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호
2003년 12월 발행
청계산으로 향하는 발길
국사봉(540m), 망경대(618m), 매봉(583m)
비 자루로 쓸어내린 새벽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름에 현기증이 일고
복사꽃 화색으로 동녘이 밝아 올 때
청계산 자락으로 파고든다.
무성했던 나뭇잎도 바람결에 흩날리고
사각 사각 밟히는 살가운 소리에
거친 숨소리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국사봉 자락에 울려 퍼진다.
불사이군 조윤 선생
고려 향한 일편단심 국사봉에 새겨놓고
조견 선생 망국의 한은 망경대에 서리는데
이수봉의 정여창은 무오사화 환란 피해
스승과 벗을 등지고 산속으로 숨어드니
세류 따라 이동하는 철새들의 세상인심
그 누가 탓 할 수 있으랴.
곰 봉 너머에 동강이 흐른다.
주천강 흘러내려 선돌을 빗어내고
장릉에 뿌린 눈물 청령포를 적시는데
영월 지나 동강 따라 유순한 마차 재
만항재 가는 길 접어두고 산길로 들어서니
양지바른 산 비알엔 너른 분지 평화롭고
비탈진 화전 밭에 길고긴 이랑들
앙상한 돌자 갈에 쟁기질이 힘겨워도
고랭지 채소들이 잘도 자란다.
칡넝쿨 다래넝쿨 가시덤불 속에는
빗 바랜 리본하나 바람결에 나부끼고
산딸기 억새들이 가로막아도
헬기장 지나면
곰 봉의 정수리가 하늘에 닿고
한낮의 열기 속에
구슬땀 흘리며
선들바람 불어오는 계봉에 올라서니
한 평 남짓 전망대가 첨봉을 이루고
구절양장 굽이 따라 백운산이 정겨웁다.
평화로운 가탄 마을 쑥대밭으로
미루나무 높은 가지 비닐조각 펄럭이고
초가삼간 정든 고향 흔적조차 없으니
자연보호 앞장세워 댐 건설 반대하며
조용하던 두메산골 유명세를 타더니
외지인들 달려들어 난장판을 벌이고
종다리도 산천어도 살 길을 잃어
루사를 앞장세워 천지개벽 이루시니
점재나루 레프팅장 수중고혼 되었다네.
아라리 아라리 구슬픈 가락 속에
천만년 지켜야할 우리의 유산
가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묻어 두어라.
중랑천의 새 아침
여울져 흐르는 중랑천에
물안개 피어오르면
흰 두루미 재두루미 날개 짓 하고
잉어 떼들 힘차게 요동치는데
가지런한 푸른 잔디
그 사이로
붉은색 아스콘 자전거 도로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모두 한 마음
먹장 가래 토해내며 감래하는 줄거움에
인생의 활력이 피어오른다.
송사리 피라미 개구쟁이 물장난
맑은 물 졸졸졸 아름다운 중랑천에
경제의 상징인 공장의 오폐수로
모두가 외면하는 시궁창이 되었지.
뒤늦은 후회로 수 십 배의 힘을 모아
이제는 숨 쉬고 살만하게 되었네.
하늬바람 불어오는 강 언덕에
싱그러운 코스모스 고추잠자리
모두가 내 친구 지상의 낙원
밝은 인사 환한 웃음 우리의 희망.
불타는 서북능선
산행일시: 2003년 10월 12일 03시 - 13시 30분(무박 산행)
산행시간 : 10시간 30분 산행거리: 약 25km
소 재 지: 강원도 인제군 속초시
요 근래 지리산으로 발길이 잦다보니 자연히 설악산 산행이 뜸한 편이라 오랜만에 서북능선과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곡 백운 계곡으로 산행지를 정하고 뫼솔 산악회와 조우하게 되었다.
언제 찾아도 새로움을 안겨주는 설악산이지만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계절은 누가 뭐래도 가을 이 으뜸이다. 9월 하순부터 대청봉에 불꽃이 피어오르면 하루에 40m 씩 계곡으로 번지며 주위의 모든 나무들이 만산홍엽의 화려함으로 불타오르고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구곡담 계곡, 수렴동 계곡, 십이 선녀탕, 남설악의 주전골이 절정에 이르면 수많은 인파들이 설악으로 설악으로 인신인해를 이루며 몰려들게 된다.
