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산(1,218m)과 따리봉(1,127m)
산행일시: 2006년 3월 5일 11시 50분 - 16시 50분 산행시간 : 5시간 산행거리 : 약 12km
소 재 지 : 전남 광양시, 구례군 뫼솔 산악회 날 씨: 흐린 뒤 갬 참여인원 : 34명
우리를 태운 산악회 버스는 신나게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30여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으니 산악회로서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고 25,000원에 남도천리 광양의 백운산까지, 덤으로 식사까지 제공한다니 거저가 아닌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고로쇠가 나오는 3월이 아니면 그 먼 곳까지 가는 산악회가 없기에 꼭 가고 싶어도 잠시 방심을 하다보면 해를 넘기기 일 수라 만사 제쳐놓고 백운산으로 일정을 잡게 되었다.

인삼랜드의 화장실 - 정원보다 아름다운 조경
일요일 비 소식을 알리는 주간예보를 보면서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지만 토요일 밤부터 흩날리기 시작하는 빗줄기는 역시나 로 간절한 소망마저 외면하고 말았으니, 비는 오지 않지만 낮은 구름이 관악산 자락을 휘감아 도는 서울을 벗어나 천안을 지나며 따사로운 아침햇살이 봄의 화신을 한 아름 안고 살포시 안겨온다.

섬진강 휴계소의 희망의 돌탑
흐뭇한 마음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고 눈을 지그시 감아 보지만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진정하기 어려우니 산행 십 수 년 만에 오 백산을 오르는 날이라 감회가 남다르며 동두천의 소요산을 시작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백, 이백을 넘어서며 두려움이 줄거움 으로 삼백, 사백을 넘으며 자신감으로 호연지기 기르며 오 백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자아실현의 성취감으로 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함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대진고속 도로의 남단인 서 진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버스는 남해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서쪽으로 달리는데 시원하게 펼쳐지는 한려수도의 푸른 물결위로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그림 같고 섬진강 휴게소를 지나 광양 톨게이트에서 국도로 빠져나와 동곡천 으로 접어들어서도 이십 여리를 더 거슬러 오른 후에야 묵방 마을 에 도착한다.(11시 50분)

봄을 재촉하며 흐르는 실금 폭포
사방을 둘러봐도 첩첩산중, 하늘만 빼꼼이 튀워진 두메산골, 너른 평야가 펼쳐지는 남해안에 이런 오지마을이 있을 줄이야.
하긴 전라남도에서 지리의 노고단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산이니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험한 계곡이라 은신하기 알맞은 곳으로 1948년 10월 19일 발발된 여순사건은 해방정국에서 발생한 민족 최대의 비극으로 6,25를 전후하여 백운산 살쾡이로 불리던 김선우 일당들의 소굴이기도 했던 곳이다.

백운사 오르는 임도길
원채 먼 곳이라 부지런히 왔어도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서둘러 산행 길에 나서는데 협곡으로 오를수록 이곳의 명물인 고로쇠 수액의 채취가 한창인데 수 십 년 된 아름드리나무의 밑 둥에 구멍을 뚫고 푸라스틱 호수를 끼워 길게 연결하여 계곡 아래 큰 통으로 이어지는데 몇 년 전 TV에서본 중국의 곰 사육장에서 곰의 쓸개에 호수를 끼우고 담즙을 받아내는 장면과 모습이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고로쇠 수액을 뽑아내는 호수
나무의 성장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들은 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에 몇 개씩 호수를 박아 수액을 모조리 뽑아내는데 어찌 지장이 없겠는가?

봄소식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먼저 채취하는 백운산의 고로쇠는 마그네슘과 망간이 함유된 수액으로 아무리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 신비의 수액으로 위장병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하니 무조건 금지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니❞ 조금씩만 뽑아 쓰면 하는 바램 이다
계곡의 초입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실금 같은 물줄기들이 벼랑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를 만나게 되는데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계곡으로 울려 퍼지고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움을 티우는 준비가 한창이다.(11시 10분)

백운사 오르는 구절양장의 임도길
계곡을 거슬러 오를수록 너덜지대의 큼직큼직한 바위들이 앞을 가려 진땀을 흘리는데 백운사 오르는 임도길이 구절양장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 비알은 여간한 체력과 불심이 아니고는 오르기 힘든 곳으로 등산로는 임도를 가로지르는 너덜지대를 통과하게 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곤욕을 치른다.

