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호
2001년 12월 3일 발행
산 책
채마밭 한 모퉁이
함초롬이 피어 있는 분꽃
흠뻑 머금은 아침이슬에
선명한 진홍빛깔
키다리 해바라기
앉은뱅이 채송화도
분단장 곱게 하고
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회룡사 오르는 계곡에는
물안개 피어오르고
다북솔 향기 속에
제일봉에 올라서니
높은 곳은 섬이 되고
낮은 곳은 물이 되어
다도해가 되었 구나
바다건너
작은 섬에 살고 있을
님 찾아 조각배를 띄워 볼까.
금 수 산 (1,015m)
소 재 지: 충북 - 제천시 ,수산면 단양군 .적성면
이름도 생소한 말목산
월악산 국립공원 동북쪽 끝자락
금수산이 충주호에 자맥질하며
마지막으로 솟아오른 봉우리
충주호를 끼고 도는
층층단애 기암절벽
낙락장송 그늘아래
솔바람이 불어오면
유람선의 뱃노래가
귓전에 맴도는데
새들이 알을 품는 성스러운 곳
낙엽 속에 묻어 버린
가파른 능선 길에
정수리로 향하는 거친 숨소리
아뿔사 이것이 무엇이냐
정수리에 때려 박은 대못으로
곱디고운 비단 옷에 흠집을 내었으니
돌아올 업보를 어이 할꼬
*알봉 정상에 KBS 중계탑이 있음
쉰 길 폭포
소 재 지: 설악산 큰 귀때기골
백담 산장 맞은편
귀때기골 협곡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크고 작은 폭포들
시종별배 거느리고
제1관문 , 제2관문
인간의 접근을 거부할 때
심메마니 흔적 따라
층암절벽 사이 길을
로프에 몸을 묶고 생사를 초월하니
음습한 기운에 모골이 송연하다.
신비의 땅에 들어서니
천 미터 넘는 곳에 쉰 길 절벽 있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기둥에
오감도 화들짝 놀라
혼마저 빼앗기네
겨 울 산
테 마 시
마지막 잎새마저
이별을 하고
매서운 북서풍에
매를 맞아도
내 마음 슬프지 않습니다.
한창시절
매미도 쪽박새도
지상의 낙원이라 합창하며
부귀영화 누리더니
물기가 잦아들고 원기가 쇠약하니
모두 등 돌리고 떠났습니다.
가슴 아린 슬픔도
시간 속에 녹아들고....
시류 따라 움직임은
자연의 섭리이니
명년 삼월 꽃이 피면
돌아온다고
태양의 속삭임이 들려 옵니다.
산행수필
향로봉(600m) , 지장봉(877m) , 관인봉(710(m)
산행일시 : 2001년 10월 7일 07시 30분 - 14시40분 산행시간 : 7시간10분
소 재 지 :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 연천군- 연천읍 산행거리 : 약 13km
먼동이 터오는 43번 국도는 활주로와 같이 마냥 넓어 보이고 오가는 차량도 별로 없는 대로를 달리는 승용차는 포천을 지나 철원을 향해 시원하게 질주한다.
지장봉 가는 길은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지리상의 여건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산이 험 준 하여 종주산행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원점 회 귀형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불편하고 산악회들도 어쩌다 한번씩 찾는 곳이라 오랜만에 승용차를 이용하게 되었다.
중리 저수지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라 관리인도 출근 전이고 텅 빈 공간에 적막감마저 든다.(7시30분)
나 홀로 산행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행 들머리인 왼쪽의 무덤 뒤를 돌아 숲길을 들어서니 빛바랜 리본이 반겨주며 밤새내린 이슬이 바짓가랑이를 휘어 감고 가파른 능선길이지만 큰 어려움 없이 한시간만에 향로봉 정상에 올라서니 남쪽으로 지난해 아내와 함께 올랐던 종자산이 아스라이 바라보이고 길게 이어지는 능선이 한탄강으로 가라안고 만다.
북쪽으로는 오늘 걸어야할 보개산의 능선들이 구불구불 사행선을 이루며 끝없이 펼쳐지고, 드높은 가을 하늘,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신선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길을 재촉한다.
30여분 만에 향로봉 등산을 마감하고 임도에 도착하니 임도에서 시작되는 삼형제봉 오름길은 종주를 고집하는 메니아들의 발자취만이 희미하게 이어지고 가파른 절개지를 치고 오르자 무성한 억새군락지가 황금물결로 장관을 이루고, 층층단애 절벽사이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손마디에 경련을 일으키며 조심조심 올라선 곳이 간담이 서늘해지는 수 십 길 벼랑 위, 암벽사이로 기나긴 세월의 모진풍상을 겪으며 독야청청 푸른빛을 더하는 소나무와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타오르는 불꽃은 수반위에 빚어놓은 산수화로 황홀함에 눈이 부시다.