인적이 뜸하다는 장수대 주차장에도 야심한 시각이지만 10여 대의 버스에서 토해내는 인파들이 너른 광장을 가득 메우고 헤드 렌턴 으로 불을 밝힌 불나비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줄행랑을 친다. (03시)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 폭포와 함께 3대 폭포로 알려진 대승령 폭포가 자장가처럼 아스라이 들리는 가운데(오랜 가뭄으로 건폭이 되었음) 뒷사람의 가쁜 숨소리에 등 떠밀려 앞 사람의 신발 뒤축을 따라 옮기는 발걸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길가에 주저앉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대승령 고개 마루에 도착했을 때는( 04시 10분) 선두그룹과 합류를 하게 되고 별도 달도 잠이든 어둠 속에서 준족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내달린다.
대승령은 서북능선의 주요한 갈림길로 직진을 하면 백담사로 넘어가는 흑선동 계곡이고 좌측으로는 안산을 거쳐 십이 선녀탕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우측으로는 귀때기 청봉을 지나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맥으로 대청봉을 지나 공룡능선과 연결이 된다.
대승령을 지나 10여분 후에는 로프가 걸려있는 장벽이 가로막고 거침없이 뛰어 넘는 준족들의 행보를 따르기엔 힘이 부친다. 2-3년 전만해도 오기를 부리며 뒤쳐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봤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란 걸 알고부터는 내 몸에 맞는 산행습관을 길러 보폭과 호흡을 일치 시키면 몇 시간이라도 쉬지 않고 산행을 할 수가 있고, 앞지르는 사람에게 길을 터주고 뒤처지는 사람에게 미소 지으며 뚜벅 뚜벅 내딛는 황소걸음이 방정맞은 토끼걸음보다 낫다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주위를 감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인기척 하나 없는 고산의 줄기를 나 홀로 걷고 있음에도 무섭다거나 외롭지 않은 것은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으로 나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오만과 탐욕을 서부능선의 새벽바람에 날려 버리고 구상나무와 산죽에서 스며 나오는 향기를 온몸에 받으며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승화되기 때문이 아니던가?
새벽이 밝아오며 어둠도 서서히 계곡으로 물러나고 주위의 산 들이 기지개를 켜며 기치창검 고추 세운 암봉 들의 질서정연한 열병식으로 우리의 가슴을 압도하는데 어둠 속을 달려온 산 꾼들이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닌가? (05시 30분)
큰 감투봉91,409m)을 지나면 오늘의 구간 중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박대장의 말대로 깍 아 지른 날 등을 타고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어둠 속 수 십 길 절벽 아래로 동아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 앞서간 사람들의 라이트 불빛이 절벽의 중간에 매달려 내려설줄 모르는 안타까움으로 오금이 저려온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스틱을 접어 허리춤에 찌르고 악마의 발톱과도 같이 어둠 속에 웅쿠리고 있는 벼랑으로 발을 내딛으며 동아줄에 몸을 맡기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휴우.......
긴 한숨과 함께 두 다리가 땅에 닿는 순간 또 한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으로 뒤 돌아보니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빛들이 애처럽게 보이며 가야할 발길을 멈추고 만다.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며 귀때기 청봉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 오고 협곡 사이로 재량박골의 기라성 같은 암봉 들의 틈바구니로 구상나무와 단풍나무가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올리며 그 너머로 가리봉의 톱날 같은 암봉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주걱봉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 밤새워 달려온 고통이 환희와 즐거운 함성으로 울려 퍼진다.
황홀한 시선도 잠시뿐 귀때기 청봉에서 흘러내리는 안개가 순식간에 모든 사물을 집어삼키고 온몸을 휘어 감는 안타까움과 냉기 서린 바람이 엄습하니 오리무중의 포로가 되어 막막하기 그지없는데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십이 선녀탕으로 향하는 부산 갈매기들을 만나 수인사를 나누며 그나마 안정을 되찾는다.
대승령을 출발한지 3시간 20분 만에 서북능선의 정수리인 귀때기 청봉에 올라선다.
태백산보다도 함백산보다도 높은 정수리이건만 낡아 빠진 비목에 이름표를 달고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은 대청봉의 그늘에 가려 외면당하고 있는 탓으로 큰 사람 밑에서는 덕을 보지만 큰 나무 아래서는 햇볕조차 받을 수 없다니 이런 큰 서러움을 어이 할꺼나.
