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구간 : 주문진 해변- 죽도정 입구(13km)
해파랑길 40구간을 답사한지 2개월 만에 다시 찾은 주문진항.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이었는데, 어느덧 겨울한파가 시작되는 12월이다. 기관지염으로 겨울에는 장거리 외출을 삼가고 있지만, 터키여행을 다녀오며 많은 시간을 허비한 탓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2박3일 일정으로 집을 나선다.
동서울에서 6시31분차로 주문진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9시30분이다. 답사의 성패는 날씨가 좌우하는데, 생각보다 포근한 날씨에 마음이 놓인다. 주문진 등대를 오른다.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헤치며 올라선 등대공원은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인근 마을의 물품을 주문받아 나르던 나루터가 있어서 주문리라 불렀는데, 1937년 포구의 이름을 따서 주문면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주문진등대는 1918년 조선총독부시절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건립되었다. 직경이 3m에 높이가 13m인 등대는 6.25참화로 파손된 것을 여러 차례 보수 끝에 2004년 12월 국산품인 회전식 등명기를 설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돌 포구로 내려선다. 옛날 노부부가 이곳에서 백일기도 끝에 아들을 얻은 후 자식 없는 부부들이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에는 파도 노래비, 동자상을 비롯하여 억겁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다듬어진 바위들이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우암교를 건너 강릉의 최북단에 있는 주문진해변에 도착한다. 넓은 백사장과 낮은 수심으로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엄동설한의 혹독한 추위 속에 사람의 그림자를 찾을 수는 없지만, 하얀 백사장위로 비추는 햇살에 눈이 부시고,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드는 파도소리가 정적을 깨트린다.
이곳에서 해파랑길 41구간은 강릉바우길 13구간과 중복되는 구간이다. 주문진해변과 이웃에 있는 향호해변에서 좌측으로 해파랑길을 따라간다. 7번 국도를 건너면서 시작되는 향호는 둘레가 2.4km로 제법 큰 호수다. 바다와 격리된 석호이면서도, 지하에서 해수가 스며들어 프랑크톤이 풍부하고 부영양화가 많아 생물들이 살아가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바우길과 해파랑길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7번국도(향호 삼거리)로 올라서면, 강릉시와 양양군이 경계를 이루는 지경공원이다. “산 좋고 물 맑은 양양 이라네” 메마른 정서에 한줄기 빛을 내려주는 정감이 가는 문구다. 그만큼 양양은 설악산을 품고 있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이다.
지경해수욕장을 찾아간다. 양양군 남쪽 끝자락에 있는 작고 아담한 지경해수욕장은 해변가로 철조망이 굳게 잠겨있다. 이곳은 인적도 없이 외진 곳이라, 여름한 철 성수기에만 개방하고, 평상시에는 굳게 잠겨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말끔하게 단장한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망을 손질하는 트랙터가 먼지를 일으키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내지사람들에게는 신기한 광경이다. 넓은 공터에 어망을 펼쳐놓고, 트랙터로 돌아다니며 흙을 털어내는 작업이다. 하긴 그물의 길이가 1km가 넘는 것이고 보면 사람의 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철조망. 해안가로 밀려드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2km를 진행한 다음, 화상교를 건넌다. 답답하던 철조망도 사라지고 아담한 팔각정이 있어 지루하게 걸어온 여독을 풀어줄 쉼터로 적당한 곳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원포해변. 사람들도 찾지 않는 겨울바다로 성큼성큼 들어서는 검은 복장의 서퍼들. 파도를 타는 기술이 신기에 가깝고, 스릴 넘치는 정열이 부럽기만 하다.
서핑의 기원은 타이티의 폴리네시아인들이 파도타기를 시작하고, 하와이로 건너와 전통적인 스포츠로 발전했다고 한다. 서핑은 파도가 심한 동해안에서 활성화되어 양양의 해변에서 강습소를 심심 찬케 볼 수가 있다. 고도의 평형감각과 균형감각을 필요로 하는 서핑에서 주의할 점은 한 번 빠지면 나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강원도의 베네치아로 부르는 남애항이 시야에 들어온다. 삼척의 초고항, 강릉의 심곡항과 함께 강원도 3대 미항으로 알려진 보석 같은 항구다. 소나무가 무성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남애항은 동해의 청정해역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전형적인 어항이다.
빨갛고 하얀 등대 사이로 만선의 기쁨을 안고 들어서는 어선들을 반겨주는 곳이 남애항이고, 그물손질에 분주한 남정네와 제철만난 도루묵을 그물에서 떼어내는 여인네들의 정담이 묻어나는 포구다.
방파제가 시작되는 소나무사이로 우뚝 솟은 전망대는 남애항의 랜드 마크다. 바닥이 투명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애항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남쪽으로는 하얀 백사장이 길게 꼬리를 이어가는 원포해수욕장과 천혜의 남애포구가 펼쳐지고, 북쪽으로 휴휴암과 죽도정을 이어가는 해안가로 절벽을 이루고 있다.
갯마을 해변을 지나 7번 국도로 올라선다. 양양군에서도 영덕군처럼 해파랑길 조성에 열성적이다. 해안가 철조망 옆에서 벼랑 끝까지, 국도변을 가릴 것 없이 나무테크로 조성하고, 이정표와 리본을 달아 답사하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으니, 관계당국에 감사할 따름이다.
