 내딛기 힘이 드는데 설상가상으로 앞서간 일행들의 발자취가 눈보라 속에 뭍 혀 버리고 질펀하게 펼쳐지는 설원위에서 난감하기 그지없다.
간간이 나타나는 구조요청 비목의 번호를 암기하며 눈길을 헤치는데 비로봉에서 출발을 했다는 종주팀을 만나 서로 격려를 하고 무운장구를 빌며 등로를 이탈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으로 새로운 용기를 갖고 쌓였다 없어지는 눈의 성을 수도 없이 넘나들며 작아진 그루터기의 가지에 이마를 얻어맞고 혼미하던 정신이 번쩍 든다.
오매불망 애타게 기다리던 늦은맥이 고개가 1 km 남았다는 이정표는 사막을 헤메다 오아시스를 문턱에 둔 기쁨이라고나 할까? 꺼 저 가는 등불이 되살아나는 반가움에 용기를 갖고 발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수월하게 다가오지를 않는다.
삼년 전
소백산을 종주하며 구인사로 내려간 늦은맥이 고개는 깊은 눈 속에 잠들어 있고 신선봉 쪽으로는 한 겨울 내내 오간사람이 없는지 적막하기 그지없는데 주위를 분간 할 수 없는 악천후 속에서 사진 한 장으로 만족하며 서둘러 안부로 내려서니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길목에 많은 리본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15시)
지척에 있는 상월봉의 모습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있고 키 작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분지에는 거센 눈보라가 온몸을 날려버릴 듯 거세게 몰아치며 중무장한 자켓 속으로 파고드는데 품속에 간직한 카메라가 얼었는지 작동을 멈추고 만다.
앞서가는 일행이 우회로를 제쳐두고 굿이 상월봉의 암릉길을 택하는데 뒤 따르는 우리야 별수가 있나. 한 끈에 묶인 자반 신세 인 것을,
얼음이 깔린 바위 밑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정수리에 올라서니 전망 좋은 이곳도 주위를 분간할 수 없는 악천후의 포로가 되어 허망한 가슴 부여안고 국망봉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15시 45분)
바람아! 바람아! 칼바람아!
너의 위력이 얼마인지 헤아릴 길이 없다마는 60㎏의 가냘픈 이내몸을 사정없이 몰아치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천근만근 무너지는 몸을 추 수리며 나무계단을 딛고 올라선 국망봉에는 세찬 바람속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비로봉 까지 펼쳐지는 너른 분지도 악천후 속에 묻혀 버리니 허망하기 그지없고 뼈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참기가 어려워 서둘러 자리를 뜨고 만다. (16시)
비로봉 쪽으로 300 여m 를 진행하면 좌측으로 초암사 내려가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고 이제까지의 고생도 끝이 나고 하산길만 남았다는 안도감에 서둘러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서니 모진 광풍도 미치지 못하는 아늑하고 포근한 안식처로 천국이 따로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50 ~ 60도의 급경사 에 유리알처럼 반들거리는 빙판길에서는 두 다리가 땅에 달라붙어 오금이 저려오는데 아이젠을 차고서도 방심할 수가 없고 한번 미끄러지는 날에는 계곡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십상이라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어둠이 계곡을 쓸어 덮고 악마의 소굴처럼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가까스로 내려선 봉두암 (석륜암터)의 너른 분지에는 근처에 우물도 있어 비박하기 알맞은 곳이라지만 초암사 까지 3,4km 의 길고긴 계곡이 우리의 한가로운 휴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16시 25분)
계곡으로 내려설수록 어둠의 그림자가 우리의 주위를 감싸는데 헤드램프를 켜야 할지 망설이는데 3명의 일행들이 묵묵히 발걸음만 재촉하고 있으니 가는데 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눈에서 발산되는 반사광으로 빙판길을 열어간다.
혹한 속에서도 등줄기가 후줄근하도록 내달리며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계곡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울창한 소나무와 낙엽송의 군락을 지나며 드디어 목마르게 기다리던 초암사에 도착을 한다. (17시 15분)
의상대사가 창건을 했다는 초암사도 요 근래 중창을 한 탓인지 산뜻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대적광전을 비롯해 여러 채의 전각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직도 주차장까지 3.4km가 남았다는 안내문을 보고는 기겁을 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을 헤집고 꽁지가 빠지도록 내달린다.
길옆으로는 그 유명한 죽계구곡의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지지만 한가롭게 둘러볼 처지도 아니고 길고 긴 계곡을 따라 발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치며 내 뒤로 많은 일행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며 배점초등학교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하며 험난한 산행도 마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18시)
선두로 내려온 5~6명의 환영을 받으며 땀으로 얼룩진 옷을 갈아입고 뜨거운 국물에 밥 한술 말아 소주잔을 곁들이며 추위를 녹이는데 7시가 넘어도 후미가 도착을 하지 않으니 모두들 초조한 긴장 속에 지루한 시간만 흐르고 있다.
