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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세계/양천 문학

제 4 호 - (양천문단)

 

효녀의 섬 백령도


풀었다 싸는 배낭여행이야 이골이 난 일이지만 금년 여름휴가는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인데다13명의 인원을 책임져야하는 일이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태풍이 자주 지나가는 철이라 일박 이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모두들 귀중한 시간들을 쪼개서 마련한 것이어서 제날짜에 출항을 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기상청의 예보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금수 산악회의 박대장과 긴밀한 연락을 하며 회원들의 신상에 이상이 있지나 않나 동태를 파악해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일주일을 남겨놓고 출항 시간이 변경되었다는 통보가 온다.

7시 40분배가 7시 10분으로 당겨졌으니. 원래 계획은 의정부에서 출발하는 첫 전철을 이용하기로 하였지만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부랴부랴 봉고차를 대절하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지만 바로 전날 출항시간이 변경되었다는 통보가 또 다시 날아든다.


이유는 오늘아침 인천 앞 바다에 짙은 안개로 배가 제 시간에 출항을 하지 못해 그만큼 늦어진 탓에 오전 10시로 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박대장의 당황스런 목소리에 이러다가 다된 밥에 코 빠트리는 것이나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회원들에게도 장황하게 설명을 하며 이해를 구한다.


그래도 태풍 소식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고 집결장소인 도봉동 국민은행 앞으로 나아가니 약속시간 보다 30분이나 일찍 모두 모여 5가족 10명은 소풍 나온 유치원생보다도 더욱 들뜬 마음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탄탄대로 경인 고속도로를 달려 7시 40분 연안부두에 도착한다. 2시간 이상이나 남은 시간을 지루한줄 모르게 분위기를 잡으며 차례로 도착하는 황 대장과 한 상웅씨 부부와 합류하여 수인사를 나누고 출항시간이 가까워 오자 대합실로 몰려든 인파로 초만원을 이루며 저자거리를 방불케 한다.


모두들 전광판을 바라보며 검표 시간만을 기다리지만 무슨 영문인지 시간이 흘러가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하고 그래도 인내력으로 잘들 참아 내는데 스포츠 현광 판에 스코어가 변하듯 10분, 20분, 30분,  다음에는 아예 숫자마저도 꺼져버려 장내에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흥분들을 한다.


일선에 있는 카운터 아가씨들만 곤욕을 치루며 아직도 배가 입항하지 않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설명에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올림픽에 월드컵까지 성공적으로 치르고 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독점 사업이라고 이렇게 횡포를 부리며 손님을 똥친 막대기 취급을 하고 있으니 일기가 불순하여 제 시간에 출항을 하지 못하는 것이야 누구를 탓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책임자가 상황설명을 하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그래도 참는 자에 복이 오나니 11시 40분이 되어서야 백령도로 향하는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좀 전의 흥분된 마음들도 진정을 하며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웃음꽃이 활짝 핀다. 오! 백령도 분단의 슬픔을 안고 서해북단의 최전방에 수호천사 파수꾼이 되어 인천에서 직선거리는 178km이지만 군사 분계선을 돌아가야 하는 어려움으로 항로가 227km에 이르고 쾌속정으로도 4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먼 곳이지만 북측의 황해도 장상곶에서는 17km의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없는 최전방의 외로운 섬이다.


백령도는 전략적인 취약점으로 민간인들의 관광이 통제 되다가 96년부터 남북간의 화해의 물결 속에 쾌속정이 증편되면서 천혜의 관광지로 신비의 베일을 벗고 있으니 우리의 설레이는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백령도는 면적이 46.28평방 km에 국내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최근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척사업으로 100만평이 늘어나 8번째로 큰 섬이 되었고 4,233명의 원주민과 4,350명의 해병이 주둔하고 있어 상주인구가 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184m의 업쭉산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에 넓은 들이 펼쳐지고 면소재지가 있는 진촌리를 중심으로 5개리 17개 부락으로 구성되며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이다.