백운사 오르는 너덜지대
임도 옆에는 영산강 환경 관리청에서 세운 ❣광양 백운산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의 입간판을 보게 되는데 남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산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많은 900여종의 식물이 분포되어 있는데 그 유명한 고로쇠와 1100여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작설차는 백운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특산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백운사, 대웅전의 추녀와 산령각
백운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백운사는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지만 보잘 것 없는 규모로 빛바랜 대웅전과 요사채, 산령각이 전부인데 도색작업이 한창인지 현판만은 새옷으로 갈아입고 뒤편의 산령각의 현판이 눈길을 끄는데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대가이신 도선국사가 자리 잡은 곳이니 명당자리로 어련할까? (12시 35분 - 10분 휴식)

현판이 이색적인 산령각
대웅전 앞뜰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백운산의 망경대를 주봉으로 좌측으로는 억불봉의 능선이 우측으로는 도솔봉에서 내리뻗은 능선이 좌청룡, 우백호로 자리를 잡고 정면으로 한려수도의 쪽빛바다가 펼쳐지는 명경지수로 막혔던 가슴이 트이는 듯 시원하다.

고로쇠 나무와 너덜지대의 백운산 오름길
산령각 왼쪽으로 리본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등산로에 들어서니 고로쇠나무와 너덜바위가 조화를 이루며 삼각형의 피라밑을 오르듯 응달진 잔설사이를 비집고 올라서는 돌층계는 끝이 없고 등산로 입구의 묵방의 표고가 300m 미만이라 1,217m의 정상을 오르자면 900m가 넘는 고도를 높혀야 하니 우리나라의 산중에 이만한 고도차를 보이는 곳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만경대 오름길의 이정표
천근만근 무너져 내리는 다리와 가쁜 숨소리, 줄줄 흐르는 구슬땀으로 산고의 고통을 감당하는데 가까스로 올라선 망경대의 헬기장에는 부산 갈메기들의 천국으로 비집고 앉을 자리도 없이 북새통을 이루며 소란스럽다.(13시 20분)

만경대의 헬기장
지척에 바라보이는 백운산의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시원하게 트인 조망으로 주위의 경관이 수려하지만 우유 빛 가스가 앞을 가리니 심란한 마음으로 정상을 향하는데 한낮의 열기로 얼었던 등산로가 녹으며 진창길로 변하고 그 아래로 미끄러운 얼음이 깔려있으니 잠시잠간 방심하다 보면 엉덩방아 찧기 십상이라 신경을 곤두세우며 애를 태우는데 설상가상으로 영남지방에서 고로쇠 축제 산행 때문인지 대거 몰려와 성시를 이루니 모란장에 들어선 듯 비껴서기도 힘이 든다.

백운산
정상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정수리.
삼신봉에서 바라본 구름바다위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첨봉이 바로 이곳이란 말인가?
바늘을 곧추 세운 듯 두어 사람이 올라서면 알맞을 좁은 공간에 무인도에 괭이 갈매기 모여들 듯 수 십 명씩 패거리로 사진 찍기에 분주하고 수 십 길 벼랑이 무섭지도 않은지 밀치고 재치고 야단법석이다 (13시 45분 - 15분간 휴식)

정상에서의 환희
준비해간 현수막을 배경으로 가까스로 사진 한 장 을 찍고 서둘러 바위를 내려오니 남해의 용왕님이 보내신 거북이가 정상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자리를 잡고 땅을 기어가듯 앙살 맞은 철쭉나무에 오백산행 기념 스티카를 달아매고 사방을 둘러보니 북으로 고산준령의 지리영봉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뿌연 가스층에 몸을 가리고 애를 태운다.

백운산의 수호신- 거북바위
섬진강 굽이굽이 산허리를 감아 돌지만 희미한 자태를 내 보일뿐, 점점이 떠있는 한려수도의 청정해역도, 광양제철소의 우람한 체구도 꿈속에 숨어들고 조계산 너머 호남 벌을 가로지르며 용트림하는 정맥의 혈기도 끝 간 데를 찾기 어려워라.