잠시 후
소식통에 의하면 일행 중에 한 명이 국망봉에서 길을 잃고 119에 구조 요청을 하여 중간에서 무전 연락을 받은 박대장이 봉두암에서 다시 국망봉으로 올라가 함께 하산하는 중이라니 모두들 숙연한 마음으로 무사귀환을 빌며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8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일행들은 파김치가 되어 목불인견이고 풍부한 산행 경력을 가진 그 였지만 오늘과 같이 악천후의 돌변 상황에서 체력안배에 실패하고 후미로 밀려났다는 초조감에 평상심을 잃고 방황을 하게 된 것이 원인으로 판단이 된다.
야심한 시각 서울에 도착하니 전철은 끊긴지 오래 이고 시청 앞에서 택시로 대학로 로 이동하여 심야버스로 도봉산역 앞까지 다시 택시를 타는 번거로움으로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40분, 주마등 같이 펼쳐지는 정해년의 첫 산행에서 많은 교훈을 얻으며 더욱더 겸손하고 세심한 준비로 산길을 열어갈 것을 다짐한다.
북한강을 바라보는 은두봉에서
은두봉(678m), 오독산(598m)
산행일시: 2007년 2월 4일 대성리 소석철교 08시 25분 - 입석리 (선돌마을) 13시 30분
소 재 지; 경기- 가평군 청평면, 남양주시 수동면 산행거리: 약 11km (진입로 5km 포함) 날 씨: 쾌 청 나홀로 산행 산행시간: 5시간 5분
현준이가 태어 난지도 20여일.
30년 만에 들어보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우리 모두 기쁨 속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중한 나의 핏줄이 흐르고 있다는 감동으로 산 꾼이 산을 마다하고 손 주 들여다보는 재미에 푹 빠져 버린다.
유난히도 포근한 금년 겨울도 우리 곁을 스쳐 지나고 절기상으로 오늘이 입춘이라고 하니 봄을 시샘하는 꽃 샘 추위가 한 두 차례 지나고 나면 버들가지에도 물이 오르고 매화가지에도 꽃이 만개하는 봄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기다려진다. 오늘저녁도 청우회 모임이 있는 날이라 장거리 산행을 하지 못하고 북한강 자락을 굽어보는 은두봉과 두리봉, 송라산을 종주하기위해 새벽 일찍 집을 나선다.
수일 전. 성북 역에서 대성리 까지 예매도 해놓은 터라 느긋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니 서산마루에 걸터앉은 보름달과 동녘하늘의 샛별이 유난히도 반짝이며 모처럼 청명한 날씨 속에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7시 17분 춘천으로 향하는 열차에는 일요일인데도 절반 이상의 자리가 비어있어 좌석 표에 구애 없이 빈자리를 골라 창가에 앉아 스쳐 지나는 주위의 풍경들을 감상하며 은두봉 종주길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한껏 부픈 마음에 상상의 나래를 펴며 8시 정각 대성리 역에 도착한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 하지 않던가?
주말의 정체현상을 피하기 위해 입석표라도 에매 를 하려고 했지만 매시간 운행하는 기차가 대성리와 평내역 에서는 정차를 해도 마석에서는 승객이 적다는 이유로 오후 5시 이후에나 승차를 할 수 있다니 인구가 많은 읍 소재지에 기차가 서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심을 가지며 역 광장에 나서며 더욱 황당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한강을 굽어보는 천혜의 휴양지인 대성리는 사시사철 학생들이 낭만과 꿈을 키우는 유원지로 유명한 곳이라 택시야 흔하게 얻어 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산행의 들머리인 중앙 기도원까지 택시를 이용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광장의 어느 구석에도 택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매서운 강바람만 가슴을 파고든다.
신나게 달려가는 차량들 속에 택시는 보이지 않고 답답한 마음에 연쇄점에 들어가서야 대성리에는 택시가 없고 마석이나 청평에 전화로 대절을 해야 하는데 왕복 차비를 받는다는 대답에 어이가 없지만 목마른 놈이 샘을 판다고 다이알을 돌리지만 근처를 지나는 차가 없어 못 간다는 대답이 허공으로 메아리치고 있다.
망연자실 한 채 이일을 어찌 수습해야 할지 우왕좌왕 하는 동안 금쪽같은 30분이 흘러가고 궁여지책으로 소석철교가 있는 기도원입구까지 버스로 이동을 하여 3km가 넘는 기도원까지 걷기 시작한다.