내설악과 남설악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서북능선 제일의 전망대에서 짓궂은 안개의 포로가 되어 갈길 마저 잃고 있으니 동아줄처럼 기다란 로프가 아니라면 끝없이 널려있는 너덜바위 위에서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8시 30분 한계령에서 올라오는 갈림길 100여 m 못 미친 지점에 십자로 갈림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는 도둑 바위골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이 오늘의 행선지인 곡 백운 계곡의 진입로인데 흰 로프에 등산로 아님이라는 팻말이 우리의 발길을 가로 막는다.
일반인들의 안전을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위법인줄 알면서도 도둑고양이 숨어들 듯 재빠르게 계곡 속으로 몸을 숨기고 두려운 마음으로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발길을 내 딛는다.
설악산에는 위험한 능선과 계곡이 수도 없이 많아 일반 등산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이곳 또한 그 중의 한곳으로 계곡을 내려갈수록 음습한 기운이 감돌며 이끼 낀 고목들이 즐비하게 넘어져 가는 길을 가로막고 계곡의 양쪽으로는 깍 아 지른 절벽이 하늘 높이 치솟아 새들도 풀벌레도 숨을 죽이고 이름 모를 약초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어 심마니들이 다니던 희미한 흔적을 따라 내려가면 올망졸망 앙증맞은 폭포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이끼 낀 바위를 조심스레 내려서니 우렁찬 굉음소리와 함께 수 십 길의 백운 폭포가 앞길을 가로 막는다.(9시 30분)
폭포의 우측으로 벼랑에 기다란 로프가 걸려 있고 물 먹은 바위를 조심스레 내려서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큰 귀때기 골의 쉰 길 폭포와 쌍벽을 이루는 웅장한 모습은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깊숙한 골짜기에 이런 비경이 숨어 있을 줄이야. 넋을 놓고 바라보는 우리 앞에는 벼랑위로 붉게 물든 단풍이 화려한 극치를 이루며 황홀경 속으로 빠져든다.
간식을 들며 즐기는 휴식도 잠시 계곡을 빠져 나아가는 길이 없어 �으니 난감한 처지가 되어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없고, 낙엽 되어 물길 따라 흐를 수도 없으니 자신 만만하던 박대장도 속수무책으로 우왕좌왕하며 허둥대기 시작한다.
어려운 난관일수록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될 일이고 침착 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대처해야 하겠기에 게류의 오른쪽 벼랑위로 안전판을 확보하며 가로 질러 풀숲을 헤치다보니 빛바랜 리본이 구세주가 되어 아슬아슬하게 벼랑을 통과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었다.
뒤돌아보면 위험천만한 곳으로 깔때기처럼 움푹 파진 계곡에서 갑자기 소나기라도 쏟아지는 날에는 수중고혼이 되고 만다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폭포를 지나서도 희미한 길을 따라 계곡을 수십 번이나 건너다닌 끝에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구곡담 계곡과 합류하는 철다리에 도착하며 길고도 지루한 곡 백운 계곡의 종주도 마감을 하게 된다. (11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행락객의 인파들,
황홀경속에 취해 움직일 줄 모르는 행락객들의 발걸음이 마냥 느려지고 골짜기 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단풍구경 사람구경에 혼이 빠진다.
가까스로 수렴동 산장에 도착하니 부어라 마셔라 흥청대는 저자거리의 난장판이 벌어지고 고되고 지루한 역경을 극복했다는 해방감으로 줄거운 웃음꽃이 만발한다. (11시 30분-30분간 휴식)
아직도 용대리 까지는 10여 km의 여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흥청대는 인파들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크고 작은 용소가 백여 개나 되어 백담사 계곡이라 했다던가?
신라의 자장 율사가 창건한 한계사가 그 전신으로 각종 전란과 화재로 십여 차례나 소실이 되는 수난 속에 정조 시절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3.1운동 민족지도자 33인중의 한분으로 민족 시인이며 불교 개혁의 선구자 이신 한 용운 선생이 기거하며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으로 유명하지만 용대리에서 8km나 떨어진 궁벽한 곳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전 두환 전 대통령이 은거 하면서 세간에 관심이 집중되며 진입로도 다시 정비를 하고 거듭되는 중창으로 지금은 주요 관광 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
단풍이 절정인 백담사를 뒤로하고 산굽이마다 펼쳐지는 불꽃놀이의 아름다움에 취해 25km의 긴 여정에 10시간 반의 장거리 산행에도 건재한 두 다리에 감사하며 내일도 모래도 어느 산 어느 계곡을 거닐며 신세를 질지 한없는 애정을 느낀다.(13시 30분 용대리 주차장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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