우리가 타고 가는 백령아일랜드 호는 정원이 336명으로 피서 철인 여름이 성수기로(편도 43,700원) 빈자리 하나 없이 만원을 이루며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서해바다를 날아가지만 부대시설이 전혀 없어 4시간 이상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삼복더위의 열기 속에 사람들의 체온까지 더하고 보니 에어컨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찜통더위 속에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망망대해를 달려온 쾌속정은 3시 55분 185명이 살고 있는 소청도를 들러 4시 10분 대청도의 부두에서 사람과 화물을 내리고 목적지인 백령도로 향하는데 이곳에는 1,48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백령도는 조금도 낯설지가 않고 사곶 천연 비행장의 활주로를 질주하는 차들이 신비롭기만 한데 해수욕장 뒤로 바람막이 방풍림이 운치를 더하고 물놀이하는 피서객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4시 50분 오랜 항해의 무료함속에 드디어 백령도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마중 나온 서해 관광 직원의 안내로 서해 모텔에 여장을 풀고 때늦은 점심을 먹고 인천에서 소비한 시간을 보충하기위해 서둘러 관광길에 오른다. 주위에 펼쳐지는 모든 사물들이 모두 친근감이 들지만 분단조국의 최북단 마지막 보루로서 1200명이 피신할 수 있는 동굴이 10여개나 되고 이곳 주민들이 6개월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니 긴장감이 고조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나는 해안가에는 겹겹이 설치된 철조망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구릉지대의 우거진 숲속에는 지뢰가 매설되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며 그 많은 해병대 병사들의 모습이 은폐물에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섬의 북서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두무진. 백령도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이곳은 장군들이 작전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낙조에 드리우는 황금빛으로 물든 바닷물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고 특히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모습은 두무진의 상징으로 가이드의 구수한 해설이 귓전에 맴돈다.


돌아가는 방향마다 다른 모습으로 선을 뵈는 바위들의 신비스런 형상.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잠수함 바위는 백령도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애석하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물범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자연이 주신 선물이다.


두무진 해안을 따라 오르다보면 백령도에서 유일한 등산로라 할 수 있는 통일 전망대. 몽금포 해안이 12km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다. 실향민들의 한을 달래주는 망향의 동산으로 두무진의 기암괴석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서해바다로 숨어들며 마지막으로 불꽃을 피워 올리는 낙조의 화려함. 키나바루의 산장에서 보았던 그 모습과 대조를 이루는 황홀함을 무엇으로 비 길수 있으랴.


서해관광 측에서 침이 마르도록 선전을 하는 자연산 횟집에서 하는 식사는 주체 측의 무성의가 사뭇 찝찝하다. 거저 주는 것도 아니면서 사전에 상의 한마디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질질 끌려 다니며 항의 한마디 못하고, 나에게는 딸린 식구가 13명이나 되기에 더욱 신경이 쓰이고 뒤늦게 온 회원들이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불상사가 나고 말았으니 이런 난처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백령도의 명동이라는 진촌리가 내려다보이는 서해 모텔로 돌아와 짐정리를 하고 이곳에서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래방으로 달려가 목청도 높여보고 초롱초롱한 별빛을 가슴에 안고 꿈나라로 달려간다. 된 새벽에 일어나 황대장과 함께 밖으로 나오니 동녘하늘에 여명이 터 오며 월례도(12km이북) 너머로 길게 누운 장산곶(황해도)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어둠을 헤치며 떠오르는 태양이여. 매일 보는 너의 얼굴이지만 이 순간 너를 바라보는 나의 감회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느냐.


강수량은 육지보다 1/4밖에 안되지만 안개 끼는 일수가 많아 북녘 땅을 보기가 어렵다는데 분단장 곱게 하고 나를 반겨주는 너의 모습에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구나. 인천에서 뜨는 배가 정상으로 출항을 했다니 이곳에서의 일정도 몇 시간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지며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관광길에 나선다.