원천동 마을로 들어서며 반갑지 않은 개들이 낮선 이방인을 향해 선전 포고를 하며 울부짖는데 눈 여겨 볼 것도 없이 기도원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며 5년전 아내와 재형이와 가족 산행으로 청평의 깃대봉에서 종주를 하여 이곳으로 하산하던 추억을 더듬으며 비지땀을 흘린다.
산골 구석구석까지 웰빙 바람으로 그림 같은 집들이 들어서고 경춘선 복선 공사로 어수선한 현장을 벗어나면 계곡을 따라 유원지가 펼쳐지고 잠시 후 양지바른 분지위에 중앙기도원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숨소리도 들릴 만큼 정적이 흐르는 수련장이 펼쳐진다. (8시 55분)
기도원의 끝자락 계곡오름길에는 대성리 2.2km, 은두봉 정상 4.7km의 이정표가 산행의 들머리가 되고 처음부터 일정에 차질이 생겼으니 오늘의 일정을 제대로 소하할지 걱정이 앞선다.
널찍한 임도를 따라 오르는 것도 잠시뿐 임도는 오른쪽으로 돌아서고 좌측으로 계류를 건너며 본격적인 등산로가 열리는데 소복히 쌓인 눈 위로 몇 사람의 발자국이 있어 편한 마음으로 따라 오르는데 어느새 이곳에도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사가 도착을 했으니.
고로쇠의 수액을 받기위한 비닐호수가 등산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계류를 여러 번 건너다니며 상류 쪽으로 30여 분간 거슬러 오르면 여러 나무에서 연결된 비닐호수의 집하장이 있는 곳에서 발자국도 멈추고 지금까지 눈길에서도 편히 올수 있었던 것은 고로쇠의 수액을 받기 위한 동리 사람들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상류로 오를수록 골은 깊어지고 너덜지대의 너럭들이 계곡을 쓸어 덮고 발목을 덮는 눈길에서 한 겨울이 다 가도록 오간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없으니 외로움과 격리된 두려움으로 발걸음이 무거워 지는데 어찌 되돌아 설수 있단 말인가?
너럭바위를 건너뛰며 눈 속에 뭍인 크레바스에 빠질세라 조심조심 신경을 곤두세우며 10여분을 더 오르자 가파른 빙벽이 앞을 가로막고 사방을 둘러봐도 만만하게 기어오를 등산로를 찾을 길이 없으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10시)
어려운 난관 앞에서도 오랫동안의 산행경험을 되 살려 눈이 없는 양지쪽의 벼랑으로 방향을 잡아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거리상으로는 마루금의 주능선이 얼마 되지 않을 듯 싶은데 발붙이기도 어려운 험지의 가시덤불 속에서 허우적거림은 그물 속에 같인 새들의 신세와 무엇이 다르랴?
가까스로 작은 능선의 안부에 올라서니 깃대봉에서 은두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저 만치 바라보이고 고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물 한 모금으로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축이고 지체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서두루지만 이번에는 수종개량을 위한 간벌로 참나무의 그루터기와 잔해들이 앞길을 가로 막고 있으니 난공불락의 성벽을 기어오르는 고초를 겪으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주능선에 올라서니 무릅까지 빠지는 눈 속에도 깃대봉에서 은두봉으로 오가는 등산로에는 발자국이 선명하고 리본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10시30분)
고립무원의 사지에서 악천후라면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곳을 청명한 날씨의 덕으로 주능선에 올라 설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1/50.000 지도에 표시된 등산로가 눈길에서 실종되고 무성한 가시덤불 속에서 유실되고 말았으니 후답자들은 이 길을 피했으면 하는 바램 이다.
처음부터 빗나가기 시작한 산행길이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탄탄대로 마루금이 시원하게 열리고 전망 좋은 암릉 위에 올라서니 지금까지 고생하며 올라온 중앙기도원 골짜기가 아늑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눈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으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산굽이를 몇 개 돌아 쉼터로 안성마춤인 갈림길에는 깃대봉 3.5km 축령산가는 방향 4.2km의 이정표가 서있고 잠시 후 오늘의 종주 길에서 가장 높은 697m의 무명봉을 스쳐 지나면 곧 바로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은두봉 정상에 도착한다. (10시 45분 - 15분간 휴식))
툭 터진 조망으로 주위의 산들이 제각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가운데 서쪽으로 보이는 천마산이 단정한 용모에 눈길이 가장 먼저가고 오늘의 행선지인 송라산이 송신 안테나를 머리에 이고 철마산에서 주금산까지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며 북쪽으로 축령산이 오독산을 품에 안고 정점을 이루며 그 뒤편으로 운악산의 암봉들이 하늘 금을 이룬다.
