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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삼남길

올망졸망 해들길

일  시: 2016년 11월 29일

구  간: 차경마을 - 이진산성 - 서홍리 - 신흥리 - 묵동마을 - 안평정류장 - 영전리 - 남전리 - 영전리 해양출장소 - 남성항 -

          땅끝 조각공원 - 사구미 해수욕장(22km)

 

                                                      올망졸망 해들길

또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앞으로 2일 일정이 남아 있는데, 마지막 날 전국적로 비가 온다는 예보이다. 젊은 시절이야 일기가 불순해도 참고 견딜 만 했는데, 70을 넘긴 후로는 날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여행이라는 것이 날씨가 화창해야 기분도 상쾌해지고, 볼거리와 사진도 찍으며 추억을 만드는 것인데, 궂은 날씨야 말로 금의야행(錦衣夜行)과 무엇이 다르랴.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별들이 총총히 떠 있다. 마음을 추 수리며 새벽공기를 가른다. 먼동이 터오는 동녘하늘이 붉게 물들고, 먹장을 풀어놓은 듯 어둠속에서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소리만이 귀전을 스친다.

 

남창사거리를 횡단하여 땅끝해안로를 따르다보면, 이진산성이 있는 마을에 도착한다. 새로 복원중인 이진산성(전라남도기념물 제120)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해안에 돌로 쌓은 조선시대의 석성이다. 성은 남북의 구릉지를 이용하여 타원형으로 축조하였으며, 마을을 관통하는 곳에 동문과 서문의 터가 남아 있다.

이진산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중기까지 남창리에 있던 달랑진을 이진리로 옮겨왔다. 선조 21(1588)에 군대의 진을 세우고, 인조 5(1627)에 만호진으로 승격하여, 바다와 인접한 지리적 여건을 활용하여 왜군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방비하였다고 한다.

 

옛 삼남대로의 종점은 이진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진포구는 제주를 오가는 통로여서, 한양에서 오는 물품과 압송되어 온 죄수들이 이곳을 통해 제주로 귀양살이 가던 길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예송(禮訟)논쟁과 숙종과의 갈등으로 여든 셋의 노구를 이끌고 제주도 귀양길에 오른 곳도 이진성이다.

 

이진항에는 제주의 현무암이 많이 보이는데, 제주에서 군마(軍馬)를 실어오며 함께 실어온 돌이라고 한다. 항해에 익숙지 않은 말들이 요동치면 배가 전복될 수 있기 때문에 배의 무게를 늘려 안전항해를 위해 돌을 실었고, 이진항에 내리면 돌들도 함께 벼려졌다고 한다. 산성을 쌓을 때에도 제주도민들이 동원되었고, 성벽 곳곳에는 제주현무암이 박혀있다.

 

이진성 포구를 빠져 나와 본격적인 해들길이 시작된다. 해안을 따라가는 해들길은 밀물 때를 대비하여 2개의 코스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해안가로는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는지, 무성한 갈대숲에 삼남길도 실종되고, 표지목이 숲속에 방치되어 있다. 할 수없이 밀물 때나 다니는 77번국도로 올라선다.

 

서쪽으로 달마산이 반겨준다. 땅 끝을 향해 남북으로 길게 뻗은 달마산(達摩山 489m)남도의 금강산이라 부를 만큼 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산이다.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든 후, 힘이 남아돌아 땅끝 마을에 작은 금강산을 만들어 수석을 전시했다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달마산(達摩山)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선종(禪宗)의 시조가 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머무를 만큼 산세가 뛰어나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다. 달마대사는 중국에 선()을 전한 후 천축국(인도)으로 돌아가지 않고 해동(해남)의 바닷가 달마산에 머물렀다고 주장하는데, 고려의 무외 스님이 처음으로 이 산을 달마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산의 형세가 공룡의 등뼈를 닮은 달마산에는 미황사(美黃寺)라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이 있다. 신라 경덕왕 8(749)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石舟)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산)에 닿자, 의조화상이 100여명의 향도와 함께 쇠잔등에 그것을 실고 가다가 소가 크게 한번 울면서 누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미황사(美黃寺)라 한다.

 

위의 설화를 볼 때 백제가 멸망한 뒤로, 통일신라시대에도 중국(당나라)이 아닌 바다를 통해서 인도불교가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황사는 한반도에서 가장남쪽에 자리 잡은 사찰로서, 신령스런 달마산의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미황사의 불상과 석양에 지는 노을빛, 공룡의 비늘처럼 솟아오른 기암괴석을 달마산의 삼황(三黃)이라 부른다.

 

미황사의 12번째 부속 암자로 해남 8경중에서도 으뜸인 도솔암(兜率庵),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수행하면서 낙조를 즐겼다는 곳이다. 천길 절벽위에 날아갈 듯이 올라앉은 도솔암은 주변의 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워 추노, 각시탈, 구미호를 촬영하면서 유명세를 더 하고 있다.

 

77번 국도를 따르던 중, 서홍리 정류장에서 삼남길은 남부아랫길로 들어선다. 동쪽으로 뻗은 남부아랫길은 서홍마을로 이어지고,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검은 갯벌위로 밀물이 흘러들고 완도의 백운봉 위로 태양이 솟아오를 때, 강진만이 아침잠에서 깨어나 황금빛으로 기지개를 켠다.

 

서홍리를 지나 삼남길은 땅끝바다향기팬션-신흥리-묵동마을-남부아랫길-안평정류장까지 1시간동안 바다를 등지고 배추밭이 절정을 이루는 푸른 초원을 걷는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리는 박근혜대통령의 심기가 얼마나 고단할까. 풍진세상(風塵世上)에서도 남도(南道)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가며 만고강산(萬古江山)을 유람하는 풍운아의 행색이 가장 부럽지 않은가?

 

영전리를 지나 남성항으로 내려선다. 야자수는 없어도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온 듯,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달마산의 끝자락 양지바른 포구에 자리 잡은 남성항은, 쪽빛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이방인의 가슴속을 후련하게 씻어 내린다. 땅끝 조각공원을 지나 사구미 해변에 도착하며 해들길 22km를 완주한다.

 

 

 

 

 

 

 

 

 

 

 

 

 

 

 

 

달마산 전경

 

 

                                                                               찬란한 일출

 

 

 

 

 

 

 

 

 

 

 

 

 

 

 

 

 

 

 

 

 

신흥마을

 

                                                                         완도대

 

 

 

 

                                                                              안평마을 정류장

 

 

 

 

 

남성항

 

 

 

 

 

사구미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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