영롱한 아침 이슬이 따가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음주운전 단속이 없는 것은 주당들의 천국이지만 처녀가 없다는 말에는 가슴을 여미는 슬픔이 있고, 등산로가 없는 것은 분단의 아픔이며(지뢰매설) 절이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먼저(1816년) 기독교 선교사가 이곳에 들어와 활동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하수를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섬의 면적에 비해 너른 평야와 기름진 옥토가 있어 많은 농산물이 생산되지만 육지까지 많은 수송비의 부담 때문에 군에서 전량을 수매하고 있어  마음 놓고 생산되는 농산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으며 초등학교가 2. 중학교가 한 곳으로 그 이상은 육지로 유학을 보내는데 주민들 대다수가 인천에 집을 한 채씩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나는 길옆에는 사곶과 회동사이를 막아 일구어낸 백만 평의 간척지와 백령도에서 유일한 담수호를 바라보며 길이가 10여 m에 불과한 백령대교를 지날 때는 실소를 금 할 수가 없다.

 

먼저 찾아간 곳이 천연 기념물 392호로 지정된 콩돌 해수욕장으로 전국의 이름난 몽돌해수욕장을 다녀봤지만 이처럼 작은 돌은 처음으로 콩마당 위를 걷는 것처럼 감촉이 좋아 발바닥 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육지 손님들이 마대로 퍼가는 횡포를 막기 위해 감시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니 우리 모두 소중한 자산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겠다.


모든 섬들의 일주 도로가 경관 좋은 해안가를 따라 만들어 졌으나 유독 이곳만은 안보상의 이유로 해안가에서 보이지 않는 내륙 쪽으로 있어 차를 타고 가는 동안만은 섬이라는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비행기 한 대 가지고 있지 않은 공군. 섬 어디서나 바라보이는 이 부대는 높은 능선위에 최신 장비로 무장을 하고 이북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산동 반도 일대의 모든 정보가 이곳의 감시 하에 있다니 마음 든든하다.


연화리에 있는 또 하나의 콩돌 해안은 육중한 철조망이 있고 이곳의 돌들은 장돌만하여 수제비 치기에 안성맞춤으로 마음대로 가지고 가라고하니 어안이 벙벙하지만 기념으로 몇 점을 주어 보았다. 또 한 가지 이곳에는 논둑을 따라 전신주가 즐비한데 지하 용수를 퍼 올리기 위한 시설로 화력발전소가 6호기까지 가동하고 있으며 전기료가 30%감면되고 그 유명한 까나리아 액젖을 담그는 소금도 이곳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다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인천에서 출장 나온 자동차 면허시험은 전원이 합격을 하고 있다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쨋든 응시자들의 천국이 아닌가?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고 신호등이 없는 거리에는 질주하는 차량도 없으며 아파트가 없는 곳 ,과일이 생산되지 않는 곳이다.


주마간산으로 짧은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돌다보니 가 볼만한 곳은 다 둘러보고 심봉사가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주지스님의 구원을 받으며 공양미 삼 백석을 시주하게 되었다는 개천을 지나 심청각에 오른다.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 잡은 이곳은 심청이의 유물을 전시한 곳으로 아바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7km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소용돌이  치는 거센 물살로 배들의 왕래가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심청각 안마당에는 심청이가 뱃전에서 물로 뛰어드는 청동상이 안치되어 있고 황해도 해안이 바라보이는 안보관광으로도 한몫을 하는 곳이다.


백령도의 관문인 용기포구 옆으로 사곶 천연비행장이 있는데 길이 4km에 폭이 100m에 이르는 백사장은 완만한 경사에 아주 고운 입자의 규사로 물이 빠지면 단단한 활주로가 되어 6.25전쟁 시에 경비행기가 뜨고 내렸다는 기록이 있고 이태리의 나포리 해안과 함께 세계적으로 2곳뿐인 소중한 천연자원으로 버스에 올라 백사장을 질주하는 쾌감도 맛보았다.


백령도가 자랑하는 막국수로 점심을 하고 12시 10분 배에 올라 백령도와 아쉬운 작별을 하며 멀어져가는 그 모습이 안스러워 점점 작아지는 섬에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산을 다닌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굳은 일만 시키다가 모처럼 함께 나선 나들이에 마냥 즐거워하는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앞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인천항에 닷을 내리며 백령도의 여행도 마감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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