7번국도 왼쪽으로 포매호가 펼쳐진다. 상류의 포매천과 견불천에서 유입되는 석호 호수다. 망원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세가 매화나무 가지와 비슷하여 개매호(開梅湖)라 부르다가 포매호로 바뀌었다고 한다. 동해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석호는 강릉에서 삼일포사이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강릉의 경포호와 속초의 영랑호를 꼽을 수 있다.
석호(潟湖)는 사주나 사취의 발달로 바다와 격리된 호수로서, 지하를 통해서 바닷물이 섞여드는 일이 많아 염분 농도가 높고, 담수호에 비해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조류가 운반해온 모래와 암석 쇄석물들이 만의 입구에 쌓여 바다와 분리하면 석호가 된다.
쉬고 또 쉰다는 뜻을 가진 휴휴암(休休庵)을 찾아간다. 미워하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 시기와 질투, 증오와 갈등까지 팔만사천의 번뇌를 내려놓은 곳이다. 지금부터 15년 전인 1999년 주지 홍법스님이 이곳에 암자를 짓고 기도를 드리던 중, 4년째 되던 해 무지개가 뜨는 해변에서, 누워 계신 관세음보살을 발견하면서 명소로 급부상했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에 있는 휴휴암(休休庵)은 동해안 바닷가 주변 100여 평 남짓한 바위(연화법당)에서 200여m 앞 왼쪽 해변으로 기다란 바위가 보이는데, 마치 해수관음상이 감로수병을 들고 연꽃위에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 앞으로는 거북이 형상을 한 커다란 바위가 평상처럼 펼쳐져, 부처를 향해 절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한다.
휴휴암에는 화강암으로 제작된 16m의 거대한 지혜관세음보살상이 압권이다. 바로 앞 왼쪽에는 휴휴암 관음종 정각이 있다. 외부 전체에 순금을 입힌 황금종이다. 종을 세 번치면 업장이 소멸되고 앞길이 열리며 복이 들어온다고 한다.
죽도정에 오른다. 양양 8경중에 제6경인 죽도정은 1965년 5월에 건립한 정면3칸, 측면2칸에 천정이 井자형이다. 동해로 뻗어 나온 둘레 1㎞, 높이 53m의 죽도 정상에 있는 죽도정을 찾아가는 길은 송죽이 사시사철 울창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엔 섬이었지만 차츰 모래가 쌓이면서 그 모래가 바닷물을 밀어내고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제42구간: 죽도정 - 하조대해변( 9.6km)
시원하게 트인 동해바다와 향긋한 대나무향에 취해 죽도정을 벗어난다. “조개굽는마을” 동산리 이정표가 있는 동산항은 세월이 비껴간 조용한 어촌마을이다. 그나마 낚시꾼들로 인해 외지사람을 구경할 수 있는 동산항은 그만큼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마을이다. 그러하기에 도시에서의 복잡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의 품속으로 안기고 싶은 곳이다.
전방지역을 다니다 보면 38선표지석을 많이 볼 수가 있다. 휴게소까지 겸하여 국민들에게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세운 38선표지석은 우리민족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는 현장이다.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의 기쁨도 잠시, 미소공동위원회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한반도의 허리가 두 동강으로 잘리고, 6.25라는 민족의 비극을 맞으며 현재까지도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로 존재하고 있는 부끄러운 현장이다.
모처럼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사문항에 도착한다. 깨끗한 백사장을 보듬어 안으며 모래톱을 만들고, 부드러운 모래와 부딪치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산란하던 마음도 진정된다. 청정해역에서 건져 올리는 수산물 어촌체험현장을 찾아가면, 어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체험하는 즐길 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북쪽으로 오늘의 목적지인 하조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운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지고 동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하조대 해변. 사방을 둘러봐도 모텔 천국이다. 입맛대로 골라잡을 수 있는 숙소가 있기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하조대까지는 1.5km, 왕복으로 3km를 답사해야 오늘의 여정이 끝나게 된다.
산등성이를 넘어서면, 새로운 바다가 펼쳐진다. 억겁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빚어낸 수석전시장이다. 소나무들이 벼랑 끝까지 울창한 숲을 만들고, 육지로 달려드는 파도가 암초에 부딪히며 일으키는 물보라가 장관이다.
관동팔경으로 손꼽히는 하조대에 올라선다. 겨울해가 서산너머로 걸터앉는 시간. 마음이 급해진다. 동쪽 산등성이에 있는 등대를 먼저 찾는다. 등대보다는 마주보고 있는 하조대를 감상하기 위함이다. 수십 길 벼랑위에 터를 잡은 하조대와 암초위에서도 꼿꼿한 자세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낙락장송 한그루가 압권이다.
굳은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수백 년 인고의 세월을 지나면서도 고고한 품위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중국황산의 영객송 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줄달음치다시피 달려간 곳이 하조대 팔각정자다.
조선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잠시 머물렀다는 하조대. 대신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하조대라 부른다. 정자에 올라서면, 속새를 벗어나 신선들이 노닐던 경지에 들어선 듯, 만단시름이 모두 사라진다. 만경창파가 절벽의 암초에 물보라를 일으키고, 건너편에서 보았던 소나무가 깎아지른 벼랑위에서 손짓을 한다.
하조대전망대까지 답사하자면, 더 이상 지체 할 수가 없다. 절경 속에 자리 잡은 등대카페에서 차도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시 해변 가로 나와서 전망대를 찾아간다. 잠시 후, 낙조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바다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백사장도 푸른 바다도, 온 세상이 모두 황금색으로 물든다. 황홀한 정경을 마주대하며 나옹선사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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