삼형제봉을 뒤로하고 30여분간 완만한 능선 길을 걷다보니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북대에 도착하게 되는데 북사면에 펼쳐지는 불꽃의 향연.......
티 없이 맑은 하늘아래 훨훨 타오르는 불꽃이 진홍색으로 주황색으로 갖가지 화려한 색깔로 불을 지르고 인간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심심산골에 별천지를 이루니 저자거리를 방불케 하는 내장산과 피아골의 소란스러움에 몸살을 앓다가 호 젖 한 보개산의 불꽃 속에서 내 영혼까지 타오른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아쉬움 속에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북대를 지나 화인봉으로 접어들면서 다시 암릉길이 시작되고 일반등산객들이 오르는 길목으로 리본도 많아지고 등산로도 잘 나있어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화인봉에 올라서니 북쪽으로 보개산의 정상이 민 대머리 암봉으로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지장봉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빤히 올려다 보이는 보개산은 중간 중간에 아슬아슬한 암릉 구간을 지나게 되는데 무성한 잡목 숲을 헤치며 오르다보면 가파른 벼랑에 로프가 매여 있고 큰 어려움 없이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사방이 탁 트이는 조망은 북쪽으로 고대산이 살포시 누워있고 금학산 너머로 철원평야가 황금물결로 출렁이는 평화로운 곳이지만 포성이 멎은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강난 허리에는 녹슨 철조망이 검은 장막을 드리우고 철새도 구름도 바람까지도 자유로이 넘나들지만 인간의 한없는 욕망으로 사상의 논쟁 속에 총부리를 마주대고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들의 고뇌를 아랑곳없이 눈길 닿는 곳마다 만산홍엽으로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올리고 4시간 반의 산행으로 사실상의 종주는 끝이 났지만 시간도 이르고 건너편의 관인봉의 유혹에 이끌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낮의 태양이 따갑게 내려 쪼이는 잘루막이 고개, 관인봉 오름길은 일반인들의 발자취가 끊긴지 오래 이고, 군인들이 사주경계를 위해 오르내린 길이 희미하게 나 있지만 그나마 떨어진 낙엽에 ane혀 버리고, 앞을 가로막는 가시덤불을 헤치며 주능선에 올라서니 빛바랜 리본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고 산새도 풀벌레도 숨을 죽이고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최전방의 특징 없는 산길, 지친 몸을 이끌며 관인봉 정상에 올라서니 은폐물에 가려진 방카만이 소리 없이 반겨주고 건너편 화인봉 능선에는 등산객들의 외침소리가 지장봉 계곡으로 메아리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은 삭막함속에 지뢰가 묻혀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한다.
주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어서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짓누르며 출입금지 구역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접근을 꺼리는 곳에 무모하게 뛰어든 것을 후회하며 침착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35년 전 월남에서 있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뇌리를 스쳐간다.
중부전선의 캄란 베이는 월남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부대의 주위로 6겹의 철조망을 치고 그 중간에 대인지뢰와 크레모아 ,조명탄을 매설하고 높은 망루에 완전무장으로 부대의 사주경계를 하며 안전점검을 위해 수시로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날도 부대원과 함께 들어갔다가 실수로 조명탄의 인계철선을 건드려 오색 연막탄이 터지며 화재가 일어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철조망 밖으로 빠져나오겠다는 일념으로 뜀박질을 하다보니 걸음걸음마다 인계철선을 건드리며 축제의 불꽃놀이를 하듯 백주의 대낮에 부대주위를 불꽃으로 수놓으며 자욱한 연기 속에 혼비백산하여 어떻게 철조망을 벗어났는지 온몸은 철조망에 찧겨 피투성이가 되고......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던 추억을 되살리며, 능선의 바위를 오르내리며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을 찾아 아주 천천히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600봉에 올라서게 되고 등산로가 확실하게 연결이 되어 사지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속에 나무그늘에 주저앉아 물을 마시며 허기를 달래고 겁도 없이 무모하게 산을 대하는 만용을 자책하며 다시는 나 홀로 산행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가슴속에 되새기며 하산 길로 접어든다.
청명한 가을의 하늘은 한없이 높아 보이고 건너편의 능선들이 만산홍엽으로 불타오르며 하늘 금에는 도봉산의 연봉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아름다운 절경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더욱 화려하게 보이는가?
40도나 되는 급경사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면 허물어진 성벽이 지난세월의 발자취를 말없이 전해주는데 이곳이 바로 궁예가 왕건에게 참패하고 마지막으로 항전하던 곳으로 고구려의 뒤를 잇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갔고 있었지만 관심법으로 백성들에게 원성을 사게 되고 말년에는 제 한 몸 지키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니 천년을 초월하는 그 현장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7시간에 걸쳐 13km의 험준한 능선을 넘나들며 최전방의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우리의 강산을 되돌아보며 푸른창공을 날고 있는 새들처럼 그리운 북녘 땅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오려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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