동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597봉에 가려 깃대봉의 주능선이 보이지 않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참나무의 등걸사이로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화야산 너머로 중미산과 용문산이 아스라이 자리를 잡고 서남쪽으로 문안산 뒤편으로 운길산과 예봉산이 눈도장을 찍고 있으니 모두가 나의 발자취가 스쳐 지난 곳으로 더욱 정감이 간다.
수 백리 밖으로 원을 그리며 펼쳐지는 조망에 마음이 사로잡혀 지도정치에 열중하는데 고요한 정상이 갑자기 부산스러워 지며 20여명의 젊은 함성이 메아리치고 그들에게 산의 조망을 설명해주며 함께 어울린다.
정상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 세운 정상석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눈 속에 뭍힌 삼각점은 끝내 찾지를 못하고 축령산 방향4.2km 원대성리 5.4km의 이정표를 바라보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두리봉과 송라산 까지의 산행은 저녁 모임이 걱정이 되고 주말마다 숨통이 막히는 경춘가도의 정체현상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종주길을 포기하고 대신 오독산을 경유하여 축령상의 오름길인 수레넘어 고개를 지나 하산하기로 하고 북사면의 쇠 음달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고꾸라지듯 가파른 벼랑길에는 빙설의 천국으로 오금저리는 비알 길에서 진땀을 흘리며 파워 고개에 내려서니 나는 새도 넘지 못할 오독산과 은두봉. 피라밑을 두개 잇대어 놓은 듯 고개 마루에는 음산한 바람이 불고 북쪽의 임초리와 남쪽의 입석리 파워 마을을 오가는 고개라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지도 오래인 듯 가시덤불만 무성하고 파워마을 쪽으로만 희미한 발자취가 남아 있다. ( 11시 20분)
양지바른 오독산 오름길은 낙엽만 풀풀 날리고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내딛는 발길마다 낙엽에 미끄러지며 헛김이 새는데 150m의 고도차를 극복하는 비알 길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위 잔등에 자리를 펴고 간단한 행동식에 찐한 양주 한잔으로 입가심을 하고 정상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11시 30분 -10분간 식사)
정상으로 오를수록 바위도 듬성듬성 나타나고 수 십 길 단애를 이룬 암봉을 우회하여 정상에 올라서면 시원한 조망으로 가슴이 터지고 건너편으로 깃대봉에서 은두봉까지 흐르는 종주길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북쪽의 임초리 계곡에는 아침고요 수목원이 그림같이 펼쳐지고 북쪽으로 축령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며 서쪽으로 오르지 못한 송라산이 더욱 눈에 밟히며 수동리 계곡이 천마산 자락에 누워있다. (12시)
375m의 수레넘이 고개까지는 250m의 고도차가 있는 벼랑길로 이곳 또한 빙판을 이루고 있으니 잠시라도 방심을 하다가는 큰 사고를 당하기 십상이라 넘어지고 자빠지는 수난 속에 고개 마루에 내려서니 따스한 햇볕아래 축령산이 자랑하는 잣나무 단지가 펼쳐지고 널찍한 임도길이 수동면의 입석리와 상면의 임초리를 이어준다.
12시 35분: 일찌감치 산행을 완료하게 되지만 만만치 않은 임도길이 아직도 4km나 남아 있으니 마냥 늑장을 부릴 일도 아니고 교통이 편리한 수동면 쪽으로 울창한 잣나무 숲길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오면 10여분 후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임도는 두 갈래로 갈리고 왼쪽 길을 따라
10여분을 진행하면 서낭당 고개에 이른다. (13시 05분)
잠시 휴식을 하며 두유를 마시고 내려가는 하산 길에 다정한 부부산객을 마주치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마을이 멀지 않았다는 자신감에 발길도 가벼운데 축령산 생수공장에서 임도도 끝이 나고 선돌마을 탁거리 에 도착하며 오늘의 일정도 마감을 하며 청량리에서 수동면 비금리까지 오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달콤한 꿈나라로 빠져든다. (13시 30분)
※ 버스는 25분마다 있고 남양주시 도농역에서 전철을 이용하면 구리시와 망우리의 교통 혼잡을 피할 수 있다.
'나의 작품세계 > 양천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7 회 양천 문학상 시상식 -1- (0) | 2008.12.23 |
---|---|
제 8 호 - (양천 문단) (0) | 2008.06.25 |
제 6호 - (양천문단) (0) | 2007.07.06 |
제 5 호 - ( 양천문단) (0) | 2007.07.04 |
제 4 호 - (양천문단) (0) | 2007.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