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호
2003년 5월 31일 발행
봄이 오는 길목에서
별 하나 나하나 별들 총총
쌍계사 십리 벗길 검은 장막 드리우고
불일폭포 굉음소리 귀청을 파고들 때
손전등 길라잡이 눈 뜬 장님 더듬더듬
상불재 산마루에 여명이 밝아오며
계곡에 피어나는 운해 저 편에
광양의 백운산 눈이 부시고
쇠통바위 구멍으로 기어오르면
좌청룡 우백호 아늑한 보금자리
삼성궁, 도인촌, 청학동........
환인, 환웅, 단군왕검, 삼성궁에 모셔 놓고
한민족의 맥을 있는 한풀선사 수련도장
일망무제 내 삼신봉 높기도 하여라.
천왕봉, 세석산장, 반야봉, 노고단 운해
장쾌한 지리산 시선에 가득하고
갓걸이재 돌아서니 고로쇠 수액이 넘쳐흐르고
섬진강 물결 따라 매화 향기 그윽하다.
갑장산(806m) 취재 산행
상주 고을 남쪽으로 십리지경에
평지돌출 갑장산 찾아
문경새재 너머 서니
북풍한설 몰아치는 영하 20도
털벙거지 눌러쓰고 두 눈만 빼 꼼
고즈넉한 산사엔 동안거의 적막 속에
천년노송 기암절벽 눈 속에 잠이 들고
추녀 끝의 풍경소리 한가로이 들리는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순백의 세계
칼바람 눈보라에 갈 길을 잃고
나무등걸 부여잡고 몸부림친다.
정성으로 쌓아 올린
정수리의 돌무더기
상사바위, 백길바위, 수 십 길 벼랑아래
황지에서 솟은 샘물
상주 벌을 휘돌고
순박하고 다정한 이웃들이 숨쉬는 곳
이곳이 경상도의 중심지라네
감악산(954m)에 올라서
춘분이 돌아오니 봄볕이 완연한데
한가로이 졸고 있는 신림 역을 뒤로하고
삼봉사를 휘돌아 오솔길 들어서니
다북솔 무성한 상봉, 중봉 잔설이 분분한데
쇠 음달 북사면에 수 십 길 얼음절벽
간담이 서늘하다.
두루 뭉실 천삼산 치악으로 달려가며
영춘기맥 줄기 따라 감악산에 올라서니
일망무제 조망 터에 거칠 것이 없는데
구학산, 주론산이 박달재로 이어지며
월악산이 하늘 끝에 솟아오른다.
석기봉 으로 향하는 발걸음 눈 속으로 빠져들고
십리길 설원에는 오간흔적 하나 없고
러셀하는 선두주자 굼벵이 걸음으로
정상에 올라서니
넘쳐나는 환호 속에 끝없는 메아리
덤으로 받은 용두산 가는 길 지척에 두고
피재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한데
벽골재와 쌍벽이룬 삼한 유물 의림지
천년노송 그늘아래 공어는 숨어들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나리 꽃망울
버들피리 여울 따라 울려 퍼진다.
삼신봉(1,354m)에 올라
산행 수필기 소 재 지: 지리산 남부능선
지리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곳
설악산과 함께 등산 애호가들이 가장 많이 찾고 사랑 받는 곳으로 3개도 5개군 16개면에 걸쳐 자리 잡고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0여 km 에 걸쳐 동서로 장대한 등줄기를 이루며 1,500m의 고봉이 16개나 솟아 있고 능선마다 계곡마다 수 백 개의 등산로가 얽혀있어 수 십 번을 오르고도 지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으니 북쪽의 삼정산과 남쪽의 삼신봉이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라 하기에 지난봄 염주를 꾀듯 올망졸망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있는 5개의 암자를 지나 삼정산에 올라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만복대에서 바래봉까지 지리산의 장쾌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벅찬 감회를 맛보고 나머지 삼신봉에 오를 꿈을 간직하고 있다가 이름도 생소한 늘보 산악회와 동행하여 무박으로 산행 길에 오른다.
산행에는 언제든지 날씨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을 하지만 특히 오늘은 지리산의 모습을 조망하기 위한 산행이므로 쾌청한 날씨가 아니면 의미가 없으므로 각별히 신경이 쓰인다.
버스는 심야의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선잠 속에 덕유산 휴게소에 도착하여 하늘을 처다 보니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빛만이 은구슬을 뿌려놓은 듯 영롱하고 부질없는 걱정도 사라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양철통 스치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그 유명한 쌍계사의 십리 벚꽃 터널을 지나며 버스 지붕이 스치는 소리로 모두가 잠이든 하계천 계곡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목적지를 향해 살금살금 기어간다.