정상에 달아둔 기념 스티카
삼년전 삼신봉에 올라 바라본 백운산의 정상은 구름위에 우뚝 솟은 첨봉으로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오래도록 감흥 속에서 깨어 날줄 몰랐는데 남녁 땅 제일의 전망대에 올라 오백산 등정을 마음껒 펼쳐 보이고 싶었는데 운명의 여신은 간절한 나의 소망을 저버리고 아쉬움 속에 주위 경관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말았다.
정상의 매서운 바람은 옷깃을 날리고 신선대아래 바람막이 바위에 웅쿠리고 행동 식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신선대 갈림길로 올라서니 백운산 제일의 조망 터가 우뚝 솟아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주지만 얼음 깔린 수직절벽, 언감생심 거들떠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한재로 가는 길은 고꾸라지듯 가파른 비 알길.(14시 10분 -10분간식사)

신선대의 암봉
곤두박질치는 벼랑길에 곤죽이 되도록 미끄러운 진흙탕 길을 한 시간에 걸쳐 내려선 곳이 한재.
앞을 봐도 뒤를 봐도 하늘높이 솟아오른 따리봉과 백운산, 좌측으로는 논실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구례군 간전면 중대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인데 산행 3시간만에 이렇게 고전해 보기도 처음이지만 국립공원에도 없는 비상구급약을 보관하는 함이 설치되어 있으니 백운산 종주길이 얼마나 난코스 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나?

한재의 비상구급약 보관함
현재 시간이 오후 3시
5시에 출발을 한다면 아직 2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따리봉을 넘자면 300여m의 고도를 돌파해야 하는데 파김치처럼 지친 몸에 도저히 자신이 없지만 벼르고 별러서 찾아온 백운산에서 오백산의 등정을 마무리 하자면 기필코 따리봉을 올라서야 하는데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한재의 이정표
원래 예정대로 산행을 했다면 따리봉을 먼저 넘어 마지막 500번째 산이 백운산이 되겠지만 주체 측에서 후미그룹을 이곳에서 탈출하기위한 방편으로 코스를 변경하여 현재 499산이 되고 말았으니, 천근같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태산준령을 향하는데 인천에서 온 여자분과 또 한사람이 따라붙고 나머지 일행들은 논실로 내려가겠다고 종주를 포기하고 만다.(15시 5분)

철쭉나무 군락
50도의 가파른 경사지에는 빙판길로 이어지고 심한 갈증 속에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가 귀청을 파고드는데 따리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그들을 따라 내려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따리봉의 정상
45분 만에 정상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먼저 올라온 일행들이 휴식을 끝내고 인사도 없이 달려가는 그들이 야속하지만 귀경길이 천리라 한눈을 팔 겨를이 아니다. 물 한 모금 마실 겨를도 없이 사진 한 장으로 만족하고 영양갱을 우물거리며 그들의 뒤를 따르기에 여념이 없는데 수 백 년 묵은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생각지도 않은 보물을 손에 넣은 듯 아무리 힘든 고행의 길이지만 어찌 그냥 지나칠 수가 있단 말인가?

수백년된 철쭉의 거목
10여m가넘는 꺽다리에 밑둥치가 한 아름씩 되는 거목들이 즐비한데 백두대간의 도래기재에서 옥돌봉을 오르는 산기슭에 500년 된 철쭉나무와 견주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거목으로 사진 한 장으로 기념을 하고 서둘러 내려선 곳이 참샘이재. (16시 13분)

참샘이재 이졍표
앞에 보이는 도솔봉이 정답게 보이는 것은 오늘의 산행길이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 어려운 고비 다 넘기고 이제 논실로 향하는 하산길만 남아있으니 지친 몸이지만 오늘의 일정대로 완주를 했다는 만족감에 피로도 가시는 듯 신속하게 내 달리는데 삼거리 이정표에서 일행을 만나고 고로쇠수액을 채취하는 임도길에 들어서며 선두그룹과 합류하여 서울대 연습림의 울창한 삼나무 숲을 빠져나오니 한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 진짜로 하늘아래 첫 동네인 논실에 안착을 한다.(16시 40분)

서울 농대 연습림
마을 어귀에는 우리를 싣고 갈 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먼저 내려온 일행들이 한창 식사중이라 그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민생고를 해결하고 서둘러 귀경길에 오르는데 박대장의 소개로 오늘 함께 산행을 한 동지들에게서 뜨거운 박수로 축하를 받으며 오백산으로 향하던 발길이 ❝八百山 의 꿈은 이루어진다❞ 는 신념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에 팔백, 천산으로 이어지는 희망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행복한 순간이다.(17시 30분 출발)

논실마을에서 본 백운산

나의 발자취 따라 산길을 가는 리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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