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호
2001년 5월 31일 발행
산행수필 - 나의 사랑 백운봉
소 재 지 : 경기 양평군 양평읍, 용문면, 옥천면
그 동안 많은 산을 다녀왔지만 세 번씩이나 도전을 하며 집착을 하게 된 것은 바로 너! 너 때문이야! 이따금 시원한 남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양평 가도를 달리다 보면 유난히도 뾰족한 봉우리가 백운봉이 아니겠니?
높고 낮은 산들이 어울려 파노라마를 이루고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너의 모습을 보노라면 산 사나이로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느냐?
용문산을 처음 찾았을 때는 네가 같은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름조차 몰랐지만 너를 향한 그리움을 가눌 길 없어 삼복더위의 무더운 날씨에도 용문사에서 상원사를 거쳐 윤 필암터로 향했지만 짙은 운무를 무기삼아 앞길을 가로막고 외면하고 말더구나. 그때는 내 마음이 얼마나 허망 했는지 아느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이 엄습하여 오죽하면 30도가 넘는 찜통 속에서도 6시간의 지친 몸을 이끌고 사라사 능선을 다시 기어오르려고 했겠느냐?
상원사의 뒷 능선으로 올라붙어 아슬아슬한 암 봉을 오르는 동안 내 주위는 안개로 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되고 힘겹게 주 능선에 올라섰지만 방향감각을 잃고 능선의 갈림길에서 백운봉이 아닌 옥천면 쪽의 지 능선으로 내려서고 말았으니 방향이 틀어지고 만 거야.
그 뒤로도 너의 곁을 지날 때 마다 아름다운 미모와 고고한 자태에 반하여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며 언젠가는 너를 품에 안고 말겠다는 신념으로 안개가 없는 동절기로 정하고 들머리도 양평에서 직접 너를 바라보며 오르기로 했단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옷깃을 파고드는 이른 아침 .
양수리를 지나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아침 햇살에 비치는 너의 모습이 알프스의 마테호른을 연상하는 황홀감으로 한국의 마테호른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게 되었단다.
양평 터미널에서부터 한시도 너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세수골로 오르기 시작했단다. 평화로운 마을길을 돌아 염광 여상 생활관 뒤편에 있는 매표소를 지나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고 헬기장 까지는 앞산에 가려 너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지만 가파른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서니 너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거야.
어찌나 반가운지 조급한 마음에 곧 바로 너의 품으로 파고들었지.
네 발로 기다시피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면서도 힘 드는 줄 몰랐단다.
11시 정각
너의 머리위에 올라서는 순간. 이 세상 그 무엇이 부러우랴.
큰 저항 없이 받아준 너에게 한없는 애정을 느끼며 첨봉을 이룬 용문산과 양평읍내를 휘돌아 흐르는 남한강이 한 폭의 그림 같더구나.
화사한 공주님의 머리에는 백두산에서 가져온 돌과 흙으로 왕관을 만들어 장식을 하였구나. 누구의 착상인지 기막힌 아이디어야. 너에게 꼭 어울리는 장신구 이지.
오래도록 너의 곁에 머물고 싶지만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용의 머리를 향하는 소임이 있기에 응달진 비알 길로 내려서는 순간 지금까지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어디로 가고 천이 얼굴을 가진 마귀할멈의 표정으로 달려드는 것이 아니냐?
날카로운 암벽, 깎아지른 벼랑길에 유리알처럼 번질거리는 빙판과 쌓인 눈이 악마의 발톱과도 같이 마각을 드러내니 지금까지 너에 대한 나의 애정이 두려움으로 변하여 오금이 저려 오는데 얼마나 혼쭐이 났으면 영하 15도의 혹한 ·속에서도 진땀을 흘리겠느냐?
아무리 오기가 나도 그렇지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냐?
화창한 봄 날씨라면 10분이면 내려올 것을 40여분이나 미끄러지고 자빠지며 겨우 네 품을 벗어나고 보니 정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던 거야.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미움이 애정으로 변하고 두고두고 이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용머리를 향하던 중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함왕성을 올라서니 춘설이 풀풀 날리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무슨 변덕인지 하늘이 캄캄해지며 폭설이 쏟아지는 거야.
순식간에 등산로는 눈 속으로 사라지고 난생 처음으로 당하는 일이라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이 진퇴양란으로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 또 다시 무릅을 꿇어야 하는가?
이제는 용문산도 백운봉도 시야에서 사라지고 인적도 없는 용의 잔등에서 사면초가. 고립무원의 극한 상황 속에서 탈출로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지.
하지만 십여 년간 수많은 산들을 오르내리고 젊은 시절 월남의 쟝글에서 사선을 넘나들던 그런 기세가 이쯤에서 꺽 일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곳이라 그 흔한 리본도 눈에 뜨이지 않고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줄기에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윤기가 나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이 길이라는 판단으로 30여 분간 벼랑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니 눈발도 가늘어지고 등산로도 확연해지며 그 제서야 리본이 나타나는 거야.
이것이 모두 너의 심술이지?
언제 폭설이 내렸냐는 듯 하늘은 맑게 개이고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나에게 추파를 던지는 거야. 오늘 나는 너를 만나고 많은 것을 배웠단다.
자연 앞에서 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고.
7시간의 산행도 추억의 장으로 남기며 사랑 한다 백운봉아!
추모의 시 - 영원한 이별
단 한번의 만남이
영원한 이별이라니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란 말입니까?
영전에
향촉을 불사르지는 못했지만
추모의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육십 고개를 넘지 못하고
우리를 앞질러 가다니
무심한 사람
자연을
사랑하는 글밭 속에서
시산을 사랑하고
궂은 일 힘든 일 마다 않고
시산의 머슴을 자처하며
애정을 키워 오던
당신의 모습을 어디에서 대한단 말입니까?
가신님의
고귀한 얼을 기리고저
우리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고이 잠드소서
김 홍석 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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