04시 10분 쌍계사 주차장을 출발한 우리는 입에 재갈을 물린 듯 침묵 속에 가쁜 숨소리와 경쾌한 발놀림으로 천년 고찰 쌍계사를 꿈결에 지나치고 돌층계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외눈박이 전구의 힘을 빌어 40여분 만에 불일폭포 휴게소에 도착하니 하늘의 별들은 더욱 영롱하고 봄의 화신으로 눈 녹은 계곡물소리가 시원하게 가슴속을 열어준다.
지리산에서 가장 크다는 불일폭포의 실체는 보지 못하지만 우렁차게 들리는 굉음소리로 만족하며 사면 길을 거슬러 오르다보니 계곡물 소리도 잦아들며 산 꾼들이 가장 싫어하는 너덜지대를 통과하며 먼동이 터오고 응달 편에 쌓인 눈길이 고단한 발걸음에 족쇄가 되어 큰 곤역을 치른다.
6시 50분 상불재에 올라서니 어둠 속에 걸어온 계곡의 실체가 드러나며 쌍계사가 아련히 내려다보이는 지리산 자락이 깊은 계곡을 품에 안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며 시원한 바람결에 흐르던 땀방울도 잦아든다.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며 지리산이 기지개를 켜는 순간.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
회색 빛 띠가 산마루에 걸치며 그 속에서 붉은 점 하나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더니 곧 이어 불덩이로 활활 타오르며 온 누리를 비추고, 구름 한점 없이 푸른 하늘아래 황금색으로 물들이는 암 봉들. 불무장등 넘어온 산줄기가 화개천 따라 섬진강으로 이어지고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운해 까지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하며 불일폭포 기어오르며 흘린 땀방울을 보상이라도 하듯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곁들이는 간식은 일미를 더하고 조릿대가 무성한 능선 길을 오르며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지는데 그냥 지나치기 쉬운 쇠 통 바위 구멍으로 올라서면 도인 촌으로 유명한 청학동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상불 재에서 쇠통 바위로 내 삼신봉,
외 삼신봉이 바람막이 울타리가 되어 속새를 떠난 별천지로 환인, 환웅, 단군 왕검 세분을 모신 삼성궁은
10여 만 평에 이르는 너른 분지에 한풀선사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이 엄격한 수행을 하는 곳으로 현대판의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다.
키를 넘는 조릿대 밑으로 깔려있는 빙판길은 겨우 내 오르내린 발자취 따라 반들거리는 위험한 구간으로 잠시라도 방심 할 수 없는 곳, 조심스런 발길로 오르락 내리락 1,354m의 정상에 올라서니 지리산 제일의 조망터로 내 삼신봉의 정수리가 아닌가? (8시)
보라 !
저 장쾌한 지리산의 연봉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웅장하게 솟아오른 천왕봉, 제석봉 아래 장터목산장이 다소곳이 머리 숙이고 유월이면 붉게 타오르는 세석평전, 하동과 함양을 넘나들던 벽소령, 삼도봉 지나 반야봉이 우뚝한데 노고단 운해가 아름다워라.
웅장하고 장엄한 저 모습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마음조리며 기다려 왔던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간직한 곳으로 동학혁명과 의병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하고 해방 이후 빨치산 시절 남부군으로 유명한 이 현상의 부대가 이곳에 은거하며 마지막 항전을 하던 곳으로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삼신봉의 정상에는 춘삼월의 칼바람이 불어오지만 장쾌한 파노라마에 혼미하여 내려 설줄 모르고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데 남으로 백운산이 운해위로 우뚝 솟아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다.
세 갈래길 삼거리에는 쌍계사 9,7km 세석산장 7.5km 청학동 2.8km의 이정표가 선명하고 신라의 최치원 선생이 삼신봉에 오르다가 용변을 보기위해 갓을 걸었다하여 이름 지어진 갓걸이 재를 지나 청학동으로 내려오는 길옆으로 나무의 밑둥치에 여러 가닥의 비닐호스가 달려 있으니 고로쇠의 수액을 받는 것도 좋지만 국립공원에서 만큼은 자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30분 만에 청학동 입구에 도착하여 옛 정취를 찾아 심산계곡에 있는 도인 촌으로 향했지만 현대 문명에 물들어 저자거리를 방불케 하며 자동차의 경적 소리와 휴대폰의 신호음이 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가전제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으니 실망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맨 상투에 도포자락의 도인들,
초가집의 평상에 자리를 잡고 인심 좋은 주모가 따라 주는 동동주 한 사발에 위안을 삼으며 서둘러 하산을 하여 버스에 오르며 6시간의 삼신봉 산행도 마감을 하고 일출과 함께 지리산의 아름다운 조망을 가슴에 안고 섬진강 가에 피어나는 매화향기에 취해 꿈속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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